by 브레 Nov 29. 2020
가정 폭력의 현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을까?
여성 인권에 대한 시야가 트인 이후로 무서울 때가 있었다. 피해가 곳곳에 도사리는 현실이 두려웠고, 또 한 가지는 내가 겪은 폭력에 대해서 인식하던 순간이 무서웠다. 나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내가 목격했던 것도 '가정 폭력'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덜컥 겁이 났다.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내가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을 ‘운 없게’ 겪었던 것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가정 폭력이 ‘보편화’된 문제여서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신시아 힐(Cynthia Hill)의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private violence)>은 가정 폭력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가정 폭력을 당한 여성이 남편을 피해 여성 단체로 도망쳤고, 그 남편을 체포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다루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제로 가정 폭력을 겪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폭력을 ‘모르고’ 사는 걸까?
유독 사적인 문제로 여겨지는 ‘가정’ 폭력
영화에는 트럭에서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디에나 월터스를 비롯하여 가정 폭력의 생존자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폭력을 당한 시간과 장소, 방법, 그리고 이유는 달랐지만, 근본적인 양상은 비슷했다.
주로 가해자는 피해 여성이 스스로 잘못이 있다고 느끼게끔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고, 이유를 정당화하며 폭력을 행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피해 여성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을 이용해 협박한다. 그것은 그들의 아이이기도 하고, 원초적으로는 생존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 여성이 외부의 도움 없이 가해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외부에서는 화살을 피해 여성에게 돌린다. 피해 여성이 반드시 듣게 되는 질문이 바로 ‘왜 떠나지 않았느냐’는 거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과연 이미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와 단란하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걸까. 이렇듯 영화의 원제목인 Private Violence(사적인 폭력)처럼 폭력이라는 단어 앞에 ‘가정’이 붙는 순간 그 폭력은 유독 사적인, 그리고 처벌해야 할 범죄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된다. 그런 타인들의 무책임한 시선이 폭력의 생존자를 두 번 다치게 한다.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 ‘가해자’의 문제
가정 폭력의 대처 및 판결이 어려운 이유는 이런 무책임한 시선 외에도 또 있다. 바로 가정 폭력은 가해자가 ‘가해자’로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정 폭력은 ‘가해’의 사실은 있지만 ‘가해자’라는 실체는 불확실한 폭력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가 이를 설명한다. 한 피해 여성은 가해자인 남편을 회상하면서 “그의 손은 무기기도 하지만 정원 가꾸는 걸 알려준 손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 이분화되지 않는 기억 때문에 피해자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이 폭력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폭력을 당했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고, 가해자는 처벌받아야 하는 것처럼 가정 폭력 또한 당연히 이 수순이 적용되어야 한다.
강력하게 증폭되는 연대의 힘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 여성 디에나 월터스는 가정 폭력의 생존자다. 그녀는 가정 폭력의 ‘피해’를 겪은 여성이기도 하지만 정의를 위해 싸우는 법정의 ‘증언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돕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녀를 돕는 활동가 역시 가정 폭력의 생존자이기 때문에 디에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녀를 위로하며 그녀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 연대의 힘은 의사, 변호사, 활동가 등 다양한 커뮤니티로 증폭된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발판 삼아 마침내 디에나는 그녀의 폭력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선다.
안전한 ‘선택’을 위해 정비되어야 할 법과 제도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낯선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 혹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 폭력이 처벌받아야 할 범죄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내 이웃도 가정 폭력을 겪고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2019년 여성긴급전화(1366)을 이용한 상담 건수는 35만 건으로 10년 사이 2배 증가했으며 그 중 가정폭력에 대한 상담 건이 약 20만 건을 차지했다. 가정 폭력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음을 증명하는 수치다.
정희진 씨는 저서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 ‘모든 행위나 피해는 상황과 맥락이지 그 사람의 인생이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지 폭력을 겪었다고 해서 피해 여성이 영원히 ‘피해자’로 정체화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말처럼 읽힌다. 피해 여성의 ‘피해’ 사실은 인식하되 그녀가 안전한 삶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피해 여성의 자율적 선택을 돕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식의 변화 외에도 실천이 필요하다. 그 실천을 위해 법과 제도가 보완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피해 여성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해서 많은 여성의 말을 듣고, 여성 단체로의 지원을 늘리고, 법안을 재정비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은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꼭 봐야 할 영화다.
*위 영화는 2020년 12월 1일 개막하는 14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상영작으로, 개막 이후 온라인에서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14회 여성인권영화제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