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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위대한 영성가인 “카를로 카레토”는 그의 저서 “사막에서의 편지”에서, “당신이 만약 사막에 갈 수 없다면, 당신의 삶의 자리에서 사막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는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사막으로 들어가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사막을 만들라고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 광야에 섰을 때, 비로소, 참된 나를 대면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 388장 “비바람이 칠 때와”는 찰스 웨슬리가 작사한 곡입니다. 찰스 웨슬리가 이 곡을 작사하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그가 서재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창 밖을 내다보며 쉬고 있을 때, 작은 새 한 마리가 매에 쫓겨 황급하게 그의 서재로 들어왔습니다. 새는 공포에 떨며 서재 안에서 푸드덕 거리며 날다가 그의 소매로 날아와 앉고는 평안을 찾았습니다. 새가 매를 피해 그의 서재로 피했다는 것을 안 찰스는, 새가 하는 데로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의 소매에서 평안을 찾은 작은 새를 보는 가운데, 그의 마음에 불현 듯 솟아오르는 시 한 편이 있었습니다. 그 시가 바로 “예수, 나의 영혼을 사랑하는 분”이라는 시로, 찬 388장의 가사입니다. 막 4: 37 - 38을 보시면,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합니다. 그러자, 막 4: 39을 보시면,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어디서나 평안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매를 피해 찰스의 소매에 앉은 작은 새처럼, 또, 풍랑으로 출렁이는 바다를 두려움 속에서 항해하는 제자들처럼, 두려움과 위험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보호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의 광야, 황무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를 경험한 곳이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살피고 보호해 주셨는지를 회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성인 남자만 60만 명이었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300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한 사람도 굶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의 신발이나 그들이 입은 옷이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렇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이스라엘에게 되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음을 살피는 가운데,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올 2023년에도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0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안전합니다.
국어사전에서 “황무지”의 의미를 찾아보면,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아 그냥 버려진 거칠고 쓸모없는 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약 430년의 세월을 표현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은, 세상 속에 버려진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민족으로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었습니다. 희망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황무지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황무지와도 같은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잉태케 하는 작은 수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간구였습니다. 이것이 출 2: 23절입니다. 이 구절을 쉬운 성경역으로 보시면, “세월이 흘러서 이집트 왕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요에 의해 너무나 힘겹게 일했기 때문에 신음했습니다. 그들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삶이 황무지와 같았을 때, 한 가닥의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구였습니다. 이 간구는,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동행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의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찌 하셨습니까? 출 2: 25을 보시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낸 2022년을 되돌아보면,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현실들로 인해,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서 불안과 두려움이 쌓이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우리가 겪은 황무지요, 광야에서의 삶입니다. 그 속에서는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앞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도움을 청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황무지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장소라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황무지라는 곳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찾고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에서 말씀드린 “카를로 카레토”는 “삶의 자리에서 사막을 만들라”고 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자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도,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삶 속에서의 황무지 또한 피하고 싶다하여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삶의 황무지에서 우리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수 1: 9을 보시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합니다. 또, 사 41: 10을 보시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혼자 있다고 해서,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황무지나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성도인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올 2023년에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1절을 보시면,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믿음을 단련시킴에 있어서, 마치 독수리가 그 새끼를 강한 독수리로 단련하기 위해 행하는 훈련처럼 행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독수리의 훈련 방법으로, 성도인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은 우리를 보다 완전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잠 13: 24을 보시면,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된 우리가 무늬만 성도로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을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 우리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다윗등 성경의 위인들을 보면, 그들의 생각, 그들의 마음, 그들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 역시, 우리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서든, 하나님을 믿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며 기도하는 겁니다. 롬 5: 3 -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훈련이라는 과정은 어디서나 어렵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합니다. 공수기초훈련은, 11미터 높이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뛰어내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상황이 안전하게 준비된 가운데서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훈련에 임하는 훈련생은 두려움과 위험의 압박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또, 유격훈련을 통해, 여러 상황에서 응용되는 로프타기를 배우는 데, 이 또한 훈련생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언제나 숙달로 훈련된 조교들이 있기에, 그들은 안전합니다. 새끼 독수리가 높은 암벽에서 떨어질 때는 공포와 두려움의 압박감에 있지만, 그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미 독수리가 언제든지 날아와 새끼 독수리를 위험에서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해 거친 들과 아골 골짜기로 인도하지만, 그것은, 그 곳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소망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광야를 지나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힘들고 외롭더라도, 또는 거칠고 험하더라도 우리는 그 곳에서, 나약한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훈련생들은 오직, 조교의 가르침과 조교의 사인을 보아야 합니다. 조교가 아닌 다른 것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듯, 성도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욥의 고백이 기록된, 욥 23: 8 - 10을 보시면,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합니다. 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욥이 행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고난 속에 있는 욥은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를 이끌고 계신다는 믿음의 확신이었습니다. 여러분, 올 2023년에도 우리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입니다.
본문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며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셨음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심은, 다른 어떤 존재의 능력도 의지하지 않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인 이스라엘을 인도하며 지키기 위해, 하나님 외의 다른 그 무엇을 필요로 하거나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다른 어떤 존재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홀로 완벽하시며,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세상에서 하나님께 견줄 만한 신이 없다는 겁니다. 본문에서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노력하거나 하나님 외에 우리를 구원해 줄 신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며, 또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여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시 3: 8을 보시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나 낙심되는 상실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그러기에, 시 50: 15절을 보시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본문은 하나님께서 성도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며, 보호하시는 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는 이유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평안”입니다. 요 14: 27을 보시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 우리를 구원할 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올 2023년에도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복과 은혜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