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인(兩夫人)과 육첩(六妾)의 결의(結義)
양승상은 이미 심요연과 백능파 두 여인이 산수를 사랑하는 버릇을 알고 있는지라 부종(丞相府中)의 화원 속에 있는 연못의 맑기가 호수 같고, 그 못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이름을 영아루(暎娥樓)라. 능파로 하여금 여기에 거처케 하고 또한 연못 남쪽에 가산(假山)이 있으니 뾰족한 봉우리는 옥을 깎아 세운 듯하고, 겹겹이 쌓인 석벽은 쇠를 쌓은 듯하며, 늙은 소나무는 그늘이 그윽하고 파리한 대나무는 그림자를 그리는데, 그 속에 정자가 있으니 이름은 빙설헌(氷雪軒)이라, 요연으로 하여금 여기에 거처케하니, 모든 부인과 여러 낭자들이 화원에 노닐 때에는 요연과 능파 두 사람이 산중의 부인이 되더라.
모든 사람이 조용히 능파에게 물어보되,
“낭자의 신통한 변화를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느뇨?” 하니
능파가 이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천첩의 전생(前生) 일이요, 이제는 첩이 천지의 기운을 타고 조화의 힘을 빌어 전신을 다 벗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으매 참새가 변하여 조개된 후에 어찌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리오?” 하자
모든 여인들이 말하기를,
“이치가 그러하도다.” 하더라.
심요연이 비록 시시로 유부인과 승상과 두 공주 앞에서 칼춤을 추어 한 때의 흥을 돋우나, 춤추기를 꺼려하며 하는 말이,
“당시에 칼춤이 인연이 되어 승상을 만났으나, 살기 있는 놀이라 항상 볼 바는 못되나이다.”
이후로 두 공주를 비롯하여 여섯 낭자들이 뜻이 맞는 즐거움이란, 마치 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며 새가 구름을 따라 나는 듯하여 서로 따르고 서로 의지하며 형 같고 아우 같으며 승상 도한 애정이 피차에 균일하니 이는 비록 모든 부인의 부덕(婦德)이 능히 온 집안에 화목한 기운을 이룸이려니와, 한편으로는 이들 아홉 사람이 전생으로부터 인연이 있음이니라.
하루는 두 공주가 서로 의논하되,
“두 아내와 여섯 첩들의 친숙함이 골육(骨肉)같고, 정은 형제 같으니 이 어찌 하늘이 명하신 바 아니리오? 그러니 마땅히 귀천을 가리지 말고 호형호제(呼兄呼弟)로 지내리라.”
이 뜻을 여섯 낭자에게 밝히니 다들 사양하는 중에서도 춘운과 경홍과 섬월이 더욱 응하지 아니하니, 영양공주가 타이르는 말이,
“유현덕(瀏玄德)과 관운장(關雲長)과 장익덕(張翼德:장비)이 세 사람은 군신 사이로되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었거늘, 나는 춘운과 더불어 본디 규중(閨中)에서부터 좋은 벗이니 형제됨에 무슨 불가함이 있으리오? 석가세존의 아내와 마등가(摩登伽: 음탕한 계집)의 계집과는 그 높고 천함이 아주 다르며 또 그 음행(淫行)이 디르거늘, 오히려 대사의 제자가 되어 마침내 연분을 얻었으니, 처음 미천함이 나중에 뜻을 이루는데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고
두 공주는 드디어 여섯 낭자와 더불어 궁중으로 나아가 깊히 모신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화상앞에 분향 재배하고 서약문을 지어 아뢰니 씌였으되,
<유세차(維歲次) 모년 모월 모일에 부처님의 제자인 이소화(이소화(李簫和), 정경패(鄭瓊貝), 진채봉(秦彩鳳), 가춘운(賈春雲), 계섬월(桂蟾月), 적경홍(狄驚鴻), 심요연(沈裊烟), 백능파(白凌波) 여덟 사람은 목욕 재개하고서 관음보살님 앞에 아뢰나이다. 불경에 일렀으되 사해 안에 사는 사람은 모두 형제가 되니라 하였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오라 그 지기(志氣)와 뜻이 서로 통하는 연고이오며, 천륜(天倫)의 친함을 들어 길가는 나그네와 같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오라 그 정과 뜻이 서로 다른 연고이옵나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저희들이 처음에는 비록 남쪽으로 갈리어 제각기 태어나서, 다시 동서로 흩어졌다가 한 사람의 낭군을 함께 섬기게 되었삽고, 또 같은 집에 거처하오매 어느덧 지기상합(志氣相合)하며 정의상통(情意相通)하오니, 물건으로 비유하오면 한가지의 꽃이 비바람에 흔들려서, 혹은 규중(閨中)에 날리고 혹은 언덕 위에 떨어지며, 혹은 산속 시냇물에 떨어지오나, 그 근본을 살펴보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옵나이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는 한 형제는 한 기운을 타고 났을 따름이온즉, 흩어졌다가도 어찌 한 곳으로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오리까? 옛과 지금이 비록 멀고 넓으오나 한때 같이 있삽고, 전생(前生 )으로부터의 연분 사해가 비록 크오나 한집에서 같이 살고있사오니, 이는 실로 이요,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은덕이오며, 인생에 있어 좋은 기회라 하겠나이다. 이러므로 부처님의 제자인 저희들은 이에 함께 맹세하여 형제를 맺삽고 길흉생사(吉凶生死)를 같이 하려 하오니, 이 가운데서 혹시 다른 마음을 지니고서 맹세한 말을 저바리는 사람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죽이시고 신명(神明)이 반드시 꺼리시려니와 엎드려 바라옵건데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복을 이끌어 주시며 재앙을 없이 하여 주시며, 그로써 첩들을 도우사 백년해로(百年偕老)한 연후에 함게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이로부터 두 공주가 희첩들을 아우로 부르니 여섯 낭자는 스스로 명분을 지키어 감히 형제로 부르지는 못하나 정의는 더욱 친밀하여지더라. 여덟 사람이 각기 아이를 낳으매, 두 부인과 춘운, 섬월, 요연, 경홍은 아들을 낳고 채봉과 능파는 딸을 낳아 다 잘 길러 내어, 한번도 자녀의 참경을 겪지 아니하니 이 또한 여느 사람과 다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