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딱 10분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아무것도 안 할래요" 인기 폭발 ...월 매출 380억 '1위 등극' ...
[한국경제] 2024년 3월 1일
게임에 관한 기사였다. 나 역시 게임에 미쳐본 적이 있다. '게임에 미쳤다'는 말은 보통 게임을 '열심히 한다'는 뜻이다. 점수를 더 높이기 위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끝판을 깨기 위해, 마지막 대마왕을 죽이기 위해 밤을 새워 열심히 했다. 나에게 게임은 열심히 하는 거였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언급하기를 '방치형 게임'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방치형 게임. 특별한 조작 없이도 자동으로 게임이 돌아가는 게임. 알아서 게임이 조작되고, 아이템도 자동으로 생성되니 계속하게 된다고,
'게임조차 열심히 하지 않는 세상인가?' 싶었다. 아니, 내가 모르는, 방치함으로써 느껴지는 재미가 있으니 사람들이 이런 게임을 즐길 것이다. 기사에서는 방치형 게임이 인기 있는 이유가 '스낵 컬처'의 유행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얼른 스낵 컬처의 뜻을 검색했다.
스낵 컬처... 과자를 먹듯 5~15분의 짧은 시간에 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뜻.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문화 트렌드.
모든 것이 짧아졌다. 요즘 사람들은 30분이 넘어가는 영상은 보기 힘들어한다. 짧고 간결해야 한다. 그래, 짧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좋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조급증을 만든다.
오랜만에 어떤 계기로 열정이 솟아나서 어떤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책을 읽든 운동을 하든 무언가를 시작한다. 그런데 결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 빠르게, 큰 결과를 기대하지만 결과가 나타나지 않자 쉽게 포기하기에 이른다.
모든 성공에는 반드시 역경과 고통이 따른다.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성공은 절대 없다. 고통은 곧 시간이다. 시간을 견디는 힘, 단계와 절차를 이해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모든 자연계의 생물은 시간을 거치며 성장한다. 성공도 마찬가지고, 돈도 마찬가지다. 성장통과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5분짜리, 10분짜리 호흡에 익숙하고, 그것마저 길어 1분이라는 짧은 호흡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공의 호흡은 5년에서 15년이다. 이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 도전하고 성과를 얻기까지 최소한 5년이다. 이 호흡을 몸에 익히지 못하면 절대 성공의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처럼 짧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런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짧은 시간. 이 시간에 대해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사실, 즉 그가 방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른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5~15분의 자투리 시간은 바쁜 현대인에게 더없이 귀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 멍하니 핸드폰을 켜고 게임을 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이긴다. 도덕 선생 같고 꼰대 같은 말이지만, 이것이 세상의 진리다. 멍하니 5~15분 동안 핸드폰을 쥐고 있으면 게임 속 캐릭터는 성장하고 아이템 부자도 되겠지만, 현실 속 당신의 삶은 점점 후퇴하고 부자로부터 멀어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 날 나이 든 자신을 발견하고 그땐 아무것도 없이 늙어버린 당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진짜 멍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몸이 가볍고 부지런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문명이 발전할수록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걸 기계가 알아서 대신해주는 시대니까. 그러니 일부러라도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게임 속 캐릭터가 성장할수록 당신의 몸무게도 무거워진다. 게임 속 캐릭터는 멋있는 아이템을 얻겠지만 당신은 무서운 병을 얻는다. 출퇴근 시간 혹은 점심시간에 가까운 자연을 보자. 10분 동안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세상을 보자. 지금 당장 책을 덮고 하늘을 쳐다보자. 인간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절로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나도 잠깐 글쓰기를 멈추고 욕지도 푸른 하늘을 보겠다.
돌아왔다. 10분 동안 하늘을 보며 앉아 있었다. 하늘을 보니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않아 있나? 생각이 든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여기 욕지도에 왔다.
지난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다워 계속해 읽기를 멈추었던 책이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 [메밀꽃 필 무렵] 209쪽
산허리는 온통 모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발걸음도 시원하다... [메밀꽃 필 무렵] 211쪽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행복했다. 글을 쓰기 위해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글쓰기는 잊어버리고 문장의 아름다움에 빠져 순간순간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물론 게임에 빠져 있을 때도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이 천지 차이다. 게임 후에 오는 몸과 정신의 불쾌감을 모두 알 것이다. 독서 후, 특히 저런 아름다운 문장을 읽은 후에는 몸은 가뿐해지고 가슴은 충만해졌음이 느껴진다. 저런 문장들이 쌓여 내 몸속에 역량이라는 아이템이 만들어진다. 그 역량이라는 아이템만 있으면 세상 어디에서든 부(富)를 쌓을수 있다. 어떤 어려움도 모두 이길 수 있다. 그야말로 최강의 아이템을 얻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지금 이 순간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행복한데, 삶에서 쓸 강력한 아이템까지 얻을 수 있다니!
하루 10분이면 충분하다. '생각하는 시간'을 딱 한 번만 가져보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아이템을 얻고 싶지 않은가? 10분이면 충분하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고명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