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국민일보 기사(성범죄 전력 숨기고 학원·교습소에 취업…127명 적발)를 보고 느낀 점입니다. 세상에서 돈 버는 직업들에서조차도 성범죄 전과자들은 적발해 퇴출을 하는데요. 성범죄 전력을 숨기고 교회에서 일하는 목회자와, 성범죄 전력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여전히 일하는 목회자들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관리와 대처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상 직업의 성범죄 전과자 적발에 대한 냉정한 잣대를 거룩하게 살아야 할 목회자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전국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56만7021곳의 성범죄자 취업 여부를 점검해 128곳에서 성범죄 전력자를 적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성범죄 전력에도 기관을 차리고 운영한 인원이 45명, 종사자는 82명으로 집계됐다. [출처] - 국민일보(2025-03-18)
엡5:3-5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호크마 주석>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 - "더러운 것"은 범위가 넓은 말이니 음행과 기타 부당한 영리 행위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탐욕 - 이것은 세상의 것을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 취하려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의 소유자는 언제나 하나님보다 물욕(物慾)을 앞세우고 거기에 열중하는 고로 탐심은 우상 숭배와 같다(골 3:5)
엡 5:4 누추함...어리석은 말...희롱의 말 - 이 세지 말은 남에게 손해를 주는 언사다. "누추함"은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바 남에게 수욕을 주는 언행이고 "어리석은 말"은 남의 정지(情地)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련한 말이니 남에게 무례한 언사요,"희롱한 말"은 건덕에 필요한 좋은 농담(상대편을 존대하거나 함께 즐기는 정신을 보이는 농담)이 아니고 상대편을 무시하는 농락이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 - 이것은 인간에게 보다 하나님께 감사라라는 말씀이다. 곧, 하나님께 계속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또 그들과 대화해야 될 것을 가리킨다.
엡 5: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 곧, 에베소 신자들이 이 아랫말이 가리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는 말이다. 그것은 음행하는 자나 탐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이것은 불신자의 회개하기 전 상태를 말한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 이것은 그런 죄를 범한 자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에 있어서 정죄를 받는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고전 6:11참조 "우상 숭배자" 이 말은 오지 그 위말("탐하는 자")과만 관련된 것이다. 골 3:5 참조. 이 귀절에 있는 죄목들의 의미에 대하여는 3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내용이다.
어떤 경우에는 명목상 신자의 성범죄가 불신자보다도 더 사악한 경우가 있습니다. ----------------------- 고전5:1-2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호크마 주석> =====5:1 너희 중에...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 '음행'(* '포르네이아)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의 육욕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행위를 뜻하지만 보편적인 의미로는 불법적인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심지어'(* , 홀로스)가 본문 초두에 나와 있는데 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미 벌어졌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서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1)그들 가운데 음행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2)이 추악한 음행을 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의 부도덕한 성행위가 보편화되지 않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행해지는 제한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범죄가 교회로 부터 정죄(定罪)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 속에 음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또한 바울에게까지 소식이 들릴 만큼 그 행위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한편 '들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쿠에타이'(* )는 '아쿠오'(* , 듣다)의 현재수동태로서 '...라는 소문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글로에의 집 식구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11, Farrar). 뿐만 아니라 이것은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기에 여러 경로(소문)를 통해서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Lenski).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 - 유대인의 율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레 18:8;신 22:30). 이러한 율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바울이 구태여 여기서 이방인과 비교한 것은 더 이상 재고의 가치도 필요 없는 아주 경멸스런 행위로 취급하기 위함이다. 당시 고린도 지방은 성적 문란과 방종으로 소문난 곳이었으나
바울은 그 이방인의 문란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반영(反映)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방인들은 이러한 범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본절은 당시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치욕스러운 죄로 취급하는 추악한 행위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Calvin). 그 아비의 이내를 취하였다 - 바울은 이 사건을 '간통'이나 '근친상간'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하여 음행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비의 아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그 음행이 최소한 '그의 어머니'(친모)와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음행은 아닌 것 같다(L. Morris). 사실 본문에는 그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대상이 '아비의 아내' 였다는 점과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 '귀나이카'(* )란 뜻으로 '계모'(* , 메트뤼이아)라는 말과 거의 뜻을 같이 하기 때문에 '아내'는 아버지의 첩이거나 의붓어머니일 수 있다(Farrar, Calvin). 한편 '취하였다'라는
헬라어 본문 '에케인'(* )은 현재 부정사로 이 음행 사건이 단회 적이지 않고 지금도 지속적(持續的)인 반복 행위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여기서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말은 계모와의 관계에서 성적 부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Harris).
=====5:2 그리하고도...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 그들은 도대체 어떤 지식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방인들도 정죄하는 음행을 저지르면서도 원통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교만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이방인의 생활 습관을 미처 다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괴이한 악행 가운데서도 여전히 회개할 줄 몰랐고 버젓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F. W. Farrar). 그들은 음행 사건으로 인하여 적어도 수치스러워하며,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자신들을 되돌아 보아 최소한 통한히 여기는 모습으로 주의 용서와 은혜를 구했어야 했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지'의 헬라어 '에펜데사테'(* )는 '죽은 자로 인하여 애통한다'는 의미로
죄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나타낸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한 자유와 방종으로(6:12;10:23)인하여 죄악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공동체적인 책임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동체적인 책임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영의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육체적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또 다른 교만과 거짓으로 더 큰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이처럼 형제의 죄악을 보고 애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가 분열과 분쟁을 격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성적 타락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한 자에 대해 무관심 내지 방조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 가운데 있던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그리스도인들의 연대적(連帶的) 책임성과 지체 의식 (2)무관심과 교만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방해하는 범죄라는 점 (3)어떠한 죄악 가운데서도 회개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5절).
교회와 기독교 기관에도 성 범죄자 전력자들이 분명히 일 하고 있습니다만,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실제론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가 이들로부터 무방비 상태가 되고, 청소년들과 부녀자들의 피해가 심심찮게 터지는 것 같습니다. 강호순 사건이 잘 말해 주죠. 담임목사가 강호순에게 열쇠까지 주고 건물을 들락거리게 했으니... 신학교에서부터 성범죄를 차단시키고 교회에 부임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지침을 마련해서 엄격하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총회에 신고센터를 두고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성 비위 사건이 터지면 경찰 등 외부에서 알게 되어 사건이 커지면 교회가 어려워질까봐 쉬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피해가 더 커지고 난 다음에야 언론과 경찰이 나서게 되고, 교회는 더 큰 피해를 입고 그렇게 됩니다. 왜 교회와 기독교 기관들이 이런 일에 미온적이고 무기력하게 대처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의문입니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까?
아마 회개, 용서와 같은 기독교적 가치관 때문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놓고 개입을 안 하고 싶어하는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십계명에 살인, 간음, 도둑질에 대해서 분명하게 큰 죄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성범죄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도둑과 강도가 들었는데 경찰에 신고 안 하고 넘어가나요? 성범죄도 개인적 죄로 은밀하게 처리할 게 아니라 교회에서 공식화시켜서 엄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명단 공개도 해야 하고, 채용 시 범죄 경력 조회를 해야겠죠.
첫댓글 카페에 글을 올리면 성의 껏 준비한 글보다 이런 류의 글이 카페 검색들을 더 잘 이끌어 옵니다. 씁쓸하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이러다가 멀쩡한 목사도 선입견을 받을까봐 걱정입니다ㅠㅠ
네,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엡5:3-5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호크마 주석>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 - "더러운 것"은 범위가 넓은 말이니 음행과 기타 부당한 영리 행위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탐욕 - 이것은 세상의 것을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 취하려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의 소유자는 언제나 하나님보다 물욕(物慾)을 앞세우고 거기에 열중하는 고로 탐심은 우상 숭배와 같다(골 3:5)
엡 5:4
누추함...어리석은 말...희롱의 말 - 이 세지 말은 남에게 손해를 주는 언사다. "누추함"은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바 남에게 수욕을 주는 언행이고 "어리석은 말"은 남의 정지(情地)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련한 말이니 남에게 무례한 언사요,"희롱한 말"은 건덕에 필요한 좋은 농담(상대편을 존대하거나 함께 즐기는 정신을 보이는 농담)이 아니고 상대편을 무시하는 농락이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 - 이것은 인간에게 보다 하나님께 감사라라는 말씀이다. 곧, 하나님께 계속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또 그들과 대화해야 될 것을 가리킨다.
엡 5: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 곧, 에베소 신자들이 이 아랫말이 가리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는 말이다. 그것은 음행하는 자나 탐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이것은 불신자의 회개하기 전 상태를 말한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 이것은 그런 죄를 범한 자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에 있어서 정죄를 받는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고전 6:11참조
"우상 숭배자" 이 말은 오지 그 위말("탐하는 자")과만 관련된 것이다. 골 3:5 참조. 이 귀절에 있는 죄목들의 의미에 대하여는 3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내용이다.
어떤 경우에는 명목상 신자의 성범죄가 불신자보다도 더 사악한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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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5:1-2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호크마 주석>
=====5:1
너희 중에...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 '음행'(* '포르네이아)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의 육욕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행위를 뜻하지만 보편적인 의미로는 불법적인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심지어'(* , 홀로스)가 본문 초두에 나와 있는데 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미 벌어졌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서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1)그들 가운데 음행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2)이 추악한 음행을 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의 부도덕한 성행위가 보편화되지 않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행해지는 제한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범죄가 교회로 부터 정죄(定罪)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 속에 음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또한 바울에게까지 소식이 들릴 만큼 그 행위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한편 '들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쿠에타이'(* )는 '아쿠오'(* , 듣다)의 현재수동태로서 '...라는 소문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글로에의 집 식구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11, Farrar). 뿐만 아니라 이것은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기에 여러 경로(소문)를 통해서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Lenski).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 - 유대인의 율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레 18:8;신 22:30). 이러한 율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바울이 구태여 여기서 이방인과 비교한 것은 더 이상 재고의 가치도 필요 없는 아주 경멸스런 행위로 취급하기 위함이다. 당시 고린도 지방은 성적 문란과 방종으로 소문난 곳이었으나
바울은 그 이방인의 문란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반영(反映)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방인들은 이러한 범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본절은 당시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치욕스러운 죄로 취급하는 추악한 행위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Calvin).
그 아비의 이내를 취하였다 - 바울은 이 사건을 '간통'이나 '근친상간'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하여 음행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비의 아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그 음행이 최소한 '그의 어머니'(친모)와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음행은 아닌 것 같다(L. Morris). 사실 본문에는 그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대상이 '아비의 아내' 였다는 점과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 '귀나이카'(* )란 뜻으로 '계모'(* , 메트뤼이아)라는 말과 거의 뜻을 같이 하기 때문에 '아내'는 아버지의 첩이거나 의붓어머니일 수 있다(Farrar, Calvin). 한편 '취하였다'라는
헬라어 본문 '에케인'(* )은 현재 부정사로 이 음행 사건이 단회 적이지 않고 지금도 지속적(持續的)인 반복 행위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여기서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말은 계모와의 관계에서 성적 부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Harris).
=====5:2
그리하고도...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 그들은 도대체 어떤 지식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방인들도 정죄하는 음행을 저지르면서도 원통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교만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이방인의 생활 습관을 미처 다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괴이한 악행 가운데서도 여전히 회개할 줄 몰랐고 버젓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F. W. Farrar). 그들은 음행 사건으로 인하여 적어도 수치스러워하며,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자신들을 되돌아 보아 최소한 통한히 여기는 모습으로 주의 용서와 은혜를 구했어야 했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지'의 헬라어 '에펜데사테'(* )는 '죽은 자로 인하여 애통한다'는 의미로
죄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나타낸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한 자유와 방종으로(6:12;10:23)인하여 죄악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공동체적인 책임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동체적인 책임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영의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육체적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또 다른 교만과 거짓으로 더 큰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이처럼 형제의 죄악을 보고 애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가 분열과 분쟁을 격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성적 타락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한 자에 대해 무관심 내지 방조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 가운데 있던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그리스도인들의 연대적(連帶的) 책임성과 지체 의식 (2)무관심과 교만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방해하는 범죄라는 점 (3)어떠한 죄악 가운데서도 회개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5절).
교회와 기독교 기관에도 성 범죄자 전력자들이 분명히 일 하고 있습니다만,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실제론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가 이들로부터 무방비 상태가 되고, 청소년들과 부녀자들의 피해가 심심찮게 터지는 것 같습니다. 강호순 사건이 잘 말해 주죠. 담임목사가 강호순에게 열쇠까지 주고 건물을 들락거리게 했으니...
신학교에서부터 성범죄를 차단시키고 교회에 부임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지침을 마련해서 엄격하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총회에 신고센터를 두고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성 비위 사건이 터지면 경찰 등 외부에서 알게 되어 사건이 커지면 교회가 어려워질까봐 쉬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피해가 더 커지고 난 다음에야 언론과 경찰이 나서게 되고, 교회는 더 큰 피해를 입고 그렇게 됩니다.
왜 교회와 기독교 기관들이 이런 일에 미온적이고 무기력하게 대처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의문입니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까?
매우 공감합니다. 교회를 거룩할 성聖의 성역화를 하지 못하고 음란한 자들이 허용될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어서 마치 구약의 선지서와 같은 상황이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아마 회개, 용서와 같은 기독교적 가치관 때문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놓고 개입을 안 하고 싶어하는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십계명에 살인, 간음, 도둑질에 대해서 분명하게 큰 죄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성범죄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도둑과 강도가 들었는데 경찰에 신고 안 하고 넘어가나요? 성범죄도 개인적 죄로 은밀하게 처리할 게 아니라 교회에서 공식화시켜서 엄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명단 공개도 해야 하고, 채용 시 범죄 경력 조회를 해야겠죠.
교회가 어설픈 인본주의적 관용에 기대어 비대칭적인 용서만을 강조하면 오히려 성경과 신본주의에 역행하고 성범죄를 묵인하는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성범죄 엄금은 구약의 율법만이 아니라 신약 복음의 요청사항이기도 합니다.
@장코뱅 네, 공감합니다.
@장코뱅 네. 개념화 시킨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너무나 현실적인 내용이라서 오히려 서글픈 교회 사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