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1928~1967)는 영원한 혁명의 상징이다. 혁명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체 게바라’를 소비하는 일은 자신을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는 좋은 수단이다. 일찍이 혁명가의 이름이 T셔츠에 박혀 그렇게 많은 나라에서 소비된 적은 없었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는 혁명의 대명사 ‘체 게바라’가 아닌, 미래의 쿠바 혁명가가 될 아르헨티나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여행담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상품’의 조건을 갖췄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스물세 살 의대생 에르네스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푸세라는 애칭의 그는 인간미 넘치고 엉뚱한 생화학도 알베르토 그라나도(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와 함께 4개월의 남미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난다. 그들에겐 낡은 오토바이 ‘포데로사’, 그리고 거의 빈 주머니, 대신 세상에 대한 싱싱한 호기심이 있었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을 거쳐 미국에 가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애초에 여정을 정해 놓은 것은 실수였다. 인생은 언제나 의외성과 우연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에게서 2달러를 받아 “미국 가서 수영복을 사다 주겠다”던 푸세는 텐트를 잃어버리고, 오토바이까지 고장나자 ‘반 사기꾼’처럼 “남미의 풍토병을 연구하는 의사와 생화학자”라고 주장하며 신문에 인터뷰까지 한다. 그들은 때로 안쓰러운 얼굴로 여자들에게서 와인과 밥을 얻어먹고, 오토바이도 공짜로 고쳐달라고 한다.
두 사람은 칠레의 추키카마타 광산에서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이념 때문에 집을 잃고 유랑하는 부부를 만난 후 충격에 빠진다. 남미 최대의 나환자촌 페루의 산파블로에 머물면서 그의 충격은 정치적 신념으로 조금씩 숙성된다. 의사가 환자들을 직접 만지는 것을 금하는 편협한 교회의 시선에 그는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단결’을 도모하는 미래의 혁명가로서의 씨앗 하나를 얻는다.
‘중앙역’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월터 살레스 감독은 언제나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로드 무비를 통해 인간 체 게바라의 속살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정치적 인물을 가장 멋지게 보이게 하는 것은 정치색을 탈색한 접근이라는 것을 영리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평론가들도 열명 중 아홉은 이 영화에 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그러나 한 명이 반대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이 영화가 마치 인도나 남미 빈국의 처연한 광경을 ‘무소유의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우편엽서 같기 때문이다. 감독은 적극적 감정 이입 대신 객관적 거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기에 따라 ‘저 가난한 얼굴이 얼마나 평화로워 보이는가’ 식의 메시지를 담은 듯 보인다. 때문에 영화는 품격있는 대중 영화라는 영광과 동시에 혁명 정신에 당의정을 입힌 상업 영화라는 비난도 면키는 힘들 것 같다. 몰론 뼛속까지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라틴 리듬과 주인공들의 사랑스러운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는 데 이견을 달 수는 없다.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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