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1921-2003)
경기 안성 출신으로 일본 도코 대학에서 공부했다.
1945년 8·15 광복(을유 해방) 후 경성사범학교(1945~1946), 제물포고등학교(1947~1948), 서울고등학교(1948~1955)의 교사를 지냈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그는 도회인의 애상을 평이한 수법으로 노래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955년 중앙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등을 거쳐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많은 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하루만의 위안》, 《인간고도》, 《밤의 이야기》,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공존의 이유》, 《남남》 등이 있다.
조병화는 일상의 모든 일을 시에 담아냈다. 시적 소재나 시적 정서가 그에게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의 언어로 꾸며냈다. 진솔하게 표현함으로 삶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질이라면 꾸밈없는 어투의 부드러움이다. 고통없는 삶이 어디에 있을까마는 그는 고통을 고통으로 토로하지 않고 내면화하여 여유있게 수용하였다.
원숙한 삶의 경지를 찾아가는 조병화 시의 목소리는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데 순수 허무라는 시인의 주장대로 고독한 삶의 전 과정을 함축한 시적 의미를 내포한다.
조병화 시가 많은 대중에게 존재의 의미를 확장시킨 것은 서정의 빈곤성, 비인간적인 현실에 대한 반성과 거리두기와 위안을 주었다는 사실에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는 광복 이후 도시 서울시민으로서의 혼란함, 소시민의 고뇌를 『하루만의 위안』(제2시집)에 담아내면서 시적 성취를 이뤄낸다. 언어의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 정감적인 느낌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그의 시언어는 고독한 인생길의 방향을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
조병화님 시모음 22편
1.너와 나는
조병화
이별하기에 슬픈 시절은 이미 늦었다
모두가 어제와 같이 배열되는 시간 속에
나에게도 내일과 같은 그날이 있을 것만 같이
그날의 기도를 위하여
내 모든 사랑의 예절을 정리해야 한다
떼어버린 카렌다 속에 모닝커피처럼
사랑은 가벼운 생리가 된다
너와 나의 회화엔 사랑의 문답이 없다
또 하나의 행복한 날의 기억을 위하여서만
눈물의 인사를 빌리기로 하자
하루와 같이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와도 같이 보내야 할 인생 이였다
모두가 어제와 같이 배열되는 시간 속에
나에게도 내일과 같은 그날이 있을 것만 같이
이별하기에 슬픈 시절이 돌아간 샨데리아
그늘에 서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작별을 해야 한다
너와 나는
2.후조
조병화
후조기에 애착일랑 금물이었고
그러기에 감상의 속성을 벌써 잊었에라
가장 태양을 사랑하고 원망함이 후조였거늘
후조는 유달리 어려서부터
날개와 눈알을 사랑하길 알았에라
높이 날음이 자랑이 아니에라
멀리 날음이 소망이 아니에라
날아야 할 날에 날아야 함이에라
달도 별도 온갖 꽃송이도
나를 위함이 아니에라
날이 오면 날아야 할 후조이기에
마음의 구속일랑 금물이었고
고독을 날려버린 기류에 살라 함이 에라
3.이렇게 될 줄 알면서
조병화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이 깔린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겉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했습니다
인생이 겉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첫댓글 조병화 선생님은 저의 시를 문단에 추천해 주신 분입니다...
선생님의 추천서가 저의 제2시집 <눈부신 오후> 맺는 말에 실려 있습니다...
평이한 삶 속에서 평이한 일상을 시의 언어로 승화시키신 분, 선생님의 시세계를 흠모합니다... ^^*...
아, 그러하셨네요. 저는 일일문학회 회원이 되려면 시 공부도 조금 해야되겠다 싶어서 ----- 낯선 분야의 책을 꺼내어 봅니다. 시인님들의 시를 읽으니 노인되어 매마른 저의 감성도 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름도 몰랐던, 김기림, 오정환 등의 시도 알았고, 김기림의 시는 좋아서 한 편 외워보기도 했습니다. 머리가 녹이 쓸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