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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약사를 통해 알게 된 세 종류의 불교
머릿 말
조선불교약사 는 퇴경 권상노 박사 가 대정 정사년(서기1918) 에 편저 하였다.
한문을 주로 하고 고대한글로 토를 달은 책으로 한문단어는 국어사전에 안 나오는 고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 책도 고/ 백/ 신/을 묶어 조선삼국이라 칭하며 내용 또한 고/ 백/신/의 절 건립한 스토리 와 고승들에 관한 것
이다.
필자는 이 책의 起始 부 인 불교시래(佛敎始來)를 겨우 현대문으로 옮겼는 데도 벌써 세 종류의 불교에 관한 실마리
를 잡게 되었다.
권상노 박사는 승려 이면서 대학교수였고 1962년 동국대 총장으로 정년퇴임 했는 데 문화계 의 업적으로 문화훈장
을 받았고 저서도 수십권이 있다.
필자는 이분을 엘리트 친일파 대처승 으로 보고 이 분 에게는 호국호왕 의 고대 정통불교관 이 있을 것이라 짐작
했는데 짐작 대로 였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 확신을 얻은 것은 첫째- 불기는 2551년 이 아니라 북방불교는 3034년 이라는 확신 그리고
불기 2551년 이 무조건 조작 된 것이 아니라 그것도 나름대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로- 서양부천님 동양부천님 중국 남방 부천님으로 구분해야 하며,
그에 따라 서양부천님 은 대승공교, 동양부천님은 주술불교(밀교), 남방부천님은 소승有교 ( 멸업사상 염세주의) 로
구분 해야 불교를 빠르게 이해 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고지 해야 할 것은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도 (천축=텐뚜 신독=힌두)를 우랄알타이로 보며 지나가
자랑스러워 하는 노자 는 그가 곧 가섭불이며 도교의 주존 이라는 시각으로 이 책을 해석 했다는 것이다.
물론 번역 에는 원문 을 현대문으로 옮겼을 뿐 필자의 주관을 넣지 않았다
위에 말한 부분들 역시 한반도 사관으로는 이해 안되고 대륙사관으로 읽어야 이해가 되는 것 들이다.
조선불교 약사 - 퇴경 권상노 편저
[원문생략]
- 불교가 처음 들어오다 - 임신년 (신라 내물왕 17년 백제 근초고왕 27년 고구려 소수림왕2년)
6월에 진왕부견이 사신을 보내어 부도교의 순도스님과 불상불경을 고구려에 보내니 임금과 신하가 회우의 예를
다하여 성문에 나아가 봉영하고 지성으로 섬기며 경사스럽게 느끼여 불상과 불경을 유통케 하고 사신을 보내어
감사의 예를 올리며 특산물을 바쳤다
[해설]
1. 임신은 유세차 임신년이니 유세차는 그물의 벼리가 위에서 부터 아래로 차례차례 있는것 처럼 갑자년 부터 계해년
까지 60년 순서를 말한다.
고구려 소수림왕2년은 서기 372년인데 이해의 임신년은 상중하 원 의 몆번째 회갑한 임신년 인지 따져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2, 진왕부견은 前秦 사람이다 전진 이나 후진 모두 아프간 북부지역으로 한서에서는 구자국 또는 고차국으로 나온다
전진은 요씨 한테 망했는데 요씨의 진이 후진이며 요진이다.
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의 고향이다.
실담어 (산스크리트) 로 된 불경은 모두 이 어른이 한문으로 번역 했다는 점을 연구하면 천축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된다.
3, [부도교 순도] 운운 은 불교를 옛날엔 부도교 라 고 도 했다.
한반도에서 부도는 고승들의 사리탑이지만 티벳이나 몽고지역에서는 솟대(타르초)이다.
솟대를 상형한 한자는 보일시(示)이다.
사마니즘의 대표적 상징물이며 종교행위를 표현하는 한문은 모두 이것으로 되어 있다.
[해동고승전]에 는 진시황이 아쇼카 왕이 건립한 팔만사천수투파 (솟대)를 분서갱유하면서 같이 파괴 해버렸다고
나온다.
팔만사천은 그냥 많은 것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아쇼카 왕이 부천님 사리탑을 그렇게 많이 세웠는데 그 부천님들은 동이의 지도자급 사만들이지 결코 우리가 역사
에서 배운 지금의 인도에서 태어났다는 서가모니가 아니다.
유라시아 초원은 지금도 사람의 시신을 돌맹이로 덮고 그 위에 솟대를 꼽는다.
그 무덤속의 인물이 주술 무술 역술로 부족을 지도 했다면 그 타르초는 신성구역이 된다.
4,[성문봉영] 운운 은 省문은 외국의 귀빈을 마중하고 전송하는 문이다.
봉영은 높은 분을 맞이 하는 것이다.
고구려 가 신장성 감숙성에 있엇으므로 순도일행이 서쪽에서 온 것이다.
고구려에 이미 주술사만들이 있는데도 순도가 가지고 온 불교를 귀히 여긴 까닭은 전장의 원혼을 천도하는 능력이
서역의 가섭불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찰에서 천도재를 지낼때 외우는 경이 바로 대승空교의 경전들이다. ( 예,금강경)
당시 고구려는 주술밀교로 전장에서 우수한 전투능력을 구사 했지만 전사한 장병들의 악령 때문에 고생 하고 있었다.
(사막에서 원혼의 울부짖음이 이해 안되시는 분은 당나라 시인 두보 의 시 를 참고 하시오 )
당시
병거행 - 두보
늙은 아버지 그리고 며느리는 달리며 아들과 작별한다
먼지는 일어 함양교가 가려지는데
옷자락 부여 잡고 발구르는 통곡은
구름 위로 솟아 오른다
- 중략-
아들 낳면 나쁘고 딸 낳으면 좋다는 것을 정말 알았네
딸을 낳으면 인근으로 시집가지만
아들을 낳으면 잡초 와 섞여 묻힌다
그대 못 보았는가?
靑海省 언저리
옛날부터 내려 온 주인 없는 백골들
新鬼는 괴로워 하고 舊鬼는 통곡 한다네
비오는 흐린 날에 흐느낀 다네
(번역 최남석)
[원문생략]
이 시기는 조선에 삼국이 성립하던 시대이니 고구려의 땅이 지나와 가장 가까운 까닭에 법화(法化)를 먼저 입게 되
었으니 세존께서 입멸하신지 1323년 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순도는 소승 유부종의 사람이라 가지고 온 경논도 모두 소승 유부종의 경전이었다.
(삼국 = 신라(경주) 백제(광주) 고구려(성천)) - 본서 에 있음 -
[해설]
1, [고구려 땅이 지나와 가장 가까운,,,] 이말은 얼핏 한반도로 생각 하기 쉽다.
그러나 지나는 고조선 진한을 병탄한 진시황의 진 과 변한이 합해진 후 에 생긴 말이다.
위치는 곤륜산 동쪽 신장 감숙 의 서쪽지역이다 따라서 신장 감숙 에 있는 고구려와 가까울 수 밗에 없다.
2 .[ 세존께서 입멸하신지 1323년] 이 말에 주의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별도로 상논 할 생각이다.
3 , [그러나 순도는 소승 有部종의 사람이라,,,,] 이 말은 원하지 않은 불교가 들어 왔다라는 말로 이부분도 별도로
상논 할 생각이다.
2항 을 상논한다.
북방 새거란족 출신 사카무니 BC 1027 년 우랄 알타이 에서 출생 - (사기열전 곽거병 참조)
이 사카무니가 별세 한지 1323 년 후 서기 372년에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옴.
따라서 1027 +372= 1398 이고 사카무니 의 입멸 후 1323년 지나 서 고구려에 들어 왔다.
하니 1398에서 1323을 빼니 75이다 이 75가 북방사카무니 의 재세기간이다.
현대불교는 세계불교 고승대회 를 태국에서 열은 후로 불 탄생 을 2007년 현재 2551년 이라 주장하며, 사카무니
재세기간을 80년으로 본다.
따라서 2항 의 년대는 현대불교의 사카무니 년대가 아니다.
2항의 년대는 1955년 이 승만과 신참 승려들에 의해 숙청 당하여 한반도 의 전통사찰에서 쫓겨 난 대처승들이 쓰던
불기이다 (대처승 들의 불기 BC1027 + AD 2007 = 3034년)
1970년 태국에서 세계고승대회를 열은 후 에 남방불교의 계율과 교리가 남한에서 시행되는데 그 앞잡이들은 회색
승복을 벗고 남방 소승 불교 승려들의 복장으로 바꿔 입었다.
남방의 불기는 북방 사카무니 탄생년도 가 아니고 소승유부종 소속으로 도를 이루고 대중의 존경을 받던 고타마
실달타라는 비구의 출생년도이다. (이 부분에 관해 필자의 기억 이 불명하여 자료를 탐색 중에 있음)
후한때 공식적으로 불교를 수입한 한나라는 전한때에 이미 두번이나 불상 불경을 수입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때 이들은 월지국과 우랄알타이쪽 사막에서 불상(금인)을 들여 왔다.
현재 사마르칸트 국립박물관 소장의 금인을 보면 고구려 복색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데 한나라의 북쪽 사막의 오랑캐
들이 신앙한 금인은 불상이긴 하지만 간다라 그리스계 불상과 아주 다른 모습이다.
사막의 흉노는 새거란 족이고 그들이 신앙한 금인은 새거란족 주술불교(호국호왕불교) 의부천님이다.
간다라 그리스계 부천님은 대승공교의 가섭불이며, 가섭은 키스파이므로 지중해 쪽의 서양부천님이며,
대승공교가 노자와 같은 사상이고 노자가 도교의 주존불 이고 도교의 내용이 대승불교와 주술불교로 이루어졌고
가섭불이나 도교의 발상년대가 비슷하다고 연구되는 것으로 보아 이는 동일한 종교이지만 후대로 가면서 대승불교
와 도교가 서로 죽이는 싸움을 하여 사이가 벌어졌다.
가섭불에 관한 단서는 삼국유사 황룡사 편에 있고 단기고사 2세 단제 부루편에 있다.
2세 단제 부루가 기원전 2240 년 임 을 생각하면 부루(불=부천 =부테)가 논의한 남여의 불교 황룡사의 가섭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순도는 소승 유부종의 사람이라 가지고 온 경전도,,,,] 이 말의 의미는 대승공교(가섭불 백면노자) 를 원했
는데 소승이 왔다는 뜻이다.
고구려에 이미 북방 사카무니의 불교인 서가제바환인교(제석불교) 가 기존했는데도 대승공교를 원한 것은 필자의
연구에 의 하면 전장에서 목이 날아간 악령들 때문이다.
대승공교는 노자와 동일한 사상으로 생사를 不二로 보며 空無로 본다.
대승은 출가와 재가를 , 차안과 피안을 하나로 보기에 대승이라 한다.
대승의 이러한 사상은 원귀들 의 미몽을 깨우치게 하며 위로 해 준다.
대승공교는 북방의 주술불교 보다 늦게 생겨 난 종교이다.
주술 사마니즘이 모든 종교보다 앞 선다는 것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때문에 고구려 소수림
왕2년에 들어온 불교가 북방 사카무니 주술 불교라고 오해 해서는 안 되지만, 서세들이 주술불교를 예민하게 공격
하여 없애 버린 까닭에 이런 오해가 야기 되는 것이다.
주술불교는 호국호왕불교 이며 주술이 초능력을 발휘 하려면 삼매 (정신통일된 강력한 파워) 를 성취 해야 되는 것
이니 삼매는 무념무상을 승화 하는 것이 아니라 유념유상을 승화 하는 것이다.
티벳주술 불교를 보면 분노삼매를 최고삼매로 존중햇는데 이는 전투 때문 이였다.
독서삼매 음악삼매 무용 삼매 자삼매 희삼매 비삼매 등 등 모든 일상의 작업에서 산난심을 버리고 심일경성(정신통일)
으로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주술밀교이다.
삼매를 수행한자가 진언을 외우면 초능력이 발생하고 검술을 삼매에 몰입해서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는
굳이 말 할 필요 없다.
때문에 서세들이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동양의 주술 무술 역술을 없앰으로 호국불교가 망하고 호국불교가 망하자
따라서 왕권이 붕괴되었다.
그러면 소승 有부 의 내용은 무엇인가 ?
소승은 스스로 소승이라고 하지 않는다. 소승이란 작은 수레라는 뜻으로 모욕적 언사이기 때문이다.
대승이 실존을 공무(空無) 로 보는데 반하여 소승은 시간과 공간이 실재한다고 본다.
대승은 유무( 有無 ) 를 착각이라고 보기에 깨달으면 모든 만유가 空이라고 보며 유념유상 희노애락 번뇌망상을
삼매로 승화 사키는 수행을 하지만 (특히 밀교가 그러하다 )
소승은 번뇌 와 업장이 실유라고 생각하여 이를 소멸 정화 시키는 수행을 한다.
이 수행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도 안 가지며 국가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세속을 떠나 무념무상을 승화시키는
선정을 닦는다.
이를 이루기위해 소승계를 제정하여 불살생 /, 불사음 (성교와 자위를 금하는 것) /돈이나 패물을 소지 하지 말라 /,
농사짓마라,/ 장사하지말라 / 점치지 마라 / 중매하지 마라 / 밥해 먹지마라 ,/ 기복행위를 하지마라 등 등 거의
모든 계율이 북방 의 서가제바환인교 ( 제석과 사가모니의 종교 서가모니의 조상신이 서가제바환인 이고 이분이
제석이며 수미산에서 사대주를 통치한 지상에 사시는 천제이다 ) 를 부정하고, 모독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소승불교가 북방으로 도입되면서 북방의 주술사만 호왕호국 무술불교는 비적 집단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들 소승교에 기준을 두면 서산사명의 승병이 파계가 되고 고려의 승과(사실은 무과)가 계율에 어긋나며 고려불교의
경제활동과 최고급 전투집단인 재가화상들이 모두 퍄계승들이며 한반도의 대처승들 또한 파계승이 되고 지금의
일본승려들 또한 대처와 축재를 하니 파계승 이고 왕들의 정치고문을 했던 고려의 수많은 국사 왕사들이 모두 파계
승이 된다.
1911년 서세의 기독교로 개종한 손문일당이 신해혁명을 일으켜 남방에 있는 소승유교를 북방으로 수입하기 전에
이미 전통고불교는 태평천국의난 이라든가 의화단 사태등으로 서세들의 신식무기에 의해 학살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문은 남방불교를 북방으로 수입해 왔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여기서는 일단 간단하게 답한다.
그것은 소승불교와 기독교화한 헬레니즘이 같은 사상이기 때문이다.
이 얘기 는 많은 지면이 필요한 얘기이므로 여기서는 소승有교의 경논들과 그 내용만 약술한다.
운남성은 청왕조 이전에 지금의 인디아 에 속하여 인도라고 불렸던 곳이다.
그곳의 대리현 에는 계족산이 있는데 고타마 싯달타의 대제자 가섭존자가 금란가사를 가지고 대선정에 들어 56억
7천만년 후에 오신다는 미륵불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가섭굴이 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점창산이라는 설산이 있는데 이 산에서 고타마 싯달타가 수행하여 성도 한다.
이산에서 고타마 싯달타가 성도했다는 전설을 조선일보가 약 7,8년 전에 신문 하나의 면 전체를 내어 다루었다.
이곳이 남천축이며 북쪽으로 천산까지 이어지는 지극히 험난한 길 차마고도가 이어진다.
차마고도는 운남성의 녹차와 아프간의 말을 교환하는 장사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오천축이 있다 고대 인도는 절대 히말라야 를 넘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싯다르타 입멸 후 백년 쯤 지나서 부터 법에 관한 이견들이 나타나 부파불교가 되었다.
순도는 이곳의 부파불교 에서 설일체유부의 경전(팔리어 경전) 을 가져왔는데 어떤 것을 가져 왔는지 구체적 기록
은 없다.
참고로 유부의 대표적 논서를 정리해 보면
집이문족론 - 다른 부파들의 논리를 비판
법온족론 - 몸 과 마음 그리고 사물이 두엄(蘊) 이라는 내용 * 두엄 은 시골에 서 퇴비를 쌓아 놓은 곳 *
식신족론 - 몸과 마음의 작용
계신족론 - 자연계 와 몸의 관계
발지론 - 위 의 모든 것을 종합
대비파사론 - 발지론을 주석 함
아비담심론 - 발지론에서 발전한것
구사론 - 위의 모든 것을 체계화 하며 다른 부파 의 교설과 연결
아비달마순정리론 - 구사론을 비판
아비달마장현종론 - 상동
이렇게 많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 물질계(色)에 11법 / 마음(心)에 1법 / 마음작용(心所)에 46법/ 마음 과
상응 하지 않는법(心不相應法)에 14법/ 업이 되지 않는법(無爲法)에 3법 /
위는 유에서 無로 無에서 유무를 초월하여 열반에 이르는 길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위 설들은 고타마 싯다르타 의 아함경 교리에서 유부의 독특한 학설로 발전한 것임.
아함경은 세상은 괴로움 이며 무상한 것이며 무아인 것 이며 공한것 이고 열반은 苦 無常 無我 空 이 없는
상태라고 설하는 경이다.
열반은 삼계를 초월해 있는 곳이니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세계이다 태어남이 없으므로 죽음의 고통도 없는 고요한
세계를 열반으로 본 것이다. 이는 세계를 고통으로 본 苦觀에서 나온 사상이니 누구든지 이 사상이 배아된 차마
고도 지역에서 살아가야 한다 고 생각 해보라 ! 차라리 죽음을 달라 고 애원 할 것이다.
그러나 죽으면 다시 또 태어 나는데 인간 축생 지옥 천당 아수라 등으로 태어나 고통이 쉬지 않는다고 믿기에 위에
설명한 수행으로 먼저 욕계를 해탈하고 그 다음 색계를 해탈하고 그 다음 무색계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게로 나아간다
는 것이다.
욕계는 업력이 작용하는 사바세계( 사바는 감인으로 의역 하니 감인은 견디고 참아야 한다는 세계로 필자는 업력을
중력으로 이해하고 있음) 이고 색계는 光子로 이루어진 세계 이며 무색계는 정신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각각 有 - 無 - 유무 가 없는 곳 - 이러한 단계를 가진다.
누구든지 소승유부교의를 한번 보면 그 심오하고 정연한 논리에 매료 되고 만다.
그리하여 염세주의 가 되어 세속을 버리는 것을 최고의 지성으로 여기게 만든다.
필자도 이 사상에 빠져 살던 지난 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승으로 돌아 왔고 미래에는 주술밀교를 완성하는 게 꿈이다.
대승에서는 생사 와 열반이 모두 지난 밤의 꿈과 같은 것이라며 소승유부의 교관에 동의 하지 않는다.
이세상의 고통도 기쁨삼매를 성취하여 극복하고 증오심은 자비삼매로 극복하면서 생사를 괴로워 하지 말고 오히려
즐기며 좌절낙담은 捨三昧 로 극복하라 고 가르치는데 이를 사무량심 삼매라고 한다,,,,,,인생은 일장춘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가 대승에서 나온 것 이라고 나 할까 ? 여하간에 대승은 고대 인도의 여섯개 철학 학파에서 긍정
적이고 낙관적인 順世주의 영향도 받은 것 이라는 생각 을 해본다.
조선불교
[원문생략]
생각해 보니 조선이 당의 요임금 25년 무진년에 단군이 개국한 이래로 상고의 조선 ( 단제 기자 위만 )을 지나서
삼한 (진한 변한 마한 ) 이 병립 하다 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계림에 나라를 세워 진한의 옛 땅을 점거 하였고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은 졸본부여에 도읍을 새우니 혁거세 21년이었다.
백제 시조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하니 혁거세 40년 이다.
[해설]
1, [당요 25년 무진년] 운운 은 삼국유사에 있다. 당요는 요임금이 당나라 의 시조가 되기에 이 말이 있다고 생각
한다. 신라가 고구려 보다 건국이 앞 서는데 무슨 이유로 고구려 나 당에 빌 붙어 살았을까 ?
2 , [박혁거세] 의 박은 바가지 가 아니라 ( 밝 )이다. [ 혁거세 ] 또한 세상의 큰횃불 이라는의미이다.
정통 고불교 에서 불은 현대불교에서 처럼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몸속의 불 (양기 = 용 ) 를 완성한 사람이다.
후불탱화에서 부천님의 신배광을 불로 표현하는 것이 이 의미이며, 이는 북방 불교에 만 있는 것이고, 불교
고미술의 전통적이고 일반화 된 전형적 양식이다.
박혁거세는 혁서환인님이고 환인 이란 빛나는 사람이란 뜻으로 고불교의 부천님이시다.
桓 환할환 밝을 환 仁 씨알인 因 씨알인 父天 = 보테 =불타
3 , [계림에 나라를 세워 진한의 고지를 점거하고 ,,,] 신라는 본시 변한이였는데, 진시황의 진나라와 연합하여 신라
를 세우니 진나라 가 고조선 에게 빼앗은 진한을 신라에게 할양 했을 것이다.
중국을 지나라고 함도 여기에 있으니 지나의 원의미 대로 하면 진시황의 진과 전한 후한이 신장감숙의 서쪽 곤륜
산 동쪽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 것이 어떻게 되어 대륙 전체를 지나로 보게 되었을까?
[원문생략]
우리 불교가 천축으로 부터 지나에 지나에서 조선으로 파급 되었기에 그 지리를 따라 자연히 고구려에 먼저 이르
렀으니 고구려 제 17 대 소수림왕 2년 계유년이였다 (혹 은 주류왕 2년 임신년 이라고 도 함 )
[ 해설 ]
전진 에서 출발하여 지나를 통과하여 고구려에 들어 오는데 소요된 기간은 이 글대로 따르면 6개월이다.
낙타를 이용해 불상과 불경을 싣고 천천히 동진하여 신장 감숙에 있는 고구려 까지 오는데 6개월 이 소요 된 것이다.
[원문생략]
점차로 유통되어 백제에 이르고 신라에 이르렀다고 하나 이는 속언에 불과한 말이다.
우리 조선에 불교가 들어 온 것은 진실로 이미 오래 전이다.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 신라의 월성 동쪽 용궁의 남쪽에 가섭불의 연좌석이 있는데 그 자리는 前佛時 가람이
있던 자리이다 ]
宴坐石 = 가부좌로 앉아 있을 수 있는 크고 판판한 바위
[ 해설 ]
1 , [신라의 월성 동쪽 .... ] 운운은 한반도 경주에는 이렇게 생긴 곳이 없으며 가섭불이 늘상 앉아서 수도 했다는
바위 (연좌석) 는 확실하게 없다.
2 , 가섭불은 서가모니가 제7 이고 가섭불이 제6 으로 前佛이다.
불전에는 가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사람들이 많았고, 지명으로는 [한단고기]에 " 분능(파미르) 넘어 가섭원부여 "
라는 말이 나온다.
분능은 항아리 처럼 생긴 산이니 파미르 일 것 이고 가섭은 카스파가 되니 오늘날 카스피해 부근일 것이다.
불교대사전에서는 가섭을 의역 했는데 [ 飮光 ( 등불 ) ] 이라 했다.
삼국유사 황룔사 편에 가섭불 연좌석이 나오는데 이 황룔사는 대륙의 어디인지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불교에서 보여지는 대륙조선의 편린
첫번째 편린은 [ 남섬부주 ] 이다.
천산을 중심으로 하여 인도 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스리랑카 타일랜드 베트남은 남섬부주인데, 한문으로 炎浮州 라고
쓴다. 뜻은 불꽃 위에 떠있다는 뜻이다.
[속 고승전] 에도 달마가 월남으로 들어와 남송을 지나 황하 까지 올라와 그곳의 어마어마한 절 들을 구경하고는
남염부주에는 이런 대찰이 없다고 감탄 했다 한다.
그런데 한국의 승려들이 한반도를 가리켜 남섬부주라고 기도 축원을 올리는 이유는 축원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
이다.
즉 , 이렇게 되어 있다.
[ 거 사바세계 일사천하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
위 의 뜻은 ''사바세계의 네개의 천하 중 하나 인 남섬부주'' 이다.
據는 위치를 나타내는데 쓰이는 글자 예; 준거
沙婆世界는 소리만 옮겨 적은 것 으로 뜻은 견디고 참아야 한다는 세계이다.
필자는 사바세계를 중력장으로 본다. 중력이 인간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一四天下는 동승신주, 남섬부주, 서우하주, 북구로주(북울단월) 의 네개 중 하나 라는 뜻.
이럴게 해석 이 되는 데 [해동 대한민국] 이 어울려 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해동에 있다면 그 바다는 당연히 서해 가 된다. 그런데 웬 남섬부주,,, ???
이 의문에 대한 필자의 해석은 이러하다.
한국의 근대불교는 야쿠자왜인 ( 남지나해상의 왜구들 ) 들 이 한일합방 한 대한제국과 함께 한반도로 들어 왔다.
때문에 남지나의 불교와 한국의 불교는 제례의복 과 제례도구 , 제례의식이 하나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
이는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의 춤 역시 이 지역 에서 추는 춤 이라는 데서 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말기 조선은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이다.
운림필기(철우옹 소저) 에 이르기를 기자조선 정경왕의 궐시에 만수대사(문수보살)가 말법시대에 동토(東土)에
대승을 크게 나타 낼 땅이 있음을 멀리서 관 하시고 몸에 금난가사를 입으시고 손에는 금불을 받드시고 금색털
사자를 타시고 큰 광명을 놓으시며 하늘에서 오시니 조선의 남쪽지방 무평(武平)의 서쪽(지금의 호남 순천군 조계산)
이라, 산 기운을 두루 상(相) 보신 후 나무를 베어 암자를 만들고 금상을 단에 올려 놓으시며 말씀하시기를 '''
미래 오백세에 사마외도의 겁화(劫火)가 동방을 태워 죽이리니 그 때 에 대승 선지식 들이 여기서 배출되어 자비의
구름과 혜택의 비가 뜨거운 고뇌를 시원하게 식혀 줄 것이다 '' ' 하시며 그 산 이름을 [청량산]이라 하시고 그 암자
이름을 [비로암]이라 하셨다.
(받들어 오신 금불은 비로자나 像 이고 그 암자는 아직도 있다) 하니 한나라 명제 永平 보다 7백년 전의 일이다.
[해설]
1 , 한국의 순천 조계산 송광사 에 가면 16국사 가 그 절에서 배출 되었다 한다.
여기에 나오는 말과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권상노 박사는 괄호를 사용하여 그 암자가 아직도 있다고 강조 하셨다.
한국의 송광사가 권상노 박사가 이 책을 쓰실 때 작은 암자 였는가 ?
2 , 한국에서 사마외도(기독교 , 이슬람 , 천주교 등) 들이 대규모 로 불교 학살을 자행 한 적이 있는가 ?
북위의 태무제(서기 423~ 452 )가 유부 불교를 탄압했는데 비구 비구니를 살상하고 불상를 파괴하고 승려를 공경
하지 말라는 국법을 선포 하였다.
이유는 1} 유부 불교가 사람의 情을 초월하고 2} 예의를 무시하며 3} 왕에게 예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자조선의 기준왕이 BC 146년 丁未년에 즉위 했고 북위 태무제 의 파불 살승이 서기 438~ 452에 걸쳐 발생했으니
문수보살의 예언은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파불살승을 기획한 사람은 [최호] 이고 배후 에서 조종한 셰력은 도교 였다.
도교는 철학으로는 노장사상이고 수행으로는 단전호흡이며 종교로는 주술 부적 제사 를 하는 북방 고불교이다.
도교는 가섭불의 대승공교에 다 가섭불 보다 역사적으로 앞서는 주술밀교(잡밀) 를 수용하고 태우의 환웅의 조식법
(단전호흡) 을 내용으로 한다.
이들 도교는 호국호왕 하는 제석사만들과는 類類相從이 되지만 소승 유부 불교 하고는 생리가 안 맞았기 때문이다.
3 , [하늘에서 오시니 운운]은 새거란국이 있는 북쪽을 두고 하는 말이니, 북쪽은 數五行으로 1.6 이고 오행으로는
水이고 색으로는 黑이며 팔괘로는 坎 이고 乾 (하늘)이다. 그리고 동이족이 원래 천자족 이다
[ 주석 ]
1 , 정경왕 의 闕時는 기자조선 의 기준 왕이 위만에게 속아 나라를 뺏겼을 때로 본다. ( ? )
2 , 만수대사는 문수보살 로 다섯봉오리 (오대산) 의 聖主이며 七佛의 祖師이다.
거란의 전통최고의 神이 [ 만수사리 ] 이다.
3 , 사마외도는 다른 도를 배우는 무리들을 삿 된 악마라고 매도 하는 말이다.
4 , 겁화는 침략 , 약탈 , 방화 를 말한다.
5 , [ 한나라 명제 永平 ] 운운은 후한을 말하는 것이며, 영평 십년에 들어 온 불교 를 두고 하는 말이다.
후한 영평10년은 서기 67년이다.
스기타이(塞契丹) 란 이름 의 뜻
塞는 색으로 읽고 뜻은 요새(작전상 중요한 전초기지) 또는 변방(일선)이며 야전막사 이다.
이는 이 들이 유목 생할 하는 족속임을 나타낸다.
그럼 계단은 무슨 의미인가 ?
맺을 계 알맹이 단 (예; 은단) 이다.
단은 단전호흡으로 육신성불하는 호흡선 (동이족 정통선)에서 하단전 (배꼽밑) 중단전(심장) 상단전(백회 = 정수리)
을 말하는 것이고, 단전에 계합된 것을 契丹이라 한다.
우리가 스기타이 족이라는 것은 중학교 역사에서도 나오는 것이고, 우리 조상님들은 단전호흡을 일상적으로 하셨다.
스기타이족에서 성불하신 서가모니불(모불 =모부루) 후불탱화를 보면 정수리(백회)가 솟아 오르고 그곳으로 광명이
방사 되며 법신(法身)이 출현하는 모습이다 한국의 사찰 대웅전에 가면 어디서든지 볼 수있다.
단제조선의 단 도 이 글자 단이지 박달나무 단 자가 아니다.
고대에는 도덕이 높아야 솟대가 있는 곳에서 천지에 고사 드리고 천자가 되었다.
그 의식을 禪양 이라고 했다.
때문에 단전호흡의 강자가 천자가 되는 것이다 천자를 聖人이라고 칭함도 예서 기인 한다.
단전호흡으로 肉身成佛 하는 법은 하단에서 연정화기 한 후 중단으로 기를 옮겨 연기화신 하고 중단의 신을 백회로
옮기어 연신환허 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인이 군주가 되면 그 가 도덕군자 이니 싸우지 않고 다스린다.
때문에 법당이나 자금성 근정전이 같은 건물인 것이다.
단전호흡의 도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자궁 속에서 열달 동안 하고 나왔고 태어나서 영아기 때도 하고 있다. (젖먹이 들의 정수리 호흡)
새거란족이 활을 잘 쏘는 것도 조식(調息)을 잘하기 때문이고 한국이 활을 잘 쏘는 것도 우리가 새거란 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글자는 契 字 이다. 새거란 하고 여떤 관계에 있을까 ? 연구해 볼 일이다.
거란 이나 글안은 같은 말이다 거란이 중앙아시아에서 바이칼 쪽으로 이동하여 베릴해협을 넘고 북미로 가서 인디언
이 되고 남미로 가서 잉카가 되고 한반도로 내려 와서 우리가 되었다.
베링해 밑으로 발견되는 동양문화 유적은 발해가 아니라 거란 유적이다.
법당의 관세음보살 헤어스타일도 거란 것이다.
마한의 새부루부천님은 거란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
晉書에서 顔師古 는 塞종은 釋種 이라고 하였다.
釋種은 서가모니 종족이다.
석이나 색은 스기 (서가)이며 뜻 은 能仁으로 번역하는데 능인은 싹(씨알)이라는 말 이므로 싸카무니는 색종의
성인 이라는 말이 된다. 싸카무니가 도를 닦은 그 내용이 계단이니 하단전에 모은 두손으로 엄지를 마주세운 그
契印을 大鉢印 이라 하는데 하단전에 단이 형성된 것을 뜻 한다.
소승불교는 어디에 이용했나?
산중에 있는 고찰에 가면 대웅전 한켠에 삼성각이라는 작은 법당이 있다.
현대불교가 삼성각에 모셔진 삼위의 탱화를 각각 산신 칠성 독성으로 왜곡하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 올 때 기존해 있던 토속신앙 인데 포교를 쉽게 하기 위해 같이 모셔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인도에서 들어 온 것이 아니며 삼성각 과 다른 종교도 아니다.
삼성각의 내용이 정통 고불교이며, 고 /백 의 정통 고유 신앙 이다.
칠성여래는 일곱분의 환인님 이고, 산왕대신은 47대 단제 고열가 로 [산해경]에 부여국 대인으로 그 전거가 있다.
독성님은 나반존자로 부르는데 나반은 [한단고기]에 그 근거 가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 한 후로 대웅전에서 이 세분이 물러나야 했는데, 그 이유는 삼성각의 세분 성인은 고구려 백제의
충혼에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 현판도 한웅전에서 대웅전으로 바낀 것 같다 한밭을 대전이라고 하드시 한웅전 이 대웅전 이 됬을 것이다. )
신라는 삼국통일 후 소승불교에 힘을 썼는데, 그 이유는 소승유부 불교가 염세주의 이며, 권력을 혐오하고 반욕망적
이며 철저한 불살생이고 무소유 정신이기 때문에 피지배층 종교로 아주 '' 딱,, 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권의 라이벌들이 신상에 불안을 느낄때 삭발위승 했는데, 그 의미는 ,,,나는 이 제 세속을 버렸다.
권력도 명예도 돈도 여자 도 인간의 五慾을 모두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와 내가 다툴 일이 없다,,,. 이니 상대방도 이를 파악한 후에는 더 이상 그를 감시 하지 않는다.
권력을 잡은 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권세욕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의미로 통일신라는 원효 원측 등
으로 하여금 업을 소멸하여 열반에 이르는 사상인 소승유부와 대승공교(허무주의)가 배치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선양
하는 저술을 하게 하고, 일단 승려가 된 후 다시 환속하여 결혼하는 사람을 파계승이라고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매도하게 하는 사상을 주입 시킨다.
때문에 승려가 속퇴를 하면 숨어 살게끔 만든 것이 권력의 라이벌을 영원히 매장시키는 방법이 된 것이다.
통일신라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한국의 불교가 대승과 소승이 구분되지 않고 북방하고 57여년을 단절 된 채 로 남방
불교를 동국대불교학과 에서 강의해 오다 보니 남방불교 교리가 한국의 전통사찰에 모셔진 북방불교의 불보살
그리고 신장단의 신장들과 상호 모순 된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1955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대처승이 숙청 된 것이 쓰러진 한국의 북방불교에 마지막 호흡을 거두어 간 것이다.
한국은 이승만 시절에 남방불교가 적극 추진 되었지만 대륙에서는 손문 시절에 이미 시작 되였다.
그 후에 모택동 공산주의를 한 대륙은 남방불교 도 필요 없으므로 북방불교를 없애면서 남방불교 는 마약으로 몰아
추방하였다.
그러나 오늘 날 시장경제를 도입한 대륙은 환경을 희생해 가며 경제성장을 추구했고 어느 정도 성공은 하였지만.
양극화라는 사회적 갈등에 봉착 되었다.
이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중국의 지도자들이 생각해 낸 것 이 남방불교의 인과응보 사상이다.
,,,,잘 사는 사람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잘 사는 것이니 배아파 하지 말라,,, 이다.
중국은 국비를 들여 남방불교를 부흥시키는 한 편 괴뢰(꼭두각시) 달라이라마를 만들어 북방불교를 왜곡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신라가 하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이다.
宋 에서 본 고려
高麗 本曰 高九麗 禹別九州 屬冀州之地
고려는 본래 고구려라고 했다. 우공이 구주를 나눈 기주에 속한 땅이다.
周爲 箕子지國 漢지玄토군也 在遼東
주나라 때 기자의 나라이며 한나라 때 현토군 이고, 遼水의 東에 있다.
盖부여지 別種 以平陽爲國邑
대개 부여에서 갈라진 종족이며 평양으로 국읍을 삼았다.
漢魏以來 常通職貢 亦屢爲邊寇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 로 항상 직공을 통 하면서도, 또한 변방에서 노략질 하였다.
隨楊帝再擧兵 唐太宗親駕伐之 皆不克
수나라 양제가 두번 공략햇고 당나라 태종이 직접 지휘 하여 공격했으나 모두 이기지 못했다.
高宗命 李勣征之 遂拔其城 分其地爲郡縣
고종이 이적에게 명하여 치니 드디어 그성이 뽑혔다. 그땅을 쪼개어 군 과 현으로 만들었다.
唐末 中原多事 遂自立君長
당나라 말기에 중원에 일이 많으니 드디어 군장으로 자립하였다.
後唐 同光 天成中 其主高氏 累奉職貢
후당의 동광 과 천성중에 그 주상 고씨는 대를 이어 직공을 받들엇다.
長興中 權知國事 王建 承高氏지位 遣使朝貢
장흥 중에 권지국사 왕건이 고씨의 자리를 승계하여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以建爲玄토州郡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
왕건으로 현토군의 제독을 삼으며 충대의 군사 라는 직함으로 고려국 왕으로 봉했다.
同光 은 서기 923~925 (고려 태조6~8 년 )
天成 은 서기 926~929 (고려 태조 9~12 년 )
長興 은 서기 930~933 (고려태조 13~16 년 )
舊五代史에 있는 고구려
高麗 本 夫餘之別種 其國都 평양성
고려는 본래 부여의 한갈래이다. 그 나라의 서울은 평양성 인데 곧 한나라의 낙랑군의 옛 땅이다.
경사에서 동으로 4000여리에 있으며 동으로 바다를 건너면 신라에 이르고 서북으로 요수를 건너면 영주에이른다.
남으로 바다를 건너면 백제에 이르고 북으로 말갈에 이른다.
동서로 3100 리 이고 남북으로 2000리 이다.
(구오대사 권 138 ) 번역 최남석
[해설]
한나라 낙랑군이 이 있던 지역은 지금의 시안에서 서북방에 있는 지금 지도에 영하 회족 자치구 남족에 있는 平凉
이다. 그 平凉 은 경사에서 동으로 4000 여리 에 있다.
하니 平凉에서 서쪽으로 4000 여리 가면 경사가 있다는 말이다.
동으로 바다를 건너면 신라가 된다는 말은 산서성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황하를 건넌다는 뜻이고,
산서성과 산동성이 신라라는 뜻이 된다.
남으로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위수를 건넌다는 뜻이니 섬서성이 백제라는 뜻이다.
서북으로 요수를 건너면 영주 라는 것은 하란산맥 以西라는 뜻이고, 북으로 말갈이라 함은 음산산맥 남쪽 지역이다.
동서로 3100 리 이므로 청해성 감숙성의 동쪽부분도 포함된다.
주술밀교가 보이지 않는 티벳
서왕모 로 부터 유래한 관음신앙은 원래 북방 주술밀교 이지만 오늘 날에는 한반도 남한에서 만 보여지는 샤먼이
되었다.
이는 대륙의 문화가 대륙에서 사라지고 오직 남한에서만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엊그제 불교 티비를 통해서 티벳불교의 황파(적파와 대립하는)들 의 면면을 보았는데 그 곳도 서세들이 헬레니즘이
라는 소재로 가공생산한 변형된 소승불교가 자리 잡았음을 확인 했다.
한국에 하바드 출신 벽안의 참선객 현각스님이 있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드시 티벳에도 훌륭한 벽안의 외국인
이 소승유교를 수행하여 높은 평가를 받으며 티벳불교의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티벳의 그 외국인 스님은 소승을 하고 한국의 현각스님은 대승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 들 이 수행 하는 교리를 조금씩 짚어 본다.
짚어 보는 관점은 필자의 주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불교의 종래 학설과 필자의 사견이 혼재함을 미리 고지하는
바이다. 여기서 필자의 주관이라 함은 대륙조선사를 알게 된 이후로 교정된 시각으로 불교사상을 다시 조명했다는
것을 뜻 한다.
티비에서 티벳의 외국인 스님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 수행이론을 마음의 과학이라고 별칭하고 있었는데 그 별칭은 정말 잘지어 진 별칭이엿다.
실제로 소승유교의 모든 논서를 일독하면 그것이 과학중의 과학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고 있는 수행은 오리지날 소승유교가 아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이들 은 은둔생활을 해야 하고 자기 감정을 억압하며 경제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자신을 자기가 억압하여 속박 속에서 해탈(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이는 소승불교의 정식이론이 아니라 정신과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매저키즘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외관상으로 은둔하며 지계(소승 계율 을 지킴) 생활을 하므로 과거의 소승유교로 보일 뿐이다.
이 지계생활이란 것이 자칫 타인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위선자로 만드는 묘한 함정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느 스님이 계행을 잘 한다고 신도들로 부터 존대를 받고 있었다. 그 스님과 신도가 같이 짬뽕을 먹었다. 이때 그
스님은 짬뽕에서 양파와 오징어를 건져 내고 먹었다. 국물까지 마셨다.
물론 그 스님이 혼자 짬뽕을 먹을 때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져 내면 안먹은 것으로 되는가 ?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행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스님이나 그 신도는 모두 위선 과 가식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
들이다. 이렇게 한국에 들어온 소승불교는 위선과 가식을 한국 전통의 겸손 과 양보 위에 얺저 놓았던 것이다.
각설하고 티벳의 외국인 스님 이론으로 다시 돌아 가보자.
행복을 마음속에서만 찾아야 진정하다고 하는 것은 편견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각자 자기 가 하는 일을 무아삼매 속에서 하게 되면 동일한 행복을 일시적으로 느끼게 된다.
행복감이 일시적인 것은 세상의 자기 직업을 무아삼매속에서 하는 사람이나 티벳의 그 스님들이나 마찬가지로 24
시간 내내 희열에 잠겨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념무상의 시간에서 나오게 되면 세상은 역시 물리적 고통이 여전하고 무아삼매( 예; 춤삼매 음악삼매 독서
삼매 검술삼매 등등) 에서 나오면 세상은 생존경쟁으로 고통은 여전 한 것이다.
테벳의 외국인 그 스님은 의사이며 국립대학 생명공학 교수로 명성을 얻던 사람으로 티벳에 와서 소승유교의 승려가
된 것이다.
그 스님이 파악한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은 澄心이다.
물을 오래도록 가만 놔두면 맑아 지는 것 처럼 항상 자기의 마음을 지켜 어떤 생각이든지 생겨 나면 그 생겨 나는
것을 지켜 본다는 것이다.
물을 가만 놔두려면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한다. 바람을 作業으로 보기에 일체 경제행위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좌선수행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 와도 마음의 번뇌가 적다.
이것을 위해 이들은 세속을 버리고 걸인처럼 살아 간다.
이들의 이런 행태를 못 마땅해 하는 북방불교에서 이들을 소승이라고 폄하 한 것이다.
현재 티벳은 이런 식의 소승유교가 대세를 잡은 것 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心無一波 를 북방 전통 고불교에서는 克氣라는 수행으로 완성 한다.
극기란 호흡을 길고 미세하게 하여 一呼一吸 을 3분에 걸쳐 하는 것이다.
호흡이 미세하고 길어 질수록 잡념이 사라지며 무념무상으로 나아 간다.
그러나 3분 호흡을 완성하려면 양기가 필요하다.
때문에 태우의 천왕 의 가르침인 保精調息 수행을 해야 한다
息이라는 글자에 단전호흡 의 大旨가 들어 있다
[식] 은 自와 心을 합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단학을 공부하면 이 말을 이해 하게 되므로 지면상 상설하지 않습니다>
티벳은 전통고불교 인 주술밀교의 종주국이었다.
그런데 이들 소승유교가 유행하면서 세속을 등지는 수행풍조가 대접을 받게 되자 주술밀교가 점차 사라진 것이다.
주술밀교는 불교만 했던 것이 아니다.
서양의 고대종교들도 주술종교였고,예수님은 티벳의 라싸에서 주술밀교를 집중적으로 수행하셨다.
예수님의 주술 신통력은 사대 복음서 의 곳곳에서 찿을 수 있다.
新五代史에 보여지는 발해
발해 本號말갈 고려지別種, 발해는 본래 말갈이라고 했으며 고구려에서 갈라진 갈래 종족이다.
武候時 契丹攻北邊 측천무후 때 거란이 북쪽을 공격해 오니,
고려별종 대걸걸중상 與말갈추장 걸사비우 走요동
고려별종 대중상과 말갈추장 걸사비우가 요동으로 도망가서,
分王 고려故地 고구려의 옛땅을 나누어 각자 왕이 되었다.
仲象子祚榮 因倂有比羽지衆 其衆四十萬人
대중상의 아들 대조영이 걸사비우의 무리 40만명을 병합하여,
據읍루 臣于唐 읍루에 살면서 당나라를 섬겼다
至中宗時 置홀한주 以祚榮爲都督 중종때에 이르러 홀한주를 두어 대조영를 도독으로 삼았다
신오대사 권 74 (번역 최남석)
필자가 이 글을 해석하여 비정한 이들의 영토는 ...//
대중상과 걸사비우가 산서성 태원 쯤에 있다가 호화호특 위에 있던 거란이 공격해 오니 서쪽의 요동으로 도망가서
고구려의 옛땅을 나누어 각자 왕이 되었다.
그 후에 대조영과 걸사비우가 읍루에 살았다 하니 읍루는 요동이 아니고,요동 한참 아래 쪽에 위치한
청해성 동쪽 부분 일 것이다
당나라 가 읍루를 홀한주라고 부르며 대조영을 도독으로 삼은 것은 대조영과 상관없는 당나라의 외교술 일 것이다.
손문과 일본의 커넥션 하나
1894년 11월 하와이 에서 흥중회를 만들고 다시 1895년 2월 홍콩에서 흥중회를 세운 손문은 1895년 3월 홍콩과
가까운 광주에서 무장폭동을 일으킬 계획을 꾸민다.
손문은 청군에게 이겨 가고 있던 일본 측에게 무기원조를 요청하는 한편 일본이 광주를 곧 공격할 터이고 흥중회는
일본의 지원을 받고 있다 선전하였다.
<협간직수> 저 [중천항차랑보고 ; 손중산혁명활동적신]에서 발췌
필자가 대륙의 동남부까지 내려와있던 고종황제가 사무라이(덕천가강)가 아닌 야쿠자(서양에 붙은 폭력조직으로
대륙의 동남지나해에서 활동하던 해적들 ) 들과 함께 한반도로 이주 할 때 한반도는 이미 오래 전에 야쿠자 일본
(메이지 일본) 손에 있었고, 손문은 이러한 야쿠자 일본과 한패 였다고 말한바 있는데 믿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 글
을 올려 봅니다.
역사연구는 고급두뇌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짧은 이 글 이 전등 불빛이 되어 다른 것도 보일 것 입니다.
분석 한 후 반대의견도 서슴치 마시기 바랍 니다
어려운 단어 하나만 해설; ㅡㅡ손중산 혁명활동 적신ㅡ 은 손문 혁명활동 의 현장 리포트라는 뜻임.
키타이가 동이의 원조이다
어제 (20일) 밤 8시 에 방영한 kbs 차마고도를 보니 티벳의 어린이 두명이 보이는데 앞댕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도 키타이 족인데 우리네 고구려 백제 왜 금 여진 원 청이 모두 키타이족이다.
우리는 모두 티벳의 위쪽으로 있는 우랄 알타이에서 부터 발원하여 좋은 환경을 찾아 한갈래는 직동진 코스로 바이칼
베링해 북미로 건너 갔고, 한 갈래는 북미로 가기 전에 베링해에서 남쪽으로 꺽어 한반도와 일본열도 로 갔다.
우임금이 봉헌한 기주(감숙 신장지구 ) 쪽으로 하향한 고구려는 단제조선의 후예들 이고,
고/ 백/을 멸한 나당, 나당을 계승한 고려 그 고려를 멸하고 북방의 정통성을 되찾은 북방민족의 종손인 이성계
이성계 조선이 점차로 남향 하여 양자강 까지 내려간다.
단제조선의 중심계열인 마한의 스기타이 후손들이 이씨조선이다.
이들은 천제(天帝 제석)의 종손으로 항상 권위를 가지고 남향하면서 대륙 남방민족을 다스려 왔다.
같은 키타이 중에서도 진한 과 합병한 마한의 색부루(서가불) 계열인 스기타이 족이 종손으로서 (환인님(父天님)
의 제사장으로서 ) 특권을 가졌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쌀이 많이 나는 남쪽을 지향했는데, 고구려 만 동진 을 택하여 산서성과 시안에 있던 당과 충돌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쪽으로는 이미 백제가 내려가 터를 잡아가고 있었기에 고구려는 동북 삼성 을 목표로 동진하면서 신라와
당나라에 불청객이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 가 남진 하지 않은 이유는 백제가 고구려의 아우이기 때문이다.
< 백재가 고구려의 아우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므로 설명하지 않는다 >
이렇게 북방의 천손들이 중원으로 남하하면서 일찌기 중앙아시아에서 거불단 환웅과 작별한 갈고환웅(반고환인) 의
후손들인 남방민족 (하화족)들과 충돌하는 것이다.
북방이 남방을 찾아 자꾸 내려 가는 이유는 전쟁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혹한 자연환경을 피하느라 그런 것이다.
같은 고향의 어르신인 청나라가 이씨조선의 뒤를 이어 계속 남하 하므로, 이씨조선은 청과 연합하여 남방을 공략
하다가 마지막에는 일본때문에 청나라와 사이가 벌어진다.
그러다가 신해혁명을 피해 일본과 함깨 한반도로 이주한다.
이들이 무혈 입성으로 이주한 후 한반도가 원래 자기들 것이라고 우겨대는 이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배운 역사이다.
(최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