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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과 우리말 / 여주 양화천
버드내와 버들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드내라고?
버드내와 먼내
양화천(楊花川)은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대죽리 마옥산에서 발원하는 내이다.
양화나루로 유입하기 때문에 양화천이라고 부른다고 하고 있으나 양화나루란 이름 자체가 양화천이 흘러드는 목이라고 해서 양화나루가 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 이름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다. 이 하천은 오랫동안 길천이라고 불러 왔다.
그 원류는 이천군 설봉면 남부에서 시작해서 관내 가남읍 상활리를 경유하는 물과 태평리, 신해리를 경유하는 물이 정단리와 양거리 사이에서 합류하여 대하천을 이루어 매류리와 용은리 사이, 구양리와 신근리 사이, 백석리와 율극리 사이, 상백리와 내양리 사이를 경유하여 세종대왕면 내장리와 홍천면 상백리 어름에서 양화진으로 유입한다.
남한강에 합류되는 이 하천은 많은 평야와 옥토를 조성해 주고 관수에 큰 힘이 되는 하천이다.
우리 땅에 냇줄기가 없는 곳은 없다. 어디나 내(하천)는 흐른다.
그 이름들을 보면, 그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 붙기도 하고, 그 냇줄기의 위치(장소)에 따라서 붙기도 한다.
우선, 모양에 따라서 붙은 이름이 많다.
길게 흘러서 붙은 이름인 버드내(유천.柳川), 먼내(원천.遠川), 진내(장천.長川)가 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의 진물은 원래 길게 흐른다 해서 붙은 ‘긴물(長水)’이 변한 이름이다.
작거나 좁아서 붙은 이름인 솔내(송천.松川), 가는내(세천.細川)가 있고, 크거나 넓어서 붙은 한내(한천.漢川)나 너르내(광천.廣川)가 있다.
휘돌아 흐르거나 구불구불한 내라고 해서 두레내(회천.回川), 구븐내(곡천.曲川)가 있으며, 반대로 곧게 흘러서 이름붙은 고든내(직천.直川)나 고등이내(고등천.高等川) 같은 이름도 있다. 깊은내-지프내(심천.深川), 오목내(오목천.悟木川)는 깊거나 오목해 붙은 이름이고, 아우라지(병천.竝川), 아우내(병천.竝川), 아오지(아오지.탄광), 두무개(두모포.斗毛浦), 두물머리(양수리.兩水里) 등은 물줄기가 서로 아울러 붙은 이름이다.
장소(위치)에 따라서 붙은 이름도 아주 많다.
사이(間)에 있는 사이내(사이곡천.沙而谷川), 새내(간천.間川-신천.新川)가 있는가 하면 모래땅을 흐르는 모래내(사천.沙川), 모라내(사천.沙川)도 있다. 골짜기에 흐르는 골지내(골지천.骨之川), 고샅내(고사곡천.古寺谷川)가 있고, 들(벌판)에 흐르는 벌내(벌천.伐川), 버리내(벌리동.伐里洞川), 달내.들내(달천.達川)가 있다.
경기도 수원시의 삼국시대 땅이름은 매홀군(買忽郡)인데, 이는 물이 많은 고장의 뜻이다. 여기서 ‘매’는 ‘물’을, ‘홀’은 ‘골(고을)’이다. 즉 ‘매홀’은 ‘맷골’의 음차(音借)로 ‘물골’의 뜻이어서 이 이름은 지금의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이 바탕이 된다.
수원에는 광교산에 물뿌리를 둔 수원천이 지나는데, 상류쪽으로 두 개의 큰 지류가 있다. 하나는 북동쪽의 원천저수지를 거쳐오는 물줄기, 다른 하나는 북서쪽의 광교저수지를 거쳐오는 물줄기이다. 그 상류의 이름이 각각 먼내(원천.源川)와 버드내(유천.柳川)인데, 이 두 이름은 모두 길게 뻗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수원 권선구의 세류동은 이 버드내란 이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먼내는 멀리서부터 내려온다는 뜻이고, 버드내는 ‘벋은 내’ 즉 길게 뻗어서 내려온다는 뜻이다. ‘버드내’는 사실 버드나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버드내’와 ‘먼내(머내)’는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 있다.
벋었다는 뜻이 버들이 유천과 양화천으로
버드내는 대개 버들과 관련을 지어 한자로 유천(柳川)으로 많이 표기되지만 여주시의 버드내처럼 양화천(楊花川)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버들’을 한자의 ‘유(柳)’로 적을 수도 있고, ‘양(楊)’으로 적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정부시 녹양동에도 버들 관련 이름이 있다. 이곳에 대해서 >한국지명총람>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곳은 본래 양주군 시북면의 지역으로서 버드나무가 많으므로 녹양벌, 녹양이, 냉이, 뇅이, 또는 녹양평이라 하여 나라의 말을 먹였는데, 도봉산과 수락산 호랑이의 피해가 많으므로 면목동과 뚝섬으로 옮긴 뒤 비로소 마을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현리, 비우리, 입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양리(동)라 해서 시둔면(의정부시)에 편입되었다. 조선 때 평구도찰방(平丘道察訪)에 딸린 녹양역(綠楊驛)이 있었다.
그런데 의정부 내에는 버들과 관련한 유명한 마을이 있다. ‘버들개’라는 마을인데, 여기에는 버들개초등학교도 있다. 따라서 녹양동의 양(楊)도 이 마을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들이 길게 뻗어 ‘벋을’을 소리나는 대로 ‘버들이 되고 이것이 땅이름으로 고착되면서 버드나무와 관련된 이름처럼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경남 산청-합천 땅의 버드내, 충남 서산 등의 버드내는 양천(楊川)으로 적고 있으며, 서울 마포구의 버들고지는 양화(楊花)로 적어 그 유명한 양화진(楊花津)이라는 한자식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 버드내의 ‘버드’나 버들곶이의 ‘버들’은 식물의 이름이 아니라 ‘벋을’을 표시한 것으로서 하천이 길게 벋어 내려옴을 표시한 것이다.
여주 능서면 내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인 버들고지(버들곶)는 한자로 양화(楊花)인데, ‘벋은(들이 뻗어 있는)’이 대개 버들로 옮겨가 있음을 알게 한다. 이곳의 양화천은 다른 하천보다는 굴곡이 그리 심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내가 대채로 편편한 들판을 지나기 때문이다. 발원지부터 남한강에 이르는 하구까지 길게 흘러내리는 이 내는 지나는 지역 대부분이 평지이다. ‘벋을(버들)’이라는 이름이 나올 만도 하다.
안양시에는 호계동(虎溪洞)이 있다. 한자풀이대로라면 범(호랑이)과 관련된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범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토박이 땅이름 ‘범개’을 한자로 의역해 붙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범개’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번(벌은)+개 > 번개 > 범계
범은 한자로 호(虎)이니 우리 땅이름 범개가 호계(虎溪)로 된 것이다. 범개의 시작말 번개의 ‘번’은 ‘벌어진’ 또는 ‘벋어 내려온’의 뜻으로 보이며, 결국 이 이름은 버드내와 친척 이름임을 잘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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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버들 / 버들가지 버드나무 번(벌은)
* 친척 땅이름
버드내(유천.柳川)
-대전시 중구 유촌동, -평택시 유천동
-경기도 이천시-여주시
-전북 순창군 쌍치면 전암리
-전남 화순군 화순읍 유천리, 신안군 자은면 유천리, 등.
먼내(원천.遠川)
-경기도 파주시 천현면 직천리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대성리(원천)
범내(호계.虎溪)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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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7일
버드내와 버들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드내라고?
버드내와 먼내
양화천(楊花川)은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대죽리 마옥산에서 발원하는 내이다.
양화나루로 유입하기 때문에 양화천이라고 부른다고 하고 있으나 양화나루란 이름 자체가 양화천이 흘러드는 목이라고 해서 양화나루가 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 이름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다. 이 하천은 오랫동안 길천이라고 불러 왔다.
그 원류는 이천군 설봉면 남부에서 시작해서 관내 가남읍 상활리를 경유하는 물과 태평리, 신해리를 경유하는 물이 정단리와 양거리 사이에서 합류하여 대하천을 이루어 매류리와 용은리 사이, 구양리와 신근리 사이, 백석리와 율극리 사이, 상백리와 내양리 사이를 경유하여 세종대왕면 내장리와 홍천면 상백리 어름에서 양화진으로 유입한다.
남한강에 합류되는 이 하천은 많은 평야와 옥토를 조성해 주고 관수에 큰 힘이 되는 하천이다.
우리 땅에 냇줄기가 없는 곳은 없다. 어디나 내(하천)는 흐른다.
그 이름들을 보면, 그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 붙기도 하고, 그 냇줄기의 위치(장소)에 따라서 붙기도 한다.
우선, 모양에 따라서 붙은 이름이 많다.
길게 흘러서 붙은 이름인 버드내(유천.柳川), 먼내(원천.遠川), 진내(장천.長川)가 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의 진물은 원래 길게 흐른다 해서 붙은 ‘긴물(長水)’이 변한 이름이다.
작거나 좁아서 붙은 이름인 솔내(송천.松川), 가는내(세천.細川)가 있고, 크거나 넓어서 붙은 한내(한천.漢川)나 너르내(광천.廣川)가 있다.
휘돌아 흐르거나 구불구불한 내라고 해서 두레내(회천.回川), 구븐내(곡천.曲川)가 있으며, 반대로 곧게 흘러서 이름붙은 고든내(직천.直川)나 고등이내(고등천.高等川) 같은 이름도 있다. 깊은내-지프내(심천.深川), 오목내(오목천.悟木川)는 깊거나 오목해 붙은 이름이고, 아우라지(병천.竝川), 아우내(병천.竝川), 아오지(아오지.탄광), 두무개(두모포.斗毛浦), 두물머리(양수리.兩水里) 등은 물줄기가 서로 아울러 붙은 이름이다.
장소(위치)에 따라서 붙은 이름도 아주 많다.
사이(間)에 있는 사이내(사이곡천.沙而谷川), 새내(간천.間川-신천.新川)가 있는가 하면 모래땅을 흐르는 모래내(사천.沙川), 모라내(사천.沙川)도 있다. 골짜기에 흐르는 골지내(골지천.骨之川), 고샅내(고사곡천.古寺谷川)가 있고, 들(벌판)에 흐르는 벌내(벌천.伐川), 버리내(벌리동.伐里洞川), 달내.들내(달천.達川)가 있다.
경기도 수원시의 삼국시대 땅이름은 매홀군(買忽郡)인데, 이는 물이 많은 고장의 뜻이다. 여기서 ‘매’는 ‘물’을, ‘홀’은 ‘골(고을)’이다. 즉 ‘매홀’은 ‘맷골’의 음차(音借)로 ‘물골’의 뜻이어서 이 이름은 지금의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이 바탕이 된다.
수원에는 광교산에 물뿌리를 둔 수원천이 지나는데, 상류쪽으로 두 개의 큰 지류가 있다. 하나는 북동쪽의 원천저수지를 거쳐오는 물줄기, 다른 하나는 북서쪽의 광교저수지를 거쳐오는 물줄기이다. 그 상류의 이름이 각각 먼내(원천.源川)와 버드내(유천.柳川)인데, 이 두 이름은 모두 길게 뻗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수원 권선구의 세류동은 이 버드내란 이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먼내는 멀리서부터 내려온다는 뜻이고, 버드내는 ‘벋은 내’ 즉 길게 뻗어서 내려온다는 뜻이다. ‘버드내’는 사실 버드나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버드내’와 ‘먼내(머내)’는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 있다.
벋었다는 뜻이 버들이 유천과 양화천으로
버드내는 대개 버들과 관련을 지어 한자로 유천(柳川)으로 많이 표기되지만 여주시의 버드내처럼 양화천(楊花川)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버들’을 한자의 ‘유(柳)’로 적을 수도 있고, ‘양(楊)’으로 적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정부시 녹양동에도 버들 관련 이름이 있다. 이곳에 대해서 >한국지명총람>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곳은 본래 양주군 시북면의 지역으로서 버드나무가 많으므로 녹양벌, 녹양이, 냉이, 뇅이, 또는 녹양평이라 하여 나라의 말을 먹였는데, 도봉산과 수락산 호랑이의 피해가 많으므로 면목동과 뚝섬으로 옮긴 뒤 비로소 마을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현리, 비우리, 입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양리(동)라 해서 시둔면(의정부시)에 편입되었다. 조선 때 평구도찰방(平丘道察訪)에 딸린 녹양역(綠楊驛)이 있었다.
그런데 의정부 내에는 버들과 관련한 유명한 마을이 있다. ‘버들개’라는 마을인데, 여기에는 버들개초등학교도 있다. 따라서 녹양동의 양(楊)도 이 마을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들이 길게 뻗어 ‘벋을’을 소리나는 대로 ‘버들이 되고 이것이 땅이름으로 고착되면서 버드나무와 관련된 이름처럼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경남 산청-합천 땅의 버드내, 충남 서산 등의 버드내는 양천(楊川)으로 적고 있으며, 서울 마포구의 버들고지는 양화(楊花)로 적어 그 유명한 양화진(楊花津)이라는 한자식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 버드내의 ‘버드’나 버들곶이의 ‘버들’은 식물의 이름이 아니라 ‘벋을’을 표시한 것으로서 하천이 길게 벋어 내려옴을 표시한 것이다.
여주 능서면 내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인 버들고지(버들곶)는 한자로 양화(楊花)인데, ‘벋은(들이 뻗어 있는)’이 대개 버들로 옮겨가 있음을 알게 한다. 이곳의 양화천은 다른 하천보다는 굴곡이 그리 심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내가 대채로 편편한 들판을 지나기 때문이다. 발원지부터 남한강에 이르는 하구까지 길게 흘러내리는 이 내는 지나는 지역 대부분이 평지이다. ‘벋을(버들)’이라는 이름이 나올 만도 하다.
안양시에는 호계동(虎溪洞)이 있다. 한자풀이대로라면 범(호랑이)과 관련된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범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토박이 땅이름 ‘범개’을 한자로 의역해 붙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범개’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번(벌은)+개 > 번개 > 범계
범은 한자로 호(虎)이니 우리 땅이름 범개가 호계(虎溪)로 된 것이다. 범개의 시작말 번개의 ‘번’은 ‘벌어진’ 또는 ‘벋어 내려온’의 뜻으로 보이며, 결국 이 이름은 버드내와 친척 이름임을 잘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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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버들 / 버들가지 버드나무 번(벌은)
* 친척 땅이름
버드내(유천.柳川)
-대전시 중구 유촌동, -평택시 유천동
-경기도 이천시-여주시
-전북 순창군 쌍치면 전암리
-전남 화순군 화순읍 유천리, 신안군 자은면 유천리, 등.
먼내(원천.遠川)
-경기도 파주시 천현면 직천리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대성리(원천)
범내(호계.虎溪)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2022년 7월 27일
땅이름과 우리말 /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외
노루목과 누르
노루목이 노루가 넘어다녀서라구요?
전국 어디에나 널린 노루목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장항리는 ‘노루목’이 토박이 땅이름인데 한자로는 ‘노루장(獐)자가 들어간 노루목(獐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루와 관계되는 이름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의 고양시의 장항동의 경우를 들어 보자. 여기에 대해서 어디에선가 설명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본래 고양군 중면(일산읍)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노루목 또는 장항(獐項)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노점, 무검, 산염, 저전과 김포군 군내면의 걸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항리라 항다”
과연 이 지역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을까? 노루의 목과 개나 여우의 목이 얼마나 다르기에 개목이나 여우목이 아닌 ’노루목‘일까? 땅이름에서 개목이나 여우목은 별로 볼 수 없는데 왜 노루목은 왜 그리도 수없이 많을까?
땅이름에 많이 나오는 ‘노루목’이나 ‘노리목’ 또는 ‘노리울’을 무조건 ‘노루’와 관련지어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 하면 그러기에는 ‘노루목’ 이름이 전국에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에 무슨 노루가 그리 많기에 여기도 노루목, 저기도 노루복, 노루골, 노리실(노리울)인가?
'넓다'는 말을 전라도쪽에서는 '누릅다(노릅다)', 충청도쪽에서는 '느릅다', 경상도나 강원도쪽에서는 '널따'라 한다.
땅이름에서도 '넓다'는 뜻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넓다'는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 많다.
‘노루’가 ‘노랗다’는 뜻으로까지
'노루목'의 ‘노루’기 '누르'가 되어 '누렇다'는 뜻으로 간 것도 많다. '널'로 되어 '날판지'의 뜻으로 가기도 했다. '널'이 '날'로 되어 '날다'의 뜻으로까지 간 것도 있다.
안산 장상동의 ‘노리울’의 예를 들어 보자.
이곳은 수암산 자락의 완만한 비탈 지역이다. 안산의 ‘노리울’은 ‘너리울’ 또는 ‘너르울’로도 불리는데 완만한 경사 지역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땅이름에서 이처럼 완만한 경사 지역에 붙은 비슷한 이름의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널재 = 널板+재峙 = 판치板峙
느락골 = 늘앗於+골谷 = 어곡於谷
누르실 = 누르黃+실谷 = 황곡黃谷
너븐돌 = 넙은廣+돌石 = 광석廣石
너르섬 = 노루獐+섬島 = 장도獐島
노루(노르)는 장(獐)자 지명을 이루게도 했다. 삼국시대의 지명에서 그 예를 찾아보자.
장항獐項(노모기)(경기도 장단군 일부)
장항구獐項口(너르목곳)(경기도 안산)
장산獐山(놀미)(경북 경산)
장색獐塞(노마개)(황해도 수안군)
장함獐含(나마기)(경북 의령군)
특히 노루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노루모기, 노루목, 놀목이 되어 한자로 장항(獐項)이 된 곳이 무척 많다. 전국의 행정동. 행정리만 해도 ‘장항’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등 10군데 가까이 된다.
노루목의 노루는 노랗다는 뜻의 노르, 누르가 되기도 해서 ‘누렇다’는 뜻으로 간 것도 있다.
그 밖에 너진메기(경북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 느랏목(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늦은목(충남 천안시 광덕면 지장리) 같은 친척 이름들이 있다. 널재板峴, 늘잿골於峴谷, 느랫재於項, 느릅재黃鶴, 느리재於在 등은 광주시 동구 선교동, 경북 문경시 농암면 율수리, 같은 시의 마성면 외어리, 충남 금산군 부리면 등에 마을이나 골짜기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럼, 우리말의 ‘노랗다’는 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노터치(No touch) → 노타치 → 노다지
금광의 광맥을 '노다지'라고 인식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이 이야기가 마구 퍼져 나긴다.
그러나 오래 전(서양 사람 입김 이전)부터 써 온 이 말. 먼저 우리말의 변화 과정을 먼저 이해하고 보는 것이 좋겠다.
'아지'는 일반 명사 밑에 붙어 그 말의 의미를 더해 주는 접미사 역할을 한다.
바가지(박+아지)
꼬라지(꼴+아지)
도라지(돌+아지)
가라지(갈+아지)
매가지(맥+아지)
노다지(녿+아지)
'노다지'의 뿌리말 '녿'은 구리나 금을 말하며, 이 말에서 빛깔 이름 '노랑'이 나왔다.
-밝+앙 (발강>빨강) *밝(붉=불)
-팔+앙 (파랑) *팔(풀.草)
-녿+앙 (노당>노랑) *녿(놋)=구리
이런 과정으로 볼 때 노랑의 뿌리말은 ‘녿’임을 알 수 있으며, 여기서 나온 친척말들이 ‘노랑’을 비롯해 ‘노랗다’. ‘누렇다’ 등 무척 많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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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노랑 / 누렇다, 녿(놋), 놋그릇, 놋쇠, 노다지
* 친척 땅이름
-노루목(獐項))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獐項里)
-누렁구지(黃口池) ; 경기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黃口池里)
-누렁골(黃山) ; 전남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黃山里)
-누렁골(黃山) ; 경북 경주시 안강면 두류리의 널개
-누렁골(黃谷) ; 전북 김제시 금산면 장흥리의 황곡(黃谷)
-느랭이於旺(전남 승주군 주암면), 눌미訥山(경북 봉화군 법전면)
-느늘미 ;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누렁메 ; 전남 해남군 현산면, 전북 고창군 고수면의 황산리黃山
-눌목(訥木) ; 경기 연천군 전곡읍, 파주시 진서면
-느래매(於里) ; 충남 서천군 마서면)
-누르메(廣山) ; 경남 합천시 가야면
-그 밖에 / 늘재於乙峴(황해도 안악군 은홍면), 늘티板峙(충북 보은군 회남면 판장리), 느재於峙(전북 순창군 동계면, 전남 광양군 진상면), 노루지獐串(충남 아산시 선장면), 노루고개獐峴(충북 단양군 대강면) 등
땅이름과 우리말 / 서울 여의도
너벌섬과 너다리
여의도가 ‘너나 가져라’ 해서 나온 섬이라구요?
여의도의 옛 토박이 땅이름은 너벌섬
여의도는 한강물의 퇴적작용에 의해 모래가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섬으로 조선시대엔 말 목장이었다.
그 말 목장의 중심인 작은 산을 '양마산(養馬山)' 또는 '양말산'이라 했다. 지금의 국회의사당 자리에 있었던 산으로, 높이가 한 50m쯤 되었다. 방목장(放牧場)인 여의도의 이 모랫벌을 '양말벌'이라고 했고, 그 안쪽에 있는 벌을 '안양말벌'이라고 했다. 양마산은 국회의사당을 지을 때 흙을 깎아서 둑을 쌓는 데 이용하여 지금은 산의 형체가 없어졌다..
양말벌에선 양이나 염소도 많이 길렀다. 그 내용이 <대동지지>, <동국여지비고>에 나온다.
"여의도는 밤섬 서쪽에 있는데, 맑은 모랫벌이 육지에 닿아 있다. 여기에 전성서(典性暑)의 외고 (外庫)가 있어서 양을 놓아 기른다."<대동지지>
"나의주(여의도)는 예전에 목장이 있어서 사축서(司畜暑)와 전성서의 관원을 보냈으나, 이를 페지하였다. 지금(고종 때)은 사축서의 양 50마리, 염소 60마리만을 놓아 기른다. <동국여지비고>
이 기록을 보아서도 여의도는 나라의 중요한 목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던 곳이지만, 조선 말까지도 주민이 없었다. 그 빈 자리에 밤섬이나 강 건너쪽 마포 사람들이 땅콩 등을 심어 거둬 먹는 정도였다.
여의도는 조선시대엔 경기도 고양군(지금의 고양시)으로, 일제 때는 '여율리(如栗里)'라 했다. 이 이름은 '여의도'의 '여(汝)'자와 '율도(밤섬)'의 '율(栗)'자를 취한 것이다. 1933년 말 조사 자료에 의하면 여율리에는 일본인이 1집, 한국인이 101집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밤섬에 거주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여의도는 여러 이름으로 나온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밤섬과 여의도가 붙은 한 섬으로 '잉화도(仍火島)'로 돼 있고, <동국여지비고(東國與地備攷)>에는 '나의도(羅衣島)'로 돼 있으며, <대동지지(大東地誌)>에는 '여의도(汝矣島)'로 돼 있다.
이 이름으로 미루어 보건대, 여의도는 '너른 벌의 섬'의 뜻인 '너벌섬'으로 불러 온 듯하다. ‘나의도’의 '나'는 '너'의 소리빌기이고, '의(衣)'는 '벌'을 취한 한자 표기로 보인다. '옷'의 옛말이 '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羅衣)'는 '나벌' 또는 '너벌'의 표기로 여겨진다.
'잉화도'에서 '잉(仍)'도 '너' 또는 '나'의 옮김으로 보인다. 이 '잉(仍)'은 '니'로도 읽어 왔는데, 예부터 땅이름에서 '너', '니' 등의 소리빌기로 많이 써 온 글자이다. '잉화'의 '화(火)'는 '불'로, '벌'과 음이 근사하니, '잉화도'는 결국 '너벌섬' 또는 '니벌섬'의 한자 표기로 보인다. 즉 '여의도', '잉화도', '나의주'는 모두 '너벌섬'의 다른 표기이다.
항간에서는 '여의도'를 쓸모없던 땅이라고 해서 '너나 가질 섬'의 뜻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한다. 이는 한낱 얘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근거없는 말이다.
여의도 이름의 친척뻘 되는 이름을 보자.
잉근내仍斤內(고구려 때 충북 괴산) *늣, 는
잉벌노仍伐奴(고구려 때 경기도 시흥) *너벌노
잉홀仍忽(고구려 때 충북 음성) *느름골
잉리하仍利阿(백제 때 전남 화순) *느리개
진잉을進仍乙(백제 때 충남 금산) *긴느리
동잉음東仍音(신라 때 경북 포항의 신광) *새느름골
잉매仍買(고구려 때 강원도 정선) *늣물골
경기도 시흥의 고구려 때 이름은 잉벌노인데 통일 신라 때 경덕왕이 곡양(穀壤)으로 고쳤다. 잉벌노의 변한 이름인 잉화곡(仍火谷)은 경기도 안산시의 한 지역 이름으로 남아 1914년 군면 폐합 때까지 존속했었다. 곡량의 곡(穀)도 그 훈이 ‘낟’이므로, ‘나’, ‘너’의 차음으로 이용했다. 이 이름들은 ‘너른’의 뜻이 포함된 이름으로 보인다.
잉벌, 잉화의 ‘벌’과 ‘화(火)’는 결국 같다. 발음상 ‘불’은 ‘벌’과 비슷하다. 잉화의 원래 이름은 ‘너븐들’로 보이는데, 이 지역 시흥시 광석동(廣石洞)의 토박이 지명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지명의 그 끈질김을 실감케 하고 있다. 같은 시의 화정동에는 너벌, 너비울이란 친척 땅이름이 남아 있다.
‘늘다’나 ‘넓다’ 같은 말은 많은 친척말을 두고 있어 토박이 땅이름에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넓다의 원말은 ‘넙’이다.
즁생을 너비 제도濟度하시니<석보상절>
광廣은 너블씨오 <월인석보(序,7)>
노와 너왜 차차 져거 <월인석보(十.120)>
너붐 : 넓음의 옛말. 넙다 : 너르다나 넓다의 옛말 (각 국어사전)
넓다는 뜻이 들어간 땅이름 무척 많아
‘넙’은 상당히 많은 명사를 낳아 놓았다.
넓고 펑퍼짐하게 생긴 바위를 너럭바위라 하는데, 옛말은 너러바회이다.
그 밖에 늦다, 눅다(누긋하다), 눕다, 늘다, 느리다, 낮다, 얇다, 얕다, 널다(빨래 따위를) 같은 말도 발음상으로나 뜻으로나 넙, 널에 상당히 근접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경기도 성남시의 판교(板橋)는 널로 놓고 다리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너른 들의 뜻의 지명이 변한 것이다.
널들 > 널드리 > 널다리(板橋)
전라 : 노루목 놀목 놀메기
충청 : 누르매기 눌목 누르목
경상 : 널목 너르목 너르메기
경기 : 날목 날매기 날미..
표기는 달라도 같은 뜻에서 나온 이름일 수 있다. 땅이름을 글자 그대로만 해석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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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넓은, 넓적한, 널따란. 너붓한, 너볏한, 넉넉한, 너그러운, 널찍한, 널부러진
-너비(폭)
-너벅선(넓은 배), 너벅지, 널빤지, 넙데기(수건을 뜻하는 심마니말)
-너러기(자배기), 널방석(넓은 짚방석), 넙치
-널음새(말이나 사물을 펼쳐 놓는 솜씨)
* 친척 땅이름
-넉넉미黃龍(충남 세종시 금남면)
-느남이於南(대전시)
-놀미獐山(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장곡리)
-누르메黃山(경남 합천군 가야면)
-너리미於音(경남 울산시 언양면)
-널미板尾(강원도 화천군)
-느러리於屹(강원도 명주군 성산면)
-느러니廣院(강원도 홍천군 내면)
-너다리(너더리) 충남 서천군의 판교면, 홍성군 서부면,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전남 순천시 서면 판교리, 대전시 동구 판암동
2022년 7월 27일
땅이름과 우리말 / 서울 정동과 정릉동
능골과 는골
능골이라고 무조건 능이 있었다고요?
정동과 정릉동에 깃든 사연
중구 정동(貞洞)과 성북구 정릉동(貞陵洞)은 이름 첫 글자가 똑같이 '정(貞)'자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두 동이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구의 정동은 조선 이태조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康)씨의 한이 깊게 서린 곳이다. 강 왕후는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康允成)의 딸로, 태조가 왕이 되던 해에 현비(顯妃)로 책정되었다.
태조 원년 8월에 신덕왕후가 세상을 떠난다. 왕위 계승 문제로 복잡한 궁내의 사정을 남겨 놓고 차마 감을 수 없는 눈을 감은 것이다.
태조는 왕비의 죽음 이후 슬픔을 못 이겨 열흘 동안이나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경복궁에서 바라보이는 가까운 남쪽 언덕인 황화방(皇華坊;지금의 정동)으로 능 자리를 정한다. 능터는 도성 밖에 정하는 것이 관례인데도 태조는 이를 무시하고 불쌍하게 죽은 아내를 가까이 두고 싶어 여기에 능을 썼다. 능침 꾸미는 일까지 친히 감독하였다.
태조는 능소 바로 동쪽 모퉁이에 원당인 흥천사(興天寺)를 짓는다. 이 절을 세우고 경상도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전해 오는 단 하나인 석가여래의 사리(舍利)를 일부 옮겨 사리전(舍利殿)을 절 북쪽에 세우기까지 했다. 그리고 자주 왕비의 능을 찾고 절에 들러 왕비의 명복을 빌었다.
이태조 7년(1398) 8월, 마침내 궐내에서는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세자 책봉에 누구보다 불만이 많았던 방원이 칼을 휘둘러 배다른 동생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만 것이다. 상심에 빠져 있던 태조는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 궁에서 나와 멀리 함경도 함흥으로 가 버리고 말았다.
태종 때인 1408년 5월, 태조는 세상을 떠난다. 신덕왕후를 잃은 지 12년 뒤이고, 왕자의 난으로 두 아들을 잃은 지 10년째이다. 태종은 그 해 9월, 양주 검암산(지금의 동구릉)에 부왕을 장사지낸다.
태종은 그 부친 이태조가 세상을 뜬 뒤. 대궐 가까이 있는 계모 신덕왕후의 능에 손을 댄다. 그 계모의 능이 대궐 가까이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왕의 장례를 치른 지 불과 5달만에 정릉을 동소문 밖 살한이(지금의 정릉동)에 옮겨 버린다. 죽은 신덕왕후로 보아서는 배다른 아들로부터 당하는 큰 수모가 아닐 수 없다. 옮기고 난 뒤에도 능지기도 두지 않은 채 돌보지 않았다. 묘 앞에 누구 묘라는 표석도 세우지 않았고, 태묘에 배향하지도 않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하였다.
신덕왕후의 능이 있었던 원래의 정릉터는 원래 정릉동이었다가 정동(貞洞)이 되었다. 정릉의 원당으로 지었던 정동의 흥천사도 정릉 석문(石門) 밖 함취정(含翠亭) 자리에 옮겼다가 정조 18년(1794) 9월 지금의 정릉동으로 다시 옮겨 이름까지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었다.
옛날의 정릉이 있던 근처 덕수궁 돌담 근처에 ‘정동길’이 있지만, 이곳이 태조 왕비 신뎍왕후의 능이 있었던 것을 아는 이가 별로 많지 않다. 정릉동이 원래 여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별로 없다.
능이 있으면 그 앞의 동네는 대부분 능골이 되고 한자로는 능동(陵洞)이나 능촌(陵村)이 된다. 능이 있는 골짜기는 능곡(陵谷)이 된다.
그런데, 전국에는 엄청나게 많은 능골이 있다. 그 많은 능골에 모두 능이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능골마다 능이 있었다면 우리 나라에 엄청나게 많은 왕이나 왕비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역사가 길다 해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을 왕이나 왕비가 있을 리가 없다.
는골이 변한 능골이 엄청 많아
전국에 많은 능골 중에는 ‘는골’이 변해서 된 것이 많다.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의 능골도 고려의 아기능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릉리, 파주시 금촌읍 야동리 등에도 능골이 있다. 한자로 능곡(陵谷), 능동(陵洞)이 되어 더욱 능(陵)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천만의말씀이다. 거기엔 왕비나 왕비가 묻힌 무덤이 없다. 능(陵)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왕이나 왕비의 무덤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사흥리의 능말은 한자로 가촌(加村)이다. 능말이긴 하지만, 늠말로도 전해 오는 마을이다. 늠말은 ‘늘어난 마을’의 뜻인 ‘는말’이 원이름이고 그 뜻에 따라 한자의 더할가(加)자가 들어가 한자의 ‘가촌’이 된 것이다.
는+말 >는말 >늠말 >능말
결국 ‘능말’은 ‘는말’에서 나온 이름임을 알게 한다.
능골, 능말뿐만 아니라 능뫼(陵山), 능재(陵峴) 중에도 능과 관련없는 것이 무척 많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능곡동(陵谷洞)도 능과는 마무 관계가 없다.
이곳의 능곡동은 토당동을 중심으로 완전히 도시화된 마을과 함께 나머지 마을들은 옛 농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능곡동 앞으로는 멀리 한강이 흐르는데 이 강 기슭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을은 크게 상대장, 중대장, 갈머리로 나뉘어진다. 근처에 뒤꾸지, 안골 마을이 있다. 이렇듯 능곡동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남아 있는 행정동이 된다. 기차와 전철 큰 도로가 만나는 곳이 바로 이곳 능곡동이다.
이처럼 능동이나 능곡, 능촌 중에는 능(陵)과는 전혀 관계 없는 곳이 나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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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늘다 / 는(늘은), 늘어난, 느러진(늘어진), 너럭
* 친척 땅이름
-늘미골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오탄리
-는등 경북 문경시 고요리
-능골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능산리
-능미 인천 강화군 양도면 인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