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36-38절. 바울의 목을 안고 작별 인사를 함. 요약설교(새벽예배용)
36절.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1.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 설교를 한 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아무리 장로들에게 당부를 했지만, 실제로 주님이 에베소 교회를 보살펴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훌륭한 교훈을 했더라도, 주님이 보살펴주시지 않으면, 결점이 많은 인간은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너무도 소중한 교회를 기도로 주님께 부탁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가정에서 아무리 자녀를 여러 가지로 잘 교훈할지라도, 주님께서 잘 보살펴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 <어머니 기도>란 프로그램이 참 잘 된답니다.
2. 바울은 밀레도 해변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바울의 동행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처럼 영력이 탁월한 사도는 기도를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이런 위대한 사도도 인간의 부족을 인정하고, 주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참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유명한 조용기 목사님이 유명한 김장환 목사님에게 한 말이 있다고 합니다.
김장환 목사님이 말하기를 <내가 조 목사 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영어도 더 잘하고, 생김새도 더 잘 생겼는데, 어째서 조 목사가 나보다 목회를 잘하나?>
그러자 조용기 목사님이 묻기를 <김 목사님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기도합니까?>
그러니까 김장환 목사님이 <하루 한 시간 정도 기도하네>
그러자 조용기 목사님이 말하기를 <나는 하루에 5시간은 기도합니다> 그랬답니다.
이처럼 영력이 많은 분들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밀레도 해변에서 기도하는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들의 기도 모습은 참으로 진지했습니다.
그렇게 높은 사도와 장로님들이지만, 무릎을 딱 꿇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37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1.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들은 기도하다 말고 큰 소리를 내면서 울고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사랑과 감동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이제 더 이상 바울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니 바울을 통해서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울고, 바울이 죽을 위험을 무릎 쓰고 복음을 전해준 것 고마워서 울고, 더 이상 바울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니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한 사람만 운 것이 아니라 다 울었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요즘에는 얼마나 눈물이 메말랐는지 모릅니다.
6.25 직후까지만 해도 만나면 헤어질 때 울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얼마나 울었습니까.
누나가 시집가거나 고모가 시집갈 때도 울었습니다.
하여간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울고, 슬플 때도 울고, 기쁠 때도 울고, 억울할 때도 울었습니다.
그렇게 잘 울었는데, 살면서 세상살이가 너무나 각박해서 이런 울음을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의 이별 장면은 석별의 정이 너무나 그리워서 다 크게 울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밀레도 해변의 고별 설교와 기도회는 정말 사랑과 눈물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기도회였습니다.
바울은 이때의 기도를 생각해서 후에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도,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에베소서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8절.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1. 다시 얼굴을 보지 못 할 경우에는 많이 울었습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 되지 않아서 한번 가면 언제 볼지 몰라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휴대 전화가 있지 않고, 안부를 물으려면 편지로 며칠 걸렸기 때문에, 울면서 편지를 읽기도 했습니다.
또한 외국에 가면 헤어질 때 울었습니다.
아들이나 오빠가 군대 갈 때도 죽을지 몰랐기 때문에 울었고, 중동에 근로자로 나갈 때도 울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군대 간 자녀와 통화도 되고, 외국 간 가족들과도 통화가 되니까, 그렇게 울지 않습니다.
하여튼 전에는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별로 잘 울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많이 웃습니다.
그러나 웃음보다는 울음이 마음을 참 좋게 만듭니다.
전도서 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2. 바울은 밀레도 해변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작별한 후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로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에, 소위 4차 전도 여행 때(AD 63년)에 다시 에베소 교회에 가서 에베소 교인들을 만나봅니다.
이것은 나중에 <디모데전후서>를 공부할 때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될 것 같으면 기쁨으로 헤어질 것인데, 다시 못 본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배에까지 전송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만났으면 반드시 다시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젠가 서로 헤어진다는 것을 알고, 서로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222장 찬송처럼 하나님이 함께 계셔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의 해변가 기도회처럼, 우리들도 말씀과 은혜가 넘치는 기도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과 바울이 석별의 정을 눈물로 나누었던 것처럼, 교회 안에서 서로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교회가 마음의 고향처럼 포근하고, 성도들을 그리워하면서 기도해주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