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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산(1157m)
2025년 02월 09일(일요일)
산행코스 : 용문산터널(08:50) - 상원사(09:55) - 장군봉(11:55) - 용문산(13:10) - 용문사(15:00) - 용문산주차장(15:40)
산행거리 : 13.5km
용문산터널
은행나무길에서 바라본 백운봉, 용문산
당겨본 백운봉
당겨본 용문산
상원사 미륵불
상원사 1.5km
상원사 미륵불
상원사 미륵불은 1970년부터 상원사에 주석했던 비구니인 경한(鏡漢) 스님이 상원사를 중창하는 과정에서 1977년에 세웠다고 하는 미륵대불입니다.
용문사 갈림길
상원사 0.6km, 용문역 7.6km, 용문사 1.8km, 용문산 3.3km
주차장에서 옆으로 올라가면 대웅전이 보입니다.
상원사 뒤로 보인는 산이 용문산입니다.
장군봉 2.1km, 가섭봉(정상) 3.6km, 쉬자파크 12.5km, 용문사 2.4km
상원사 대웅전(上院寺 大雄殿)
상원사는 '관음현상기'를 보면 용문산의 경사진 땅을 깍고 축대를 쌓아서 세웠습니다.
1975년에 경한 스님이 중창한 대웅전은 '관음현상기'에 상세하게 그려진 옛 대웅전의 모습을 참조하여 복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다포계의 맞배지붕 건물로 단층과 벽화가 매우 화려합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대웅전에는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장보살입상과 관음보살입상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또 석가모니불 좌우에 2기의 작은 관세음보살입상이 서 있습니다.
중앙 석가모니불
청운당(靑雲堂)
대웅전 아래 좌측, 제월당의 맞은 편에 단청이 없는 청운당이란 건물이 있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건물인 듯 합니다.
청운당(靑雲堂) 편액
청운당 편액 글씨는 봉선사 주지 한암 정수(閑庵 正修) 스님의 글씨입니다.
제월당
'제월당'은 '비가 갠 후 달을 바라보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운치가 넘치는 당호입니다.
'ㅁ'자 형 전각입니다. 종무소와 요사채 기능을 겸하고 있는 전각입니다.
제월당(霽月堂) 편액
제월당이라는 편액은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 주지 한암 정수(閑庵 正修) 스님의 글씨입니다.
霽(갤제), 月(달월), 堂(집당) '날이 갠 날의 달뜬 집'의 月(달월) 자는 해학적으로 비스듬이 누워있습니다.
사찰에 누워있는 현판글씨는 상상을 초월한 파격적 묘사입니다.
편액 좌측의 작은 글씨들은 霽月光風相和 山光水色互映 此悟者之境界也(제월광풍상화 산광수색호영 차오자지경계야)인데 '비갠 뒤 달빛과 바람이 어우러지고, 산색과 물색이 서로를 비춰주니, 이런것이 깨달은 자의 경계이니라'라는 의미입니다.
函虛禪師(함허선사) 金剛經(금강경) 說誼中(설의중) 函虛 書(한암 서)
함허선사의 금강경 글귀의 설의중(옳은 설법)를 찾아보니 무학대사의 제자로 알려졌습니다.
조선 초기의 대승려인 함허(函虛 1376~1433) 대사의 한시에서 따 온 명칭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주련 글씨도 한암 정수(閑庵 正修) 글씨라고 합니다.
삼층석탑과 대웅전
3층석탑은 2011년에 조성되었으며, 석재의 재질이 장항석이라는데, 보기에는 마치 오랜세월이 지난듯한 느낌을 줍니다.1970년 대 중반, 경주 남산의 장항석으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화강암을 깍고 쪼아서 만든 일반적인 석탑에 비해 특이한 질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래에 조성한 탑이지만, 조성 약식은 고려시대의 석탑조성기법을 따른 것이라 합니다.
용문선원(龍門禪院)
허름한 지붕을 가진 종각이 보이는데, 한때는 국보(제367호)였다가 짝퉁 시비에 휘말려서 1962년에 국보에서 해제된 동종이 보입니다.
상원사 동종은 현재 경기유형문화재로 그나마 관리되고 있습니다.
상원사 동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4호)
이 동종은 1929년 1월 1일 한성 방송국이 개최한 우리나라 최초의 '제야의 종소리'를 울린 유서 깊은 동종입니다.
모양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풍성한 치마처럼 보이는 모양이 아니고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마치 일본종 또는 중국종처럼 보입니다. 그럼 생김새로 구분하여 일본종, 중국종이라고 하는 의견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종은 종을 매다는 용 모양의 고리인 용뉴(龍鈕)가 한마리인데 상원사 동종은 두마리입니다.
우라나라 종은 용통(소리관)이 있는데 상원사 동종은 없습니다.
상원사 동종에는 가로, 세로 종획선이 그려져 있어 일본종이나 중국종입니다.
종의 형태가 위는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데 이것은 중국종의 특징입니다.
상원사의 동종은 용뉴가 2마리인데 흔히 보는 구조는 아니지만, 한국의 종에서 가끔 보이는 주조 공법으로서, 꼭 용이 한마리만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궁핍스럽습니다. 낙산사 동종(화재로 손실)도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있었습니다.
연뢰의 유두가 작기는 하지만 질서 있게 9개가 박힌 모습은 무질서하게 박힌 일본종과 차이를 보입니다.
장군봉 2.0km, 정상(가섭봉) 3.53km, 백운봉 4.8km, 상원사 0.1km
상원사가 보입니다.
장군봉 가는 길은 시작부터 계속 올라갑니다.
저멀리 용문산 정상 가섭봉이 보입니다.
상원사 0.72km, 장군봉 1.29km
용문산 장군봉으로 가는 등로는 가파르고 거친길입니다.
앞만 보고 계속 올라가고 거친 숨소리만 들립니다.
저멀리 가야할 장군봉이 보입니다.
저멀리 양평 추흡산이 보입니다.
뾰족한 추읍산
당겨본 추읍산(583m)
계속 로프를 잡고 올라갑니다.
나무사이로 백운봉이
장군봉 정상이 보입니다.
장군봉 정상
백운봉 2.78km, 상원사 2.13km, 용문산 정상 1.51km
장군봉에서 바라본 추읍산 방향 파노라마
치악산 방향
당겨본 저멀리 치악산 비로봉, 향로봉이 희미하게
중앙 곰산과 그 뒤로 우두산, 추읍산
당겨본 저멀리 고래산, 우두산과 그 앞으로 곰산
당겨본 용문산터널
추읍산(583m)
당겨본 추읍산과 그 앞으로 독골산, 갈월산 절도봉
저멀리 용문산이 보입니다.
장군봉삼거리
옥천면, 용천리 7.7km, 백운봉 3.7km, 상원사 3.0km, 장군봉 0.5km, 용문사 4.0km, 용문산(우측) 1.0km
장군봉 삼거리 0.5km, 장군봉 1km, 정상(가섭봉) 0.62km, 용문사 3.44km
용문산 정상 110m, 한강기맥(유명산), 장군봉 1.4km, 용문사 3.3km, 용문역 13.8km, 한강기맥 150m
용문산(가섭봉) 정상까지는 거의 데크계단 길입니다.
용문산 정상이 보입니다.
용문산 정상
용문산 정상에서 바라본 용문봉 방향 파노라마
봉미산, 문래봉
당겨본 봉미산
문래봉(푹산), 용문봉 뒤로 좌측 도일봉, 우측 중원산이 보입니다.
당겨본 도일봉
용문봉 뒤로 좌측 도일봉, 우측 중원산이 보입니다.
당겨본 중원산
중원사 쾌일산, 우측 곰산
뒤돌아본 용문산
추읍산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
용문사, 상원사 갈림길
좌측 용문사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용문산 0.9km, 상원사 2.4km, 용문사 방향, 용문사 2.1km, 마당바위 600m
용문사 1.35km
정상(가섭봉) 1.73km, 장군봉삼거리 2.6km, 용문사 1.34km, 상원사 1.65km
용문사 갈림길
용문사 0.96km, 상원사 1150m, 용문산 정상 2030m
상원사 1.87km, 용문사 0.4km, 마당바위 1.32km, 정상(가섭봉) 3.05km
자비무적(慈悲無敵)
자비무적(慈悲無敵)이란 '언제나 자비를 베푸는 자는 적이 없다' 란 뜻으로 무서운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대를 미워하지 않은 자비로운 사랑의 마음이란 의미입니다.
일중거사(一中居士 金忠顯, 1921 ~ 2006) ) 선생이 쓴 글씨를 돌에 음각하였습니다.
대웅전
양평 용문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주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지붕의 처마선이 날개를 편 새처럼 날렵하게 치켜 올렸으며, 다른 전각에 비해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大雄殿 柱聯(대웅전 주련)
佛身充於滿法界(불신충어만법계) - 부처님은 온 법계에 가득하게 계시며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 항상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시네
隨緣赴感靡不周(수연부감미불주) - 인연따라 다다라서 두루 보살펴 주시고
而恒處叉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 그리고 모든 곳에 지혜 베풀어주시네
대웅전(大雄殿) 편액
대웅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선생의 글씨로 완당(阮堂) 이란 낙관이 보입니다. 이 글씨는 김정희 선생이 말년에 쓴 글씨로, 서울 강남 봉은사 대웅전의 편액 글씨를 본떠 판각한 것입니다.
大’ 자는 추사 젊은 시절 글씨고
‘雄’ 자는 추사가 잘나가던 중년의 글씨이고
‘殿’ 자는 추사의 말년에 쓴 고난과 역경을 겪은 후 기름기 쫙 빠진 후에 쓴 글씨랍니다.
대웅전 안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고, 양 옆에는 관음단과 신중단이 있습니다.
양평 용문사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좌협시)에 관세음보살, 왼쪽(우협시)에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보관에 화불이 있고, 대세지보살은 육발위에 보배병이 있습니다.
원응당(圓應堂)
원응당은 종무소로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원응당(圓應堂) 편액은 한암(閑庵)의 글씨입니다.
지장전(地藏殿)
양평 용문사 지장전은 지장보살과 명부의 시왕을 모신 전각으로 다른 사찰의 명부전, 시왕전과 같습니다.
지장전(地藏殿) 편액
지장전(地藏殿) 편액은 일중거사 김충현( 一中居士 金忠顯, 1921 ~ 2006)이 계축 입춘(癸丑 立春) 1973년 정월에 쓴 글씨입니다.
지장전에는 중앙에 지장보살(地藏菩薩) 좌우에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子)이 모셔져 있으며, 그 좌우 벽에 탱화로 염라대왕과 시왕(十王)을 협시로 모신 시왕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석조약사여래좌상(石造藥師如來坐像)
대웅전과 지장전 사이에는 2018년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왼손에 약봉지를 들고 연화좌에 앉아 계십니다.
금향원(金薌院)
절 마당에는 4면이 개방된 금향원이 있습니다. 안에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으며 개금불사를 모연하고 있습니다.
금향원(金薌院) 편액은 사문정수(沙門正修) 스님 글씨입니다.
약사여래불
관음전(觀音殿)
양평 용문사 관음전은 보물 금동관음보살상을 모신 전각으로 팔각모양의 지붕이 특징입니다
관음전(觀音殿) 편액 글씨는 一中居士(일중거사 김충현 金忠顯 1921 ~ 2006)이 계축 중추(癸丑 仲秋 1973년 가을)에 글씨입니다.
일중거사 김충현은 근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명필입니다.
관음전 관음32응신탱화
지장전은 관음보살이 주존불로 계시는 법당입니다. 관음보살은 현세를 관장하는 보살로 중생의 소리를 살펴 두려움을 없애주고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고 자비로 중생을 구제합니다.
금동관음보살좌상 (木彫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790호)
양평 용문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은 14세기 제작된 앉아 있는 관음보살상입니다. 관음보살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베풀며 고통을 없애 주는 보살로, 머리에 화려하게 장식된 관(보관)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용문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은 볼에 살이 있는 네모난 얼굴,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가슴과 양 무릎 위에 표현한 구슬 장식(영락)등 고려 후기에 크게 유행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금동 보살상의 전형적인 요소를 보여 줍니다. 특히 왼쪽 가슴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긴 삼각형 모양의 내의 장식은 이 보살상의 특징으로 꼽힙니다.
용문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신체화 정교한 세부 표현이 돋보여 고려 후기 불교 조각의 연구 자료로 가치가 높습니다.
부도전
정지국사 부도(正智國師 浮屠) 탑 및 비(보물 제531호)
양평 용문사 정지 국사 탑 및 비는 지천(1324~1395)의 사리를 모신 탑(부도)과 그의 행적과 업적을 기록한 비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세워졌습니다.
정지 국사 탑은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져온 팔각원당형의 부도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몸돌에 새겨진 문과 지붕 처마 끝부분에 표현한 귀꽃 장식은 단순하고 간결한 조선 초기의 부도 양식을 보여 줍니다. 비는 부도에서 80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정지 국사 지천은 고려 후기의 승려로, 고려 공민왕 2년(1353)에 무학 대사와 함께 중국 원나라로 가서 지공 선사와 나옹 선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고려 우왕 4년(1378) 용문사에 대장전을 짓고 황해도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왔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부도전에서 좌측 언덕길을 다라 100여미터 올라가면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 승탑과 비가 있습니다.
정지국사 속명 김지천은 고려후기의 승려로 19세에 출가하여 30세에 무학대사와 함께 중국 원나라로 가서 지공선사와 나옹선사의 제자가 되었으며, 고려 우왕때 용문사에 대장경을 옮겨온 선승이었습니다.
조선 태조 4년에 스님이 입적하자 그의 높은 공덕을 기려, 태조가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그때 승탑과 비가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승탑과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4각이고 윗받침돌과 탑몸이 8각으로 되어 있는 팔각원당형 승탑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어 그 가치를 인정 답은 보물입니다.
현재 정지국사 부도 탑은 보수수리 중입니다.
삼층석탑과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살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42m, 뿌리 둘레가 약 15.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오래된 은행나무입니다. 나무줄기 아래 쪽에 혹처럼 큰 돌기(아래 사진)가 나 있는 것이 특징인데,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350kg의 열매를 맺습니다.
신라 의상대사가 짚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신라의 마지막 태자 마이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 고종이 승하했을 때 큰 가지가 하나가 부러졌고,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을 때도 은행나무는 불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범종루(梵鐘樓)
양평 용문사 범종루는 불전사물인 범종, 범고, 운판, 목어가 비치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두드려 지옥중생, 축생, 조류, 어류를 제도합니다.
범종루(梵鐘樓)
범종루(梵鐘樓) 편액은 설악산인(雪嶽山人) 사문정수 서(沙門正修 書)의 글씨입니다
용문사 사적비와 관세음보살입상
용문사의 상징 은행나무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양평 용문사 사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신 건물입니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들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여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불교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입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편액은 봉선사 주지를 지내신 한암 정수(閑庵 正修) 스님 글씨입니다.
남방증장천왕(좌), 서박광목천왕(우)
남방증장천왕은 불자들에게 지혜와 복덕을 늘려주고, 이익을 증장시켜 주며, 금강검으로 불자들에게 남아 있는 번뇌를 끊어 지혜가 생기게 합니다. 서방광목천왕은 인간의 선악을 살피고, 나쁜 것을 물리치기 위해 손에 용과 여의주를 쥐고 있습니다. 잘한 사람에게는 여의주로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용을 보내 비를 뿌리는 등 벌을 줍니다.
북방다문천왕(좌), 동방지국천왕(우)
북방다문천왕은 사천왕 중 우두머리로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면서 불법을 듣고 불자들에게 전하는 신입니다. 손에는 보탑과 보당을 들고 있습니다. 동방지국천왕은 나라를 다스리고 지키며,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신으로 손에는 비파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매점
용문산 출렁다리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1986년 조성하였으며, 단청은 박정원이 하였습니다.
용문산 용문사(龍門山龍門寺) 일주문 편액
용문산 용문사(龍門山龍門寺) 일주문 편액은 일중 김충현( 一中 金忠顯 1921~2006)선생이 병인맹추(丙寅孟秋(1986년 9월)에 쓴 글씨입니다.
김충현 선생은 여초 김응현 선생의형으로 7세 때 안진경체를 쓰기 시작하여 전, 예, 해, 행, 초의 한문 5체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김충현체'를 만들었습니다.
한국민족독립운동발상지 표지석과 애군우국(愛君憂國)
독립운동기념비, 양평의병기념비, 용문항일투쟁기념비
애군우국(愛君憂國) 애군여부 우국여가(愛君如父 憂國如家: 임금은 백성의 어버이이며 나라는 백성의 가정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용문산
첫댓글 대장님 용문산 장군봉ㆍ가섭봉 산행 수고하셨구요
자세한 설명과 멋진사진 즐감하고갑니다
용문산 멋진 풍경들 감상 잘 했습니다! 이글 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오래동안 기억속에 남는 산행 이였습니다!
용문산 멋진 풍경과 설명이 있는 후기 잘 보고 갑니다.
산행기 멋지네요
한권의 책자 로 창간 하시길~
마치 실록 를 보는 듯 상세 한 집필 감동적으로 느끼고 갑니다
늘~종주위해 봉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