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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루는 유치원 때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옆에서 튀어나오는 경차와 부딪힌 것이다.
원인은 상대의 전방부주의로 그때는 긁힌 상처와 타박상 정도로 끝났으나, 사고의 공포는 스가루의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스가루는 신경질적으로 차를 조심하게 되었다. 그런 스가루가 신호를 무시할 리가 없다.
코지는 마루야마에게 소릴 질렀다.
“스가루가 신호를 무시할 리가 없어!”
마루야마는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냉담하게 코지의 항의를 부정한다.
“비가 오고 있었어. 빨리 귀가하려고 했다. 그래서 신호를 잘못 볼 수도 있어”
“그 길은 매일 학원에 다니고 있는 길이야. 잘못 볼 리가 없어”
마루야마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콧등을 손끝으로 만지작댔다. 관심 없다는 듯한 태도에 피가 거꾸로 섰다. 코지는 마루야마의 멱살을 힘껏 잡아 올렸다.
“경찰은 술 취한 놈 말을 믿는 거야!”
경찰이 코지의 움직임을 막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런 두 사람을 마루야마가 눈짓으로 말렸다. 마루야마는 멱살을 잡힌 채로 코지에게 말을 했다.
“음주는 하지 않았어”
“뭐라고?”
“상대는 술을 먹지 않았다고”
코지는 망연자실했다.
“술을 먹지 않았다고?”
“그래, 그랬어”
코지는 강렬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짓말 하지마! 목격자가 있어. 이쪽 신호는 틀림없이 녹색이고, 저쪽 신호는 빨간 불이었어. 차에서 내려선 남자한테서 술 냄새가 났다고 증언했어. 음주운전을 한 사실은 틀림없다고. 그게 왜 마시지도 않은 거로 되냐고?”
“목격자는 피해자의 친구라는 아이잖아. 사고 후에 조서를 받았는데 애매한 기억으로 신빙성이 없었어. 더욱이나, 사고 후, 상대의 조사보고서에도 음주사실은 없어”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른다.
“상대가 공안위원장이라서 감싸는 거야?”
“관계없어”
마루야마는 어디까지나 모른척했다.
코지는 마루야마를 더욱 옥죄었다.
“당신들 전부 한통속이야. 패거리들끼리 감싸기나 하고. 공안위원장을 봐주고 뭘 받았지? 2중 장부라도 눈감아 주나. 아니면 시민들의 고충을 몰래 처리해 주나”
마루야마는 하는 대로 놔둔 상태에서 위에서 코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안색 하나 변하지 않는 태도가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코지는 마루야마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마루야마가 바닥에 넘어졌다.
구경하던 여성이 비명을 지른다. 경관이 소리쳤다.
“적당히 해! 상해 현행범으로 체포 당해볼래”
마루야마로부터 강제로 떼어 놓는다. 마루야마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언저리를 손등으로 닦는다.
“아프네”
마루야마 손에 피가 묻어 있다. 마루야마는 천천히 일어선다.
“나 때리니까 기분이 풀렸나. 그럼, 돌아가”
“체포 안 합니까?”
경관 한 명이 놀라면서 물었다. 비뚤어진 넥타이를 적당히 고치면서 마루야마는 대답했다.
“원망하는 마음은 자주 생기는 거지. 그걸 모두 체포하면 교도소가 만원이 된다고”
원망이라?
그 말에 코지는 다시 마루야마에게 덤벼들려 했다.
“원망이 아니고 너희들이 거짓말 하고 있는 거야. 합동으로 아들 탓을 하고 있어”
경관이 우격다짐으로 말린다. 이런 소란을 늘 보아왔던 사람들이 점점 모인다.
그 중에 언뜻 보아 관리직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말쑥한 양복을 입고 검게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있다.
마루야마와는 대조적인 복장이다.
“왠 소란이야?”
남자가 큰소리로 묻는다. 남자는 마루야마의 모습을 보자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왜 자네가 여기 있지?”
연이어 접수창구의 여직원을 본다.
여직원은 뭔가를 부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전 과장님 지시대로”
거기까지 말하곤 깜짝 놀라며 입을 막는다.
코지는 알아차렸다. 이 남자가 나와 마루야마를 만나지 못하게 지시한 것이다.
남자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마루야마를 때린 주먹을 남자에게 올려 붙이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움찔하면서 몸을 뒤로 뺐다.
마루야마가 경관에게 소리쳤다.
“이 친구 빨리 돌려보내”
팔을 잡은 경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강한 힘으로 뒤로 끌려갔다.
“놔!”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이 길을 만든다. 경관은 힘으로 코지를 출구로 끌고 간다.
코지의 태도에 겁이 나서 멋쩍어졌는지 남자는 얼굴이 붉어지며 고함을 질렀다.
“이봐 잠깐만, 마루야마. 그 친구가 소란 피운 장본인이잖아. 이렇게 난리를 쳤는데 그대로 돌려보내는 거야”
남자의 말에 경관의 발이 멈춘다. 그 경관에게 마루야마가 소리를 지른다.
“됐으니까, 데리고 가!”
마루야마의 박력에 압도 당한 경관이 지시에 따른다.
코지는 몸을 꼬면서 격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평상 시 유도, 검도로 단련된 상대경관을 당할 수는 없다. 간단하게 밖으로 끌려나갔다.
문을 나서면서 몸이 문에 밀렸다. 그 바람에 땅에 넘어졌다. 금방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직 이야기 끝나지 않았어”
경찰서 안으로 돌아가려는 코지 앞에 마루야마가 가로막아 섰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당신이 체포되면 아주머님은 어떻게 되지?”
코지는 퍼뜩 정신이 들어 멈춰 섰다.
“당신이 가버리면 아주머님은 혼자가 된다고. 그래도 괜찮은 거야?”
뇌리에 미츠코의 까칠하고 여윈 모습이 떠오른다. 미츠코의 울적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뭘 봐도 스가루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쓰러져 울어버린다.
어떤 때는 저 세상에서 아이가 쓸쓸해하니까 자기도 가야한다며 스가루의 영정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는 일도 있다.
코지가 몇 일만이라도 집을 비우면 뭘 할지 모른다. 지금 미츠코 곁을 떠날 수는 없다.
코지의 꽉 쥐었던 주먹이 힘없이 풀렸다. 마루야마가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 난리를 쳐도 당신한테 좋은 일은 없어. 나쁜 말은 안 할 테니 이제 돌아가지”
그리 말하며 마루야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경관도 그 뒤를 따른다.
밖에 홀로 남겨진 코지는 분노와 후회로 몸을 떨면서 잠깐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코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역으로, 지인들의 불상사를 은폐하려는 경찰의 의도가 명확해졌으니까, 스가루의 무죄를 입증하여 상대방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결의가 더욱 굳어졌다.
우선, 목격자 찾기부터 시작했다.
나오키 이외의 목격자가 있으면 사고의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고현장에 스가루의 사진과 사고정황을 적은 포스터를 붙이고, 가두에서 [목격자 구함]이라고 인쇄한 전단지를 배포했다.
낮에는 미츠코가 거리에 나서고, 밤에는 코지가 나섰다.
왕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안 됐다고 하며 전단지를 갖고 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무관심하게 손을 흔들어 전단지 수령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목격자 찾기를 계속하며 민사소송도 고려했다. 사고의 관계서류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민사소송관련 책자나 교통사고 피해자의 수기를 읽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참고자료로서 사고관계서류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제일 손에 넣고 싶은 것이 진술조서였다. 코지는 경찰에서 쫓겨난 후, 다시 지검에 갔다. 스가루가 죽은 사고의 실황신분조서를 열람하기 위해서였다.
진술조서는 무리였으나 실황신분조서라면 약간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열람이나 복사하는 게 가능하다.
사고현장의 약식도 라고도 하는 실황신분조서에는 사고직후 현장의 흔적이 기술되어 있다.
예를 들면, 미끄러진 흔적이나 타이어 흔적, 혈흔이나 브레이크 흔적 등이다.
교통사고 수사의 요체라고도 할 수 있는 중요한 서류이다. 그것에 뭔가 스가루의 잘못이 아님을 벗겨줄 단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사무관이 갖고 온 실황신분조서는 어린애라도 작성할 수 있을 정도의 낙서수준의 것이었다.
서류에 적혀 있는 사고현장에서의 시마즈 진술도 간단한 법조문 형식의 것으로 자세한 내용은 기술되어 있지 않았다.
모든 실황신분조서가 사실에 기초하여 상세하게 작성되는 것은 아니다.
표적이 되는 전주나 집의 외벽에서 정확한 거리를 측정해서 확실한 위치가 표시되는 것도 있는가 하면, 위치도 특정되어 있지 않고 현장사진도 전혀 없는 것도 있다.
스가루의 경우는 후자의 것으로 이것만 가지고는 사고의 상세를 알 수 없었다.
역시, 시마즈의 진술조서가 필요했다. 시마즈의 진술조서가 손에 들어오면, 시마즈가 경찰에서 어떻게 진술했는지 그리고, 경찰이 어떤 수사를 했는지 알게 된다.
시마즈와 목격자인 나오키의 증언의 상이함이나 날림으로 조서가 작성되었음이 명백해지면 지검이 재수사를 할지도 모른다고 코지는 생각했다.
그러나, 상담에 임한 변호사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소송을 제기하는 건 어렵다고 대답했다. 민사소송은 주로 재산이나 신분관계에 관한 분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스가루 사고의 경우, 상대방은 위자료 지불의사가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정에서 논쟁할 시항에 대한 중요한 사실과 그걸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소송을 제기하는 건 극히 어렵다고 한다.
이번 사고에 있어서 법정에서 논쟁할 사항이란 피해자에겐 과실이 없었다, 사고는 가해자의 과실에 의한 것이었다, 라는 사실이지만, 그걸 입증하는 게 나오키의 증언밖에 없다.
코지가 그렇게 설명하자 변호사는 물적 증거가 수반되지 않는 목격자 증언만으로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자기들은 취급할 수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시라고 하며 상담료만 받았다.
그 후 다른 변호사를 여러 명 만났다. 그러나, 어디나 똑 같았다.
세 번째 변호사를 만났을 즈음부터 코지는 위화감을 느꼈다. 모든 변호사의 태도가 너무 쌀쌀맞았다. 아무리 입증하기 어려운 사고라 해도 조금 더 친절하게 상담에 응해줘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위화감의 정체는 마지막으로 방문한 일곱 번째 변호사의 한마디로 풀렸다.
나이가 지긋한 변호사는 의뢰를 받아달라고 머리를 숙이는 코지에게 어딜 가도 같을 테니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코지가 무슨 의미냐고 묻자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건이나 사고를 취급한다. 그 중의 하나에, 사건 그 자체보다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는 케이스가 있다. 그런 케이스는 해결이 어렵다. 상대방이 무서워서 누구도 손을 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상대방이 나쁘니까 포기하라는 것이다.
변호사는 성과 없이 발걸음 짓만 하는 코지에게 친절한 마음으로 포기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건 코지에게 역효과였다. 시마즈와 경찰은 권력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건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비열하기 그지없는 처리방법에 새로운 분노를 느꼈다. 과실이라는 누명을 쓴 채 죽어간 아들이 가엾어서 그만둘 수 없었다.
코지는 포기할 수 없어 최후수단으로 고소를 생각했다.
경찰이나 검찰에 재수사와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신청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민사소송과 동일해서 상대방의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고소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스가루의 무죄를 입증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코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증거로 연결될만한 작은 단편이라도 좋다. 그런 거라도 손에 넣으면 고소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렇게 믿고 목격정보를 찾아 헤맸다. 특히 사고가 일어났던 날과 같은 비가 오는 날에는 가능한 한 차를 세워 전단지를 배포했다. 그러나, 유력한 목격정보는 얻을 수 없었고, 시간만 흘러갔다.
사고로부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고가 있었던 것조차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사고가 있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보행자가 날이 갈수록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고 당시 협력해 주던 학부형들도 한 명, 두 명 줄어 1주기를 지날 즈음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의 감정은 좋던 싫던 오래가지 않는다.
그건 코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가져도, 장시간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망이라는 감정이 머리를 들고 나오게 마련이다. 절망은 포기를 부른다. 사고로부터 세 번째의 장마가 찾아왔을 즈음에는 코지에게도 포기에 가까운 감정이 그 싹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미츠코도 마찬가지였다. 휑하게 비어 있는 리빙룸에서 저녁을 먹고 있으면 갑자기 큰소리로 젓가락을 놓으며 이제 글렀어 하며 중얼거렸다. 뭐가 글렀냐고 물어보면, 이 짓 더 이상 해봐야 얻을 게 없고, 스가루의 오명을 벗을 길이 없다고 고개를 숙인다. 길에서 전단지를 배포해도 의미가 없고, 스가루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끝나는 거라고 격하게 울어버린다.
사고가 있었던 당시였다면, 그런 일은 없어, 틀림없이 목격자가 나타날 거야, 이런 부조리한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없지, 포기는 절대로 금물이야 라는 격려도 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입에 올리는 위로의 말도 자신에게마저 아무 의미 없이 들리게 되었다. 마음 속의 또 다른 자신이 [미츠코가 말 한대로 이런 일을 계속한다 해도 허탕이네.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경찰이라는 권력에 의해 진실은 깊은 수렁에 파묻혀 빛을 볼 수 없다. 스가루의 오명을 벗기는 일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하고 있다.
스가루의 7주기가 올 때까지는.
(다음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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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복잡해지네요.
진실이 어떻게 가려질지 기대됩니다.
기대해도 좋을겁니다.
7주년의 숫자가 해결을 가지고 올까요? ^^ 기대합니당~~~^^* 감사해요~~~~^^*
7년쯤 지났으니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겠지요?
아휴! 권력의 성벽이 넘 단단하니 .... 뭐 실오라기라도 있어야 잡을텐데.
아들잃은 부정의 그 찐한피.그집념으로.... .밝혀지길 기대하며...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권력은 역시 무서운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