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김명인
누구에게나 뜻밖의 마주침은 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황급히 달려 나온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다 바닥에 쓰러졌으니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을 땐 칼 쓸 틈도 없었다
죽음은 돌출 행동에 가까웠다
떠돌아라, 지침을 받은 이후로
그는 집과 직장 사이만 서른 해를 떠돌았다
누구를 만나려고 유원지 근처를 서성거리긴 했으나
그때마다 비가 내려 양산을 펴볼 새도 없었다
지방공무원이었어도
쉰이 다 되도록 결혼을 미루었다
노후를 위해 마련한 집이며 착실한 연금을
구순의 노모가 탐했겠는가?
살면서 누구에게도 적폐가 된 적이 없었다
사로잡은 시간을 해체할 때
양손에 가득 묻히는 핏물,
아가미를 따고 창자를 들어내다 말고
피 칠갑인 채 둘러선 사람들을 올려다보면
저마다의 얼굴이 핏빛에 절여지고 있다
도대체 이런 비좁은 혈로
뚱뚱한 그에게 가당키나 한 길일까?
—《문학과 사회》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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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 1946년 경북 울진 출생. 1973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동두천』『머나먼 곳 스와니』『물 건너는 사람』『푸른 강아지와 놀다』『바닷가의 장례』『길의 침묵』『바다의 아코디언』『파문』『꽃차례』『여행자 나무』『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