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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5. 평화의 상징 집비둘기 이야기:
종묘 덕수궁에 모처럼 놀러 갔는데 집비둘기떼가 사람발자국 가까이서 날개를 퍼덕이며 흙먼지와 미세먼지를 사람에게 안겨주고 배설물이 옷과 머리 얼굴에 떨어져 놀이 기분 망쳤다는 사람도 물론 꿰 있을 것입니다.
집비둘기는 가옥·건물·고궁·교량· SOC 구조물이 서식 공간이기 때문에 배설물로 인한 토건 구조물 부식작용은 어김없이 가속 진행되어 적지 않는 예산을 들여 배설물 제거 및 페인트칠을 해야 합니다. 배설물이 건조되어 풍화에 의해 쇄분되고 분말 미세먼지가 되어 도시공기를 오염시켜 은연중에 시민의 건강과 토건 구조물의 안전을 해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비둘기 모이를 쥐어주며 먹이라고 가르치고 일부 시민들은 아예 쌀·과자·빵 등 모이를 길거리에 듬뿍 뿌립니다.
무의식 도시 동물 배설물 방치! 심지어 애완동물과 가축의 배설물은 건조 분말 비산되어 무시 못 할 정도의 미세먼지를 발생시킵니다.
1957년 부산 부두 수입 밀 집하장에 집비둘기떼가 가히 군락을 이루어 배설물과 사체(死體)가 수입 밀 더미 위에 쌓이기도 했습니다.
2008년 어느 날 환경부 야생 조수 담당 주사님께서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수입 밀더미위 비둘기 사체(死體) 현장 사진을 갖고 계십니까?」
「1957년 고 2 때 부산 부두 신문배달하면서 보았기 때문에 사진은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사진이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요」
「아무리 평화의 상징 집비둘기라고 하지만 익조(益鳥)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조지정(害鳥指定)을 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집비둘기는 환경부에서 2009년 6월 1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였습니다.
콩트 6. 호주 낙타 이야기:
호주는 1860년, 지금으로부터 154년전 교통수단으로 들여온 낙타가 철도가 놓이고 자동차가 늘어나 효용가치가 떨어진 낙타가(지금도 오지에서는 교통수단으로 사용하지만) 되어 풀어진 낙타가 1905년 120여만 마리로 늘어났다. 민가에 몰려와 가옥을 파괴하기도 하고, 물탱크, 수도 파이프, 휀스 등 시설물을 부수기도 한다.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말 잘 듣는 온순한 낙타가 야생이 되어 개체수가 불어나니 통제불능이 된 것이다. 헬리콥터로 낙타를 몰아 우리에 가두어 도살하여 애완동물사료로 쓰일 예정이다.
콩트 7. 호주 토끼 이야기:
1859년 호주 빅토리아주로 이민 온 영국인 토마스 오스틴 씨는 황무지를 개간해 목축을 시작했다. 그의 취미는 사냥. 생활 기반이 어느 정도 잡히자 영국 귀족의 사냥에 대한 향수가 떠올라 영국에 있는 사촌 형에게 회색 야생 토끼 24마리를 요청해 마당에서 키웠다. 도망친 몇 마리가 60년 후 100억 마리로 늘어나 심지어 땅굴을 파고 들어가 나무의 뿌리까지 갉아 먹어 대륙에 사막화를 일으켜 호주 정부의 퇴치 작전으로 완벽에 가까웠던 바이러스의 위력으로 퇴치율 99.8% 달성했으나 6년 후 바이러스를 무력화 시키는 변종이 등장하여 다시 번식하기 시작했다. 호주 정부는 1902년 3차에 걸쳐 장장 3,253km[약 8,300리(里)]의 대륙을 가로지르는 토끼 울타리(레빗 휀스: Rabbit Fance)를 설치했으나 18년 후 녹슬고 낡아버린 울타리를 뚫고 나와 다시 호주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참고로 만리장성 길이는 4,000 km, 한반도의 온성~목포 길이는 1,125km=2,865里, 한반도의 약 3.6배 길이 레빗 휀스). 광활한 호주 들판은 '완전 토끼 세상' 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골칫덩어리 토끼가 1929년 대공황으로 전 세계에 수천만명이 굶어 죽었을 때 호주는 토끼고기로 식량 걱정을 덜 수 있었다. 1941년 2차대전 때는 토끼 통조림으로 영연방군에 군량미를 조달했다. - 콩트 끝 -
3. 진묵 대사(震默大師)의 복(福)을 담는 마음가짐
진묵 대사(震默大師: 1562-1633: 이름은 일옥(一玉). 조선 인조 때의 승려로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으며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남기신 대 도인(大道人)이었다. 저서에《어록(語錄)》이 있다.
진목 대사에게는 누이 동생이 하나 있었고, 누이 동생이 낳은 외동 아들은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 조카가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복(福)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스님은 7월 칠석날 조카 내외를 찾아가 단단히 일러 주었다.
“얘들아, 오늘 밤 자정까지 일곱 개의 밥상을 차리도록 해라. 내 특별히 칠성님들을 모셔다가 복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마.”
진묵 스님이 신통력을 지닌 대 도인(大道人)임을 아는 조카는
“외삼촌이 잘 살게 해주리라” 확신하고 열심히 손님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마당에다 자리를 펴고 일곱 개의 밥상을 차렸다.
자정이 되자 진묵 스님이 일곱 분의 손님을 모시고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하나같이 거룩한 모습의 칠성님은 아니었다.
한 분은 째보요,
한 분은 곰보,
다음 분은 절름발이요,
그 다음 분은 곰배팔이요,
장님이요,
귀머거리들이었다.
거기에다 하나같이 눈가에는 눈곱이 잔뜩 붙어 있고 콧물이 줄줄 흘렀다.
“외삼촌(=외숙부: 外叔父)도 참! 어디서 저런 거지 같은 사람들만 데리고 왔다니? 쳇, 덕을 보기는 다 틀렸네”
조카 내외는 기분이 크게 상하여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쾅쾅 여닫고 바가지를 서로 부딪히고 깨면서 소란을 피웠다.
그러자 진묵 스님이 ‘어서 드십시오!’ 하고 권하는 데도 밥상 앞에 앉았던 칠성님들은 하나 둘 차례로 일어나 떠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칠성님까지 일어서려 하는데 진묵 스님이 다가가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철없고 박복한 조카입니다. 저를 봐서 많이 드십시오.”
일곱 번째 칠성은 진묵 스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1) 밥 한술을 뜨고,
2) 국 한 숟갈을 먹고,
3) 반찬 한 젓가락을 집어 드신 다음
떠나가고 말았다.
다 떠나가고 난 다음에 진묵 스님은 조카를 불러 호통을 쳤다.
“에잇, 이 시원치 않은 놈! 어찌 너는 하는 짓마다 그 모양이냐? 내가 너희를 위해 칠성님들을 청하였는데 손님들 앞에서 그런 패악을 부려 다 그냥 가시도록 만들어? 도무지 복 지을 인연조차 없다니 한심하구나.”
그리고 돌아서서 집을 나오다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래도 마지막 목성 대군이 세 숟갈을 잡수셨기 때문에 앞으로 3년은 잘 살 수 있을 게다.”
이튿날 조카는 장에 나갔다가 돼지 한 마리를 헐값에 사 왔는데, 이 돼지가 며칠 지나지 않아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았고, 몇 달이 지나자 집안에는 돼지가 가득하게 되었다.
또 돼지들을 팔아 암소를 샀는데, 그 암소가 송아지 두 마리를 한꺼번에 낳았다.
이렇게 하여 진묵 스님의 조카는 3년 동안 아주 부유하게 잘 살았다.
그런데 만 3년째 되는 날 돼지우리에서 불이 나더니, 불이 소 외양간으로 옮겨붙고, 다시 안채로 옮겨붙어, 모든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3년의 복이 다하자 다시 박복하기 그지없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다소(多少)는 전설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새겨볼 수 있다.
담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갖추어져 있고,
또 정성을 다하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복(福)이다.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0월 12일 덕산 김덕권(길호). 출처: 뉴스 프리존.
4. 개소리(Bullshit)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양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어린 양에게 호통을 쳤다.
“이 어린놈아! 내가 마실 물을 왜 흐리고 있느냐?”
어린 양은 자기가 물을 마시던 위치와 늑대가 선 곳을 찬찬히 살표 본 후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저는 하류에 있는데요. 어떻게 제가 늑대님이 마실 물을 흐릴 수 있나요?”
늑대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늑대는 아니었다.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어디서 봤다 했더니 작년에 날 욕하고 도망갔던 그 녀석이로구나!”
어린 양은 기가 막혔다.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 데요?”
또 할 말이 막힌 늑대는 잠시 고민하다가 외쳤다.
“그렇다면 네 형이 날 욕했구나.
그 대가로 널 잡아먹을 테니 원망하지 마라!”
프랑스의 우화 작가 장 드 라풍텐이 쓴 늑대와 어린 양의 이야기이다.
늑대는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폭력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어린 양은 논리적으로 대응하여 상대방에게 바른 설명을 한다.
하지만 늑대가 하는 말이 거짓임을 폭로해도 소용이 없다.
반성과 사과라고는 모르는 늑대는 또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계속 어린 양을 위협한다.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미국의 분석 철학자 래리 G.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늑대가 하는 말은 ‘개소리(Bullshit)’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다. 상대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도 윤리적으로 더 해롭다.
거짓말은 참과 거짓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전제로 하지만 ‘개소리’는 그조차도 없다.
5. 친구가 몇이나 되오?
정 진사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다. 한평생 살아오며 남의 가슴에 못 한 번 박은 적이 없고, 적선 쌓은 걸 펼쳐 놓으면 아마도 만경창파 같은 들판을 덮고도 남으리라.
그러다 보니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땅을 야금 야금 팔아치워 겨우 제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중농 집안이 되었다.
정 진사는 덕(德)만 쌓은 것이 아니라 재(才)도 빼어났다. 학문이 깊고 붓을 잡고 휘갈기는 휘호는 천하 명필이다.
고을 사또도 조정으로 보내는 서찰을 쓸 때는 이방을 보낼 정도였다.
정 진사네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과 혼기 찬 딸 둘은 허구한 날 밥상·술상을 차려 사랑방에 들락 날락 하는 게 일과이다.
어느 날 오랜만에 허법 스님이 찾아왔다.
잊을만하면 정 진사를 찾아와 고담준론(뜻이 높고 바르며 엄숙하고 날카로운 말)을 나누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허법 스님을 정진 사는 스승처럼 대한다.
그날도 사랑방엔 문사들이 가득 차 스님이 처마 끝 디딤돌에 앉아 기다리자 손님들이 눈치채고 우르르 몰려 나갔다.
허법 스님과 정 진사가 곡차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정 진사는 친구가 대체 몇이나 되오?” 스님이 묻자 정 진사는 천장을 보고 한참 생각하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얼추 일흔은 넘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혀를 껄껄 찼다.
“진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오.”
정 진사가 눈을 크게 뜨고 문을 활짝 열더니 말했다.
“스님! 한 눈 가득 펼쳐진 저 들판을 모두 남의 손에 넘기고 친구 일흔을 샀습니다.”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진정한 친구란 하나 아니면 둘, 많아야 셋, 그 이상이면 친구가 아닐세.”
두 사람은 밤새도록 곡차를 마시다가 삼경(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이 지나 고꾸라졌다.
정 진사가 눈을 떴을 때 스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부터 정 진사네 대문이 굳게 닫혔다.
집안에서는 심한 기침소리가 들리고 의원만 들락거려 글 친구들이 대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열흘이 가고 보름이 가도 진사네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때아닌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밤에 곡(哭) 소리가 터졌다.
진사가 지독한 고뿔(감기)을 이기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한 것이다.
빈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부인과 딸 둘이 상복을 입고 머리를 떨어뜨린 채 침통하게 빈소를 지켰다.
진사 생전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글 친구들은 낯짝도 안 보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문상을 와서 섪게 섪게 곡을 하더니 진사 부인을 살짝이 불러냈다. “부인, 상중(喪中)에 이런 말을 꺼내 송구스럽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그 친구는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미망인에게 건넸다.
봉투를 열어보니 차용증이다.
정 진사가 돈 백 냥을 빌리고 입동 전에 갚겠다는 내용으로 진사의 낙관까지 찍혀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문상객은 왕희지 족자 값 삼백 냥을 못 받았다며 지불각서를 디밀었다.
구일장을 치르는데 여드레 째가 되니 이런 저런 채권자들이 빈소를 가득 채웠다. “내 돈을 떼먹고선 출상(出喪)도 못해.”
“이 사람이 빚도 안 갚고 저승으로 줄행랑을 치면 어떡해.”
빈소에 죽치고 앉아 다그치는 글 친구들 면면은 모두 낯익었다.
그때 허법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빈소에 들어섰다.
미망인이 한 뭉치 쥐고 있는 빚 문서를 낚아챈 스님은 병풍을 향해 고함쳤다.
“정 진사! 일어나서 문전옥답을 던지고 산 잘난 당신 글 친구들에게 빚이나 갚으시오~.”
병풍 뒤에서 ‘삐거덕’ 관 뚜껑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정 진사가 걸어 나왔다.
빚쟁이 친구들은 혼비백산해 신도 신지 않은 채 도망쳤다.
정 진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법 스님은 빚 문서 뭉치를 들고 사또에게 찾아갔다.
이튿날부터 사또의 호출장을 받은 진사의 글 친구 빚쟁이들이 하나씩 벌벌 떨면서 동헌 뜰에 섰다.
“민초 씨는 정 진사에게 삼백 냥을 빌려줬다지?”
사또의 물음에 꿇어앉아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린 민초 씨는 울다시피 읍소했다.
"나리,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곤장 삼백 대를 맞을 텐가, 삼백 냥을 부의금으로 정진사 빈소에 낼 건가?”
이렇게 하여 정 진사는 글 친구들을 사느라 문전옥답에 넓은 들판을 다 날린 땅을 그 친구들을 다 버리고 다시 찾았다.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다.
5. <산등성이>
1. 가슴이 찡한 글 <산등성이 (편집)> 2. 풍경소리(전달 글) 3. 건강 요체(전달 글)-협화- https://blog.naver.com/ash856/222165236922
꽃가마 타고 시집와서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남편과 살다가 인명은 재천(在天)이라 먼저 보낸 배우자는 가슴에 간직하고, 몸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자식 손자 위해 살다가 가는 여자의 일생은 그지 없이 아름답습니다. 이 글은 일본 어느 음식점 벽에 붙어 있는 글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공감하시면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안승환 드림-
1. 가슴이 찡한 글
《산등성이》 [간략 편집]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 싸움을 하신다.
발단이야 어찌 됐던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으신다.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 한적한 마을 한 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 서겠노라고 큰소리치신다.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 열 예닐곱(열여섯 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집 나간다고 큰소리치시고는 저 산등성이 넘는 걸 못 봤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나도 잰 걸음으로 따라 걷는다. 천리를 갈듯 기세가 등등하다.
산등성이 고요히 잠든 숲의 정적과 새들의 혼곤한 잠 속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시더니 뒤돌아 집 쪽을 향해 소리치신다.
에이! 이 못난 할망구!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아버지는 내키지 않는 발 걸음으로 집으로 되돌아 오신다. 나는 지긋이 웃음을 머금고 아버지를 모시고 온다.
어머니가 켜 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넘지 못하실까!
아들은 묻는다.
아버지!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넘지 못하세요?
아버지가 답하신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에 전등불을 켜 놓으세요?
어머니는 답하신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것이 여자이니라.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시느냐고!
부모님이 답하신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댓글:
《우정기업 김정옥 여(女)부장》
요즘 젊은 부부들이 가슴이 찡한 글 읽고 정말 배워야 하겠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답장》 예. 감사합니다. 김정옥 부장님!
◆ 건강 요체 (받은 글)
🛑 不 老 水 🛑
(불노수=늙지 않는 물, 즉, 소금물)
꼬~옥 읽어 보세요.
소금을 충분히 먹을 수 없는 육지 동물들은 우리 인간과 갈라파고스 거북이를 제외하고는 100년을 사는 동물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금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바다 동물들은 천적에게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과반수가 100년은 기본으로 살고 200년 이상 사는 것들도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랍스터는 150년을 살고도 팔팔하므로 측정 불가이고,
🔸️흰 수염 고래는 200년까지 살고,
🔸️북극 고래는 220년까지 살고,
🔸️바다거북이는 300년까지
🔸️그린란드 상어는 512년까지 살고,
🔸️북방 조개는 507년을 살고도 팔팔하므로 측정불가이고
🔸️물 곰은 1550년까지 살고,
🔸️붉은 해파리는 영생불멸한다고 합니다.
이것들 말고도 바다에는 200년 이상 사는 동물들이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다 동물들이 이렇게 장수할 수 있는 데는 염도가 3%나 되는 짠 물과 짠 먹이를 먹으며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도 소금을 가장 많이 먹는 독일인과 일본인들이 세계 최 장수국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소금이 불노수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저는 6년째 하루에 6그램 이하로 먹으라는 소금을 30그램 이상을 먹고 있지만 혈압이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던 20여 가지에 달하던 크고 작은 질환들이 기적같이 다 사라졌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중략-
◆ 산불 뒤 울린 워낭소리... 노부부가 풀어준 소 20마리, 다 돌아왔다. 기사 원문 : http://naver.me/GWoxKSQH
“하룻밤 사이 집도 우사도 마카(모두) 새까맣게 탔지요. 지금 살아있는 게 용하고…”
2022년 3월 5일 밤 12시30분쯤 울진읍 정림2리 야산 인근에 사는 남계순(72)씨는 휴대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울진읍사무소 한 공무원이 “산불이 집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며 “빨리 대피하라”고 다급히 말했다.
남씨는 먼저 부인 송병자(71)씨를 황급히 깨웠다. 당시 이들 부부는 화마가 집과 우사를 덮칠 기세라 귀중품도 챙기지 못한 채 옷가지만 걸치고 나섰다. “삽작(대문의 경상도 사투리) 밖으로 나가려는데 우사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집과 우사가 산불에 휘감겨 불이 붙기 시작할 찰라, 남씨 부부는 소 20마리를 풀어줬다.
부인 송씨는 “나만 살자고 자식처럼 키운 소를 그냥 두고 갈순 없었다”며 “끈을 풀고 우사 문도 활짝 연 뒤 ‘야들아, 여기 있으면 죽는다. 빨리 나가거라’고 외쳤더니 소들도 눈치 챘는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소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화마를 피해 울진군이 마련한 대피소에 도착한 이들 부부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씨 부부는 “당시 공무원이 잠을 깨우지 않았으면 큰 화를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날이 밝자 남씨 부부는 자신의 집을 찾았다. 40여평 되는 2층 집은 폭격을 맞은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마당에 세워둔 트랙터도 불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 졸지에 집을 잃은 남씨 부부의 근심은 칠흑같은 한밤중에 풀어준 소들의 행방. 이들 부부는 시선은 우사 쪽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사료통 등 타다 남은 우사 터에는 소들이 돌아와 있었다. 일부 소들은 그을려 있었다. “하나, 둘, 셋…” 어미소 14마리에 송아지 6마리. 남씨 부부는 세고 또 세어봐도 누렁이들이 모두 살아 돌아온 사실을 확인했다.
부인 송씨는 “집도 우사도 모두 타 앞으로 살길도 막막하지만, 그래도 제집이라고 모두 살아 돌아온 소들이 기특했고 뛸 듯이 기뻤다”며 “이제 밤에는 대피소에서, 낮에는 소들에게 수시로 사료와 물을 공급하는 게 일과가 됐다”고 했다.
남편 남씨는 “소들도 화마에 크게 놀랐는지, 평소와 달리 사람을 보면 빤히 주시하거나 걷는 방향으로 따라 다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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