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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빈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hblb2002@naver.com
낡은 생의 순간에서 신화를 길어올리다
임효빈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우리의 커튼콜은 코끼리와 반반』이 출간되었다.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우리의 삶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이 잠깐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작품에 담아 왔다.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의 죽음’으로 표현한 등단작 「도서관의 도서관」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당대 문제를 내밀한 정서 의식으로 예각화했다”고 평가했던 것처럼, 시인은 생의 온기를 잃어 가는 존재들의 미열을 읽어내고 그것을 정성스럽게 세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담론의 언어로 완성하는 재능을 가졌다. 담백하고 정갈한 작품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단어들의 비밀스러운 결을 느낄 수 있고, 고목의 긴 생애를 품고 있는 나이테처럼 각각 시편들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근원적인 서사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임효빈 시인의 작품들은 낡은 대상들을 통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순수성을 재현하는 신화학자의 기록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 그려내는 것은 상상 속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본래 존재했으며 다시 삶 속으로 돌아와야 하는 진실한 역사의 한 조각이다.
시인은 이번에 펴내는 첫 시집에 대해 “시간여행자의 뒤척임에 대한 기록”이며 그것은 “코끼리를 (시간 속으로) 불러내는 커튼콜”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지루한 삶 너머의 신화 속에 신성한 자태로 인간들을 굽어보는 코끼리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실제로 만나는 코끼리들은 서커스 무대에서 학대받거나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무임금 노동을 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시인은 그런 코끼리를 신격화하지도 않고, 그의 상처를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녀는 “다음 생에서는 축생(丑生)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코끼리를 시라는 무대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코끼리가 스스로 말하고 춤추며 ‘인간’으로 ‘환생’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축생으로 전락한 우리 주변의 삶들, 그리고 시인 자신의 삶의 국면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인간처럼 독자들에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한 마리의 코끼리에게서 잃어버린 말들을 발견하는 일은 오래된 신화 속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할 하나의 단어를 길어올리는 시간여행자의 뒤척임과 같다. 그래서 시인은 “숱하게 반복해도 달리 바꾸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결말”을 직감하면서도 코끼리의 공연을 지켜보기 위해 시간여행 혹은 꿈꾸기로서의 시작(詩作)을 멈추지 않는다. 독자들은 시인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이 잃어버렸던 생의 가장 빛나는 몸짓을 코끼리의 춤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계몽’과 ‘갱신’의 사이에서 빛나는 생의 감각들
베란다 앞 흔들의자가 흔들리다 그녀가 일어서자 현기증을 일으킨다
한 점 바람 없이도 휘청이는 그녀의 이력을 의자가 되짚어 본다
삶을 헛디딜 때마다 늘어난 주름이 전부다 한 치씩 삶의 물살을 다지고 또 다졌다
어떤 수사나 장식으로도 진열할 수 없는 그녀의 주름들
물기 없이 보존된 그녀의 자서로 남아 한 페이지씩 넘겨본다
더는 조여지지 않는 괄약근으로 픽션의 잔해들을 쏟아내고 이젠 불임의 부표가 출렁이는 뱃머리가 안온한 그녀
식탁 위 백색의 알약들이 그녀의 손에 닿자 헛구역질하지만 흰 벽 프레임 속 한 여자가 등을 보이며 허물어진다
흔들리는 손끝으로 물컵을 내려놓자 한 권의 제본이 마무리된다
삐걱거리는 인터폰이 그녀의 마지막 기별을 전하고 그녀의 표제가 되고 싶은 흔들의자가
흔들린다
- 「흔들의자」 전문(본문 48~49쪽)
임효빈이 지니고 있는 ‘흔들림’의 테제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징후다. 그녀의 현기증은 삶을 헛디딜 때마다 늘어난 주름의 이력에서 기인한다. 견고하게 보존된 “주름”들, 탄력을 잃은 괄약근에서 쏟아지는 “픽션”들, 망망대해에서 출렁이는 “불임”의 부표들은 “백색의 알약들”과 “헛구역질”과 “흰 벽 프레임”에 가까스로 당도한다. 방향 상실의 감각으로 세월의 부침을 기록하고 있는 이 시에서 ‘흔들림’은 난파선처럼 침몰하고 있는 화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표다. 화자의 내면은 외부의 힘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표류해온 ‘흔들림’으로부터 발로한다. 시의 지형에 불시착하는 동안 부서지고 고장 나고 조각난 언어로써 자신의 생존 좌표를 타전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과 불모로서의 사랑 역시 ‘나’의 존속과 당위를 불안하고 위태롭게 한다. 이 위기는 흔들림이라는 운동 상태로 전이된다. 그녀는 흔들리는 한 권의 책이며 마침내 표제작으로 「흔들의자」를 쓴다. 흔들의자는 안정이나 평온 혹은 충족의 프레임 바깥에 선 시인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멈추면 안 되는데……
푸드 박스에서 새어나온 냄새처럼 마지막 웅얼거림이 네거리에 깔렸다
타워펠리스의 불빛이 남자의 얼굴을 덮치고
부름의 콜이 소나기처럼 지나가고
잠깐 생이 흔들렸는지 모른다
과속으로 달린 남자의 마흔이
잠시 멈췄다
- 「잠시 멈춤」 부분(본문 78~79쪽)
“잠깐 생이 흔들렸는지 모른다”(「잠시 멈춤」)라고 하는 찰나의 진동을 시인은 극명하게 감지한다. 생계를 위해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배달업 종사자의 교통사고를 사거리에서 목도하고 있는 이 시에서 한 사람의 존재는 “헬멧에 꿈이 가려진 얼굴 없는 남자”로, “아침마다 낯선 초상”으로, “과속으로 달린 남자의 마흔”으로 사물화된다. 인격이나 사고나 정서가 휘발되어 버리고 동선과 동작과 속도로만 자기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기계적인 생리를 찰나의 순간을 통해 헤아려볼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속도를 겨우 멈출 수 있었던 라이더. 스스로는 속도와 방향을 결정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의 톱니바퀴 속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달리거나 충돌하거나 하는 두 가지 항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끝에 가서야 “잠시 멈춤”의 상태에서 안식할 수 있었던 누군가의 삶이다.
점, 또 다른 점과 점, 그리고 점과 점과 점들 사이를 숱하게 오갔던 그는 점과 점을 이으면서 선으로 살고자 했다. 보이지 않는 점, 존재하지 않는 점, 거기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점들 가운데에서 그가 멈춘 자리가 구조 신호처럼 깜박인다. 눈꺼풀을 힘겹게 열고 닫듯이, 전화벨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듯이, 오토바이의 비상버튼이 점멸하듯이, 그는 쓰러지고 나서야 자신의 자리를 화이트 라인으로 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나고 있었다고, 내가 이곳에서 흔들렸다고, 내가 여기에 존재했다고, 사건 현장을 보존하는 동안에만 그는 잠시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음으로서만 삶을 증거할 수 있는 우리 생의 아이러니다.
이 시집은 실패하고 상처입고 무너지는 중이다. 언제나 예견할 수 없는 사태가 불시에 들이닥치는데 그것은 대개 ‘너’라는 진원지로부터 발생한 균열 때문이다. ‘너’로부터의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나’는 재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위기와 비극에 처하게 된다. 그 흔들림의 충격과 여진으로 시집에는 비명과 울음이 난무한다. 그러나 그토록 처절한 침몰과 쇠퇴와 몰락의 자세로부터 다시 부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흔들림을 계기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대면하는 반성의 시간일 것이다.
“곡선은 시작의 반성이다”(「곡선은 시작의 반성이다」)라는 문장은 어쩐지 ‘곡선의 시작은 반성이다’로 읽힌다. 직선의 도형에서는 먼 거리를 되돌아오거나 샛길로 빠져서 일을 그르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직선은 오로지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를 가장 효율적인 최단 거리로 이어주기 위한 이음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부흥과 쇠락이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동안 곡선은 스스로의 리듬을 깨닫고 주변부를 읽으며 속도보다 방향의 중요성을 깨달아 갈 것이다.
아이들이 신화를 그린다 아이들의 제국엔 흩뿌려진 옥상이 있고 아이들이 쓴 일기장엔 밀랍 날개가 녹아내리듯 주술이 풀리고 있다 잠언은 고백의 장에서만 이루어져 우리의 미안함이 지상의 안녕 속을 구른다 오래된 신화는 쉽게 다가오지만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때마다 어깨를 맞대고 쓰다 만 일기장을 꺼 거꾸로 들어 보인다 신들의 옅은 미소가 새소리에 놀라 흩어진다 신화 속 신들은 어느 별에도 살지 않아 아이들이 수많은 별들을 끌어안고 뛰어내린다 오래된 신화는 몇 번 죽어야 산다
아이들의 눈에 새로운 신들의 미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 「몇 번 죽어야 할 신화」 전문(본문 37쪽)
“아이들”은 신화를 그리고, “아이들의 제국”엔 옥상이 있고, “아이들이 쓴 일기장”엔 주술이 풀리고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무언가를 해제하고 해체하고 해지할 수 있는 존재다. 아이들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오래된 신화와 부재중인 신들의 별과 미안함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고해성사에 안녕을 고한다. 아이들은 교육과 전통의 계승을 거부하고 지상과 천상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질서와 체계의 약속을 전복한다. 어느 별에도 아이들을 위한 신은 살지 않기에 마침내 아이들은 수많은 별들을 끌어안고 뛰어내린다.
아이들의 투신은 비상으로, 오래된 신화는 새로운 역사로, 죽음은 탄생으로 읽히는 이 시의 서사는 죽음을 되풀이할수록 거듭나는 생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죽어야 사는 신화, 뛰어내려야 별이 되는 아이들, 눈에 보이지 않아야 미소 짓는 신, 이 역설의 패러다임은 임효빈이 계속해서 실험하는 ‘있음’과 ‘없음’의 작용 관계를 구도화하고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증거하는 구절들은 시집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타나토라자의 축제」에서는 “죽음으로의 여행은 축제가 끝난 뒤 시작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죽음은 삶으로 지속되고 슬픔은 기쁨으로 치환되며 끝이 아닌 시작으로 전회한다. 토라자 부족이 장례를 축제로 부르듯이 ‘있음’과 ‘없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면이면서도 같은 면을 맞대고 있는 것이다. 끝은 단지 끝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는 시작을 의미한다.
변치 않는 이름이 있을까요?
나를 맡겨도 될
단 한 번의 서명 같은
―「맡겨놓은 이름」 부분(본문 80쪽)
「맡겨놓은 이름」에서 시인은 “모른 체”하고 “말없이 사라지”는 부질없는 관계들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나는 이름”을, 누군가는 “죽어가는 이름”을 붙잡고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변치 않는 특별한 대상이고 그렇기에 특별한 언어로 호명할 수밖에 없는 고유한 이름이다. 그는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세계의 트랙을 배회하며 “변치 않는 이름이 있을까요?”라고 묻고 “나를 맡겨도 될 단 한 번의 서명 같은” 이름을 기도한다.
그는 훔치는 사람이다
거품이 황금빛이라는 남자
함께 누운 사람의 단잠에서 가장 따뜻한 돌 한 개를 집어오는 사람이다
일요일에 훔치는 건 고전이라며 클래식한 조언을 남발하는 사람
세비야의 이발사가 손님의 턱수염을 밀고 가죽 혁대에 면도날을 문지르며 휘파람을 불 때 그는 이발사의 휘파람을 훔쳐 오는 사람이다 턱수염을 내맡긴 손님의 나른함에 구둣발 자국을 찍는 사람이다 클래식하게
멈추면 나를 잃을 것 같아 훔친다는 은유적인 사람이다
누군가의 기도를 휘저어 스스로를 확인하는 간절한 사람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졸(卒)이라 천국을 훔쳐 온 사람
쓸쓸해져야 정신을 차린다는 속설을 믿을 때쯤
돌연, 짧은 소용돌이와 함께 그가 사라졌다
고전적이지 않은 월요일이었다
그의 천국은 이리저리 발길에 채이다 바람에 날아갔고
울음 같은 노랫소리를 들은 혹자가 있었다
―「빌런을 위한 세레나데」 전문(본문 92~93쪽)
시집 곳곳에는 많은 예술 원작에 대한 오마주와 예술적 변용이 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빌런을 위한 세레나데」)가 있고, 뭉크의 그림 “스크림”(「전용 스크린을 펼쳐 봐」)이 있고,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1919)를 바꾼 「당신의 밤은 6펜스」가 있다. 이 외에도 시인은 전방위 예술 장르를 두루 섭렵하며 많은 예술 작품이나 예술가들을 등장시킨다. 그것은 단지 원작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시인의 시 세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헤르만 헤세나 프리다 칼로의 위대한 예술성은 예술 작품의 완성도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드라마틱한 자신의 삶마저도 예술의 고취를 위해 남김없이 바쳤다는 데에 있다. 사랑하고 증오하고 방황하고 슬퍼했던 그 모든 사건들과 예술가의 치부까지도 그들의 예술 안에 복기되었고 마침내 그 순도 높은 고통의 단면들은 역설적으로 예술과 하나 되어 삶과 예술이 일치하는 경이로운 미장센이 된 것이다.
시인이 추앙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삶이 예술로 승화되는 경지에 감복하며 삶과 예술을 하나로 일치시키고자 하는 시인의 염원이 많은 예술을 오마주하게 하고 시적으로 변용하도록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시작법은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헌사, 예술지상주의 세계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슬픔을 익사시키려 했는데 이 나쁜 녀석들이 수영하는 법을 배워버렸어
파문이 있어야 고요한 것처럼
유리 파편 위로 깃털의 통점이 내려앉는다
완벽하게 낚여봐야 낚을 수 있다는 교본을 펼친다
―「깃털의 클리셰」 부분(본문 88~89쪽)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는 일기로 남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처럼 시인은 자기 삶을 연소시키는 심정으로 시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하여 “시를 견뎠다/앞선 시인이 옥, 패, 경을 그렸듯 규와 은과 K를 곁에 둔다/사위지 않을 빛과 빛/나를 견뎌야 할 시”(「시인의 말」)라고 썼을 것이다. 사위지 않을 예술에의 열망과 희망이 페이지마다 눈부시다. 자기 삶에 대한 계몽과 갱신의 시 쓰기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 책속으로
휙, 얼굴을 강타한 햄버거였어요 직구였거든요 변화구였다면 약간의 낌새를 챘을지도 몰라요 햄버거가 무안해하죠 속이 쏟아진 거죠 쏟아진 속으로 나와 햄버거는 붉은 거예요 바닥에 떨어진 얼굴은 누구의 얼굴일까요 지나가던 개가 피해 갑니다 나는 툭툭 털어요 질문은 사절입니다 속이 속이 아닌 나를 당신이 자꾸 물어요 착하게 물려서 답할 수가 없어요 내가 묻고 싶어요 당신은 어디서 굴러온 뼈인가요 통뼈라도 나는 알 바 아닙니다 그러니 굴러가세요 굴러가다 보면 사거리가 나와요 당신이라면 빨간 신호등도 푸른 신호등으로 보일 거예요 성격이니 그냥 가도 무방합니다 다만 당신 안의 개는 데려가세요 지나가는 개도 알 바 아니라고 하잖아요
-「나는 알 바 아니다」 전문(본문 17쪽)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은 성자처럼 산다지 삼백예순다섯 날 물개 기름 램프를 켜놓은 이글루는 성전이 된다지 그을음 없는 어깨와 어깨를 비벼 온기를 지핀다지 성전의 문을 열고 입김을 뱉어내면 난기류도 기침을 멈춘다지 자신들을 날것으로 여겨 어느 것도 익히지 않는다지 천천히 혹한의 뿔을 살피고 두 손을 모아 기다릴 뿐 벗겨질 껍질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지 물개 기름 램프는 꺼지지 않을 침묵만 피운다지 그림자를 태워 성전의 심장을 만든다지 한 사람의 그림자가 다 탈 때까지 생각의 재를 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다지 고민의 시간이 쌓여 이글루 안은 푸르게 희다지 어둠이 바다사자와 물개 피를 마시며 이글루를 지키다 그중 하나의 울음이 빙하를 적시면 떠난다지 이누이트족은
그들의 발자국에 성호를 긋는 램프를 켜놓고
-「램프 이야기」 전문(본문 24쪽)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열람실의 빈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일어나주길 바랐지만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으나 나의 슬픔은 부족했고 무수한 입이었으나 말 한마디 못했고 소리 내어 나를 읽을 수도 없었다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
당신은 이미 검은 표지를 넘겨 놓았고
반출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닳게 하여 손이 탄 만큼 하나의 평화가 타오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도 도서관 첫 목록 첫 페이지엔 당신의 이름이 꽂혀 있어
책의 완결을 위해 읽을 수 없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걸어가 문을 닫는다
도서관의 책상은 오래된 시계를 풀고
-「도서관의 도서관」 전문(본문 28~29쪽)
서커스 무대에서 코끼리가 발로 숫자를 말한다
당근을 주고 당연을 받아먹고 수가 떨어졌다면
점핑 점핑
세 번째 카드와 일곱 번째 카드가 섞이고 그사이 뭘 먹었니? 조명에 비친 아홉 번째 카드에서 수가 빠지고 채찍이 올라가고 빚이 떨어지고 동시에 멀어지는 수를 찾아 밟고 넘어설 수 없는 금을 밟고 금방 튀어나간 수많은 수
커튼은 내려주세요
커튼콜을 준비해 주세요
점핑 점핑
아침이면 울리는 알람처럼
넘겨도 밀려오는 숫자처럼
찾아오는 사람은 달라도 같은 시간에 울리는 예배당 종소리처럼
자라는 수
코끼리는 다리를, 사람은 숫자를 걸어
반올림의 반올림은 끝없는 수직이라는 끝을 열었다
사람과 코끼리가 반반?
-「코끼리는 마지막 카드를 보았을까」 전문(본문 64~65쪽)
죽음의 축제가 지상에서 가장 화려하다
그날을 위해 몰입된 생의 창문들은 일제히 붉은 재단을 향해 열어놓는다 오로지 죽음을 위해 부를 축적한다는 한결같은 삶이 즐비해서 지상의 발자국은 늙어갈수록 투명해진다
주술을 내린 새벽이 거두어 가는 새벽과 눈을 마주치면 너머의 문이 열리고 불타는 태양의 마지막 인사로 안식에 든다
노인은 영혼마저 금이 가지 않을 바위에 들어 바람으로 태어나고 아이는 오래된 나무 속으로 들어가 나무의 나무가 된다
걸터앉을 바람이 없고 소리를 낮출 소리가 없어 죽음으로의 여행은 축제가 끝난 뒤 시작된다
-「타나토라자의 축제」 전문(본문 74~75쪽)
차
례
시인의 말·5
1부
베를린 침대 자전거·15
나는 알 바 아니다·17
그대와의 키스를 세어 봐요·18
반면·20
초록 옥상·22
램프 이야기·24
어느 날 우편함·25
입문·26
도서관의 도서관·28
별별 이야기·30
그 여름·32
검은 여백·34
2부
몇 번 죽어야 할 신화·37
곡선은 시작의 반성이다·38
세 번째 알람·40
불임의 봄밤·42
기분이 같은 문은 없었어·44
슬쩍 훔쳐보는 건 틀린 걸까요·45
무인 삼각·46
흔들의자·48
블루문을 열다·50
나를 먼저 닦고 싶었지만·51
전용 스크린을 펼쳐 봐·52
몇 번 찔렀을 뿐인데·54
당신의 밤은 6펜스·55
3부
한 줌 모레가 흩어지고·59
나는 날마다 파혼한다·60
뒤척이는·62
코끼리는 마지막 카드를 보았을까·64
에어기타·66
뼈를 묻다·67
대관람차·68
끝에서 끝으로·70
대행하지 않습니다·72
타나토라자의 축제·74
덧·76
잠시 멈춤·78
맡겨놓은 이름·80
4부
수서·83
시소·84
여름이 지나고 있다·86
깃털의 클리셰·88
흔들리는 초록·90
빌런을 위한 세레나데·92
좌탈입망(坐脫立亡)·94
오리의 다비식·96
보신·98
봉길이 삼촌·100
텀블러·101
타오르는 시선들·102
해설 | 신수진(시인·문학평론가)
계몽과 갱신의 시 쓰기·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