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찬가(老後讚歌) /
유선진(여, 隨筆家, 1936년 서울출생 미동초등 경기여중·고,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
※"노년(老年)은 젊음보다 아름답다."
노후찬가(老後讚歌)를 읊어 봅니다.
우리집의 아침은 늦게 밝는다.
일흔여덟살의 영감(令監)과
일흔줄의 마눌이 사는 집,
출근(出勤)길이 바쁜 직장인(職場人)도
학교(學校)에 늦을 학생(學生)도 없으니
동창(東窓)의 햇살이
눈이 부실때까지
마음 놓고 잠에 취(醉)한다.
노년(老年)에 들면
초(初)저녁 잠이 많아
저절로
아침 형(型) 인간(人間)이 된다는데
우리 내외(內外)의 수면(睡眠) 형태(形態)는
여전(如前)히 젊은이 같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마누라는 쿨쿨 자지만
영감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러나
얼마든지 게을러도 괜찮은 나이
늦은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내게 찾아 온
노후(老後)를 예찬(禮讚)한다.
식사(食事) 준비도 간단(簡單)하다.
잡곡(雜穀) 밥에 된장국,
그리고 김치와 시골에서 가져온
푸성귀, 생선(生鮮) 한 토막이
전부(全部)다.
마눌은 영감에게
초라한(?) 밥상을 내밀며
자랑이나 하듯 말을 한다.
조식(粗食)이
건강식(健康食)인것 아시지요?
조악(組惡)한 음식(飮食)이라야
노후(老後)의 건강(健康)을
유지(維持)할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나에게는 조촐한 식단(食單)이
입맛에 맞는 일상(日常)의
식사(食事)로 속으론
고마워하면서도
아직 내색(內色)해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늙었다는 것은
정말 편한(便)한 것이구나.
식후(食後)의 커피처럼
황홀(恍惚)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집의
소파가 놓여 있는 동(東)쪽은
전면(全面)이 유리 창(窓)인데
찻잔을 들고 건너다 보면
동(東)쪽의 공원(公園) 야산(野山) 수목(樹木)이
마치 내집 마당처럼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가꾸는 수고(手苦) 없이
그 안에 가득한
꽃과 나무를 즐긴다.
소유(所有)하지 않으면서도
누릴 수 있는 많은것들,
분주(奔走)한 젊은이에겐
어림없는 일이다.
한유(閑遊)의 복(福)은
노후(老後)의 특권(特權)이다.
느긋하게 신문(新聞)을 본다.
주식사장(株式市場)에
며칠 사이 수십조(數十兆) 원에
이르는 자금(資金)이 날라갔다는
기사(記事)를 읽는다.
이익(利益)이 있는 곳이면
벌떼처럼 모이는 群像들,
TV를 본다.
권력(權力)을 잡기 위한
사투(死鬪)의 현장(現場),
거기에 온갖 거짓과
뻔뻔함이 등장(登場)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어느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꿈인 듯 허망(虛妄)하다.
다만 젊은 후손(後孫)들의
심사(心思)를 오염(汚染)시켜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區分)못하는 세상(世上)될가 두렵다.
일상(日常)에서
초연(超然)해 지는것이
‘늙음’의 은총(恩寵)인가.
만용(蠻勇)이 사라지고
과욕(過慾)이 씻기어 나가고..
인생(人生)에서 어느 시기(時期)를
제일 좋은 때라고
말할수 있을까,
뛰어 놀고 공부(工夫)만 하면
되는 어린 시절(時節)일까,
드높은 이상(理想)에
도전(挑戰)해 보는열정(熱情)의 청춘시절(靑春時節)일까,
아니면 가정(家庭)을
튼실히 이루고
사회(社會)의 중견(中堅)이 되는 장년(壯年) 시절(時節)인가.
도전(挑戰)하고 성취(成就)하고
인정(認定)받는 이런 시절(時節)은
가히 황금기(黃金期)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時節)에
나는 결코 행복(幸福)하지도
황금(黃金)을 맛보지도 못했다.
경쟁(競爭) 대열(隊列)에서 뒤떨어 지지 않으려 애쓰던
그 시절(時節),
삶의 본질(本質)은 할 일 없는
자(者)들의 주술(呪術)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렸기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았는가 보다.
그러면서
세월(歲月)의 영욕(榮辱) 속에 밀리고
밀려 추락(墜落)의 끝이라고
생각한 ‘노후(老後)’ 라는
땅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도착(到着)한
‘노년(老年)’은 축복(祝福)의 땅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빈손 때문이 아니라
얻으려는 욕망(慾望)이 걷힌
빈 마음으로
풍요(豊饒)의 고장이었고,
비로서 최선(最善)과 정도(正道)가 보이는
밝은 눈의 영토(領土)였다.
책임(責任)에서도
의무(義務)에서도
자유(自由)로운 나이
세상(世上)에 있으되
세상(世上)에 묶이지 않는
평화(平和)와 고요가
가득한 곳이었다.
영감 할멈 둘이 사니
우선(于先) 아늑하고 편안(便安)하다.
청소(淸掃)도 일주일(一週日)에 한두번 먼지 닦는 일만
거들어 주면 된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寢臺) 꼼지락
운동(運動)과 뒷동산
산보(散步)로 늙은 육신(肉身) 보전(保全)하며
모자라는 삶의 공부(工夫)도 보충(補充)한다.
심심하면 여행(旅行), 바둑도 하고
고향(故鄕) 시골을 별장(別莊) 삼아 찾아보는 여유(餘裕)도 챙겨본다.
술, 담배 즐기지만 아직 살아있음을 고마워 하면서.
얼마 있으면
결혼(結婚) 52 주년(周年)이 되는 해이다.
늙어 무력(無力)해진 영감과
나보다 훨씬 젊은 마누라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時節)
한번도 나누어 보지 않은
정(情)다운 눈빛으로
이 그러나 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두 손을 잡고
어린 나이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苦生)한 마누라를 응시(凝視)하며
우리 내외(內外)에게
살아 있을때 즐거운 노후(老後)를 허락(許諾)하신
우리들 생명(生命)의
주인(主人)과 우리를 살게 해 준
여러 인연(因緣)들께
진실(眞實)로 감사(感謝)의 마음을 드린다.
내일(來日)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 나이 오늘 지금을
즐겁게 사는게 천당(天堂)이고
극락(極樂)으로 여기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아있음을 고마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