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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재클럽(Y-Club) 원문보기 글쓴이: 카안
부채의 역사
우리나라의 전통부채는 일반적으로 둥근 모양의 방구부채(단선)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부채(접선)로 나누어진다. 방구부채는 기본적으로 둥근 모양을 하고 있지만 점차 선면의 모양이 다양해져서, 그 모양과 문양에 따라 각각 이름을 달리한다. 접부채는 부챗살과 부채 가장자리의 갓대를 결합하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휴대가 간편하여 쥘부채라고도 한다.
들고 다니는 예술품, 패션리더들의 필수 아이템
유럽의 부채는 르네상스 이후 여성들의 필수적인 액세서리로 발전하였다. 특히 16세기 후반에 중국으로부터 접부채가 다량으로 전래되면서 유럽 부채의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6세기 영국의 위대한 군주이자 패션 아이콘이기도 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부채 수집가로 유명했는데, 패션리더였던 그녀를 본받아 수많은 유럽 귀족 여성들이 다양한 부채를 통해 부와 권력을 과시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접부채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풍습이 유행했다. 유럽에서는 17∼18세기부터 부채를 화폭삼아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한 장면이나 성경 속 한 장면, 역사 속 사건을 그린 부채가 제작되었다. 19세기에 인쇄기술이 개발되면서, 인쇄를 이용한 석판화 부채가 대량생산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부채에 그럼을 그리는 풍습이 있었다.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화접선이라고 한다. 화접선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대목에 걸쳐 화접선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상들은 그림이 그려진 화접선을 통해 풍류를 즐기고, 자신의 미적 안목을 자랑하기도 했던 것이다.
부채로 전하는 사랑의 언어
예를 들어 부채를 오른쪽 뺨에 가져다 대면 ‘예’라는 뜻이고, 부채를 왼쪽 뺨에 가져다 대면 ‘아니오’ 라는 뜻이 된다. 17세기 런던과 파리에서는 이러한 부채 언어를 가르치는 아카데미도 있었다고 하니, 부채 언어가 귀부인들 사이에서는 필수 외국어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분을 상징하는 부채
성별과 신분에 대한 경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부채에조차 신분이 있었다. 방구부채는 평민과 부녀자들의 부채였고, 접부채는 일반적으로 양반 남성에게만 허락된 부채였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왕실의 직계 여성들과 기생들에게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접부채의 사용이 허락되었다. 기생들에게 있어서 부채는 개성을 뽐내는 장신구이자 공연을 위한 도구, 그리고 여성이라는 틀을 뛰어넘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기생들의 손에 쥐어진 화려한 부채 속엔, 신분제 사회의 틀 속에선 천한 신분에 불과했지만 자유를 꿈꾸던 조선시대의 기생들의 한과 이상이 그려져 있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자연의 불합리함을 커버하는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왔다. 언젠가는 에어컨보다도 더 효율적인 냉방기구가 발명될지도 모르고, 부채 같이 원시적인 냉방기구는 공룡처럼 멸종되어 버릴 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래도록 우리의 선조들이 애용해왔던 부채 속에는 시원한 부채바람 말고도 인류의 오래된 욕망과 애환에 관한 여러 가지 사연이 깃들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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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스크랩해 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청풍이 부채너머로 불어오는 듯 합니다...늘 건강하세요...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