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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펙스신발로 대표되는 양정모회장의 국제그룹 5공화국 당시 서열 7위의 그룹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국제그룹 왜 사라졌을까
85년 2.12총선이 끝나고 승승장구하던 국제그룹이 무리한 사업확장등 경영부실을 빌미로 전격해체되고 계열사들은 타회사로 인수합
병됐다. 이것이 국제그룹해체사건이다.
당시 국제그룹은 롯데보다 더 큰 기업이었다.
국제그룹은 양정모씨가 고무신 공장으로 출발해 1962년 국내최초로 미국에 신발을 수출하며 일군 회사이다. 이렇게 닦은 회사는 승승
장구,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분야에까지 진출하였으며 국제상사.(프로스펙스,아티스) 국제종합기계,국제통운,동서증권등 계열사
만 21개를 거느리는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한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로비나 혈연,학연등 연줄(대우실업의 김우중은 박정희가 가장 존경하던 은사의 아들, 박정희시절에 급성장.)
로 기업을 키우는게 정설이던 시대에 묵묵히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게 양정모였다. 그런 양정모에게 5공화국 출범은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 이끄는 새마을운동본부는 농촌 개발을 위한 '보조금 지급'을 명분으로 세워졌고, 새마을운동본부
의 자금은 기업들이 내는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당연히 기업들은 그룹 명성에 걸맞은 기부금을 냈고 여기에 반발하는 기업들
도 없었다. 그러나 양정모는 "난 누구의 도움 없이 고무신 팔아 여기까지 왔다. 누구에게 돈을 갖다 바치란 말이냐?"라며 새마을 운동
본부에 기부를 거부한다.
기업들이 피를 빨리는 또 하나의 유명무실한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전두환의 호를 따서 만든 '일해재단'이 그것이다.
일해재단은 아웅산 폭발테러 사건 유가족들의 위로금과 장학사업,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선수 지원,육성, 그리고 통일연구등을 위해
세워졌으며 발기인에 정주영,구자경,김우중,최종현,양정모등 재벌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설립기금을 모금하는데,자그마치 4,000만 달
러나 되는 큰돈이었다. 이 돈은 당연히 대기업들이 앞다퉈 전두환에게 갖다 바쳤지만 발기인에 이사로 참여한 양정모는 또 다시 기부
를 거부한다.
1984년 어느 겨울, 전두환은 직접 대기업 총수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총수들이 하나둘씩 청와대로 모이고 이윽고 주인공인 대
통령이 등장하여 상석에 앉았는데 그날따라 눈이 많이와 양정모회장의 차가 30분이 지체되었다 양정모 때문에 모임은 시작되지 못하
고 전두환의 얼굴은 붉그락푸르락해졌다 같은 자리에 있던 총수들은 바늘 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들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양정
모는 모임에 참석했다.
나한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고 싶던 전두환은 부실기업 정리한다는 명목 아래 재계서열 7위, 수출 실적 8억 달러
이상, 매출액 2조나 되는 대그룹을 공중분해해버렸다.
계열사 대부분은 전두환 정권에 호의적이었던 한일그룹에 넘어갔다. 한일합섬은 5공 정권 초반에 30대 그룹이었으나 5공 말기에는
2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기업 중에 하나가 바로 한일이었다. 정부는 한일에 세금을 깎아주고 부채를 탕감해주
었으며 파격적이 조건으로 신규 대출을 알선하는 등 혜택을 주었다. 이에 화답하듯이 한일그룹은 대기업 중 가장 많은 헌금을 납부해
전두환을 기쁘게 한다. 결국 IMF로 한일그룹은 부도가 났다. 그룹이 해체되던 85년 2월 21일. 임원들과의 마지막 회의에서 양정모국
제그룹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운명에 승복합시다.---
양정모회장의 가정은 전형적인 한국가정이었다. 딸딸딸...아들 이 아들이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자 양회장의 부인은
눈이 실명위기에 놓이고 부부금실이 유난히 좋던 양정모회장은 부인의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려했지만 양정모회장이 갖고있던
주식과 채권을 모두 내놓지 않으면 출국 못한다고해 모두 내놓고 출국 할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정권이 바뀐후 재판에서 이겼지만 이
미 공중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것이 국제그룹해체의 전말이고 표면에 드러난 진실이다 겉보기엔 그렇다 그럼 속내는 어떨까 속내를보자...
1984년 완공돼 국제그룹 사옥으로 쓰인 지하4층~지상28층짜리 국제빌딩.. 용산 일대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건물이기도하다. 그 당시
멋진 설계라 하여 나라에서 수여하는 건축가상까지 수상한 건물이지만 건물 앞면,배면,측면이 어딘지 구분되지 않은 설계를 시도하여
건물 가상학적으로 매우 좋지 못하다.
풍수에서는 전면,배면,측면이 확실히 구분이 되어야만 좋은 가상의 건물이다. 이런 줏대없는 건물에 상주해 사업을하면 직원들의 애
사심이 없어진다. 결국에는 건물의 소유주나 회사의 CEO의 존재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상실되는 운명에 처해진다. 상 받은 것이 무
색하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첫 소유주인 국제그룹은 1985년 재계에서 사라졌고, 후속타로 건물을 인수했던 한일그룹도 IFM 외환
위기 당시에 쓰러졌다. 소유했고 상주했던 기업마다 도산이라는 쓴맛을 본 '비운의 빌딩'으로 소문이 났다. 현재는 3년간의 리모델링
기간을 거쳐 2010년 5월부터는 LS용산타워로 이름이 변경되어 입지하고 있다.
롯데가 상속문제 그룹경영,비자금문제로 시끄럽다 왜 그럴까
'군계일학','독야청청하리라','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간만 못하리'가 롯데를 가리키는 말이다.
63빌딩 혼자 우뚝 솟았고 혼자 오는 바람 다 맞았고 결국 주인이 바뀌었다.
혼자 우뚝 높이솟은 건물은 근처에 보호해줄 의지처가 없어 혼자 오는 바람을 모두 맞아야한다.
건물이 높으면 바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바람을 받는다는 것은 좋지 않다.
늘 바람을 타듯 구설수가 따라다니고 때로는 사람을 상하게도 한다.
잠실은 바람이 많은 곳이다.
비유가 맞을진 모르겠지만 '한산대첩'을 보자 자랑스럽다.
누가 그런다 "진정한 영웅은 기억되는걸 바라지 않는다."고 예로 댜큐멘터리,교과서,영화 모두 이순신장군 혼자 한걸로 나오지만 참모
들이 건의하고 회의에 수많은논의를 거쳐 만들어진게 한산대첩의 시나리오지 '나를 따르라'식의 논리는 맞지가 않다 명량에서 '죽으
려고하는 자는 살 것이오...'는 장군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중국의 손자병법과 함께 양대병서로 꼽히는 오가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맥아더장군의 말은 그가 만든 말일까 참모들이 건의한 말일까
인천상륙작전도 맥아더혼자 '나를 따르라'가 아니다.
그의 책을 보면 워싱턴과 수많은 조율과,참모들과의 작전회의 토론 윗선의 조언들이 수없이 얽혀서 이루어낸 결론이지 영화나 교과서
에서처럼 혼자만의 공은 아니다.
다시 한산대첩으로 와 그날 이겼다 기쁘다 하지만 무기보충하고 손상된 부분 고쳐야하고 휴식이 절실하며 식량보충도 시급하다. 야구
선수도 한 경기후 며칠은 쉬어야한다. 그런데 이틀후 또 쳐들어온다. 그렇게 두세번은 이길순 있겠지만 그 다음엔 역부족이 된다 이길
수가 없다.
다시 잠실 제2롯데월드로 가보자 바람은 한 번 불고마는게 아니다. 계속분다.
주변에서 가장 높다. 건물이 높으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대는 성남의 남한산성까지 트여 바람이 크게 드는 곳이라 큰 건물
의 경우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까 '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간만 못하다'했다.
청량리에 맘모스백화점이 있었다. 심심하면 불난다. 그걸 롯데백화점에서 인수했다.
또 심심하면 불난다, 하지만 지금은 불 안난다 왜 그럴까
내가 집안에서 대문은 바라볼때 왼쪽에 석사자의 숫놈을 오른쪽엔 암놈이 있어야한다.
그래야 외부의 나쁜 기운은 막고 좋은 기운만 흡수한다.
국회의사당앞의 해태도 광화문앞의 해태도 어린이대공원후분에서 리틀엔젤스회관쪽을 보면 무서운 맹수가 좌우로 밖을 보고 있다.
다시 청량리로 가보자 만일 두마리를 세울 수 없으면 암놈만 세우라고 했다. 지금 롯데백화점앞에 암놈만 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풍수를 보려면 끝까지 봐야지 왜 보다말아 이런 분란을 일으킬까
유산상속의 잡음을 없애려면 노년에 서향으로 자고 동북쪽에 흰꽃을 놓으면 잡음이 없어진다하였다.
나는 구의헌혈의집에서 금장,은장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거기 없어졌다 왜일까
택지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히 적으면 그곳은 흉하다했다. 구의헌혈의집 언젠가부터 둥그렇게 간호사책상 둘레로 둥그렇
게 구획을 나눈게 원인이라 생각한다.
방에서 가장 명당은 문을 들어서서 대각선 가장 끝부분인데 그것도 안맞았다.
만약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쳐야되는 일들이나 사건들을 사람들이 먼저 알게된다면, 차마 인생의 항로를 즐겁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대문안은 더 한심하다.
세종로로 가기전에 덕수궁만 짚고가보자.
'대한문'이란 현판이 있다. 이건 '대한민국'할 때의 '대한'
이 아니라 고종황제를 도둑놈으로 비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말이다.
옛날부터 궁중에는 권력과 암투가 많아 문마다 화할화자를 넣었다.
성종의 형 월성대군의 저택인 덕수궁의 현판이름도 '인화문'으로 지었는데 고종황제께서 헤이그밀사를 보낸사건으로 고종황제는 조
선이란 나라를 훔치려는 큰도둑이란 뜻에서 큰대 한나라한을 썼다 왜 한나라 한을 썼냐면 거기다 사람인변을 붙이면 일본의 전설적인
도둑인 '한조'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걸 박물관으로 이전할 생각은 안하고 박정희대통령의 친필인 광화문현판 뗄 생각만 한다.
별은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한 법일까
세종로에 왜 이순신장군상이 있느냐면 원래 왕은 궁밖으로 나오는 법이 아니다.
궁은 장군이 지켜야한다 무식한 사람들이 세종로에 세종대왕상을 세우자하는 것이고 풍수의 대가인 이은상선생님께서 박정희대통령
에게 귀뜸하길 차들이 청와대를 향해 돌진하는 도로살을 막으려면 방패막이가 필요하다해 서울미대교수로 있는 조각가 김세중씨에게
만들게하고 이후락안기부장이 돈을 내서 만든게 세종로에 있는 충무공동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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