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악인의 형통함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즉 이제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다수를 거느린 왕으로서 당당하게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한 것입니다. 또 그의 옆에는 아히도벨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히도벨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이스라엘 제일의 모사꾼으로서 옛적에는 다윗이 옆에 두고 지혜를 묻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뛰어난 모사꾼이었다는 사실은 과거에 다윗이 옆에 두고 지혜를 물었던 자 라는 사실 외에도 실제로 그가 베푼 두번의 전략을 보면(16:21 ; 17:1-3)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을 거느렸을 뿐만 아니라 옆에는 이스라엘의 제일 가는 모사꾼까지 두었으니, 이제 천하가 그의 수중에 들어온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는 소수의 백성들만 이끌고 초라하게 도피의 길을 떠나야만 했던 다윗과는 완전히 대조가 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그렇면 이는 과연 하나님이 다윗을 저주하시고 압살롬을 축복하쎳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까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러한 압살롬의 형통과 강성함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압살롬의 형통과 강성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라면, 그의 그러한 상태는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형통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사실 압살롬의 일시적 형통과 강성함은 인본주의적 계교로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한 결과로서, 하나님이 압살롬의 악행을 잠시 묵인하셨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처럼 압살롬의 악행을 묵인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압살롬을 통해 범죄한 다윗을 징계하시고, 나아가서는 사악했던 압살롬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압살롬을 다윗을 징계하는 막대기로 사용하고 그 목적을 이룬 후에는 그 막대기를 꺾으시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압살롬을 형통하고 강성케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범죄한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기 위하여 바벨론을 강성케 하셨다가 그 목적을 이루신 후에는 페르시아를 일으켜 악한 바벨론을 심판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압살롬의 형통과 강성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의 형통이나 강성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아닙니다. 악인의 형통이나 강성함은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보여주는 징조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데도 우리에게는 어려움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 데 비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아니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되고 형통하는 것을 볼 때, 신앙적 회의를 느끼며 하나님에 대해 원망의 감정을 품기 쉽습니다. 옛날 하박국 선지자도 그러한 상황을 보면서 신앙적 회의를 품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악인의 형통함은 일시적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과, 의인은 잠시 고난을 당하나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고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악인의 형통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날, 악인들의 형통함을 꺾으심으로 그들로 더욱 낙심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자들이 잠시 권모 술수와 악한 책략을 통해 형통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로 낙심하지 맙시다. 또한 우리의 경건한 삶에 대해, 하나님의 상급이 더디게 나타날지라도 절대로 실망하지 맙시다. 불의한 자들은 곧 하나님의 바람에 겨처럼 날아갈 것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우리의 의로운 일들은 주안에서 결코 헛되지 아니하며 반드시 놀라운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고전 15:58).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