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테스 형’ 열풍 / 엄기철
가왕 나훈아가 최근에 선보인 ‘테스 형!’이란 노래가 대단한 열풍이다.
라디오를 틀면 흘러나오고 TV방송에서도 리메이크로 자주 불린다. 메신저들도 경쟁하듯 불러대며 페이스 북에 올리니 이제는 멜로디가 귀에 익어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소년 시절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누누이 들어왔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의 주인공인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형이라 칭하는 노래라서 의아하면서도 색다른 친근감으로 다가 온다.
노래를 부른 가수 나훈아가 직접 작사, 작곡을 했다는데 가사도 흥미롭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턱 빠지게 웃을 일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곧바로 다음 행에서 일깨워 준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는 대목이다. 왠지 짠해지는 마음이다. 슬픈 사연을 웃음 띤 얼굴로 잔잔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눈물샘을 촉발하는 이치와 똑같다. 거기다가 힘들어도 시간은 흐르고 부디 안 왔으면 하는 내일도 오게 되는 현실이 두렵다고 했다. 한마디로 어려움에 직면한 작금의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흘러가는 세월은 예외가 아니어서 경자(庚子)년 한 해도 막바지에 도달했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는 그런 한 해였다. 이런 감당키 어려운 시련은 현재진행형이니 가사에 나오듯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년이 두렵기까지 하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천 년 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철학자 테스 형에게 질문하듯 던진다.
‘먼저가본 저 세상 어떤 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 형!’
난감한 세상이다. 마스크 잘 쓰고, 개인위생 철저히 하고, 모임을 멈추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 출입을 삼가라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잘 지키고 있으면 백신이 개발되어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생업은 어쩌란 말인가? 문 닫는 가게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고 그나마 배달음식업만 성행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야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위기를 헤쳐 나가겠지만 소상인이라서 장사해야 하거나 나가서 땀 흘리면서 돈을 벌어야 먹고 사는 서민들은 극심한 고통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점포 세나 집세를 깎아줘도 다람쥐 눈물이지 뾰족한 대안이 없다. 그래서 세상이 왜 이러고, 왜 이렇게 힘드냐고 울부짖듯 소크라테스를 향해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윌리엄 맥닐 교수는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라는 책에서, ‘전염병은 개인은 물론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해 왔다. 질병으로 사회가 무너지고 가치관이 붕괴되고, 종래의 생활양식이 모두 박탈되어 의미를 잃어버렸다. 문명은 질병을 만들고, 질병은 문명을 만들어 왔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문명이 질병을 만들고, 질병이 문명을 만든다’ 는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다.
전염병의 역사를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을 괴롭혀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의학수준도 높아져 그때마다 백신이 개발되어 이제는 아예 자취를 감춘 전염병이 있다. 갓난아기 때 접종하는 천연두와 소아마비의 예가 그렇다. 질병이 문명을 만든 아주 적절한 예라 하겠다. 반면에 초 문명발달사회에 사는 현대에도 그 틈을 비집고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겨나니 아이러니하다.
‘테스 형!’이란 노래가 난감한 현실과 맞물려 크게 유행하고 있지만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는 기이한 세태가 힘들고 웃을 일이 별로 없어서 허무하다는 넋두리이다.
그래도 새봄이 온다고,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냥 피는 것이 아니라 백신개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 하늘 아래 펼쳐지는 새봄은 웃음꽃도 필 것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정겨운 모습으로 우리들을 맞이할 것이다.
2020년 12월 26일 Gallery 秋藝廊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