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다시 가다
이희근
20여 년 전이었다. 전주고등학교 교감으로 발령을 받고, 강당에서 전교생에게 부임인사를 한 후, 교무실에 들어와 막 자리에 앉으려 할 때였다. 한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고향이 순천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내 말에 실망이라도 한 듯 고개를 갸웃둥거리고, 낯이 익은데 어데서 뵈었는지 기억이 안 된다며 돌아섰다. 하지만 내 눈엔 분명히 초면이었다.
며칠 후 그 선생님이 다시 찾아왔다. 축구선수의 경력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혹시 순천에서 공을 찬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젊었을 때 매년 공을 차러 순천에 간 일이 있었다고 하자, 그는 자기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서 좋아했다. 축구선수로서의 내 위치까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 내가 육군본부축구팀(현 상무축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매년 11월 말에 경남 함양에서 영호남축구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각 소속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고향의 명예를 걸고 출전했다. 경상남·북도의 여러 시·군과 순천시가 그 대회에 참가했다. 나는 순천 출신 동료선수를 따라서 3년 동안 순천팀으로 출전한 일이 있었다.
그 경기는 축구경기시즌이 끝난 후에 열리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들이 거의 모두 참가할 수 있었다. 매년 11월이 되면 나는 그 대회를 위해서 순천에서 거의 한 달 동안 합숙훈련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 중학생이었던 선생님이 공을 차고 있던 나를 보았고, 30여 년이 지났는데도 내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순천중·고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도중에 뜻한 바가 있어 사범대학에 진학한 만학도가 되었다. 졸업 후 전북교육청 산하의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오랜 객지 생활 끝에 새로 부임한 교감을 보니 고향 선배처럼 낯이 익었다. 제일 먼저 찾아와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했지만, 동향인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몹시 서운했었다. 그래도 낙담하지는 않았단다. 공을 차고 있었던 지난날의 내 기억이 자기의 학창생활을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까맣게 잊었던 순천에 대한 나의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마중물이 되었다. 둘이는 시간을 내서 함께 순천에 가기로 다짐도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실기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한국미래문화회에서 순천지역으로 문학기행을 간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흔쾌히 참가신청을 했다. 반세기 만에 추억의 길을 밟기 위해서였다.
먼저 생태공원에 들러 모형 흑두루미와 눈을 맞춘 후 갈대숲으로 향했다. 흑두루미는커녕 청둥오리 한 마리도 구경할 수 없었다. 텅 빈 갯벌 속에는 철이 지나 볼품없는 갈대와 군데군데 보행로에 설치된 갯벌의 홍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도 갈대의 성장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베여진 곳에서 새로 돋아난 푸른 이파리들을 보고, 50여 년 전의 갈대밭을 연상할 수 있었다.
그땐 가을걷이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갈대밭에 모였다. 한가하게 갈대숲을 거닐며 가을 바람에 사운대는 갈대를 노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울타리, 돗자리, 또는 땔감 용으로 갈대를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임자가 따로 없고 먼저 베어가는 사람이 장땡이니 갈대밭은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생활양상이 바뀌면서 갈대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없어지자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다. 자연히 갈대밭은 생태계가 복원되고, 많은 철새들이 찾아들었다. 난데없이 흑두루미까지 나타나자 갈대밭을 찾는 관광객들이 떼를 이루었다.
옛날엔 코앞에 보이는 용산에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건강을 위해서 등산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 산에 오르기 위해선 갈대밭을 가로지르거나 먼 뚝길을 돌아야만 했다. 지금은 갈대밭과 함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갈대밭 사이사이에 설치해놓은 보행로 덕택으로 용산(龍山)에 오르기가 수월해졌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전망대에 올랐다. 멀리 벌교까지 펼쳐진 광활한 갯벌 속에서는 꼬막을 케던 옛 여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렀을 때 금석지감(今昔之感)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보이는 대로 돌맹이를 던지며 놀았던 못생긴 짱뚱어가 먹거리로 신분이 상승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밥에 손을 대기 전에 까먹도록 수복히 쌓여있던 꼬막 대신에, 찐 옥수수와 고구마가 한 토막씩 놓여 있었다. 삶은 통닭이 짱뚱어의 시녀로 출연하는 깜짝쇼를 벌였지만, 역시 탕의 맛은 이름 그대로였다.
그래도 양반 티를 내려고 이쑤시게를 물고 나오는데 화단에서 꽃을 피운 종려나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저기 가로수가 된 야자수가 순천은 이미 아열대성지역으로 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순천만정원은 ‘세계5대연안습지’중 하나인 순천만의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 순천의 도심 외곽을 꽃과 나무로 차단하고, 인공적으로 만든 생태조형물이다. 축구장 155개 크기의 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정원이다.
정원 앞의 차도와 인도 사이를 가득 메운 홍가시나무들이 이색적이었다. 연한 새 이파리들이 마치 붉게 핀 꽃처럼 보였다.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나무여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원 안에서는 코가 오뚝하고 눈이 큰 외국여인들이 이름도 생소한 꽃들 사이로 춤을 추면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호수 가운데 있는 동산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조형물이 아니었다. 쉽게 오를 수 있고, 추락의 염려가 없이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나선형으로 길이 나 있었다.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에야 보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서서히 오르내리도록 설계된 사색의 언덕이었다.
그 언덕을 서서히 내려오자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50여 년 전, 공을 차면서 뛰어다니던 운동장을 구경도 못한 아쉬움을 안은 채 버스에 올라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