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령 산채
곡우 절기 목요일이다. 봄꽃이 피어난 속도나 신록이 물드는 농도가 오월 초순으로 여겨도 될 정도다. 40여 년 내 초임지가 밀양 산내 얼음골이었다. 부임 첫해 곡우 전후 산골 학교 교정에 눈발이 날렸던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오늘 우리 지역 일기 예보는 낮 기온이 30도 근처까지 오른다기에 초여름 같을 날씨가 예상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빈 배낭을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현관을 나서면서 집에서 생성된 음식쓰레기를 아파트단지 뜰 수거함에 내렸다. 그간 우리 집에선 육류나 생선을 먹은 적 없어 코에 거슬릴 냄새가 없는 봉지였다. 아파트단지를 나서 버스 정류소로 나가니 어제 시내버스 파업은 풀려 정상 운행이 되고 있었다. 내가 가려는 곳은 마산역 근처인데 환승에서 제한 시간을 고려해 버스가 다가와도 타질 않고 그냥 멀뚱히 쳐다만 봤다.
다음 정류소까지 걸어가 이어서 오는 버스를 타려니 등굣길 학생과 회사원 출근 시간이 겹쳐 버스는 예정 시각보다 늦어졌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충혼탑 사거리와 홈플러스를 지나 창원대로로 들어서도 공단 출근 승객들은 몇몇 되었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마산역 근처에서 내려 서둘러 번개시장으로 향해 점심에 해당할 김밥을 마련 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갔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는 구산 갯가와 삼진 산골로 오가는 농어촌버스 출발지이기도 했다. 내가 열차를 이용할 때는 집에서 가까운 창원중앙역으로 나가지만 근교 갯가나 산자락을 누빌 때는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농어촌버스를 탄다. 지난겨울과 올봄에도 구산이나 삼진 방면으로 떠나는 버스를 여러 차례 환승했다. 이번엔 미산령을 넘어 함안 파수로 가려니 76번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정한 시각에 출발한 버스는 어시장과 댓거리를 둘러 밤밭고개를 넘어 진동 환승장으로 갔다. 이어 진북과 진전 면 소재지를 지나 양촌에서 일암과 대정을 거쳐 골옥방에 잠시 쉬었다가 종점 둔덕에 내릴 때는 혼자였다. 군북으로 넘는 오곡재로 오르다가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로 들어섰다. 맞은편 여항산 능선으로 신록은 녹음으로 짙어가는 산세가 우뚝했는데 서북산으로 이어졌다.
길섶엔 봄에 피어난 꽃들은 모두 저물어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했다. 나비나물과 등골나물 잎줄기가 보여 주섬주섬 뜯어 모았다. 임도를 따라 점차 해발고도를 높여 가니 눈에 띄는 야생화는 드물고 산나물이 발길을 멈추게 유혹했다. 이맘때 생채로도 고급 산나물이 되는 영아자가 여린 잎줄기로 자라 손길이 닿아주길 기다려 오롯이 접수했다. 개체가 드문 참나물도 몇 가닥 찾았다.
산나물이 되는 벌깨덩굴은 연보라 꽃이 피어나고 군락을 이룬 빗살서덜취도 몇 줌 보태니 연방 봉지가 불룩해 배낭에 담았다. 미산령 고갯마루로 올라 정자에서 김밥을 비우면서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골짜기 바깥을 바라봤다. 겹겹의 산이 끝난 곳이 광암 바다였고, 그 바깥은 거제섬이 에워싸 있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북향 비탈로 내려서니 영아자는 더 많았고 까실쑥부쟁이도 보였다.
다래나무 순은 쇠어 그냥 지나치고 길섶에는 간간이 참취도 보여 놓치지 않았다. 산기슭으로 내려가니 승용차를 몰아온 이들이 두벌 두릅과 참취를 뜯었는데 한 아낙은 길바닥 퍼질러 앉아 철이 지나는 쑥을 캐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배낭과 봉지를 가득 채운 영아자와 까실쑥부쟁이가 산나물인지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나는 어린 영아자 순은 다음에 뜯어가려고 남겨 놓기도 했다.
비비추와 콩제비 잎줄기도 몇 줌 땄더니 손에 든 봉지까지 묵직해졌다. 골짜기를 벗어나기 전 계곡으로 내려가 얼굴의 땀을 씻고 손을 짚고 엎디어 맑은 물을 그대로 들이켰더니 목마름이 가셨다. 임도가 끝난 곳은 미산마을이었다. 동구의 노거수 느티나무 아래서 군내버스가 들어오길 기다려 가야 읍내로 나가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 창원으로 향하니 길어진 해는 남아 있었다. 23.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