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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노예 (벧후2-1) 2023년 2월 10일(금요일)
찬양 : 나는 주님께 속한 자
본문 : 벧후1:1-2절 ☞ https://youtu.be/jkObzXPqe3g
튀르키에와 시리아에 닥친 엄청난 재난으로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다. 주님,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가 함께 이 아픔에 동참케 하소서.
오늘은 금요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성경 톺아보기> 색다른 이름처럼 성경 자체에 겸손한 마음으로 집중하며 색다른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한다.
오후에는 스콘 플렛폼 개발을 위한 회의가 진행된다. 모든 일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부터 베드로후서를 묵상한다. 베드로 후서는 베드로의 생애 끝날 무렵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유는 1장에 나오는 이런 표현들 때문이다.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 앎이라(1:14)>
일반적으로 베드로 사도가 바로의 박해기간(64-66년)에 순교했다고 알려졌으니 본서는 베드로가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런 유언적 편지의 내용 핵심이 거짓 선지자들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전해졌다는 것이다. 당시 교회가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얼마나 심각한 위협을 당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심각한 교회의 위기 상황과 더불어 죽음이 임박한 상황속에 전해진 편지라는 사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에 쓰여진 편지의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인사와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표현하고 있다.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먼저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종이란 표현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주의 종입니다.>라는 표현에 대해 누구도 나쁘게 생각하거나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 후서가 쓰여진 시대에 <종>이란 헬라어로 <둘로스>란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된 노예를 가리키는 말로 자기의 권리가 전혀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자신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오늘 아침 베드로후서 묵상을 시작하면서 나의 자리를 다시금 점검해 보게 된다. 나의 인생 후반전 삶의 최대 이슈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인식과 차이가 없다. 왜 내가 실패하는가? 그것은 내가 노예가 아니라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오늘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주님은 내게 질문하신다. 너는 나의 노예가 맞느냐고 말이다. 종이 주인을 움직이려고 애쓰니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만 벌어지는 것이다. 주님, 이 종이 후반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기 원합니다. 진정 노예로서 성령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종을 이끌어 주소서. 오늘도 온전히 성령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하소서.
두 번째로 베드로는 자신을 <사도>로 표현하고 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다. 그는 자신의 힘과 지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위임을 받아 행하는 대리인일 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고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을 깨우며, 하늘부흥을 이루어 다음세대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받아 보냄을 받은 자임을 고백한다.
그런 베드로는 자신이 순교의 잔을 마셔야 할 날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인식하며 최후의 메시지를 전하는 심정으로 이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에서 출발하고 그 근거안에 거해야 하는 것이다. 은혜와 평강이 그분을 알때에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오늘 주님은 내게 너는 누구냐? 물으시는 것 같다.
너는 오늘 나의 종이냐? 그리고 보냄을 받은 자로 그곳에 서 있느냐? 고 물으신다. 인생의 마지막에도 베드로는 이것을 붙들고 있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며 내게 큰 도전으로 들려지는 아침이다.
대단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대하게 된다. 입술로는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 이곳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진정 그러한가? 다시 물으시면 대답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많기 때문이다.
마음의 생각으로도, 입술로도 분명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이다. 그분의 노예이고, 그분의 보냄을 받아 사명을 위임받은 자이다. 나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자란 말이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자리에 내 뜻을 행사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아침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을 두렵게 여기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내가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나 보냄을 받은 사도가 아니라 고집이 센 사람으로 느끼고 있으니 주님께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러운지 ~ 주님 ~
이런 오해를 받을 때 참 화가 많이 난다. 나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고 변명을 나열하고 싶지만, 내가 많은 순간 성령을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뭐라 할 말도 없다. 그저 답답하고 죄송할 뿐이다.
나는 주님께 속한 자 되어 온전히 쓰임 받고 싶다. 나는 주님의 노예로 성령을 따라 사는 후반전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전반전 분명히 나는 종의 삶에 실패했고, 보냄을 받은 삶에 실패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주님을 끌고 다녔던 순간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 대가를 나는 혹독하게 치루었고 지금도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후반전 삶에는 그런 혹독한 세상 나라의 아픔이 없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오늘 베드로가 주지하듯 진실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이 놀라운 은혜와 평강의 삶이 되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하고 결단한다.
오늘 노예로, 사도로 살아가는 날 되기를 결단한다. 주님 도와주소서. 오늘도 저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당신의 사명을 받아 파송된 보냄을 받은 자임을 기억하며 그것을 붙들고 주님의 노예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내 뜻 내 의견을 소멸하여 주소서. 그러나 내가 주님의 노예이며, 보냄을 받은 자라고 교만치 않게 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처럼 존중하고 겸손히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종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스콘 플렛폼 출시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게하소서.
2. 라마나욧선교회가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춘 탈바꿈이 있어 작은교회와 후원자들과 긴밀한 라포가 형성되어 하나가 되게 하소서.
3. 목회사관학교 10기생 모집에 주님이 택하신 이들이 모이게 하소서.
4. 새롭게 시작되는 사역이 주님께 영광, 작은교회에 부흥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