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생존자 수기 공모전 우수작 " 장루 간호사 있나요"
제목 : 장루간호사 있나요?
세 명 중에 한 명이 암에 걸리는 세상에 살면서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나는 결코 암에는 안 걸릴듯 살았다.오만이 아니라 스스로 무수리학과 출신이라고 건강만은 자신하였지만 환갑을 살며시 넘기고 암이란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36년 동안 오직 아이들과 함께 숫자놀이에 빠져 살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무대에서 영혼을 불사르면서 마지막 죽음의 길도 무대이고 싶다는 배우의 말이 진정이였음을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2018년 11월 2기에서 3기 사이 같다는 직장암 선고를 받고 방배동 수학공부방을 단칼에 접고 암과의 전쟁에 들어갔다. 내 의지만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암환자라는 신분이다.
2019년 서울대에서 직장암수술을 받고 그야말로 똥주머니라는 장루를 배에 차고 6개월을 살아야했다.
'아...이러고도 사는구나.'
신기함을 떠나서 자신의 구질구질한 모습에 삶은 한없는 벼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자다가 장루가 새서 똥범벅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을 일반인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서울대에서 일주일만에 퇴원하고 집 가까운 희명 종합병원에 입원하였다.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임에도 그곳 간호사들은 장루환자는 거의 본 적이 없다면서 오직 한 명의 간호사님이 장루 환자를 케어 한 적이 있다하였다. 간호사들이 빙 둘러서서 나를 실습삼아 장루교체를 해 주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마치 광화문광장에 홀로 벌거벗고 있는 듯한 처참함이였다.
이것은 그저 감정의 비극에 시작일 뿐 대변 보는 것을 하루에 50번은 가다보니 똥꼬는 고추가루를 붙여 놓은 듯이 아프고 진통제를 달고 살게 되었다. 뒤돌아 생각하여보니 내가 그리 부끄러워하면서 한 달 동안 입원하여 케어 해 주던
간호사님이 불쑥 생각난다.
나를 실습삼아 여러 간호사들이 익혔으니 장루환자가 들어와도 익숙하게 돌봐줄 것을 생각하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부끄러움이 아니였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장루 교체를 잘 못하면 배에서 떨어지고 어느 날은 장루의 빨간 새살은
화가 난듯이 더욱 빨게지고 쓰라리고아파서 먹는 것조차 거부하게 되었다.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이는 간호사이니 어찌 위대하지 않으리..!
새벽에도 장루가 터져 쩔쩔매는 나에게 다정한 어머니같은 손길로 다가왔던 천사는 바로 핑크색 옷을 입은 간호사였다. 새벽녘 피곤할 시간임에도 아무리 직업정신이라 할지라도 찡그림없는 얼굴로 똥냄새나는 장루를 떼고 소독하고 붙여준다는 것은 직업이기 이전에 타고난 천사의 마음없이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는 늘어나는 암환자를 전담할 수 있는 종양간호사의 역활이 더욱 절실한 시대이다.장루 교체해 주던 간호사의 비번날에는 장루가 터질까 마음이 조마조마 하였다. 밥 먹다말고 비질비질 인민군 밀고 오듯이 빈변은 어른이기를 포기한 치매 환자 같았다.
집에서는 그래도 다행이지만 어쩌다 친구들과 외식할 때 그러노라면 친구들에게 말도 못하고 긍정의 여왕이란 내 별명조차도 무색하게 처참한 심정이였다. 행복전도사로 알려진 최윤희님이 지독한 아픔에 자살한 심정을 백 번 천 번 공감하면서 평생을 이리 산다면 여기서 제발 멈추기를 바래면서도 인간의 끈질긴 삶에 대한 욕망은 나를 시골밭으로 이끌었다.
맨발 걷기가 그리 좋다하니 밭에서 신을 벗고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 똥꼬가 아프지 말기를 기도하면서 호미자루 한 번 잡지 않던 나는 4년차 농부가 되었다.36년 동안 아이들 수업하면서 감기 몸살로도 수업을 못한 적이 없었는데 마른 하늘에 날 벼락이 바로 나에게 떨어진 것이다.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하였다고 천형 같은 암이란 말인가?
내가 하필이면 암환자란 말인가!
친구들에게 조차 말하기 싫었다.
주위 암환자들의 특징은 너무 착하다는 것이다. 배려하다보니 좀 더 참고 남의 처지를 공감하다보니 내 것 조차도 챙기지 못하는 성격이 대체적으로 많았다.옛 말에 욕을 먹어야 오래산다는 말은 아마도 이리하여 생겼나보다.
스트레스.
몸은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듯 하다.마음에 병이 들면 몸도 따라 병이 든다. 친정어머님이 결혼식 하는 날까지 걱정하시던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8남매의 장남에게 시집가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란 것을 나는 사랑에 취해서 몰랐던 것이다.
곰탱이같은 고지식함과 성실함은 고부사이에 무용지물일 뿐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나를 다독이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명절증후군이란 귀신같은 병이 있다.명절 15일전부터 온 몸이 몽둥이로 얻어 맞은 듯이 아프다. 신기한 것이 아이들 수업하는 시간에는 한 곳도 아프지 않고 밤에 잘려고 누우면 그 때부터 아픈 것이다. 유독히도 아이들 수업하는 것이
그리도 행복하였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명절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에서 부터 씻은 듯이 아프지 않은 것이다. 차멀미도 안하는 체질인데 명절 내려가는 차 안에서 수없이 토하고 머리 아프고 꾀병이 때로 없으니 남편은 이민을 가지는 말까지 나왔다.그렇게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살았는데 암이 안 걸리겠는가?
이제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똥꼬도 많이 아프지 않지만 어디 외출할 일이 있으면 저녁부터 굶고 다닌다.지난 5월 13일 조용필 55주년 콘서트가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있었다.자다가도 조용필하면 벌떡 일어나는 끝없는 펜사랑은 저녁부터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까지 쫄쫄 굶고 물만 마셔도 배고프지 않은 행복이였다.
주경기장을 꽉 메운 그 함성과 떼창은 암조차도 도망가게 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올인해 보는 것이 암치료의
좋은 방법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돌파리 생각을 하여본다.즐겁게 매달리는 것은 통증도 잊게하는 마법이 있다.
아프리카 코끼리들이 상아가 없이 태어난다는 기사를 보았다.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은 밀렵꾼들이 상아를 얻기 위한 것을 알게 되니 상아가 없어져라 하는 주문을 외운 듯 하다는 것이다. 동물조차도 이리 현명하게 자신들을 지키는데 우리 인간은 어찌보면 너무 똑똑해서 불행하다.
고정관념에 박혀버린 마음이 암은 완치가 어렵다하면 몸은 따라서 그래 재발도 잘 되고 완치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
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5년의 암환자 졸업장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덤으로 받은 남은 생은 이제 나를 위해 살고 싶다.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살아온 그 지독한 전쟁같은 삶에서 최소한 대한민국의 금수강산을 둘러보는 사치를 부리고 싶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기관사가 없는 경전철 맨 앞에 타고 통유리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파도가 하얗게 밀려오는 경포대
해변을 맨발로 뛰어보고 싶다.
누군가
암은 축복이다라고 했다. 그 말에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욕을 해 주고 싶었는데 어찌보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36년 동안 주말도 없이 수업만 하던 나에게 이제 그만 쉬라고 신이 극약 처방을 했다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암 선고가 없었으면 내 동생말대로 나는 돈 버는 기계일 뿐으로 내 삶은 없었을 것이다. 금식도 좋은 치료법이라는데 생수병 달랑 달랑 옆구리 차고 어디라도 유람해보자.
일체유심조라고 하지 않는가!
왜 내가 암환자인가 슬퍼하지 말고 긍정의 물꼬로 살아보련다.
아...뷰티플 월드
세상은 아름답다.
너도 아름답다.
나도 아름답다.
202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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