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근처에서
사월 넷째 토요일은 평소 즐겨 가는 자연학교는 등교하지 못할 여건이었다. 매년 사월 마지막 일요일에 개최되는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한 주 당겨 마산에서 있어서였다. 내가 졸업한 모교는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되어 읍내 학교와 통합된 지 오래다. 그 새 친구들은 해마다 봄이면 수련원으로 바뀐 모교에서 전체 동기들이 모여 안부를 나누고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하루를 보냈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초등 동기 모임을 못하다가 지난해 가을 내장산으로 당일치기 소풍을 다녀왔다. 이후 올해는 4년 만에 처음 전체 동기들이 만나게 되었다. 마침 마산에서 사는 여자 동기가 사위를 보는 날이라 하객이 되어 나가는 날과 겹쳤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 사는 꽃대감과 같이 길을 나섰더니 근처 주택에 사는 여자 동기가 차를 몰아와 예식장으로 갔다.
어시장 근처 호텔에서 열린 초등 동기 자제 예식장에서 혼주를 비롯 여러 동기들을 만나 반가웠다. 우리는 그곳 뷔페가 아닌 댓거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친구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4년 만에 전체 동기 모임을 가졌다. 60여 명 회원 가운에 절반 정도가 모였는데 고향 의령에서 네댓 명이 왔고 서울에서도 여자 동기 2명이 참석하고 울산과 부산에서도 온 남자 동기가 있었다.
회장단 임기가 2년인데 이번은 코로나로 모임을 갖지 못해 본인 뜻과 무관하게 4년이나 맡아 고생했다. 그새 고인이 된 회원이 3명이나 되어 우리는 국민의례 때 순국선열을 기리듯 저세상으로 떠난 친구들에게 묵념을 먼저 했다. 이후 회칙 조항 경조사비 지출 건을 놓고 의견 교환을 나누다 수정 통과시켰다. 소임을 다한 임원진이 교체되어 새로운 친구들이 맡아주어 고마웠다.
친구가 운영하는 고깃집은 층수를 달리한 공간이 넓어 아래층에 준비된 식사 자리로 내려갔다. 평소 모임 때는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이번은 쇠고기로 넉넉한 오찬을 즐겼다. 운전대를 잡은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각자 형편 따라 반주를 곁들였다. 나는 친구들에게 잔을 권하기도 했지만 여러 잔 받았다. 최근 단체 카톡에 내가 올리는 풍경 사진과 시조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고향 친구들은 의령에서 임진왜란 곽재우의 의병 봉기를 기리는 홍의장군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새로운 임원진에게 해마다 가을에 가는 소풍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친구도 있었다. 식당에서 두어 시간 보내는 말미에 다음 주말 사위를 보는 친구가 하객 답례품으로 우산을 안고 나타났다. 나는 집안 행사로 예식장에 나갈 여건이 못 되어 미리 축하 인사를 건네야 했다.
이후 자리를 함께 했던 친구들은 헤어지기 아쉬워 해가 저물기 전 대낮임에도 노래방으로 가려는 얘기가 오갔다. 나는 그 눈치를 미리 차리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식당 바깥으로 나와 돝섬이 바라보인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아침에 함께 길을 나섰던 꽃대감도 연락이 닿아 나를 찾아와 합류해 걸었다. 산책로 어디쯤에는 청중이 다수 모인 무학산 가요제가 열리고 있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현장에는 최근 세워진 동상이 있어 숙연해졌다. 해안로를 계속 걸었더니 오전에 예식이 열렸던 그 호텔에 닿았다. 예식 호텔 가까이 백화점 근처에 내보다 한 살 위 재종 형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갔다. 내가 사는 게 뭐가 바빠선지 그 형을 찾아갈 여건이 못 되어 많이 미안했다. 꽃대감과 차수를 변경한 연장전을 펼쳤다.
형수가 차려낸 수육을 안주 삼아 주인장 재종 형과 술을 채운 잔을 거듭 비웠다. 나는 이미 낮부터 맑은 술을 제법 마셔 취기가 올라 아까 먼저 헤어진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도 받지 않고 꽃대감에게 건네주었다. 아마 그 친구는 댓거리서 2차 노래방까지 가서 여흥을 즐겼는지도 몰랐다. 평소는 해가 저물기 전 귀가가 일쑤였는데 어시장 재종 형 식당을 나오니 어두웠다. 23.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