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깊고 짙은 여름
박 경 희
1 족대로 송사리 몇마리 건져 올려 고무신에 넣었다 송사리가 내내 발냄새 맡으며 뱅뱅 돌았다 산그늘 나눠 가진 참나무는 물속에서 흩날렸다 간간이 옆집 개가 킁킁거리며 내 발냄새를 맡았고 가다가 다시 와서 또 맡았다 참나무 그림자 속 발가락이 꼬물거렸다 2 더없이 깊고 짙은 여름밤 사고 치고 다니던 엄나무집 아저씨가 야반도주를 했다 하루 뒤 엄나무집 아줌마가 콩나물 다듬다가 어디론가 슬쩍 사라졌다 세간은 뒤집어졌고 쥐가 이불 속에 새끼를 낳았다 3 어둠을 짚고 가는 별이 까마득해서 솟을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던졌다 돌멩이 맞은 별이 까딱거리다가 뒤꼍 조릿대 숲으로 떨어졌다 달려가보니 짚 앞 개울가 미나리아재비 잎에 앉은 별이 반짝거렸다 4 반딧불이는 서둘러 간 발자국을 비추고 그림자 따라간 달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건너 은행나무만 스러져가는 별을 쓰다듬었다
- 시집〈미나리아재비〉창비 -
미나리아재비 - 예스24
“달려가보니 집 앞 개울가미나리아재비 잎에 앉은 별이 반짝거렸다”무한히 연결되고 조응하는 생명의 흐름 속에서아픔과 슬픔을 그러안는 애틋하고 진실한 목소리고향을 배경으로 한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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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시집 〈미나리아재비〉 창비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