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春節・설) 대목을 앞두고 중국 영화관에서 ‘아바타’가 내려지고 ‘공자(孔子)’가 오르자 해석이 구구하다. 중국 전통 문화의 상징인 공자를 내세워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항하려는 게 아니냐는 등. 착각이다. 영화 ‘공자’의 제작 동기는 한국이 부여했다.
감독 후메이(胡玫)가 ‘공자’를 기획한 건 2005년 한국에서 ‘공자 조상은 한국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데 자극받은 결과다. “공자 전기만큼은 중국인이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역사상 최초라는 ‘공자’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는 무얼까.
공자 역(役)의 저우룬파(周潤發)는 “성인(聖人)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를 그린다”고 했지만 제목 자체가 ‘성인’ 공자를 지향하고 있다. ‘공자’의 ‘자(子)’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위대한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존칭의 접미사이기 때문이다. 노자(老子), 맹자(孟子) 등.
‘인간’ 공자를 그리려 했다면 제목에 본명이나 자(字)를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공자의 본명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다. ‘구’는 공자의 머리 위 한 부분이 구릉처럼 솟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부모가 니구산(尼丘山)에서 기도해 공자를 얻은 까닭이라고도 한다.
‘자(字)’는 주(周)나라 때 귀족 남자가 20세에 이르러 관례를 치름과 동시에 갖게 되는 이름이다. 명・청 시기엔 서민들도 자를 가졌다. 흔히 윗사람에겐 본명을 쓰지만 동년배 이하 사람들에겐 자를 사용했다. ‘중니’의 ‘중(仲)’은 ‘둘째’라는 뜻이다. 공자에겐 이복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尼)’는 ‘니구산’에서 유래한다.
명(名)과 자(字)는 관련성을 갖는 게 많다. 공자의 수제자 안회(顔回)의 자는 ‘연(淵)’이다. 본명 ‘회’가 ‘돌다’, 자인 ‘연’은 ‘빙빙 도는 물’이라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도 마찬가지다. 본명 ‘량’이 ‘밝다’, 자인 ‘공명(孔明)’은 ‘매우 밝다’는 의미다. 명과 자의 뜻을 반대로 쓴 경우도 있다. 당(唐)대의 문장가 한유(韓愈)의 자는 ‘퇴지(退之)’인데 ‘유’에는 ‘앞서다’는 의미가, ‘퇴지’엔 ‘물러서게 한다’는 뜻이 담겼다.
영화 ‘공자’가 한국에선 오늘 개봉한다. 성인 ‘공자’를 보게 될지, 아니면 인간 ‘공구’나 ‘중니’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왕이 어느 날 장자(莊子)에게 벼슬자리를 제안했다. 이에 장자는 “초나라에는 죽은 지 3000년이나 되는 신령한 거북을 상자에 담아 사당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들었소. 그 거북은 죽어 뼈를 남기고 귀하게 되길 바랐겠소? 아니면 살아 진흙탕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겠소(曳尾塗中, 예미도중)?”라며 거절했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 ‘거북이 꼬리(龜曳尾)’ 고사는 벼슬함으로써 속박되기보다는 가난해도 자유로운 생활을 권한다.
“신령한 거북이 오래 산다 해도, 반드시 죽는 날이 있고(神龜雖壽,猶有竟時),
하늘 나는 용이 구름에 올라타도, 끝내 먼지로 돌아간다(騰蛇乘霧,終爲土灰).
늙은 천리마가 마구간에 있어도, 뜻은 천리 밖에 있구나(老驥伏櫪,志在千里),
선비는 늙어도, 웅장한 포부는 가시지 않네(烈士暮年,壯心不已).”
만년의 조조(曹操)가 지은 시 ‘귀수수(龜雖壽)’에도 거북이 등장한다. 비록 나이를 먹었어도 진취적 기상이 젊은이 못지않음을 뽐냈다. 장수의 대명사 거북은 예부터 기린・봉황・용과 함께 대표적인 영물이다. 옛 사람들은 앞날이 궁금하면 거북등을 불로 지져 갈라진 금으로 점을 쳤다(龜卜). 거북은 길흉을 점치고 거울은 미추(美醜)를 구별해 준다 하여 본받을 만한 모범을 귀감(龜鑑)이라 불렀다.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甲骨文)도 거북등(龜甲)에서 나왔다.
‘통일이 오래되면 갈라지고, 분열이 오래되면 통합된다(合久必分, 分久必合)’고 했던가. 최근 국내외 도처에서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균열(龜裂)이 빈번하다.
라틴아메리카 단층선 균열로 아이티 대지진이 발생했다. 세종시 문제와 임박한 지방선거로 정치권은 균열 조짐을 보인다. 얼마 전 내시경 검사를 받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도 균열이 발견됐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구글 해킹, 대만 무기 판매, 달라이 라마 면담, 위안화 절상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미・중 협력 노선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차이메리카(中美國)’란 용어를 만든 니알 퍼거슨 교수의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설 것”이라는 전망이 예사롭지 않다. 거북점을 치면 답을 알려나.
[한자로 보는 세상] 朋友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8 오전 2:33:39
친구를 일컫는 단어가 붕우(朋友)다. 현재의 용례로 볼 때 두 글자는 차이가 없지만, 원래는 조금 다르다. 붕(朋)은 동문(同門)에서 공부를 함께 한 벗을 말했다. 우(友)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 즉 동지(同志)였다.
친구를 뜻하는 비슷한 글자로는 아(雅)와 교(交)도 있다. 전자는 ‘평소’라는 뜻에서 우정이라는 의미로 진화했다. ‘일일지아(一日之雅)’라고 하면 ‘한 번 만난 사이’가 된다. 교는 쓰임새가 제법 많다. 고교(故交), 구교(舊交) 등으로 친구를 표시한다. 새로 사귄 친구는 신교(新交)다.
사이가 아주 가까운 벗은 지우(至友), 지교(至交)다. 뜻과 기질 등이 서로 통해 막역한 사이로 발전하면 집우(執友)가 된다. 아버지의 친구는 부집(父執)으로 불렀다. 벗이기는 하지만 경외감을 품게 할 정도로 학식과 도덕적 수준이 뛰어난 친구는 외우(畏友)다. 나의 잘못을 엄격하게 지적해 고치게끔 하는 고마운 친구는 쟁우(諍友)다.
어렸을 적 친구가 오래간다고 했다. 그 친구는 총각교(總角交)다. 총각 시절에 맺은 친구다. 죽마고우(竹馬故友)도 잘 알려진 말이다. 대나무 말, 죽마 자체가 어렸을 적 친구를 뜻한다.
나이가 크게 차이가 나면서도 친구로 맺어지면 망년교(忘年交)다. 금석교(金石交)는 쇠와 돌처럼 변하지 않는 우정을 지칭한다. 그런 친구는 석우(石友), 석교(石交)라고 불렀다. 어려웠을 적 사귄 친구는 포의교(布衣交), 아주 가까워진 사이는 막역교(莫逆交), 목을 내놓고라도 상대를 지켜주는 우정은 문경교(刎頸交)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날카로움은 쇠를 끊고, 마음이 한데 어울려 내놓는 그 말의 향기는 난초와 같다’는 말은 유명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금란지교(金蘭之交)다. 달리 난교(蘭交)라고도 부른다.
전체적으로는 도움 주는 친구와 손해를 끼치는 친구가 있다. 앞의 친구는 익우(益友), 뒤는 손우(損友)다. 겉으로는 함께 어울리고 있지만 마음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사이는 면우(面友), 면붕(面朋)이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까지 얼굴을 붉히며 싸워대는 한나라당 친이(親李), 친박(親朴)은 손우 아니면 면붕일 것이다. 어쩌면 근본적으로 서로 벗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한자로 보는 세상] 天時・地利・人和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4 오전 1:32:44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맹자 가 세종시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정운찬 총리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까. 맹자는 아마도 ‘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의 지혜를 거론할 듯하다. ‘맹자・공손축하(孟子・公孫丑下)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전을 토대로 그들의 가상 대화를 엮어본다.
정 총리 : 세종시 지역 주민의 반발이 심하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어찌하오리까?
맹자 : 농사 일에 적절한 시기(農機)가 있듯, 전쟁에서의 공격도 가장 적합한 때가 있다. 이를 ‘천시(天時)’라 한다. 지금이 과연 세종시 수정안 처리의 ‘천시’라고 보는가?
정 총리 : 그렇습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후손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을 것입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맹자 : 그럼에도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닥치는 것은 ‘천시’가 ‘지리’만 못하기 때문이다(天時不如地利). 전쟁에서 지키는 자는 높은 성곽과 깊은 연못, 많은 군량 등 지리적 이점을 갖는다. 그게 바로 ‘지리(地利)’다. 세종시 지역 주민들 역시 보이지 않는 성곽을 쌓아놓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할 것이다. ‘천시’는 결코 ‘지리’를 이기지 못한다.
정 총리 : 어떻게 극복해야 하겠습니까?
맹자 :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地利不如人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화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화’다. 세종시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설득하고 호소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성곽을 허물고 나올 것이다. 아무리 땅의 이점이 뛰어나다고 해도 사람 간 화합을 이겨내지 못한다.
정 총리 : 주민 설득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당 내 반발은 어찌 해결해야 합니까?
맹자 : 민심을 잃게 되면 주변에서 돕는 사람이 적다. 심지어 믿었던 친척조차 배반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민심을 얻으라는 것이다. 도의정치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아가 천하가 모두 순응한다.
정 총리 : 그러나 당내 파벌 간 이해를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맹자 : 천하를 순응하게 하는 힘으로 친척의 배반을 공격해야 한다(以天下之所順,攻親戚之所叛). 그러기에 군자는 싸우지 않지만, 싸운다면 반드시 이긴다(故君子有不戰, 戰必勝矣).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四知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3 오전 1:51:52
‘촌(寸)’은 손가락을 벌린 손 옆에 점을 찍은 형태다. 손가락 ‘마디’만큼의 짧은 길이로 3cm 정도다. 세 치 짧은 혀는 ‘삼촌지설(三寸之舌)’, 쥐 눈처럼 좁은 식견은 ‘서목촌광(鼠目寸光)’, 짧은 시간은 ‘촌음(寸陰)’이라고 한다. ‘한 치 시간은 한 치의 금(金)이지만, 한 치 금으론 한 치의 시간도 살 수 없다(一寸光陰一寸金 寸金難買寸光陰)’는 말도 있다. 그러나 작은 정성을 일컫는 ‘촌지(寸志)’에 이르면 본디 뜻과는 달리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곳간(府)에 고기(肉)를 오래 쌓아 둬 ‘썩다’는 뜻의 ‘부(腐)’ 내음이 진동하기 때문이다.
청렴도 바닥권의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주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촌지 수수 등과 같은 비리를 신고하는 자에게 최대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1억원은 간첩 신고 시 받을 수 있는 최대 포상금이다. 서울시 교육계 비리 공무원의 죄질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수준에라도 달하는 모양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조치는 동한(東漢) 시기 사람인 양진(楊震)의 ‘사지(四知)’를 떠올리게 한다. 양진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활하되 학식이 높고 청렴해 ‘관서의 공자(關西孔子)’로 불리던 이다. 그가 산둥(山東)의 둥라이(東萊) 태수로 발령받아 창이(昌邑)를 지날 때였다. 지인(知人) 왕밀(王密)이 마침 창이 현령이었는데, 한밤중에 황금 10근을 들고 찾아왔다. 놀라는 양진에게 왕밀은 “야밤이라 아무도 모른다(暮夜無知)”고 말한다. 이에 양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또 그대가 알지 않는가.” 하늘과 땅, 너와 나 등 넷이 안다는 이른바 양진의 ‘사지’다. 중국의 석학 지셴린(季羨林)은 ‘사지’에 하나가 더 붙어 ‘오지(五知)’가 된다고 했다. 다섯 번째는 ‘세상 사람들’이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晝語雀聽 夜語鼠聽)’는 식으로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얘기다.
서울시 교육청의 비리 신고 포상제는 ‘사지’를 자신한 처방 같다. 그러나 세상 참 묘하다. 인천시 교육청이 지난해 비슷한 제도인 신고포상금제를 운영했는데 단 한 건의 비리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는 ‘모야무지’라서일까, 아니면 비리가 근절됐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후자는 아닌 것 같은데….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盟誓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2-01 오전 12:32:27
맹(盟)과 서(誓)는 모두 약속(約束)을 일컫는다. 맹은 춘추(春秋)시대 때 유행하던 제후국 사이의 약속 행위다. 일반적으로 가장 힘 센 사람이 그 행위의 주재자, 맹주(盟主)다.
중국 고대의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나라 사이에 문제가 있으면 맹을 행한다(國有疑則盟)”고 했다. ‘나라 사이의 문제(疑)’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상태(不協)’라는 게 후대의 풀이다. 맹약(盟約)은 결국 다툼 또는 시비 등이 발생했을 때 이해 당사자끼리 모여 새 약속을 하는 행위다.
이를 위해 만나면 회맹(會盟)이다. 논의를 마친 뒤 준비한 희생(犧牲)인 소를 잡아 그 피를 서로 나눠 마시면서 약속 이행을 다짐한다. 회맹의 주재자인 사람이 소의 귀를 잡는다. 우리말의 용례에서도 쇠귀를 뜻하는 ‘우이(牛耳)’가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유래다.
나눠 마신 소의 피는 약속을 상징하지만, 꼭 지켜지지는 않는다. ‘입에 묻은 피가 마르기도 전(口血未乾)’이라는 중국 성어는 그래서 나왔다. 현대 한국어 버전으로 하자면 ‘문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인 셈이다.
이에 비해 서(誓)는 규모가 작은 약속이다. 즉흥적으로 표시한 약속을 일컫는다. 맹에 비해 강도나 심각성에서 크게 떨어진다. 큰 집단 사이에 이뤄지는 약정(約定)이 아니고 다분히 개인적인 약속이다.
맹약과 서약의 개념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약속이 맹서(盟誓)다. 산과 바다 등 영원히 변치 않는 대상을 향해 하는 약속이 ‘산맹해서(山盟海誓)’다.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약속과 신뢰의 문제에 대해 벌이는 논쟁이 아직 뜨겁다. 고사성어(故事成語)까지 동원한 도덕적 공방은 유치하기도 하다. 약속에는 맹약과 서약, 나아가 더 높은 수준의 맹서도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맞다. 그러나 수도 기능 분할・이전에 관한 우려도 결코 지울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내놓은 세종시 관련 약속은 어떻게 보면 서약의 수준이다. 서로 흉금(胸襟)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다. 그때의 서약을 맹약의 수준으로 올릴 수 있고, 나아가 맹서까지 갈 수 있다. 도덕적 편가름 말고,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다시 함께 논의해야 한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推奴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8 오전 1:53:35
도망 노비(奴婢)를 잡아 생계를 잇던 추노(推奴)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뿐 아니라 부역(賦役)과 병역(兵役)을 피해 도망친 자들을 쫓는 것을 추쇄(推刷)라 불렀다. 추노가 잡아들이던 ‘노(奴)’는 ‘여자(女)’와 ‘오른손(又)’이 결합된 회의자(會意字)다. 본디 노(奴)는 남자종을, 비(婢)는 여자종을 뜻한다.
우리나라 노비제는 고조선 8조법금(八條法禁)의 “도적질한 자를 거두어 노비로 삼는다”는 조문에서 처음 시작됐다. “조선 성종(成宗) 15년(1484)에 추쇄도감(推刷都監)을 설치해 서울과 지방의 노비를 추쇄하니 모두 26만1984명이었다”고 실록은 전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군역(軍役)에 해당하는 자는 겨우 15만 명인데, 사삿집 종이 40만 명이나 된다”고 실학자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노비’편에 기록했다. 그 정도로 당시 도망 노비와 종이 많았다. 그 때문에 노비제 존폐는 어전회의의 단골메뉴로 올랐으나 번번이 존치로 결론났다. 단, 노비를 추쇄하고 빚을 독촉하는 추노징채(推奴徵債)는 흉년이 들면 왕명으로 금지됐다.
최근 중국에서 노예 노(奴)자를 비롯해 질투할 질(嫉), 즐길 오(娛), 음탕할 표(嫖), 간사할 간(奸) 등 16개 한자에서 여(女)변을 빼거나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다. 부정적인 의미의 글자에 들어있는 ‘女’자로 인해 여성을 비하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과연 글자를 바꾼다고 의식까지 바뀌겠느냐며 찬성보다는 반대가 많다.
한편 젊은이들이 사회 진출의 어려움으로 인해 각종 ‘노예(奴隸)’로 전락한다는 신조어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 대출에 허덕이는 ‘방노(房奴, 집의 노예)’, 치솟는 육아비 부담에 힘겨워하는 ‘해노(孩奴, 자식 노예)’, 자동차를 사기 위해 애쓰는 ‘차노(車奴, 차의 노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논어(論語)』의 ‘나이 서른이 되면 자립한다(三十而立)’는 말이 ‘삼십이 돼도 홀로서기 어렵다(三十難立)’는 식으로 바뀐 셈이다.
취업난에 만혼(晩婚)이 늘고 출산마저 기피하기는 한국도 매한가지다. 멀쩡한 청춘들을 ‘노예’로 만드는 세태의 원인을 잡아 없앨 추노는 어디 없을까.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朝三暮四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6 오후 8:30:59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지난 22일 국회에서 망신을 당했다. 중의원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다. 자민당의 모테키 도시미쓰(茂木敏充) 의원이 ‘1차 추경예산이 동결된 대신 그만큼 2차 추경예산이 늘었다’는 점을 놓고 하토야마 총리를 공격했다.
“총리,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의 뜻을 아는가?”
“알고 있다. 아침에 정한 것이 곧바로 밤에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의 조급한 변경을 이르는 말이다.”
“틀렸다. 그것은 ‘조령모개(朝令暮改)’를 일컫는 말이다.”
의원석 이곳저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총리가 ‘조삼모사’와 ‘조령모개’의 뜻도 모른다”는 조롱(嘲弄) 기사가 신문 가십면을 장식했다. ‘조삼모사’ 사건은 후텐마 미군 비행장, 오자와 간사장 뇌물 의혹 등으로 가뜩이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하토야마 총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조삼모사’는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BC 369~289)가 쓴 ‘장자・제물론(莊子・齊物論)’에 뿌리를 둔 말이다. 원전은 이렇다. “송나라에 원숭이(狙)를 좋아해 ‘저공(狙公)’이라 불리는 자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려는데 그 양이 부족했다. 꾀를 내어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마(朝三而暮四)’ 했더니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말을 바꿔 ‘그러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마’ 했더니 모두 좋아했다. 사물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인간의 희로(喜怒)가 바뀌는 것은 모두 이런 꼴이다.” 모테키 의원은 ‘예산의 내용은 같은데도 눈속임으로 국민을 속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총리에게 조삼모사의 뜻을 물은 것이다.
‘조령모개’는 한(漢)나라 사학자인 반고(班固・32~92)가 쓴 ‘한서(漢書)’에 나오는 말이다. 반고는 당시 농민이 땅을 버리고 고향을 등지는 이유를 “끊이지 않는 수탈(賦斂不時)과 아침 법령이 저녁에 바뀌기 때문(朝令而暮改)”이라고 설명했다. 총리가 이를 두고 ‘조삼모사’라 했으니 핀잔을 들을 만하다.
어디 일본뿐이랴. 요즘 국내 정치계에도 한자 4자성어가 난무하고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하고는 ‘당신 말이 틀렸다’며 정파 간 설전을 벌인다. 정치권은 ‘왈가왈부(曰可曰否)’로 날을 지새우는 곳이던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尋常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5 오전 2:35:54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 ‘오의항(烏衣巷)’에 나오는 구절이다. “옛적 왕사 대인의 처마에 들던 제비, 이제는 평범한 백성의 집에 날아온다(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시 제목 중의 ‘오의’는 ‘검은색 옷’의 뜻이다. 삼국시대 검은색 옷을 입은 오(吳)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어서 오의항, 검은 옷 거리로 불렸다. 그 후에는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고급 주택가였다. 시인은 옛날 고관의 집에 머물던 제비가 이제는 ‘심상’한 백성의 집에 살고 있다는 회고(懷古)의 감회를 시에 담았다.
심상은 여기서 ‘평범함’이다. 그러나 심과 상은 원래 길이를 나타내는 척도의 단위였다. 작은 면적, 짧은 거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중국 고대의 길이 단위에서 심은 대략 1.2~1.6m, 상은 2.4~3.2m 정도다. 면적으로 따질 때 심상은 약 11~13㎡다.
이 점에서 심상은 그리 길지 않은 길이, 또는 별로 크지 않은 면적의 뜻을 얻게 된다. 이어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이라는 뜻을 담는다.
문(文)・무(武)의 관직에 오르는 사람을 양반(兩班)이라 하고, 그러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상민(常民)이라고 해서 반상(班常)의 구별을 엄격히 시행했던 조선시대의 계급 차별 용어는 이래서 생겨났다. 심상의 상이라는 글자는 이후 늘 변하지 않는 것, 사물의 기반이 되는 중심의 뜻으로도 진화한다. 정상적이면서 변치 않는 기준이라는 뜻의 ‘상도(常道)’, 통상적인 법칙을 뜻하는 상궤(常軌)라는 말이 예서 나왔다.
심상의 반대어는 ‘수상(殊常)’이다. 정상적인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물, 또는 현상이 일반적인 수준을 떠난 상태다. 고국산천과 헤어지는 장면을 읊은 김상헌(1570~1652)의 시조 속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라는 구절이 좋은 예다. ‘수상한 사람은 간첩’이라며 고발정신을 강요했던 1960~70년대의 반공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한다.
‘심상치 않은’ 판결이 법원에서 잇따라 나왔다. 일반적이면서 보편적인 생각・정서와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어느 판결문은 논리가 퍽 기이하고 별나기까지 하다. 보편과 타당은 법원의 생명이다. 그를 놓쳐 “법원이 수상하다”는 소리가 나오면 곤란하다.
[한자로 보는 세상] 肝膽相照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21 오전 12:55:50
류우익 주중 한국대사가 지난주 부임 후 처음으로 중국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어려서 한문 공부 좀 했다”는 류 대사는 ‘한자의 나라’ 신문을 상대로 ‘문자’ 좀 썼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길이 열린다)’이라며 ‘일의대수(一衣帶水, 띠처럼 좁은 강이나 바다)’를 사이에 둔 한중이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다)’의 ‘복심지우(腹心之友, 마음 맞는 친구)’가 된다면 ‘상득익창(相得益彰, 서로의 재능을 더욱 드러나게 하다)’하고 ‘상보상성(相輔相成, 서로 도와 성공하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나선 중국 광주(廣州)일보가 가장 주목한 말은 무얼까. ‘간담상조’다. ‘한국대사 : 중・한은 간담상조의 선린(善隣) 돼야’라고 제목을 뽑았다. 간담상조는 당(唐)대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유종원(柳宗元)을 위해 쓴 묘지명에 보인다.
유종원은 친구 유몽득(劉夢得)이 파주자사(播州刺史)로 발령 받자 울먹이며 말한다. “파주는 몹시 척박한 변방이다. 노모를 모시고 갈 수도 없고, 또 그 사실을 늙으신 어머님께 어떻게 알릴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내가 몽득 대신 파주로 가는 게 낫겠다.” 한유는 유종원의 우정에 감복해 그가 죽은 후 묘지명을 쓴다. “사람은 어려운 지경에 처해야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난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때엔 죽어도 배신하지 말자고 ‘간과 쓸개를 내보이며(肝膽相照)’ 맹세한다. 하나 이해가 엇갈리면 눈길을 돌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꼬집은 것이다.
오장(五臟)의 하나인 간(肝)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로 몸(月)의 줄기(干)가 된다. 육부(六腑)에 속하는 쓸개(膽)는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을 저장하는 주머니로 간과는 표리 관계에 있다. 류 대사는 떼려야 떼기 어려운 간과 담이란 우리 몸의 일부에 빗대어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있다. 역시 신체 기관을 이용해 북・중 관계의 공고함을 설명하는 성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중국이 60년 전 북한을 도와 한국전쟁에 나설 때의 명분으로도 쓰였다.
남으론 간담상조, 북으론 순망치한의 관계에서 중국의 선택은 무얼까. ‘둘 다 유지하자’가 아닐까 싶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阿凡達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9 오후 8:20:55
‘아판다(阿凡達・대만은 阿梵達로 표기)’.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아바타’의 중국어 표기다. ‘아바타’는 본디 산스크리트어다. 인도의 힌두 철학에서 ‘아바타’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강림한 신의 육체적 형태를 뜻한다.
‘아바타’와 같이 한자에는 음을 빌려 외래어를 표기하는 가차(假借)가 발달했다. 글로벌 브랜드도 중국에선 한자로 다시 태어난다. 발음이 쉽고 비슷하며 뜻까지 좋아야 금상첨화(錦上添花)다. BMW의 중국 이름은 ‘바오마(寶馬)’다. 화려한 수레와 훌륭한 말을 뜻하는 ‘향거보마(香車寶馬)’에서 따왔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질주하다는 뜻의 ‘번츠(奔馳)’로 지었다. 할인마트 카르푸는 집안이 화목해지고 복이 온다는 ‘자러푸(家樂福)’로 손님을 모았다.
한국 제품들의 근사한 중국어 작명도 많다. 소주 ‘처음처럼’은 처음 마실 때부터 즐겁다는 ‘추인추러(初飮初樂)’, 제과점 ‘뚜레주르’는 즐거움이 많은 날이라는 ‘둬러즈르(多樂之日)’, 외식 브랜드 ‘놀부’는 즐거운 아저씨란 뜻의 ‘러보(樂伯)’란 이름으로 13억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지난해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영화 속 판도라(潘多拉) 행성의 할렐루야산(哈利路亞山)의 모티브가 중국의 명산인 황산(黃山)이라고 밝혔다. 중국인들은 그러나 후난(湖南)성 장자제(張家界)의 봉우리 남천일주(南天一柱)와 더 닮았다고 주장한다.
영화 ‘아바타’가 3부작으로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캐머런 감독은 속편에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비휴(貔貅)를 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비휴는 용의 머리, 말의 몸, 기린의 다리를 가진 사자 모습의 전설상의 맹수다. 사방의 재물을 먹어 치운다 해서 중국 인민은행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 온라인과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가 괴리(乖離)되는 ‘더블 에고(Double Ego・이중 자아)’ 현상을 토로하는 이가 많다. 장자(莊子)가 나비 꿈을 꾼 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몽리호접(夢裡蝴蝶)’ ‘장주몽접(莊周夢蝶)’의 고사가 전한다. 온라인상의 아바타도 바로 자신의 분신(分身)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割席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8 오전 2:01:52
‘자리를 나누다’는 뜻의 한자 성어다. 유래는 이렇다. 한(漢) 말엽에 관녕(管寧)과 화흠(華歆)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도 함께하고 공부도 같이했다. 둘의 성정(性情)은 다소 달랐다. 밭을 갈다가 금 조각을 주우면 관녕은 그냥 버리고, 화흠은 주워서 살피다가 버린다. 어느 날 문 밖으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지나갔다. 화흠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그를 구경하러 나갔다. 돌아와 보니 관녕이 화흠과 함께 앉았던 돗자리를 반으로 끊어 서로 따로 앉자며 ‘절교(絶交)’ 비슷한 선언을 해 버린 것. 그래서 나온 말이다.
이를 테면 서로 상종(相從)하지 않겠다는 맹세다. 관녕의 곧은 뜻을 칭찬하는 이도 있지만, 그 과도함을 경계하는 이도 많다. 장기판 중간에 뚜렷한 금이 그어 있다. 초(楚)와 한(漢)이 천하의 패권(覇權)을 두고 대치한 전쟁 국면(局面)의 표현이다. 그 중간을 지나는 선이 홍구(鴻溝)다. 원래 황하(黃河)와 회하(淮河)를 잇는 운하(運河)였다. 두 나라가 싸움을 벌일 때 이곳을 경계로 대치(對峙)했다. 초하한계(楚河漢界), 즉 초나라와 한나라의 경계라는 뜻이다. 나중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구덩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서로 적대시하면서 절대 화해하지 않는 두 사람, 또는 두 진영(陣營)의 마음가짐을 일컫는다.
서로 가슴에 품은 뜻을 스스로 장하다고 여겨 남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과 그 자세를 두고서는 ‘각유천추(各有千秋)’라고 한다. 천추는 곧 천년(千年)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쌓인 저만의 세계를 일컫는다.
위의 것들과 뜻은 다소 다르지만 ‘남원북철(南轅北轍)’이란 성어도 있다. 수레의 끌채(轅)는 남쪽을 향하면서도 바퀴 자국(轍)은 북쪽으로 나는 상황. 남쪽으로 내려가려 하면서도 제 몸과 수레는 북쪽을 향한다는 ‘배도이치(背道而馳)’, 즉 배치(背馳)라는 성어도 같은 뜻이다.
과도하게 남과의 타협과 대화를 거부한다면 할석의 주인공 관녕과 다를 바 없는 작은 마음, 협량(狹量)의 정객이다. 정치인 모두 그 꼴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 길을 못 가고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 ‘배치’의 상황에 이른다. 그러면 나라가 잘못 간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한다면 그런 상황에는 이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國格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4 오전 1:06:58
‘국격(國格)’이 화두다. 올해 정부 정책 중 하나가 국격 높이기다. 그런데 정작 국격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조어(造語)다. 말의 뿌리를 추적해 정확한 뜻을 가늠할밖에….
국격의 ‘격(格)’이 갖는 본래 뜻은 ‘나무의 굵고 긴 가지’였다. 한자 자전인 설문해자는 ‘큰 나무의 긴 가지(樹高長枝爲格)’로 정의한다. 나무는 굵은 가지가 튼튼해야 잔가지와 잎이 풍성해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격’은 나무 모양을 결정하는 기준이자 근거였다. ‘격’은 이 뜻을 바탕으로 기준・격식・표준・품위 등으로 진화했다.
공자(孔子・BC 551~BC 479)는 ‘격’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예기(禮記)』에서 군자의 바람직한 언행에 대해 ‘언유물이행유격(言有物而行有格)’이란 말로 설명했다. ‘말을 함에 있어 내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 있어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뜻. 허튼소리를 삼가고, 문란한 행동을 말라는 충고다. ‘그래야 살아서 뜻(志)을 지킬 수 있고, 죽어서 이름(名)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격’이 바로 ‘품위’요, ‘품격’이다.
‘격’은 ‘바르다(正)’는 뜻으로도 발전했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덕으로 이끌고(道之以德) 예로 다스려야(齊之以禮) 백성들은 염치를 알고 정도를 찾는다(有恥且格)’고 했다. 백성들이 정도를 걷도록 돕기 위해서는 술수나 형벌이 아닌 덕과 예로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뜻을 가진 ‘격’이 사람과 만나면 인격(人格)이요, 국가와 결합되면 국격이 된다.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지 않았던 중국에서 인격(personality)이라는 말은 신해혁명 이후 나온다. 중국 교육학자인 채원배(蔡元培・1868~1940)는 ‘지식(智)・도덕(德)・건강(體)・아름다움(美)을 갖춰야 인격이 선다’고 했다. 국격을 자주 강조한 사람은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만일 중국이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설 수도 없을 것이요, 국격도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나라의 품격은 ‘자존심’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격’이 튼튼해야 나무가 풍성해진다. 우리 국민 스스로 ‘격’을 살릴 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무는 세계에서 우뚝 솟은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破釜沈舟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13 오전 1:31:22
‘탈(脫)’.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바른다’는 뜻이다. 살벌하다. 지난주 출범한 통합 LG텔레콤의 이상철 대표이사는 그런 한자를 새해 키워드로 제시했다. ‘만년 통신 3위’의 오명을 씻기 위해 알량한 기득권을 포기하고 초심에서 시작하겠다고 한다. ‘죽어야 산다’며 철저한 개혁을 부르짖는다.
‘파부침주(破釜沈舟)’를 올해 중국 시장 공략의 출사표로 던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말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부(釜)’는 ‘솥(鍋)’을 말한다. ‘부중지어(釜中之魚)’는 솥에 든 물고기다. 독 안의 쥐, 오래 갈 수 없는 목숨을 뜻한다. 한국 최대의 항구도시 부산(釜山)의 지명 또한 산 모양이 솥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파부침주’는 배수(背水)의 진을 쳤다는 얘기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秦)이 30만 대군으로 조(趙)를 침략하자 조는 초(楚)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지원에 나선 초의 상장군(上將軍) 송의(宋義)는 진을 두려워해 중도에 머물며 병사들이 굶든 말든 저만 먹고 마신다. 격분한 항우는 송의를 죽이고 조 구원에 나서 장하(漳河)를 건넌다. 이어 삼일치 휴대 식량을 지급한 뒤 타고 온 배에 구멍을 뚫어 수장하고(沈舟), 밥을 짓던 솥은 부숴버린다(破釜). 용장 밑에 약졸은 없는 법(勇士門下無弱兵). 죽기 살기로 전투를 치러 진을 격파한다.
최태원 회장은 “중국 규제가 심해서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말라”며 “파부침주의 자세로 경영에 임해 달라”고 요구한다. 서해 건너 대륙에 온 이상 다시 돌아갈 배는 없을 터이니 중국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파부침주의 자세로 일했던 대표적 인물은 중국의 ‘철혈(鐵血) 재상’ 주룽지(朱鎔基)다. 1998년 총리에 오른 그는 앞길이 지뢰밭이건 만장(萬丈) 심연이든 “용감하게 전진할 뿐이다. 옳다면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 나라를 위해 온 힘을 쏟기를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겠다(一往無前 義無反顧 鞠躬盡瘁 死而後已)”며 경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우리 기업인들에게 ‘파부침주’의 각오와 ‘탈’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엔 그늘보다 햇살이 더 많을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吐哺握髮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7 오전 12:35:45
“나는 한 번 목욕할 때 세 번 머리를 거머쥐고(一沐三握髮・일목삼악발), 한 번 식사할 때 세 번 음식을 뱉으면서(一飯三吐哺・일반삼토포) 찾아오는 천하의 현인들을 놓치지 않고자 했다.”
중국 주(周)나라 주공(周公)이 인재를 얻고자 목욕과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는 고사다. 주공이 나라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비결은 히딩크식 표현으로 여전히 인재에 배고팠기 때문이다. 주공은 공자마저 “내가 오래도록 꿈에서 주공을 보지 못하다니(吾不復夢見周公)”라면서 흠모했던 성인이다. 이 ‘토포악발(吐哺握髮)’의 전통은 삼국지 조조(曹操・155〜220)로 이어진다.
“산은 높아지기를 마다하지 않고, 물은 깊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법, 주공처럼 인재를 얻기 위해 먹던 음식을 뱉는다면, 천하가 나를 복종하고 따르리(山不厭高, 海不厭深, 周公吐哺, 天下歸心).”
조조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읊은 ‘단가행(短歌行)’의 말미다. 인재에 허기져 하는 그의 심리를 토로한 것이다.
중국에서 조조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세밑에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조조의 무덤이 발굴됐다는 소식이다. 그는 죽기 전에 72개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무덤인 의총(疑塚)을 만들게 했다고 전한다. 이번에 ‘위무왕이 항상 사용하던 호랑이를 때려잡는 큰 창(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이라 새겨진 석패(石牌)가 발견됐다지만 진위 논란은 여전하다.
조조 무덤 발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의 한 매체는 발 빠르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조를 ‘난세의 간웅(奸雄)’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8.9%인 데 반해, 78.1%가 ‘세상을 호령(叱咤風雲・질타풍운)한 영웅’이라고 답했다. 왜 중국인들은 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까? 『품삼국(品三國)』의 저자 이중톈(易中天)은 조조의 용인술(用人術)에서 답을 찾는다. 조조는 적벽대전 2년 후인 210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널리 인재를 구하는 ‘구현령(求賢令)’을 반포했다. 명성과 출신보다 실력과 재능을 중시해 ‘인재만을 등용한다’는 정책이다. 세계 1등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의 ‘인재경영’론과 맥을 같이한다. 결국 삼국은 위(魏)나라가 통일했다.
새해에는 기업 경영자들이 주공과 조조처럼 ‘토포악발’하길 바란다. 인재 등용이 일자리 문제 해결의 첩경이기에 하는 말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한자로 보는 세상] 庶民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6 오전 12:44:11
우리나라는 가히 ‘서민(庶民)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여당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하고, 야당도 서민을 위한 생활정치를 내세운다.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도 ‘서민의 삶에 온기가 돌도록 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서민의 어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성(百姓)’이라는 말은 성(姓)이 있는 사람을 일컬었다. 아무나 갖는 게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만이 어머니로부터 성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일반 평민들은 성이 없었기에 ‘백성’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을 일컫는 말이 바로 ‘서민(庶民)’이었다. 권력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이다. 갑골문의 ‘庶’는 집에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돼 있다.
‘서(庶)’의 의미는 무리(衆)・평범 등으로 확대됐지만 ‘소외된 자’라는 기본 뜻은 변하지 않았다. 정실 부인이 아닌 첩(妾)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서자(庶子)라 했다. 지배계층의 반대는 서민층이었다. 오늘날 서민은 경제적 의미가 더 강하다. 부(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금대출을 위해 ‘서민금융’이 생겼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 무주택자를 위해 ‘서민아파트’가 건설된다. 가난한 집의 경제를 ‘서민가계’라고도 한다. 중산층・민중・민초 등의 말이 계급이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데 비해 서민은 비슷한 대상이면서도 경제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정치 권력과 서민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맹자(孟子・BC372 ~BC289)의 해석은 의미심장하다. 맹자가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왕은 어떠할 때 기뻐해야 하느냐”는 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시경・대아(詩經・大雅)편의 구절을 인용해 답한다.
“성군(聖君)인 주문왕(周文王)이 제단을 쌓기로 했습니다. 서민들이 달려들어 열심히 일을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완공됐습니다(庶民功之, 不日成之). 힘든 일이었지만 서민들은 오히려 즐겁게 작업을 했습니다. 고대의 성인 군자는 이처럼 서민과 함께 즐거움을 나눴지요(與民偕樂). 그게 바로 왕이 기뻐하는 이유입니다.”(孟子・梁惠王)
정치지도자와 서민이 서로 마주 보고 즐거워하는 것,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최고 경지가 아닐 수 없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煙月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4 오전 1:10:18
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의 한자 성어는 강구연월(康衢煙月)이다.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길거리 모습과 풍경을 가리킨 말이다. ‘편안한 모습의 거리(康衢)’까지는 괜찮지만, 몇몇 매체가 연월(煙月)을 ‘연기가 피어오르는 달’의 모습으로 설명해 안타깝다. 일부 국어사전에 그렇게 나온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달이 뜬 뒤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왠지 좀 불길하다. 전쟁의 참화를 떠올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에 이런 유명 구절이 나온다. “좋은 경치의 3월에 양주로 간다(煙花三月下揚州)….” 이백이 친구 맹호연(孟浩然)을 떠나 보내며 지은 시다. 여기서 나오는 연화(煙花)를 ‘연기 피어오르는 꽃’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런 연기는 불을 피워서 오르는 그런 연기가 아니다. 안개가 그윽이 낀 날의 꽃, 말하자면 봄날의 좋은 경치를 의미한다.
연(煙 또는 烟)은 불을 지피면서 생기는 일반적인 연기이기도 하지만, 안개나 구름이 자욱이 낀 상태를 일컬을 때도 쓰인다. 따라서 연월은 ‘운무에 싸인 몽롱한 모습의 달’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래서 연일(煙日)이라고 적으면 ‘운무에 싸인 해’가 되는 것이고, 연해(煙海)라고 쓰면 ‘안개 낀 바다’가 되는 것이다.
연월은 더 나아가 남녀 사이의 로맨스, 또는 기생이 사는 곳 등을 가리킨다.
기녀(妓女)의 별칭은 한때 연월귀호(煙月鬼狐)로 불렸고, 그들이 장사를 벌이는 곳은 연월작방(煙月作坊)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원(妓院)의 간판은 연월패(煙月牌)였다. 구름과 노을을 뜻하는 ‘연하(煙霞)’는 시인묵객(詩人墨客)이 자주 사용하는 문학적 소재이기도 했다.
하늘에 뿌옇게 끼어 있는 구름과 안개의 이미지는 정적(靜的)이다. 그대로 풍경이 멈춰 있어 안정과 고요를 뜻하는 표현이다. 희끄무레한 무엇인가에 싸여 땅을 비추는 달은 그래서 ‘평화로운 세월’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비슷한 것으로는 이내가 있다. 한자(漢字)로는 남기(嵐氣)라고 한다. 저녁 무렵에 산과 들에 푸르스름하게 끼는 기운을 말한다. 연월을 ‘연기 오르는 달’로 풀이하는 우리 사회와 한자의 세계 사이에도 적잖은 구름과 안개가 끼어 있는 셈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희(喜)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1-01 오전 1:57:28
‘기쁜 일 만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人逢喜事精神爽)’는 말이 있다. 중국인들이 쓰는 말이다. 희사(喜事)는 보통 혼사(婚事)를 일컫는다. 결혼만을 일컬을 때는 홍희사(紅喜事)다. 천수를 누리고 이승을 떠나는 이를 보내는 장례는 백희사(白喜事)다.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했다.
희주(喜酒)는 결혼 혼례 때 참석해 마시는 술이다. 중국에서는 술도 술이지만 사탕 등을 나눠 주면서 희당(喜糖)이라고 한다.
영어를 중국어로 가장 잘 옮긴 말로는 코카콜라(可口可樂)를 꼽는다. ‘입에 딱 맞아 즐겁다’는 뜻이니 발음이 비슷한 데다 의미까지 훌륭해 그만이다. 그에 비견되는 표현이 있다. 호텔 힐튼의 중국어 표현 ‘희래등(喜來登)’이다. 발음도 얼추 비슷하고, 뜻은 ‘기쁨이 찾아온다’다. 호텔에 드는 손님들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과거 결혼식장에 자주 내걸던 글자가 있다. 희(囍)라는 글자다. 기쁠 희라는 글자 두 개를 이어 붙였다. 기쁨이 배로 다가오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찾아든 반가운 소식을 알린다는 존재는 까치다. 새벽 아침에 집 앞 나무에 올라앉아 기쁜 소식의 도래(到來)를 예고하는 까치는 그래서 희작(喜鵲)이다. 천수답(天水畓)에 기대 농사를 지어야 했던 예전의 생활에서 가뭄 끝의 단비는 희우(喜雨)다. 정자를 지었을 때 단비가 내려 이름을 얻은 희우정(喜雨亭)에 관한 이야기도 이래저래 전해져 오고 있다.
기쁨을 뜻하는 희(喜)는 사람이 갖고 있는 칠정(七情)의 선두다.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에 따르자면 그렇다. 그 뒤로 노함(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심(欲)이 등장한다.
기쁨이란 뜻으로 함께 쓰이는 글자로는 환(歡)과 흔(欣), 쾌(快), 유(愉), 열(悅) 등이 있다. 이들을 서로 조합하면 환희(歡喜), 유쾌(愉快), 흔쾌(欣快), 희열(喜悅) 등의 단어로 발전한다. 기쁨이라는 뜻을 담아 다 좋은 말들이다.
하늘의 계시를 뜻하는 보일 시(示)와 기쁠 희 자를 섞으면 ‘희(禧)’다. 새해 연하장 등에서 자주 보는 글자다. 행복과 기쁨을 뜻한다. “공하신희(恭賀新禧).” 공손한 마음으로 전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이다. 독자들께 올리는 새해 인사다.
유광종 논설위원
[한자로 보는 세상] 爵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26 오전 12:15:00
벼슬을 적을 때 쓰는 한자가 작(爵)이다. 공작(公爵)을 비롯해 후(侯)・백(伯)・자(子)・남(男)에 이 글자를 붙이면 높은 벼슬 이름이 된다. 중국에서 그 용례가 만들어진 뒤 요즘은 영국의 작위(爵位)를 한자로 적을 때 이렇게 붙인다.
‘작’은 원래 술잔을 일컬었다. 한자의 초기 형태인 갑골문 등을 보면 이 글자는 술잔 비슷한 모양의 물건을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다. 주로 고대 왕조사회의 국가적 행사인 제례(祭禮) 등에서 사용한 물건이다.
고대 예법(禮法)에서는 상・하의 관계가 매우 엄격했고, 사람이 제례 등에 참여해 서로 잡는 술잔의 크기와 모양이 각자의 계급에 따라 달랐다. 따라서 그런 자리에서 잡는 술잔, ‘작’의 여러 가지 모양은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의 관직(官職) 서열을 뜻하게 됐다. 관직을 일컫는 관작(官爵)의 의미가 붙여진 것이다.
하늘의 벼슬, 인간세상의 벼슬이라는 구분을 둔 사람은 맹자(孟子)다. 하늘이 내린 벼슬은 천작(天爵)이라고 적었다. 공후장상(公侯將相)의 인간 사회 속 벼슬은 인작(人爵)이라고 했다. 천작은 인자하고 의로우며,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사람의 덕목(德目)을 가리켰다. 곧 ‘인의충신(仁義忠信)’이다. 선행에 늘 앞장서는 사람이기도 하다.
인작은 달리 설명할 게 없다. 일정한 경로를 통해 오르는 관직, 또는 그런 사람이다. 맹자는 천작과 인작을 설명하면서 “옛날에는 좋은 덕목을 갖춘 뒤에야 벼슬자리를 얻었으나 요즘에는 품성을 연마하는 척하다가 벼슬자리를 꿰찬 뒤에는 그를 버린다”며 한탄하고 있다. 2300여 년 전 맹자의 탄식인데,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지방에서는 군수가 건설업자에게 공사를 몰아줘 호화 빌라를 제공받는 비리가 횡행하고, 사정(司正)의 주축인 검찰 역시 건설업자와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얽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 지금의 벼슬자리에 오르기까지 제대로 인성교육이나 마쳤는지 궁금하다. 맹자 시대 관료만도 못한 게 분명하다.
“불이 곤강산을 태우니, 옥과 돌이 모두 탄다(火炎崑岡, 玉石俱焚)”는 말을 기억하실 것이다. 관리의 부도덕은 그런 불보다 무섭다는 지적이다. 그 부패의 불길을 재촉하는 것이 바람이라. 추운 겨울 내내 기다렸던 봄바람 앞에서 괜히 우울해지는 요즘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盜泉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15 오전 12:36:50
견토지쟁(犬兎之爭)이란 말이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온다. 옛날에 날랜 사냥개 한자로(韓子盧)와 발 빠른 토끼 동곽준(東郭逡)이 있었다. 하루는 한자로가 동곽준 추격에 나섰다. 수십 리를 쫓고 쫓기며, 높은 산을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며 사력을 다해 달리다 둘 다 쓰러져 죽었다. 길 지나던 농부(田父)가 횡재했다.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보는 걸 전부지공(田父之功)이라고 한다.
어부(漁父)가 재미를 보는 경우 역시 전국책에 나온다. 도요새(鷸)는 조개(蚌蛤)의 속살을 물고, 조개는 도요새의 부리를 문 채 입을 닫아 둘 다 꼼짝도 못하는 방휼지세(蚌鷸之勢)를 이뤘다. 이를 본 어부는 둘 다 잡아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었다.
북한이 중국 여행사 등 남북한이 아닌 제3국의 업체를 이용해 금강산 관광을 추진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남북 다툼에 제3자가 이득을 챙길 모양새다. 그러나 이 경우엔 농부든 어부든 제3자도 새겨야 할 말이 있다.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渴不飮盜泉水)’는 공자 말씀이다.
공자가 산둥성 사수(泗水)현을 지날 때다. 몹시 목이 말랐다. 마침 샘을 만났지만 공자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샘 이름이 ‘도천(盜泉)’이었기 때문이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言 非禮勿聽 非禮勿動)고 했던 그가 아닌가. 공자는 갈증이 심했지만 도천의 물을 마시는 건 군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후 도천은 수치스러운 행위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 또한 하루는 날이 저물어 도착한 곳이 승모(勝母)라는 마을이었지만 그곳에 묵지는 않았다. ‘어미를 이긴다’는 이름을 부도덕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진(西晉)의 문인 육기(陸機)는 맹호행(猛虎行)에서 읊었다.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으며,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선 쉬지 않는다(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고. 형편이 어려워도 예(禮)에 어긋난 일은 삼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금강산 관광은 통일을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추진하는 남북한 경협(經協)의 상징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틈을 이용해 3자를 들이려는 북한이 우선 문제이지만, 3자 입장에서도 상업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들어설 자리는 아닐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視聽과 見聞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19 오전 12:05:00
보고 듣는 행위를 한자로 적으면 시청(視聽)과 견문(見聞)이다. 보는 동작은 시견(視見), 듣는 행위는 청문(聽聞)이다.
‘시견’의 두 글자는 그 새김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쓰임새는 다소 다르다. 앞의 글자는 일차적 행동, 뒤의 글자는 그 동작의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볼 시(視)는 눈의 감각이 사물에 닿는 행위다. 그에 비해 견(見)은 그에 따른 결과, 말하자면 눈으로 본 현상과 사물이 머리로 인식되는 과정에 이름을 말한다. 그래서 나온 성어가 시이불견(視而不見)이다. 사물을 눈으로 보되 그 자체에서 그치는 상태다. 생각이 따라주질 않으니 보지 않은 것과 같은 셈이다.
다음은 ‘청문’이다. 마찬가지다. 듣되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이 청이불문(聽而不聞)이다. 뭔가를 들었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머리로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 불러 놓고 정치적 제스처로 한껏 상대의 기운만 빼앗는 한국 국회의 청문회(聽聞會)가 바로 ‘청이불문’의 꼴이라고나 할까.
시조(視朝)와 청정(聽政)은 그래서 임금이 조정에서 정무를 보고 듣는 행위를 일컫는다. 관리가 업무에 임하는 것은 시사(視事), 판결을 주재하는 것은 청송(聽訟)이다.
이에 비해 한 걸음 더 깊은 뜻으로 전진하는 것이 견과 문이다. 두 글자를 합한 견문은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관찰로 얻어진 이해다. 그래서 ‘이 사람은 견문이 많다’는 식으로 말한다. 견해(見解)와 견식(見識)도 비슷한 용례다. 잘 듣고 보면서 사물과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면 ‘총명(聰明)’이다. 귀 밝은 게 총, 눈이 예리하면 명이다. 그런 사람을 ‘총민(聰敏)하다’거나 ‘명민(明敏)하다’는 식으로 적는 이유다.
요즘 우리가 보고 듣는 게 많다. 슬픔으로 돌아온 천안함 용사들을 맞으면서 말이다. 그 사후(事後)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사고의 전 과정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많기 때문이다.
적의 도발 여부, 국가 안보가 걸려 있는 국방태세에 대한 문제들이다. 적의 도발이 맞다면 북한의 정체를 똑바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로써 국방태세를 다시 튼튼히 구축한다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보고 들었다가 그냥 잊을 사안이 아니다. 모두 뇌리 속에 깊이 새겨야 할 일들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한자로 보는 세상] 一山二虎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21 오전 12:02:00
교룡(蛟龍)이라는 상상 속 동물이 있다. 모양은 뱀과 같지만 넓적한 네 발이 있고, 머리는 작지만 비단처럼 부드러운 옆구리와 배가 있다. 연못에 웅크리고 있다가 비구름을 얻으면 하늘로 오른다(蛟龍得雲雨)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교룡은 ‘때를 만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한 영웅호걸’로 비유되기도 한다.
교룡 두 마리가 한 우물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서 나온 성어가 ‘일연양교(一淵兩蛟)’다. 한(漢)나라 초기의 문집인 『회남자(淮南子)』에 뿌리를 둔 말이다. 『회남자』는 ‘설산훈(說山訓)’ 편에서 ‘한 연못에 교룡 두 마리가 살지 않아야 물이 고요하고 맑다(一淵不兩蛟,水定則淸正)’고 했다. 하늘을 오르지 못해 울분에 찬 교룡 두 마리가 한 우물에 있다면 치고 박고 싸울 것이라는 얘기다.
요즘은 같은 뜻으로 ‘일산불용이호(一山不容二虎・하나의 산은 두 마리 호랑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산 속 호랑이가 자신의 구역에 침입한 다른 호랑이를 내버려 두지 않듯, 같은 세력을 가진 존재는 둘이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침입이 있다면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일산이호(一山二虎)’로 줄여 쓰기도 한다. 중국 현대 소설가인 어우양산(歐陽山・1908~2000)의 소설 ‘산자샹(三家巷)’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그는 사이가 좋지 않아 만나면 싸우는 사람을 들어 ‘一山二虎’의 관계로 묘사했다.
‘일산이호’는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말로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아시아에서의 중국과 일본 관계, 세계 정치 무대에서의 중국과 미국 관계가 그 꼴이라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이, 중국과 일본이 패권을 놓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모습이다. 흔히 ‘일산불용이호(一山不容二虎)’ 뒤에 ‘양호상쟁필유상(兩虎相爭必有傷・두 호랑이가 싸우면 반드시 상처를 입는다)’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두 호랑이가 있는 산에서는 ‘용쟁호투(龍爭虎鬪)’ ‘용호상박(龍虎相搏)’이 끊이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전쟁이요, 밤이면 암투다(明爭暗鬪). 세계 여러 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산은 언제 고요할 것이며, 연못은 또 언제 청정할 것인가 ….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자로 보는 세상] 選擧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4-22 오전 12:10:00
6・2 지방선거가 41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選擧)에는 본디 두 가지 뜻이 있다.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것과, 인재를 뽑아(選) 등용한다(擧)는 의미다. 영어로 말하면 전자는 Election, 후자는 Selection인 셈이다. 세습(世襲)을 통해 귀족들이 독점하던 관직을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으로 충원한 것이 선거의 옛 뜻이다. 한(漢)대에는 지방에서 인재를 천거(薦擧)하고 중앙이 임명하는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가, 남북조시대에는 지방에 설치된 인재 선발관청[中正]이 아홉 등급을 매겨 중앙에 천거하는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이 시행됐다. 지방의 여론을 묻는 방식이 오늘날 지방자치제와도 연결된다. 수(隋)나라에 이르러 시험을 통해 선발[考選]하는 과거(科擧)제가 시작됐다. 이후 예부(禮部)는 과거와 학교 성적으로 선비(士)를 선발하고, 이부(吏部)는 인재를 저울질[銓選]하고 성적을 평가[考績]해 관리를 선발했다. 『예기(禮記)』에 “대도(大道)가 행해지면 천하에 공의(公義)가 구현되고, 어진 자를 뽑아 위정자를 삼고 능력 있는 자에게 관직을 부여한다”라고 전해진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해 임용하는 것(選賢擧能)은 유교사회의 이상이었다.
청(淸) 말에 이르러 중체서용론자 정관응(鄭觀應)이 『성세위언(盛世危言)』에서 근대적인 선거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의원 선거는 민주・군민공주(君民共主)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가장 중요한 제도”라면서도 선거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공거(公擧)를 제안했다.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가르쳐 한대의 향거리선제를 부활하자는 주장이다.
우리 선조들도 선거를 중시했다. 조선시대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는 저서 『인정(人政)』에서 “국가의 안위는 인재를 선거하는 날에 결정 난다(國事安危, 判於選人之日)”며 “소인을 내쫓으면 기뻐하고, 군자를 물러나게 하면 걱정한다(黜小人而喜, 退君子而慽)”고 말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은 ‘천거한 사람이 자격자가 아니면 죄가 천거한 사람에게 미친다(所擧非人, 罪及擧主)’고 적었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정당의 공천 담당자가 보면 뜨끔할 내용이다.
지방선거는 풀뿌리(草根) 민주주의의 기초이며,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의 자랑할 만한 소프트 파워다. 유권자의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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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hmjbj 님의해석 |  | 여류(女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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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류[女流; 명사]: (일부 명사 앞에 쓰여)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네이버국어사전]
女流(여류): 어떤 전문(專門) 분야(分野)나 전문가(專門家)를 나타내는 말 앞에 쓰이어, 여성(女性), 여자(女子)를 나타내는 말[네이버한자사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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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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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流[흐를 류·유; 형성문자; 流=水+㐬]: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氺)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부수(部首)를 제외(除外)한 글자 㐬(류; 아기가 태어나는 모양)이 합(合)하여 이루어짐. 아기가 양수와 함께 순조롭게 흘러나옴을 뜻함.[네이버한자사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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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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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㐬[깃발 류·유, 거칠 황; 형성문자; 𠫓+丿丨 乙(*글자가 없어 合字하였음); =𡿮=㜽]: 荒(거칠 황)과 같음(與荒同)[康熙字典 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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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𠫓: 순조롭지 않게 갑자기 튀어나올(不順忽出) 돌(*'子'가 뒤집힌 모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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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이가 나올 때 산통이 시작되면 아이가 몸을 돌려 머리를 아래로 향하면서 분만이 시작된다(臨產, 腹痛, 子轉, 身首向下, 始分免也)”(六書精蘊) “효순하지 않은 자식.불효자(不孝之子)”(廣韻) “불효자가 (거꾸로) 튀어나오는 모습으로, ‘같은 나와바리’에 껴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不孝子突出, 不容於内也)”[說文解字 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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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효순하지 않은 자식.불효자(不孝之子)”(廣韻) “불효자가 (거꾸로) 튀어나오는 모습으로, ‘같은 나와바리’에 껴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不孝子突出, 不容於内也)”[說文解字 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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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丿丨 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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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丿丨 乙(합자)=巛=川: 내 천. 양쪽 언덕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모양).[네이버한자사전 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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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용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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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ㆍ액체·물 등의 흐름·이동: 水流(수류), 流水(유수), 激流(격류) ㆍ전파·(일시적인) 조류: 流行(유행), 한류(韓流↔中風), 風流(풍류), 流言蜚語(유언비어), 流弊(세상에 널리 퍼진 나쁜 풍습·악습·폐단) ㆍ갈래·유파: 流派(유파; 물의 지류.유파) ㆍ사회계층: 名流(명류), 一流(일류), 女流(여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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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ㆍ(물처럼) 흐름이 일정치 않음(방랑·流散): 漂流(표류), 流浪(유랑), 流寇(유구; 떠돌이 도적.왜구), 流失(유실; 떠내려가 없어지다), 流産(유산) ㆍ난민: 流民(유민; 유랑민), 盲流(맹목적으로·대책없이 유입·이주해 온 사람·부류), 流離乞食(유리걸식;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다) ㆍ옛 형벌(귀양·유배): 流刑(유형; 유배형; 고대 五刑의 하나), 流配(유배), 流放(유방; 귀양·유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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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ㆍ나쁜 방향으로의 전변(轉變): 流於感傷(유어감상; 감상적으로 되다), 流離瑣尾(유리쇄미; 상황·처지가 나쁘게 되다.좆되다) ㆍ방종·방탕: 流蕩(유탕; 유랑·방탕) ㆍ저질·부정직·사악한 부류: 三流(삼류), 流裡流氣(유리유기; 행동거지가 경박하고 단정치 못하다.불량스럽다), 二流子(이류자; 건달), 流氓(유맹; 유랑민.건달.불량배.깡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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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人生下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