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20년 전인 1999년 8월 말. 김대중(DJ)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1년 6개월여 밖에 안 된 시점에 정국은 급랭했다. 이른바 ‘옷로비 청문회’에서 여야가 격돌했기 때문이다.
‘옷로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된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고관(高官) 부인들에게 호피무늬 반코트 등 고가(高價)의 옷을 남편의 ‘구명로비조’로 건넸다는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김태정 법무부 장관 부부였다. 이형자씨가 김태정 장관의 부인 연정희씨의 옷값을 대납(代納)했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태정씨는 그해 5월 검찰총장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다가 2주일여 만에 장관직에서 해임됐다. 장관에 임명된 지 불과 며칠도 안 돼 ‘옷로비 사건이 김 장관 부부와 관련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이는 청문회, 그리고 특검으로 이어졌다.
김태정 장관은 총장 시절인 1999년 2월 하순, 청와대 사정 관계자로부터 ‘옷로비 내사결과 보고서’ 원본을 건네받은 뒤, 신동아그룹 박 모 부회장에게 보고서 사본을 건네준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김태정 전 장관은 공무상 비밀누설 및 공문서 변조 행사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김태정씨가 옷로비 정황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본 것이다. (2003년 김태정씨는 관련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음). 부인 연정희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사안의 진위(眞僞)와 관계없이 옷로비 사건은 DJ 정권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사실 김태정 장관은 DJ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이나 다름없었다. YS 정권 마지막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 비자금 의혹’이 터져 나오자, 이에 대한 수사를 유보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DJ 정권 출범 후에도 총장직에 유임됐고, 법무장관에까지 기용된 것이다.
김태정 전 장관의 케이스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와 묘하게 오버랩 된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점, 부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점이 닮았다. 총선을 1년 앞두고 터진 악재라는 점, 야당에서 특검 운운하는 것도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다.
다른 건 김 전 장관과 달리 조국 후보자의 의혹은 한둘이 아니란 점이다. 설령 조 후보자가 모든 의혹을 딛고 인사청문회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다고 해도, ‘윤석열 검찰’의 예봉(銳鋒)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도 안 된 상태에서 조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할 경우, 만만치 않은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다. 총선까지 앞둔 마당에 ‘레임덕’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미 청와대와 여당이 조 후보자를 둘러싸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조 후보자로 인해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마냥 잠자코 있을 순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조 후보자로 인해 청와대와 여권(與圈) 모두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DJ는 그런 혼란이 벌어질 걸 일찌감치 간파하고, 노련한 정치적 판단으로 김 전 장관을 해임하고 구속까지 하는 강수(强手)를 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DJ 정권은 이듬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에 패하고 말았다.
조국 후보자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공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청와대는 ‘조국 논란’을 일종의 자존심 대결로 보는 듯하다. ‘밀리면 끝장’이란 생각도 갖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과 여권, 조 후보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방향은 뭘까. 결국 민심의 흐름을 따르는 것 아닐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내년 총선만 기다리는 유권자들 보다 무서운 게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