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일치는 증언의 신뢰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202년 10월 3일 오전 설립 150주년을 맞은 ‘산타 마리아 인 캄포 산토 테우토니코 신학원’ 공동체와 만났다. 이 신학원은 우리 시대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교황은 과거 독일 제국에서 “문화투쟁(Kulturkampf)의 교회 정치적 조치”로 성직자들이 활동이 크게 제한되었을 때, 이 신학원이 독일어권 출신 사제들에게 “피난처이자 학문의 장소”가 되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Debora Donnini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신앙은 ‘신자들 사이의 일치의 원칙’이며, ‘우리 증언의 신뢰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10월 3일 오전 사도궁 콘치스토로 홀에서 설립 150주년을 맞은 ‘산타 마리아 인 캄포 산토의 테우토니코 신학원’ 공동체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교황은 오늘날 이 신학원이 수행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상기시켰다.
“이 사제 신학원은 이곳에 거주하는 성직자들이 지적이고 영적인 여정을 심화할 수 있는 안전한 양성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통해 성직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우리 시대의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이들의 질문에 답하고 우리 안에 있는 희망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베드로의 후계자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
이어 교황은 이 기숙사의 또 다른 특징, 곧 성 베드로 사도의 무덤과의 근접한 독특한 특징을 언급하며, “이 기관의 설립 초기부터 역사 전반에 걸쳐 로마 교황과의 깊은 유대로 밀접하게 이어져 왔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지난 2010년에 수여한 ‘교황청립 신학원’이라는 칭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 영예는 또한 베드로의 후계자(교황)와 그가 선포하는 사도들의 신앙과의 긴밀한 관계와 일치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 하나의 믿음은 신자들 사이의 일치의 원칙이며,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증언의 신뢰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간절한 기도를 마음속에 새기고, 이 은총을 청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속한 신학원 공동체가 이 일치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드러내는 곳이 되도록 하십시오.”
역사, 19세기 사제들을 위한 학문의 장소이자 피난처
교황은 인사말에서 이 신학원의 시작을 되짚어보며 “신학원의 역사가 남긴 풍요로운 결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캄포 산토의 기원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이곳은 “신성 로마 제국 영토에서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거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1876년 문화투쟁 시기에 독일 제국 출신 사제들을 위한 학문 및 양성 기관으로 신학원이 설립되었다고 말했다.
“19세기, 이곳은 각국 사제들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당시 독일 제국에서는 문화 투쟁 정책으로 인해 성직자들의 활동이 심각하게 제한되거나 완전히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 경내) 독일 묘소의 대사도회(Arciconfraternita del Campo Santo Teutonico)’의 도움으로 이곳은 독일어권 사제들의 피난처이자 학문 연구 장소가 되었고, 이후 그리스도교 고고학, 교회사, 그리스도교 기원 연구의 중요한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문화투쟁 정책을 통한 교회에 대한 국가 통제
1871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 프로이센 총리가 제국의 통일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한 문화투쟁을 위한 교회에 대한 정치적 조치는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교회를 국가 통제하에 두었다. 가톨릭 학교는 국가의 전적인 통제하에 놓였고, 예수회를 비롯한 많은 수도회가 해산되었으며, 교황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됐다. 사제 양성에 대한 국가 통제가 도입되었고, 많은 교회 재산이 몰수되었으며, 수백 명의 가톨릭 사제와 주교가 체포되거나 벌금을 부과받거나 강제 추방당했다.
번역 이정숙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6-10/papa-discorso-collegio-teutonic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