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깨덩굴 전을 부쳐
사월 넷째 일요일이다. 전날 초등 동기들과 술자리 여파가 있긴 해도 새벽녘 잠을 깼다. 매일 남기는 자작나무 일기와 1일 1수 시조 창작을 멈출 수 없어 숙취가 덜 깼음에도 워드로 글을 남겼다. 문학 동인 카페와 몇몇 지기들에게 사진을 첨부한 메일을 보냈다. 이후 엊그제 거제를 다녀오면서 봤던 진해만 바깥 바위섬을 소재로 한 시조를 마무리해 지기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이후 기다리는 하루 일정은 산나물 채집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미산령에서 뜯어온 영아자와 거제 국사봉 곰취가 밀려 있어 당분간 찬거리로 삼을 산나물은 필요 없었다.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과 향토 사단이 옮겨 간 터에 들어선 아파트에서 사는 친구에게 봄이 가기 전 산나물 전을 맛보여 줄 의무감이 있었다. 우리는 해마다 늦은 봄 벌깨덩굴로 전을 부쳐 먹으며 봄날을 보냈다.
올해는 예년보다 봄꽃 개화가 빨라 야생화들도 거의 저물었다. 며칠 전 미산령을 넘으면서 야생화이면서 산나물이 되는 벌깨덩굴이 보라색 꽃을 피워 있었더랬다. 오월 초순에 등꽃이 주렁주렁 달리는데 그 꽃 개화 시기와 같은 산중의 벌깨덩굴인지라 꽃은 당연히 피었다. 벌깨덩굴은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습성이 있는데, 나는 근교 산자락에서 그 자생지를 두어 곳 알고 있다.
천주산이 북면으로 뻗어가는 농바위 능선과 칠원 예곡으로 가는 호연봉 기슭에 벌깨덩굴이 자랐다. 꽃을 피웠어도 잎줄기가 더 쇠기 전 뜯어 친구들에게 산나물 전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천주산을 넘어가기는 무릎에 무리가 올까 봐 피하고 산정마을까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산정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서마산에서 중리를 거쳐 칠원 읍내를 지나 산정마을에 닿았다. 내가 농어촌버스를 탈 때면 늘 그렇듯이 종점에는 혼자 내렸다. 마을 안길을 지나 산간에 몇 뙈기의 밭이 있는 농로를 지나 개울 건너 숲으로 들었다, 천주산이 칠원 예곡으로 길게 뻗친 호연봉 산등선에 해당하는 곳으로 산세가 험했다. 등산로가 없는 우거진 숲에서 벌깨덩굴 자생지를 찾으려니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골이 깊어진 계곡에서 바위 더미를 타고 넘기도 하면서 우람한 둥치로 자란 참나무 그루터기 아래 벌깨덩굴 서식지를 찾아냈다. 벌깨덩굴은 곧게 자라던 잎줄기가 꽃이 필 무렵이면 덩굴로 뻗어 줄방아로도 불린다. 그늘진 숲에서도 보라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무더기로 모여 자라 봉지를 쉽게 채울 수 있었다. 고라니도 모르고 사람은 찾을 리 없는 벌깨덩굴을 오롯이 접수했다.
벌깨덩굴을 딴 이후 주변에 참취와 비비추를 비롯한 몇 가지 산나물들도 주섬주섬 뜯었다. 자주색 꽃이 핀 쥐오줌풀은 전초와 뿌리는 귀한 약재로도 쓰이는데 거기 여러 포기 보여 뜯었다. 숲을 빠져나가 아까 건넌 개울에서 이마의 땀을 씻고 엎디어 계곡물을 그대로 들이켰더니 갈증이 가셨다. 농로에서 산정마을로 나가 버스는 점심나절 되어 들어오기에 칠원 읍내로 향해 걸었다.
십 리가 넘는 길을 걸어 읍내에 닿아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요기하고 마산을 거쳐 창원으로 들어왔다. 창원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 쉼터에서 아까 채집한 산나물에 붙은 검불과 꼬투리를 가려냈다. 무학상가에서 지기들을 접선하기로 한 시간에 맞추려고 산나물을 손수 가려 주점으로 가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과 예전 근무지 동료를 만났다. 다소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도 합류했다.
돼지껍데기로 맑은 술을 비우는 사이 주인 아낙에게 건네졌던 벌깨덩굴은 잠시 후 전이 되어 나왔다. 향긋한 향이 나는 벌깨덩굴 전은 술안주로 일품이었다. 봄이 무르익어 가는 날에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식도락이었다. 전은 이웃 테이블 손님들까지 넉넉하게 나누어졌다. 연일 주석 언저리를 피하지 못해 잔을 비우는 속도는 늦추었다. 빈 병이 많이 늘지 않은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