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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뭘까?
내 인생에서 그 어떤 만남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은
아내와의 만남이다.
1981년 3월, 군대에서 제대한 뒤 복직
한 회사에서 직원을 모집 중이었는데 접수번호 ‘4번’으로
아내가 지원을 했었다. 제대할 당시의 짧은 머리가 채 자라
기도 전인 ‘강 병장’의 눈에는 마치 연둣빛 잎이 싱싱한
나무 한 그루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아내 역시 내 목소리와
스포츠머리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제대하자마자 결혼하리라는 계획은 없었지만 옆 자리에서
같이 근무하며 사랑을 싹틔우던 우리는 그 해 11월 22일,
웨딩마치를 울렸다.
지금은 밖에 나가 ‘가정’과 ‘부부관계’에 대해서 강의
하고 대학에서 ‘결혼과 가족’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당시
의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 때가 되면 결혼하고 또 때
가 되면 아이는 생기는 거고 집안살림하고 애 키우는 것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하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결혼의 진정한 의미나 아버지 역할, 남편 역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애정표현에도 인색하고 서툴러서 신혼여행갔던 제주
도에서 아내를 다정하게 좀 껴안고 찍을 수 없느냐는 사진사
주문에 어색한 몸짓으로 머뭇거리다 바위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신혼 초에도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서 영화보러 가고, 회사
일과 친구와의 약속으로 밤늦게 들어가기 일쑤였으며 집안
식구들 앞에서 아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
는, 준비 안 된 남편이었다.
그런 무심한 내가 결혼 10주년을 넘기며 조금씩 조금씩 철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우선순위를 둘 줄도 알았고
아이들과의 저녁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가정연구소를 시작하며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
지 다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화목한 부부관계가
우선이며 아무리 크게 성공했더라도 가족없는 가정, 가정없는
가족이라면 그 의미가 반감된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돌아보며 부끄럽지 않은
아빠, 존경받는 남편이 되기 위해 내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다.
먼저 아내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말을 자르지 않고 평가
하지 않고 성급하게 해결책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참 많이 서운했겠구나’하며 최대한 아내 입장이
되어 보려고 애썼다. 보던 신문도 잠시 접고 TV에서도 잠깐
눈을 돌려서 아내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내의 부탁에
즉각 즉각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알았어, 한다니까’‘그래
해 준다구, 해 준다는데도 그러네’하면서 미루지 않고 아내
와 사랑을 나누던 그 시절, 그 때였더라도 내가 이랬을까
생각하면서 아내를 챙겼다. 또한 쑥스럽고 낯간지러운 일이라
고 생각했던 애정 표현도 ‘아내가 원한다면 못할 건 또 뭔가’
라는 생각으로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랑과 감사를 보여주려고
힘썼다.
결혼 20주년을 앞두고 과연 ‘부부’란 뭘까를 생각해 본다.
가정을 받치는 튼튼한 기둥으로 아이들에게는 환경이 되고
모델이 되는 것이 부부가 아닌지...... 서로 알몸이어도 부끄
럽지 않은 사이, 잇사이에 끼인 고춧가루를 식당에서 떼어줄
수 있는 사이, 그리고 등에 난 종기를 짜다가 고름이 얼굴에
튀어도 빨리만 나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기쁜 사이,
그런게 아닐까?
시집 와서 아이들을 낳아주고 키워주고 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 주며, 편안하게 가족이 쉴 수 있도록
우리 가정을 가꿔 준 아내, 바깥일 하는 남편이 설거지하거
나 출근길에 쓰레기 버리는 것 달가와하지 않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것이 아내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아무리
이른 새벽이어도 눈비비며 일어나 옷 챙겨주는 아내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임에 틀림없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함께 살 날이 더 많은 우리의 앞날이
더 즐겁고 성장하는 나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가장 가까이,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홀해지기
쉬운 사이지만, 그럴 수록 더욱더 서로를 존중하면서 이제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함께 걸어가야겠다.
(강학중 /(주)현대자동차 사보 '현대모터'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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