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
탁동철 동화│나오미양 그림
출간 2025년 01월 07일│판형 140*205│제본 무선│228쪽│17,000원
분야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국내창작동화 /
국내도서 > 어린이 > 초등5~6학년 > 동화/명작/고전]
│ISBN 978-89-6372-443-0
여기 한 아이가 있다.
학교폭력으로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고, 분노 조절을 못 한다고 늘 혼나던 아이. 엄마는 떠나 버렸고, 아빠도 내 아들 아니라 하는 아이. 그런 아이의 손을 잡아 준 건 할아버지였고, 장호는 할아버지 따라 강원도 산골로 왔다.
그런데 다시 가게 된 산골 학교가 좀 이상하다.
아이들이 회의해서 규칙 정하고, 선생님은 아이들 말에 움직이고…. 이 이상한 학교에서 장호는 땅을 잘 판다고 ‘인간 굴삭기’로 인정받고, 고기 잡고 불 피우는 실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친구 따윈 없던 장호 마음에 친구가 생기고, 분노가 차오르던 마음에 따뜻한 말이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동화를 쓴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다. 그의 교실에 ‘장호’가 왔고, 시간을 따라 장호의 마음 길을 따라 따뜻하게 지켜보며 기록했다. 장호가 할아버지 품에서, 동무들의 눈길 안에서, 그리고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장호가 동무들과 함께 썰매를 타면서 날아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상처받은 한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게 된다.
자연과 멀어진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친구와 함께 노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또래 세상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동화이다.
▒저자 소개
글 탁동철
태어나고 살아온 양양 속초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어요. 처음에는 삼척 도경분교와 삼척초에서 교사로 지냈고 그 뒤에는 쭉 양양 속초에 있는 학교에 있었어요. 오색초, 공수전분교, 상평초, 청호초, 조산초. 지금은 속초 대포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에요. 대포 항구가 저만큼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운동장에서 날마다 축구, 야구, 술래잡기도 하고 아이들과 시 쓰며 놀아요. 동화책으로 《배추 선생과 열네 아이들》 《길러지지 않는다》, 교실 이야기로 《아이는 혼자 울러 갔다》 《하느님의 입김》 들을 냈어요.
그림 나오미양
대학에서 의류직물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잘 돌보지는 못하지만 흙냄새와 풀 냄새를 좋아해서 자꾸만 화분에 씨앗을 심습니다.
《청소녀 백과사전》 《사라진 소녀와 그림 도둑》 《내가 그릴 웹툰》 들에 그림을 그렸고 직접 쓰고 그린 책으로는 《겨울 동네》가 있습니다.
▒목차
우리 마을은 삼태기골
싸움
산길
교실
규칙
구덩이
구석
봄 산
불
물
가을 산
멧돼지
떡볶이
겨울 언덕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나는 작년 여름부터 학교를 그만뒀다. 하지만 할아버지랑 사는 걸 그만둘 수는 없다. 나는 이제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다. 나를 두고 떠났으니 내 엄마 아니고, 나 같은 아들은 둔 적 없다고 하니까 내 아빠 아니다. 나에게는 할아버지밖에 없는데, 할아버지도 몸이 좀 안 좋다. 그것 때문에 할아버지는 내가 세상에 혼자 남았을 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애쓴다. 언제 훌쩍 먼 곳으로 떠날지 알 수 없다이, 하시며. -17쪽
달력 앞에 서서 3월 25일 오늘 날짜에 가위표시 했다. 날짜를 세어 보니 토요일 일요일 빼고, 방학 빼면 학교 가야 할 날이 175번 남았다. 그러니까 이제 175번만 더 가면 하양둥이 염소 안 팔고도 나는 자유를 얻는다는 얘기. 죽었다 치자. 이 세상에 내 몸이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 지워 버리다 보면 언젠가 175번째 날은 오고야 말 테고, 그때부터 세상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만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 42쪽
“왜 저래?”
내가 궁금해하니까 맹물 같은 한서가 알려 줬다. 여기 교실에는 규칙을 적어 놓는 공책이 있다고. 욕하거나 싸우면 구덩이 판다는 규칙도 공책에 다 있다고 한다.
한서 말로는 지옥의 벌이라는데 내 생각에는 재미있을 것 같다. -48쪽
눈앞이 어질어질 캄캄해서 삽을 지팡이처럼 짚고 가만히 서 있었다.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내 속에 있다는 구덩이를 생각했다. 할아버지 말로는 빗물에 바닥 파이듯 사람 마음에도 구덩이가 있는데, 좋은 것들이 갑자기 빠져나갔을 때 생기는 거라고, 자기 구덩이에 자기가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나 같은 것, 나 같은 것’ 하며 스스로 후벼 파서 깊어진 구덩이니까 스스로 채워야 한다는데, 어떻게 채울지 모르겠다. -56쪽
궁둥이 착 붙이고 마당에 앉아 기다리던 털복이가 발딱 일어나 앞장섰다. 녀석이 요즘에는 밤나무집보다 우리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며칠 전부터 마음의 문을 빼꼼 열더니, 이제 는 활짝 열고 지내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이 세상에 내 편이 생겼다. 나도 더욱 좋은 마음을 가지고 친하게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가슴이 뭉클했다. 내 속이 뜨거워졌다. -65~66쪽
“말을 해!
“말해 보라고!”
목소리가 화살처럼 꽂혔다. 사방 높은 벽에 온통 둘러싸인 것 같았다. 폭력은 두한이가 먼저 썼는데 두한이 잘못은 없고, 나만 폭력쟁이가 되었다. 어른들 회의가 열리는 동안 나는 책상 밑에 쪼그려 앉아 입안 가득 종이를 씹었다. 내가 종이 씹는 동안 두한이 녀석은 혀를 날름 내밀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76쪽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말이 없고, 눈이는 목 길게 빼고 잘난 척했다. 나를 바라보는 수빈이 얼굴에 실망스러운 빛이 스쳐 갔다. 불에 그을린 나뭇가지 위로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갔다. 젖은 재 위에 아이들 신발 밑바닥 무늬가 선명하게 남았다.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장호 잘못 아니야. 뭔가가 장호 마음속으로 들어와 장호를 조정한 게 틀림없어.” -112~113쪽
“돌아와!”
“위험해!”
불러도 소용없다. 죽어라 달려간다. 화살 떨어진 곳 지나 물구렁 건너 산비탈을 올랐다. 20미터, 10미터, 5미터, 점점 가까이 간다. 앞에 가던 어미가 걸음을 늦췄다. 새끼들이 앞쪽으로 간다. 어미가 홱 돌아섰다. 다가가던 털복이가 움찔 멈췄다.
“꾸웨엑!”
어미 멧돼지가 덤벼든다. 대가리 낮추며 박치기하듯 돌진한다. -176쪽
“아냐, 날 수 있어. 우리가 날개잖아. 날자!”
우리가 날개란 말이 마음에 남았다. 아이들이 몰려와서 밀었다. 나랑 유안이는 찬식이 등을 밀고, 눈이는 내 등을 밀고, 한서는 눈이 등을 밀었다. 지후랑 수빈이는 찬식이 손을 잡고 앞에서 당겼다.
“하나둘, 하나둘. 밀어!”
“당겨!”
“시동 걸렸다!”
“앙, 여기 연료 더 채워야 한다이!”
“우리가 합치면 바위도 옮길 수 있을 거야.”
동무들과 함께라면 못 할 게 없을 것 같다. -216쪽
▒출판사 서평
혼자가 된 아이
결국 장호는 학교폭력으로 도시 학교에서 강제 전학 처분을 받게 된다. 아무도 장호의 진짜 마음이 어떤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날 장호는 이제 학교 따윈 마음에 없다고 선언해 버리고 강원도 산골 사는 할아버지를 따라간다.
학교 따위는 영영 지워 버렸다고 생각하고 날마다 산에서 놀았는데, 할아버지랑 살려면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말에 장호는 어쩔 수 없이 골짜기 아래 마을 학교에 가게 된다.
이상한 학교
장호가 새로 간 학교는 이상하다. 아니, 6학년 교실이 이상하다. 누구나 회의하자고 제안하면 회의가 열리고 거기서 규칙을 정하면 모두 따라야 한다. 욕하면 구덩이 파기, 청소 시간엔 일하는 사람 곁에서 노래를 부르든 닭장에서 닭을 돌보든 하고 싶은 일 하기. 이건 선생님도 똑같이 따라야 한다. 운동장에 온통 구덩이가 있는 이상한 학교에서 장호는 ‘삽질’ 대장, 인간 굴삭기로 인정받는다. “야, 너 잘하는 게 있구나. 삽질 인정!” 장호가 처음으로 받아 본 인정이다. 그리고 구덩이 메우지 말고 물 채워 물고기 키워서 낚시하자는 장호 말에 회의가 열린다. 구덩이 팠다가 메우는 대신 물 채워서 논 만들고, 모심고, 벼가 익고, 떡볶이 만들고…. 장호 말은 끝없이 뻗어 가고 아이들은 신나서 함께 움직인다. 텃밭 망친 멧돼지 잡으러 산으로 떠나고, 불 한번 피우고 싶은 게 소원인 친구를 위해 여름밤 계곡으로 가고, 어둡고 위험할수록 옆에 있는 동무에게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자연의 아이
“친구들과 함께하며 장호는 더는 움츠러들지 않았어. 나 같은 것 나 같은 것, 하며 자기 자신을 할퀴던 날카로운 손톱이 사라졌고, 두더지처럼 파고 들어가 앉아 혼자 꿍꿍 앓던 자기 구덩이에서 벗어났지. 친구들과 함께 자연에서 용기를 얻고, 자연에서 자기 자신을 찾았어. 그 힘으로 남을 돌아보게도 되었지.”-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다. 그의 교실에 ‘장호’가 왔다.
이 이야기의 시작도 중심도 모두 그의 교실 주인공이었던 아이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노는 아이들은 자기 길을 찾고 만들어 간다. 작가는 ‘아이가 말을 해서 교사가 움직이고, 둘레가 움직이고, 세계가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들 곁에 있다.
강원도 양양 자연 속에서 논농사 밭농사 지으며 살아가는 작가는 그 힘으로 아이들과 몸을 움직이며 살아간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 그가 하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울림이 있다. 자연의 힘을 아는 작가, 아이들의 힘을 믿는 작가이다. 자연 속에서 성장해 가는 아이들 모습을 이만큼 쓸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그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어린이는 온몸으로 사는 존재이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생명체이다. 몸의 감각을 잃고 책상에만 앉아 있는 아이는 본래 지닌 존재의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장호》는 어린이에게 있는 생명의 힘을 다시 일깨워 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장호가 자연 속에서 생명을 얻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위로와 힘을 준다. 세상이 길을 잃어 힘들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생명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를 살아나게 하는 힘, 생명과 자연의 힘.
서로 보아주고 성장하는
지치고 힘들 때 우리를 살아나게 하는 힘은 무얼까? 장호가 무엇을 해도 “우리 손주처럼 훌륭한 사람 난 못 봤다이” 하는 할아버지가 있고, 불장난했다고 손가락질받던 순간에도 “너처럼 훌륭한 인재를 다른 데로 보내는 건 학교와 나에게 너무나 큰 손해야” 하는 선생님이 있어 장호는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고집하면서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장호에게 손 내미는 두찬이가 있고, 장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수빈이가 있고, “우리가 날개잖아. 날자!” 하며 눈길에서 등 밀어 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이제 장호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혼자서도 설 수 있다. 지켜봐 주는 한 사람의 눈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친구와 함께하는 놀이가 한 아이를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