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구를게 지금이 마지막이야
스크래치다 처음 보는 뒷골목이다 이길 수 있어 우리는 쟤들이랑 다르잖아 다 쓸어버리자 패배하고 깨진 이를 뱉으며 돌아설 때까지
마지막 오디션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카메라만 봤다 저것 때문에 평생을 망쳤구나
손바닥에 녹이 스미고 있다 해수면 위로 눈이 떨어진다
일을 마친 후 귀가하는 새벽녘마다 안전주의 표지판을 걷어차며 다짐했다 실컷 굶어 쓰린 배를 움켜쥐고
수척한 등을 씻겨주다 보면 창밖을 바라볼 때가 많다 신도 무언가 만들어놓고 당황했을 것이다
죽었다고 의사가 말해서 눈꺼풀을 쓸어내렸는데 자꾸 다시 벌어졌다
초점 없이 노랗게 번지는 두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살가죽이 서늘해질 것이다
심장에 귀를 댔는데 뛰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뼛가루를 안은 채 생각했다 인생은 결국 서서히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 같다 이제 매일 낯선 여진에 몸부림치다가 허물어지겠지 병든 복사꽃들
도축당한 짐승들은 어떻게 될까 인간이 그린 천국과 지옥에는 인간밖에 없어서
미결수들만 모아놓은 감옥 안에 부처가 머물러 있다 타워 크레인이 헐거워지고 비둘기 무리가 연달아 땅을 박차 오른다
정류소에 개가 쓰러져 있었다 버스 서너 대가 지나가는 동안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름 없는 해변의 모텔로 무서운 일들이 밀려든다
타일에 낙서하고 안주를 뒤적거리며 들은 이야기 중에는 틀린 게 없었다 각자 떠드는 고백이 모두 옳았다 누나는 합격 통보를 기다렸다 세상이 망할 줄 모르고
나는 비가 오지 않는 집을 갖고 싶다
월요일에 죽은 아버지가 좋아하던 비가 월요일마다 온다 어머니도 불 앞에서 차를 달이는데
마주 앉아 쌓인 여름옷을 개는 오후 같은 것이 좋았다 사이좋게 오늘의 저녁이나 정하며
숨을 오래 마시면 이곳이 녹슬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흰 돌과 우주에 내일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침대에 누워 뜨거운 가슴을 움켜쥔 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 바라보았다
그립지 않아서 슬퍼할 수가 없다
-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 -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천국을 잃다 (최백규)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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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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