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어딨노!"…대통령 전화 받은 김기춘 실장이 급히 빈방 찾은 이유
김 실장 관련 건강이상설과 권력투쟁설 등 무성 “빈방 어딨노. 빈방 어딨노. 빨리 빈방 찾아라.” 지난 1월1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구내식당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벨이 한창 울리는 휴대폰을 들고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검찰 동우회 신년 교례회에 참석한 뒤 검찰 후배들의 인사를 받으며 막 행사장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VIP(박근혜 대통령)’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전화를 받기 위해 그는 빈방을 급히 찾았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조차 예우를 다 한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휴대폰을 공손하게 받쳐들고 통화한다. 비단 박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다. “윗사람을 모시는 아랫사람의 태도는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는 본인 사퇴설에다 아들 유고(有故)설 등이 터져나오며 김 실장 주변이 한창 뒤숭숭할 때였다. 김 실장 이름이 들어간 루머가 그럴 듯한 시나리오를 장착한 채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행사장에서 김 실장을 만난 사람들은 김 실장에게서 그런 낌새를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신 그는 행사 내내 후배 검사들에게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당부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저녁은 관사에서김 실장은 요즘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청와대에 바로 붙어있는 비서실장 관사에서 먹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밥 먹는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회의 시간을 제외하곤 위민관 2층에 있는 비서실장실 바깥으로 나가는 일도 좀체 없다. 외부 사람은 물론이고 청와대 내부 인사들조차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지난해 8월 임명된 김 실장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의례적인 식사자리도 갖지 않았다.그러다 보니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감추려고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실장은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맞춰 놓고 있다. 대통령의 부름에 언제든 달려갈 대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식사자리를 갖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을 둘러싼 루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건강 이상설’이다. “건강이 악화돼 비서실장 업무를 감당하기 힘들어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게 루머의 골자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실장의 속을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안색과 목소리로 판단해봤을 때 건강 이상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한 비서관의 얘기다. “보고 차 비서실장 방을 찾으면 전화를 하고 계실 때가 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닫힌 문을 넘어 바깥에까지 울려 퍼진다. 편찮은 분의 목소리가 아니다. 사전에 전화 드리지 않고 방을 찾더라도 ‘쉬고 계시니 다음에 오십시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김 실장은 청와대에 오기 전 거의 매일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을 해왔다고 한다. 요즘도 아침 저녁으로 관사에서 러닝머신을 달리며 건강관리를 꾸준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격무를 거의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봐선 건강 이상설은 터무니 없다”는 얘기도 한다. 김 실장은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일일이 읽어보고, 비서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코멘트를 한다. “보고서는 가능하면 명료하고 짧게 써라”는 지시가 떨어질 때가 많다고 한다. 길게는 2시간까지 이어지는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나서 핵심을 끄집어내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도 김 실장의 몫이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이렇게 정력적으로 업무를 챙기기 힘들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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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실장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심려가 크시겠다’는 인사조차 없었다.아들의 유고에 따른 사퇴설도 끈질기게 나돌았다. “외아들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심신이 피폐해진 김 실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는 것이다. 김 실장의 아들은 현재 서울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해 있다. 의사인 김 실장 아들은 경기 용인시에 연세재활의학과병원을 개원, 운영해왔다. 김 실장 아들의 유고가 언론보도로 알려졌지만 청와대 내에선 ‘심려가 크시겠다’는 문안 인사가 없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수석비서관이나 비서관들이 ‘심려가 크시겠다’는 인사를 할 분위기가 아니다. 김 실장 본인이 전혀 내색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김 실장은 전혀 내색이 없다”고 했다.또 다른 관계자도“김 실장의 태도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우리가 먼저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모른 척할 뿐이다”고 했다. 김 실장이 그간 아들과 관련해 입장을 내보인 것은 한 언론이 보도한 ‘아들 사망설’에 대해 보좌관을 통해 “아니다”라고 전해온 것이 전부라고 한다.한 비서관은 “최근 내 가족이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보고 차 갔더니 김 실장이 그걸 알고는 ‘잘 챙기라’며 오히려 내 걱정을 해 주시더라”고 했다. 또 다른 비서관은 “김 실장은 이전과 다름 없이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하시니 언제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가 보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부인이 병원에 늘 가 계신다고 하더라”고 했다. 청와대 인사들은 ‘외아들이 중태인데도 어떻게 아무런 내색이 없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분이라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거나 “동양의 아버지가 원래 속으로만 삭이면서 내색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 관계자는 “김 실장이라고 왜 마음이 아프지 않겠나. 다만 비서가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 윗분에게 불편을 드려서는 안된다는 점 때문에 내색을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일각에선 권력투쟁설도김 실장과 관련해선 권력투쟁설도 있었다. 청와대 내 일부 세력과 김 실장 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김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게 권력투쟁설의 요지다. “김 실장을 거치지 않은 보고가 대통령에게 올라가자 김 실장이 이에 불만을 표출,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더라”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당연히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친다.하지만 “권력투쟁설이라며 떠돈 얘기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아무 근거없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민정라인의 경찰 파견 인원이 김 실장 사임과 관련된 정보가 유통되면서 대거 교체됐다는 얘기도 돌았다. 한 관계자는 “허태열 전 실장과 비교했을 때 김 실장은 여당 등 정치권을 챙기지 않는다. 때문에 새누리당 쪽에서 불만이 많다. 청와대 내의 자그마한 알력도 여의도를 거치면서 과장돼 유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