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나는 또 서울 구경을 합니다.
이번에는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고 길 건너 소공동으로 가는데 시청이 저 멀리 보입니다.
소공동도 다 파괴되어 있는데 시청을 바라보는 정면에는 중국집가게들이 양쪽으로 즐비한데 울긋불긋장식을 해 놓아 나는 그런빛깔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은 장삿속 머리가 아주 발달되어 있어서 유태인은 저리가라입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좋은곳에 진을 치고 있잖은가?
그곳을 지나 위로 올라가자 7층짜리 건물이 완전히 망가져 있는데 창문을 누가 다 떼어 갔는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앞에는 빈공간이 있고 주위에는 가건물들이 있는데 학원도 하나 있고 남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장면을 보고 나도 불현듯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그들이 몹시 부러워 집니다.
그곳을 지나 미도파 앞의 길을 건느자 거기가 명동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호떡가게가 보이기에 나는 들어가 호떡을 사 먹는데 중국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나는 호떡을 맛있게 먹고 그 앞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또 중국학교가 떡 넓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호떡집 앞으로 나와 명동 성당으로 가 봅니다.
명동 성당은 여기저기에 총상이 보이지만 그래도 멀쩡합니다.
나는 성당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성당이 엄청 크고 장엄해 보이는데 이곳 어느 사람에게
"어떻게 성당이 멀쩡한가요?"
라고 묻자
"여기가 바로 인민군의 본부였단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로 때려 부숴야 하는데 성당이라서 차마 폭격을 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나는 퇴계로 밖으로 나와 그곳에서 전차를 타봅니다.
전차가 가다가 정차해 있는 앞 전차를 드리 받아
"꽝1"
내가 뒤로 넘어집니다. 손잡이를 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괜찮아 일어나 동대문 까지 옵니다.남대문과 비슷하게 생긴 동대문주위에는 아주 복잡하게 차들과 사람들로 뒤덮히다시피많고 길 옆에는 전동차가 멈추어 있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강해 전동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전동차가 뚝섬으로 해서 멀리 워커힐 밑의 광나루까지 가는데 그곳은 뚝섬보다 더 한적한 시골입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음날에는 서울역앞의 창동을 지나는데 이름도 좀 야한 느낌을 후에 받지만, 길 가에는 어린 소녀들이 많이 나와서 지나는 남자들을 붙잡고
"놀다 가세요"
라고 하고 나에게는
"오빠 놀다가"
라고 합니다.
나는 얼른그곳을 피해 남산으로 올라갑니다.
나는 깎아지른 고갯길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올라가는대 길이 너무 가파르고 꼬불꼬불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산을 잘 탑니다.
맨위에 올라가니 그곳은 남산 정상이고 그곳에 정자도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1954년 4월의 모습은 나무 잎이 나오고 꽃이 피기에 서울 모습이 달라보이지만 맨 산꼭대기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공기가 너무 깨끗하고 한강까지 보입니다.
더 기가막힌 것은 서울이 한눈에 들어오는대 완전히 폐허입니다.
`저것을 언제 다시 지으려나? 지금이 가장 어려울때라서 새로 집을 짓는 모습을 하나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게 뭔가? 전쟁이라는 것이 꼭 이렇게 때려부수어야만 하는게 전쟁인가?
북한이 밉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는 그 후에도 잠실의 시골도 가보고 서울시내 안가본곳이 없을 만큼 돌아다녔습니다
이제는 돈도 다 쓰고 집에서 쉽니다.
5월이 오자 어느날 매형이
"세근아"
"예 매형"
"너도 일을 해야지"
라고 하십니다.
"......................."
"내 성당 친구하나가 제본소를 하는데 내가 네 이야기를 하자 데려와 보라는구나"
"제본소가 뭔가요?"
"응 책을 만드는 곳이란다"
"책이요?"
"그래 학교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소설등 모든책을 만든다고 한다"
"거기가 어딘가요?"
"소공동이다"
"아 시청 앞이군요"
"너 어느새 서울 지리를 다 아느냐?"
그러자 누나가
"얘는 그동안 서울 시내를 다 돌아다녔어요"
라고 합니다.
"내일 나 하고 같이 가보자"
(계속)
첫댓글 형광님 호기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호기심 덕분에 서울 지리를 확실히 익히는 계기가 되었겠군요.
매형 소개로 제본소에서 일하게 됨으로 이제 앞으로 책을 좀 더 가까이 하게 되실 듯 보입니다. ^^~
어서오세요 순수수피아나ㅣㅁ ㅇㅖ 제가 이제 일을 하게되어 기쁘답니다 감사
제본소도 일이 좀 고될거라요
많은책을 들어 날라야 하니까요
라아라님 어서오세요 벌써부터 저를 걱정하시네요 하하하 감사
전쟁의 참혹했던 현장을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70년의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사실적입니다.
감사합니다.형광등님~~
어서오세요 죽장에 삿갓쓰고님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고요
수도 서울의 산 증인이군요.
생생한 전쟁 체험기,
잘 읽었습니다.
지족자부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전쟁통에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 텐데
서울은
폐허된 그 자체이군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사랑벼리님 어서오세요,
예 서울은 전쟁이 끝난지4년이 되었어도
아직 고치거나 새로 짓는 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감사
드뎌 제본소에 취직을 하게 되시는군요.
열심히 벌어서 누나네
집 살 때 보태주셨겠지요.
그렇게 서서히 서울살람이 되어가시는군요.
베리꽃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큰 기대를 하고 걔ㅖ시는 군요 제가 감당 할 수 있을까? 하하하
다녀 갑니다
마야님 오셨어요?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고요
어제는 남양주 수동면에 있는 오빠 농장에 모여 언니 오빠와 6.25의 기억 퍼즐 맞추기를 하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습니다.
피난 시절 부산 보수동에서의 이야기와 천막학교 이리저리 댕기면서 연필하고 공책 탄 이야기며
점령군이 수도서울로 입성하던 당일 6.28일의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서대문에 있던 정부미곡창고를 털어 그들이 말하는 인민들에게 배급을 나눠주고 한달후에 집에 있는 싱거미싱 빼앗아가 배재학교에 갔다 놓고 어머니보러 나오라해 재봉틀일 부역시키도 했답니다. 녹음해 놓으라해서 몇 꼭지는 해놨어요.
밥먹이를 해야할 나이가 되었군요. 제본소일을 잘 적응해나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자하님 6.25 이야기를 하셨다고요?
그 아픈이야기를....지나간 역사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데 지금 학교에서 안 가르쳐 준대요
@형광등등 저는 전후세대이니까
언니 오빠 이야기 듣기만하는거죠~
점령군이 서울시내로 들어올 때 보무도 당당히 시가행진을 했드랍니다.
큰 말이 오는데...
수레에 실려오는 것은?
취직도 하시고 책도보시고
좋은직장 입니다
형광등님 ㅎ^^
어서오세요 초코릿님 감사합니다.
저는 은근히 겁이나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 해 본적이 없거든요 하하하
형광등등 님. 첫 직장이 당시 영특한 소년이셨던
형광등등 님과 꼭 맞는 곳이었네요.
혹시 어린시절부터 일기를 써 놓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시의
느낌까지
이 정도로 세심하게 쓰실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유머하나 쓰겠습니다.
인간이 아니므니다... ㅎㅎ
잘 읽었습니다.^^*
소데스까? 하하하 저만 그런게 아니라 기억력이 좋은분들이 많지요,
3살적부터 다 기억을 합니다.
제가 속도를 내느라고 빠뜨린 것도 많아요 하하하 감사 송초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