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眼-色-眼識'의 삼사화합
붓다가 말했던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강성용 교수의 인도 불교 이야기]
유네스코세계유산 - 통도사 상징의 비밀
<眼(~意)과 色(~法)>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
① <色(~法)>은 <法(dhamma)으로 들어가는 ‘문(門, dvāra)’>이다.
② <眼(~意)과 色(~法)>은 <‘일체(sabba)’다>.
③ <‘眼(~意)’, ☜복수형)>라고 부르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사색의 공간. 깨달은 자의 세상 속의 뜻과 가르침 | KBS 다큐인사이트 - 절, 붓다의 세상 24.05.16 방송
한번 듣고는 이해 못해도 죽고나서 이해한다는 전설의 책, 왜 숨겨졌으며 무슨 내용이길래...[티벳사자의 서]
[55분 순삭] 생각하는 것이 죽음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 죽음 관련 책 통합본
첫댓글 ① <眼(~意)과 色(~法)>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
→ 저의 대답(생각):
1. ‘안, 이, 비, 설, 신’은 물질(파생된 물질)이며 감각장소이고, 意는 마음이며 감각장소입니다.
1-1. ‘색, 성, 향, 미’는 물질(파생된 물질)이며 대상이고 '촉(폿탑바)'는 물질(근본물질)이며 대상이고, 法은 ‘마음, 마음부수, 물질, 열반, 개념’을 모두 포함한 대상입니다.
2. * ‘안이비설신의’는 업에서 생겨났고, *‘색성향미촉법’은 어디에서 왔다고 말하기 보다는, 1)‘안이비설신의’와 각각 짝이 되는 대상이고, 2)마음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고, 3)마음과 마음부수들이 돌아다니는 영역(고짜라)이라고 저는 말하겠습니다.
② <眼(~意)과 色(~法)>은 <‘일체(sabba)’다>.
→ 저의 생각:
무엇을 ‘아는 성질’을 마음(여기서는 識)이라고 한다면, 마음은 바로 ‘대상’을 아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바로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입니다. 그런데 마음(識)이 성립하려면 그 조건인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이 있어야 하고, 감각접촉(觸, 팟사)은 마음(識)이 발생할 때 동시에 발생한다고 하니까, 그리고 이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受,想,思가 일어나고, 또 이 감각접촉(觸)을 반연하여 다른 법들도 일어나므로, 결국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에 해당하는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이 일체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저는 추측해 봅니다.
③ <‘眼(~意)’, ☜복수형)>라고 부르는
→ 저의 대답: ‘色聲香味觸法’이 복수형인 이유는, 이런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어떠한 色이건 간에, 聲이건 간에, 香이건 간에, 味이든 간에, 觸이든 간에, 法이든 간에 – 각각에 대해 과거, 미래, 현재, 안, 밖, 거칠다, 미세하다, 저열하다, 수승하다, 멀다, 가깝다 -’ 이들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복수형을 사용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아위자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2025년이 되었네요.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하시기를 바라오며, 올려주신 글(동영상)을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불교는 재가신자가 추구하는 것과 출가 수행자가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고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재가신자이지만 이 생에서 해탈열반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계신데, 여기 카페에 오신 분들도 바로 그런 분들이십니다. 이에 저도 요즘 동영상 법문 등을 들으며 배운 것을 (응용하여 제 수준에서 한번)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이 과정에서 틀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제가 잘못 듣고 잘못 이해하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널리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일상에서 ‘수, 상, 사, 촉, 작의’
*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수, 상, 사, 촉, 작의’가 함께 있다고 합니다.
1.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2. 상좌부 아비담마 교학에서는 마음(여기서는 안식 ~ 의식)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촉, 수, 상, 사, (집중-에깍가따), (생명기능-命根), 작의’가 반드시 있다고 합니다.
3. 그리고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대상’도 있고, 토대가 되는 몸도 있다고 합니다. (‘根-境-識’에서 식이 일어나면 근과 경은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4. 그럼, 일상에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가끔 부모님이 아이를 걱정합니다. ‘우리 애는 너무 산만해. 집중을 잘 못해.’라고. 이 말에는 그 아이가 어떤 일(대상)에 ‘마음을 기울이고(作意)’ ‘집중하는데(一境性, 에딱가따)’ 서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는 그런 일(작의하고 집중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 그러면 왜 아이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그 일(대상)에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마음이 대상을 만나는 감각접촉(觸, 팟사)이 일어나고, 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날 때, 그 일(대상)이 즐거움(느낌)으로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그 아이는 그 일(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좌선할 때 재가신자는 즐거운 느낌을 잘 경험하지 못하여 오래 좌선할 쑤 없다고 합니다. 즐거운 느낌이 있어야 적절한 마음부수들(여러 심리현상들)을 결합하는(묶는) (그래서 다른 법들을 자극하고 부추기는(또는 격려하는)) 쩨따나(思)가 (아이가 공부를 하도록) 제대로 역할을 잘 할 텐데, ...
즉, 일(대상, 여기서는 공부)가 재미있으면 그 아이는 작의도 집중도 잘하여 계속해서 공부를 합니다. 쩨따나(思)가 공부하는 것과 관련된 법들을 자극하고 고무하니까(관련된 법들을 잘 묶으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그와 달리 공부를 하기 싫어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 아이에게는 공부란 재미없다는 인식도 있고, 또 그때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지 못하고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아이가 공부하는 일에 대해) 쩨따나(思)가 불만족과 관련된 법들을 묶어 자극하고 부추기니까 : 아이는 공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한다고, 이제 배워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여기서는 識)이 일어날 때에는, 일상에서 ‘수, 상, 사, 촉, 작의’가 마음(識)과 결합한다는 것을 배워서 알게 되었습니다.
(수정: 댓글의 표현과 내용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2025,1,5, 오후 3시 48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眼(~意)과 色(~法)>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
① <色(~法)>은 <法(dhamma)으로 들어가는 ‘문(門, dvāra)’>이다.
② <眼(~意)과 色(~法)>은 <‘일체(sabba)’다>.
③ <‘眼(~意)’, ☜복수형)>라고 부르는 //
여섯 감각접촉장소(ayatana)에서의 청정 범행이 道이고, 그것의 실참은 팔정도이고, 이득은 연기를 풀어헤친 사성제 입니다.
아위자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자섬주 법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