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램프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는 서로 깜짝 놀란다
불을 켜고 마주 앉아 먼저 말을 꺼낸다
꿈속은 여름이었고
꿈같은 여름이었고
예쁜 버섯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축축해서
장화를 버렸는데
두고 온 것은 장화뿐인데
눈이 퉁퉁 부었다 나는 어디를 다녀왔을까
버릴 게 많은데
미처 버리지 못한 것들은
귀가 되고
귀고리가 되어 걸리고
머리핀이 되고
커다란 모자가 되어 나를 장식한다
당신은 겨울에 떠난 사람
당신의 무덤은 당신 것
내게 떠민 미처 지우지 못한 기억까지도
살아서 지켜야 하는 나도
엎드려 울고 있는 무덤이다
곁에 당신이 있다고 치자
손이 나타나 가만히 덮어주는 이불
그래, 가만히 덮고 늙어가는 마음
꾸짖는 당신을 놓친
꿈이 흐려서 비가 내린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08.16. -
한 사람의 내면에는 미련, 후회, 그리움, 아쉬움 같은 “미처 버리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존재합니다. 어린 시절 날아갈 듯 가볍고 마냥 행복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는 걸 봅니다. 세상과의 접점이 늘어갈수록 미처 다 해소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내면에 쌓이기 때문이겠지요.
가라앉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은 잠들었을 때처럼 우리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때 불쑥 표면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꿈에서 깨어나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엎드려 울고 있는 무덤”에 불과하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최형심 시인〉
Amadeus Soudtrack CD1 02 Quando Corpus Morietur and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