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지는 꽤 됐다.
아마 칠레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누군가로부터 그녀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가졌던 것 같다.
칠레나로서 꼬레아노와 결혼해 예쁜 딸 한 명 낳고 아주 행복하게 살다가 전직 마도로스였다는 남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고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다고......
말로만 듣던 그런 그녀를 우연히 집 근처에서 처음 만났다.
마치 유령처럼 서늘한 미소를 머금고 귀여운 딸의 손을 잡고 길을 가는 모습.
그녀들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그 칠레나인 줄을 알았다.
그녀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바쁜 일도 없고 해서 멀찌감치 두 모녀를 따라가 봤다.
고개를 곧추 세워들고 흐트러짐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는 모습이 나에게만 처연하게 보였을까?
손을 잡고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동양인의 모습이 느껴지는 화사한 딸의 모습에서도 순간순간 알 수 없는 그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안데스산맥의 눈 녹은 물이 회색빛으로 흐르는 마뽀초 강을 건너 메르까도 센뜨랄에서 조개와 생선 몇 마리를 사고는 근처에 있는 수뻬르 메르까도에 들려서 생필품을 몇 가지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손에 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주위 풍경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간간히 찍으며 딴척하는 듯 줌으로 그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인 남편 살아생전에 단란하고 행복했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돌아가는 길 역시 바쁘지도 않고 또 느리지 않은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단아하게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녀 집이 가까운 곳까지 왔고 나 또한 숙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돌아가서 사진 작업과 밀린 글들을 쓸 생각에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몇 걸음인가 걷고 있는데 무슨 말인가 들리는 것 같았다.
주위에 행인들도 별로 없고 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더니 그녀가 머뭇거리면서 ‘세뇰!’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미?’라고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묻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생글거리면서 아까부터 뒤 따라오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알았다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계면쩍게 웃으며 한국 인터넷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뚜리스따(여행자)라고 대답하자, 눈을 반짝이며 자기 남편도 한국 사람이었다며 자기 집에 가서 까페나 모떼 한 잔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냐고 묻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차 한 잔 하자고?
하긴 내 인상이 그렇게 험하게 보이지 않는 탓도 있겠지.
나도 전에 들었던 이야기도 있고,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라도 하나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부에노(좋아요).’라고 대답하고 그녀들을 따라갔다.
중남미에서는 백여 년 된 집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녀가 살고 있는 집도 상당히 오래 된 집 같이 보였다.
그래도 곳곳에 이 세뇨라의 손길이 닿았는지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많은 꽃들이 작은 정원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안내 된 작고 아늑한 거실 곳곳에 한국인의 숨결을 느낄만한 장식품들이 보였다.
아~, 이름 모를 어느 동료 선원이 머나먼 이국에서 예쁜 딸과 행복하게 머물다 떠나간 곳.
그녀와 그녀의 딸은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간단한 한국말은 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남편은 큰 배를 타다가 칠레, 발빠라이소 항에서 패스포트만 갖고 배를 내렸다고 했다.
나도 전직 마도로스라고 말했더니 더욱 반가워한다.
부지런했다는 그녀의 남편은 말도 안 통하는 칠레에서 부두 막일을 하며 일 끝나면 그녀가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고 했다.
발길이 잦다보니 서로 인사를 할 사이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사랑을 고백할 단계까지 와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도 편모슬하에서 혼자 자랐기에 별 반대 없이 자기 의사대로 한국인 남편과 사랑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남편은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고, 그녀도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돈을 보태 지금의 집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딸을 낳고 조금 지나서부터 ‘깐사도(피곤하다).’라는 말을 가끔 하더니 힘든 일을 버거워하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이 생활비를 적게 쓰려면 극히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나라라서 일주일에 며칠만 일하면 먹고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딸이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주어서 집안에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에 가 보자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하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조용히 숨을 멈추었고 했다.
병원에라도 가보지, 왜 그렇게 병원 가는 걸 싫어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라며 아마 자기가 죽더라도 이 집은 남겨주려고 그런 것 아니냐고 묻는데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그때서야 거실 한편에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진이 보여 그것을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사진을 갖고 왔다.
사실 아까부터 발빠라이소 항에서 하선했던 선원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혹시 내가 근무하던 H 해운의 갑판원이었던 K 형이 아닌지 궁금했었다.
그녀가 갖고 온 사진을 보니......
저런,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이십여 년 전에 이곳에서 무단 하선했던 그 K 형이 방긋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놀라는 모습과 눈에 비친 이슬을 보더니 두 모녀도 금방 울 것 같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다가 내가 도울 일이 없냐고 겨우 말하니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냐고 되물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 남편을 화장해서 곱게 빻아 예쁜 상자 안에 넣어서
매일 쓰다듬고 껴안고 자는데 이제는 남편 나라로 돌려보내고 싶다고 그녀 역시 울먹이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말로만 듣던 이런 사랑도 있구나.
첫댓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네요..
몇년전에 이 이야기를 들었었네요! 다시금 이글을 대하게 되네요 그때도 참으로 마음이...
제이드님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요즘 같은 세상에 마음을 울리는 글이네요
제이드님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요즘 같은 세상에 마음을 울리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