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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식구가 진행하는 이 금남정맥에 처음 들면서 처음 생각은 그랬습니다.
“출정하는 금남정맥 팀 축하나 해주고 오자. 그러면 그 멋진 연석산과 운장산은 보너스로 따라오는 거 아니겠냐.”는 단순한 .......
그런데 첫 구간을 진행하면서 제 생각이 조금 바뀌더군요.
“그래도 산줄기인데 더군다나 정맥의 꽃 금남 아니냐. 지맥 산행을 계속하지 못하더라도 간간이 명산이 있는 구간은 참석하자.”로 말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노모의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지맥 산행은커녕 벼르고 벼르던 금남의 ‘대둔산 구간’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노모께서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덕에 워밍업 산행으로 겨우 천호산 구간에는 참여할 수 있었고 다행히 ‘천단’이 있는 계룡산 구간도 가시권으로 들어옵니다.
더군다나 이 구간에는 항상 ‘응어리(?)로 남아 있는 향적산을 진행할 수 있는 구간이기에 더 각별하게다가옵니다.
4년 전 이 금남을 할 때 ‘국공파’의 감시를 피해 남진을 하였는데 당일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안개비 때문이었죠.
참고도 #1
즉 천황봉 ~ 멘재 ~ 향적산 삼거리 소구간에서 향적산을 다녀온 후 다시 회귀하여 엄사초교 ~ 양정고개로 진행하려던 계획이 안개비로 옷이며 신발이 질퍽해지는 바람에 무산됐던 것입니다. - 파란색 실선
산꾼에게는 이런 게 항상 마음에 남나봅니다.
오늘 그 구간을 진행합니다.
그러니 본대(本隊)는 예정대로 정맥길인 엄사초교 ~ 308.6봉 ~ 정맥삼거리 ~ 멘재를 진행하고, 저는 엄사초교에서 하차한 후, 도로를 따라 걸어 무상사를 시작으로 향적선원 ~ 장군암 ~ 향적산 ~ 475.9봉 ~ 정맥 삼거리로 진행하여 이 부근에서 본대에 합류하는 것입니다.
산너울 대장님께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오래간만의 무박산행입니다.
최근 무박산행이 없었으니 노모께서 감시의 끈(?)을 잠시 놓으시고 주무시러 들어가시는군요.
이미 가방은 다 챙겨놨겠다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조용한 음악이나 몇 곡 듣고 가기로 합니다.
손가락이 Roberta Flack으로 가는군요.
오래간만에 듣는 곳입니다.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 주제곡이었죠?
45년 째 가슴 깊이 다가오는 가사가 있는 곡입니다.
Like a trembling heart of a captive bird.
11시 15분.
집을 나옵니다.
머릿속에는 Eagles의 Lyin' eyes가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그 음악의 주인공인 그녀가 집을 빠져나오 듯이....
죽전육교 삼거리에서 우틀한 뒤 잠시 신호대기를 합니다.
그런데 많이 보던 관광버스에서 낯익은 여성이 조수석에 앉아 운전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군요.
나이스관광?
조금 이따 알아보니 오늘 귀경 차량이 많이 밀려 대간팀의 도착 시간이 많이 늦었군요.
그러니까 그 두 주인공은 쿨총무님과 이부장님이셨군요.
산행 날머리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노련한 홀대장님과 젊대장님이 잘 마무리하셨다니 그나마 다행이군요.
출발시간이 약 40분 정도 늦었군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전 악착같이 출발시간을 늦춰 향적산에 올라 일출을 봐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5. 7. 일요일 2. 동행한 이 : 해밀산악회 3. 산행 구간 : 금남정맥 7구간 (엄사초교 ~ 무상사입구 ~ 향적산 ~ 멘재 ~ 국사봉 ~ 천황봉 ~ 쌀개봉 ~ 관음봉 ~ 금잔디고개 ~ 수정봉 ~ 만학골재) 4. 산행 거리 : 17.83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도착 시간 비 고 엄사초교 02:43 무 상 사 2.96 03:23 40 향 적 산 1.98 04:18 55 멘재삼거리 1.13 04:42 24 천황봉하단 5.46 08:06 204 60분 휴식 쌀 개 봉 0.49 08:23 17 관 음 봉 2.23 09:53 90 50분 아침 등 금잔디고개 1.22 11:00 67 만학골재 2.36 12:39 99 10분 휴식 계 17.83km 11:56 09:56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02:43
이런 날은 버스 주행속도가 더 빨라지는 겁니까?
이부장님은 좀 쉬면서 천천히 운행할 법도 하건만 늦은 시간을 보충이나 하려는 듯 속도를 더 내시는군요.
암사초교 부근 정맥 들머리입니다.
대원들이 복장을 갖추고 있을 때 저는 먼저 출발을 합니다.
아무래도 대원들이 저보다 조금 더 빨리 멘재 삼거리를 통과할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대장님의 산행 안내 말씀 중, “이 부근 지리를 잘 아는 이한검 대장님이 국사봉을 안내하겠다고 하니 그 구간을......” 바로 옆의 이한검 대장님께 문의합니다. “국사봉 어디 이야기하는 겁니까? 계룡산 오늘 구간 부근에는 3개의 국사봉이 있는데?” “정맥 안에 있는 겁니다.” “거긴 아무 것도 볼 게 없는데.... 어쨌든 이따 봅시다.”
03:04
무상사, 향적산 방향으로 우틀합니다.
우선 향적산하면 덕유의 향적봉1614.2m이 떠오릅니다.
덕유의 주봉이면서도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대간꾼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는 그 향적봉입니다.
좀 창피하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일단 환경파괴의 주범 덕유산리조트의 곤돌라 덕분에 설천산과 함께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더라도 무주남대지맥(신산경표 상으로는 덕유지맥)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체면치레는 하고 있는 이 향적봉에게도 숨겨놓은 동생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 이야기 한 이 금남정맥을 할 때 들르지 못해 여간 미안한 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녀석입니다.
이번에는 꼭 손을 잡아 주어야겠습니다.
물론 찾아주는 이들이 많아 그다지 외롭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손 한 번 내밀어 주는 게 녀석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지도 #1의 '가'의 곳에서 좌틀하면 향적산으로 오르는 길이 보입니다.
초행길이니 계획대로 .....
03:21
종펑마을을 지켜주는 노거수를 봅니다.
최소한 수령 300년 이상은 되었겠죠?
나무 이름이요?
저는 나무 이름, 꽃 이름 등에 대해서는 깜깜이라....
03:22
지도 #1의 '나'의 곳의 표지석입니다.
숭산국제선방입니다.
무상사의 원래 이름입니다.
사실 이 향적산이 제게는 또 다른 얘깃거리 하나가 더 있습니다.
산 때문은 아니고 바로 이 무상사 때문입니다.
‘하버드에서 화개사까지’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만행(卍行)의 저자 ‘현각(玄覺)’스님이 화계사에서 수행을 하다 이곳에 국제선원이 생기면서 이곳으로 옮기셨다는 것이죠?
그러고는 다른 나라에서 온 스님들과 함께 수행을 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이바지 했다고 합니다.
숭산스님 덕이라고 봅니다.
제가 불교대학에 다닌다고 껍죽대면서 받은 법명이 현오(玄悟)였는데, 저한테 이 법명을 주신 수원포교당 주지스님이 이 현오가 현각과 다르지 않은 뜻을 가진 법명이라 하며 붙여주셨다는....
불교신자냐고요?
그저 날라리 신자입니다.
무상사는 이 시간에 들어가봤자 별 볼 것도 없을 터 바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03:23
이정표를 따릅니다.
그런데 막아놓은 시설물 옆에 비석이 하나 보입니다.
웬 비석?
마모가 되어 음각이 되어 있는 글씨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향적산 ↑'으로 표기되어 있는 걸 보니, 이 무상사가 세워지기 전에는 바로 직진하여 향적산으로 진행을 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절 땅이 되었으니 우회시키는 길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03:26
약 2분 진행하니 비로소 제가 그려 온 트랙을 따라 길이 나옵니다.
03:35
거북암을 버리고 향적산방을 따릅니다.
암자가 많군요.
부처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3:39
또 우틀.
국조선원의 국조國祖가 당연히 단군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선원은 절방인데....
저 비석에는 무슨 글이 써져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이거 영...
탁본이라도 떠서 보든지 래야지 영.....
'頂上 → 龜龍精舍'라고 표기되어 있군데.
혹시 누군가가 이 새벽에 혼자 헤드 랜턴을 켜고 이러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본다면 .....
........
03:48
참고도 #1, 지도 #1의 '다'의 곳입니다.
향적산방을 빠져나오자마자 나오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불분명합니다.
가리키는 방향은 온통 바위와 돌이 자리하고 있고 살짝 우측으로 튼 방향으로는 소로가 나 있습니다.
낮이면 문제가 없는데 상당한 조도(照度)를 가지고 있는 제 랜턴이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당연히 소로를 따릅니다.
한 150m 정도 진행하다보니 아무래도 제가 그려온 트랙에서 자꾸 벗어나고는 좌회전 할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길은 이 단맥 사면을 따라 진행하여 우담사 혹은 정맥길로 직접 빠지는 길로 판단됩니다.
아마 참고도 #1의 핑크색 선 정도가 될까요?
다시 빽합니다.
그러고는 바위 사이로 들어가니,
길이 선명해지며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도 나옵니다.
03:59
그러고는 장군암입니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토사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야자매트를 깔아놨군요.
아주 적절한 처사입니다.
이런 계단도...
신경을 많이 썼군요.
04:09
헬기장까지....
지도를 봅니다.
여기서 좌틀하면 국사봉 0.32km, 직진하면 대전방송국중계소, 우틀하면 정맥으로 가는 길.
향적산을 올랐다가 이곳으로 다시 내려와 우틀하는 방향으로 잡아야겠군요.
왼쪽에 탁자가 있어 가방을 놓고 올라갈 생각도 해보지만 아직은 날씨가 좀 차갑습니다.
바람도 세게 불고....
배낭을 매고 국사봉 방향을 따릅니다.
음...
이런 시설까지!
비 올때 밥 먹기 딱 좋겠습니다.
계룡시 야경.
04:18
그러고는 향적산 정상입니다.
좌틀하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상으로는 국사봉國事峰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이 루트를 이곳에서는 황산성으로 표기하여 놓았군요.
이 부근의 한 산악회에서 설치한 정상석입니다.
우선 높이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표고가 574.0m이니 그렇다치고....
정확하게는 표기해 놓으셨는데 좀 불만이 있습니다.
불만을 토로하기에 앞서 잠깐 산이름을 살펴봅니다.
이름만 놓고 본다면 ‘향이 쌓인 산’이라는 의미일 텐데 의역을 하자면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이 퍼져 있는 산'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생각과는 달리 인터넷에 떠도는 이 산의 의미에 관해 살펴보면,
①도를 깨우치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이들의 땀의 향기(?)가 쌓였다거나,
②계룡산의 향기가 가장 짙게 스며있는 산이라고 하거나,
③향나무가 많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등의 내용이 그것들입니다.
정상석에는 국사봉이라는 이름이 병기되어 있군요
‘산⊃봉’ 일 것이니 이 봉우리가 향적산에 소속된 국사봉이라는 의미 같습니다.
그러면 이 일대가 전부 향적산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래 무상사에서 올라오며 보듯 이 봉우리의 이름은 예전부터 국사봉으로 불렸습니다.
국사봉이라!
국사봉은 산림청에 등록된 산 이름 중 랭킹 1위의 산이죠.
그 다음이 수리봉이고....
우리나라에 국사봉이란 이름이 많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악숭배문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國師는 곧 天王을 뜻했기 때문이죠.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를 읽어보면 육당이 백두산 천지를 오르던 중 허항령을 지나다 사당을 하나 만나게 됩니다.
그는 사당의 목주에 쓰인 '國師大王天之位'를 보고는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신 = 천왕인데, 그 중에서도 환웅을 國師大天王으로 본 것으로 이해합니다.
- 이는 '천왕봉이냐 천황봉이냐?'와도 관련이 있는데 이는 뒤에 살펴보기로 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주요 봉우리에 산신인 국사가 자리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자체가 종교였으니 말입니다.
단군이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이 되었고 신라의 탈해왕도 토함산으로 갔다는 얘기나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산소라는 것도 다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육당은 여기에 한 마디 더 거들었죠?
'개성 송악의 국사당에는 도선을 억지로 끌어가고, 한양 목멱산(남산)의 국사당에는 무학을 끌어다 붙이는 것처럼 國師를 승계僧階인 것처럼 혼동 운운...'
국사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스님의 승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단군 왕검 혹은 환웅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도에서 국사봉을 볼 때 어떤 곳은 國事峰이라고 하여 "이 산에 와서 나랏일을 도모했다."든가, 國士峰이라고 써놓고 "아무개는 이 산의 정기를 받아 나라의 기둥이 되는 선비가 되었다."라는 용어는 다 호사가가 만들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이 바로 아래의 국사봉442.3m의 한자 표기를 國事峰으로 표기한 것은 이와 같은 취지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도선국사 얘기나 태조 이성계의 얘기도 다 그런 말장난입니다.
아예 맨재 지나 병풍바위 옆의 국사봉449m같이 한글로 표기해 놓으면 중간은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이 국사봉이라는 이름은 14C 한글이 창제되고 난 이후에도 정확하게 ‘국사봉’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된 산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 부근이 정감록과 관계가 있는 소위 ‘신의 나라’였습니다.
신도안이 그런 곳이었잖습니까?
신도안이 계룡시가 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이 부근이 부처님과 부처님을 표방한 많은 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여기저기 많은 기도처가 생겼음은 자명할 터, 그러기 위해서는 이 봉우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사실 이 그림을 보고 싶어 이곳을 악착같이 온 것이죠.
이 그림을 보게 된다면 저라도 향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것 같습니다.
만사형통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그만한 도道 정도는 깨우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신도안 일대는 일제침략기가 시작되고 시절이 하수상해지자 전주 모악산과 더불어 신종교의 메카로 떠오르게 됩니다.
특히 이곳 신앙 중 단군신앙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 봉이름이 국사봉이었다는 것을 짐작케합니다.
그때 이 국사봉이 기도처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죠.
이렇게 이론을 구성할 경우 국사봉 → 향적산이라는 이름의 변천 순서가 가능해집니다.
1983년 비밀리에 행하여진 계룡대 작전'에 의해 이 신도안 종교촌이 없어질 때까지 이런 신흥종교의 종교 활동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니 이 향적이라는 이름은 부처님에게 올리는 향임은 물론 온갖 신 특히 단군 왕검에게 기도하는 향이라는 이론 구성도 가능하다 할것입니다.
그러면 향적산이 아니라 향적봉이 됩니다.
주산(主山)이 봉(峰)인데 부산(副山)이 어찌 감히 산(山)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정리합니다.
그럴 경우 이 정상석은 '국사봉(향적봉)'이라고 표기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바위도 있고 평평한 곳이니 臺를 써서 향적대香積臺혹은 향취대香聚臺라고 했어도 괜찮았겠죠.
주위를 둘러봅니다.
갓이 있는 탑 하나와 사각 기둥석 하나가 있는데,
탑 하나에는 북두칠성,
불, 남두육성 등 그 심오한 뜻을 알 수 없는 글들이 새겨져 있고,
사각기중에는 1, 5 등 숫자와
聚라는 한자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도 '쌓다'라는 뜻이 있으니 1, 5....
3, 5, 7, 9....?
고스톱 치자는 얘기는 아니겠고....
풍수지리학이나 이런 도가사상 혹은 역학과 관련된 것은 어려워서 저 같은 둔재鈍才가 접근하기는 어려운 학문입니다.
일단 이 향적산에 오르면서 논산시 상월면을 만나게 됩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 구간 중 무상사 ~ 향적산 ~ 맨재삼거리 구간은 정맥길과는 무관한 길입니다. 오히려 멘재삼거리 ~ 향적산 ~ 국사봉 ~ 사현재 ~ 탑산으로 이어지는 짧은 단맥 줄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건 뭐죠?
삼각점(공주314)이 여기 있다고요?
예끼! 여보슈!
엉뚱한 곳에 있는 삼각점을 가지고...
혹시나해서 다시 뒤져 봤지만 이곳에는 삼각점이 없습니다.
대원들의 위치가 궁금해지는군요
이대장님께 전화를 넣어봅니다.
무상사 삼거리를 지나 국사봉으로 올라가고 계시다구요?
그렇게 빨리?
여기서 국사봉이라 함은 멘재 위의 국사봉!
지도 #2의 #3 국사봉이라는 얘긴데...
본대의 진행이 무척 빠르군요.
저와는 거의 2km 차이?
그럴 리가 없는데...
어쨌든 빨리 따라가겠다고 하고는 속도를 냅니다.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된비알을 내려서서는,
04:30
다시 헬기장입니다.
20분만의 회귀입니다.
아까 보았던 대로 헬기장을 가로 질러 우측으로 들어섭니다.
04:35
3단 바위를 지나,
04:40
475.9봉에 올라섭니다.
헬기장에서 10분 걸렸으니 멧선생이나 고라니가 봤으면 기절초풍을했을 겁니다.
경고문을 지나,
04:42
멘재삼거리입니다.
전화를 해봅니다.
"나 이제 정맥삼거리요. 어디슈?"
"일부는 헬기장에서 대기하고 있고, 일부는 국사봉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헬기장?"
"예, 장군암 지나서 나오는 헬기장!"
"그러면 정맥길에서 빠져나와 사면치기하여 장군암 ~ 헬기장 ~ 향적산?"
이 같은 봉우리를 두고 저는 지도대로 '향적산'으로, 이대장님은 대전 분인 고로 이 지역 분들이 부르는 이름인 '국사봉'으로 달리얘기한 것이었습니다.
새벽공기가 차갑습니다.
그냥 서 있기도 그렇고 혼자 앞서서 가기도 그렇고...
막걸리나 마시고 있으려해도 얼려온 거라 지금 마실 수도 없는 노릇!
다시 오던 길을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갑니다.
본대를 만날 때까지.....
지도 #2
04:59
천천히 걷습니다.
아까 보던 바위가 이쪽에서 보니까 4단이군요.
한 5분 더 걸어가니 대원들 소리가 들립니다.
천천히 20분 정도 걸은 걸었군요.
05:21
대원들을 만나 되돌아 옵니다.
그러고는 다시 삼거리입니다.
아까는 어두워서 안 보이던 정경들이 드러납니다.
좌측 관음봉부터 쌀개봉, 천황봉을 거쳐 용수지맥 라인이 보이면서 천왕산과 황적봉 등이 그 위용을 드러냅니다.
앞줄의 509봉에서 뚝 떨어진 정맥길 능선은 천황봉에서 좌우측으로 갈리는 모습입니다.
민목재 우측으로 관암산과 금수산이 우뚝하고....
멘재를 지나,
05:57
국사봉449m입니다.
지도 #2에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3국사봉이라 표기하여 놓았습니다.
이런 국사봉에 뭘 볼 게 있디고....
그래서 아까도 이대장님께 이 국사봉에는 별 볼 게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인데 서로 다른 생각만 한 꼴입니다.
사진 우측에서 좌측으로 감바위산과 경천저수지.
06:12
509.5봉을 지나,
그 509.5봉을 내려오면서 천황봉을 봅니다.
여기서 잠깐.
천황봉인가요?
아니면 천왕봉인가요?
한때 이 계룡산 천황봉과 속리산 천황봉이 이런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곧 출간될 졸고(拙稿) ‘백두대간’ 중에서 관련된 글을 발췌해 실어봅니다.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형.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한 기사가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 · 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하여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년 2월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년 8월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 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을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년 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 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돼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⓵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⓶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⓷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⓸그리고 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왕봉은 2007년 12월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즉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에 ‘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을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⓵ 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⓶ 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왜 아니겠어. 녹색연합은 그때 계룡산 천황봉도 문제 삼았었지. 그런데 1914년 제작해 1928년 수정된 1 : 50,000 지형도를 보면 계룡산에는 ‘연천봉742.9m’만 기록돼 있고 천왕봉은 보이지 않았거든. 그래서 ‘만약 지도가 생긴 1928년 이후부터 1945년 사이에 지명이 붙여졌다면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천황봉 이전에는 상봉 및 상제봉으로 불렸기 때문에 일제잔재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공주시와 공주향토문화연구원의 반대의견에 따라 거부되었지. 더욱이 천황봉은 대한민국 정부가 1998년 8월17일자로 새로 고시한 지명이기도 해. 사실 지금도 계룡산 주봉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천황봉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상황이야.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천황봉 바로 옆 쌀개봉에서 가지를 치는 용수지맥의 첫 봉우리가 천왕봉608.6m인 점도 크게 한 몫을 거들었을 거야.”
“형.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06:23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군요.
465.3봉 전위봉입니다.
간식을 먹고 움직입니다.
저는 막걸리 한 잔 마시고....
06:29
폐방카가 있는 465.3봉을 지나고.......
06:37
논산시 상월면 박소리 마을과 신도안 부남리 마을을 이어주던 고개를 지납니다.
선명하게 아직도 그 길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은방을 꽃이라고요?
함께 진행하는 지산님으로부터 몇 개 풀이름과 꽃이름을 배웠는데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06:47
439.9봉에 훌륭한 조망터가 있군요.
뒤를 돌아보니....
바로 앞이 465.3봉, 그 뒤 우측이 509.5봉.
그 우측 맨 뒤가 향적산.
우측으로는 머리봉735.6m이 올려다 보입니다.
06:58
그러고는 큰서문다리재입니다.
무슨 고개 이름이 이렇게 깁니까?
큰서문다리면 작은서문다리도 있다는 얘긴데....
어쨌든 다리는 ㄷ.ㄹ(.는 아래' .', 달)에서 온 말이니 곧 '높다, 높은 곳'의 의미(키다리의 다리가 그 잔재)일 것이니 계룡산의 서쪽 관문의 높은 고개라는 의미 정도일까요?
그러고 보니 계룡산의 유래도 거창하긴 합니다
계룡산의 지명 유래에 관하여 백과사전이나 지명유래집에는 한결같이 '천황봉 ~ 연천봉 ~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마치 닭의 볏을 쓴 용의 모습'이라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까요?
그러면 대전 동쪽에 있는 이른바 보만식계로 유명한 갑천지맥(‘신산경표’에 의할 때에는 식장지맥) 상의 계족산424m도 생김새가 ‘닭발’ 같아서 그렇게 지은 이름인가요?
아니면 "산을 많이 오른 어떤 사람이 무릎이 많이 상해져서 닭발을 많이 먹고 콜라겐을 보충한 그 테스트를 위하여 오른 첫산이 이 산이다. 그래서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게족산으로 부르게 되었다."인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언어학적 입장에서 접근해 보기로 합니다.
15세기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우리말에 한자를 차자(借字)하면서 빚어진 일들입니다.
우리말에 달의 원형은 ‘ᄃᆞᆯ’로서 ‘높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였습니다.
이 ‘ᄃᆞᆯ’의 ‘아래 ㆍ’가 18세기에 ‘ㅏ, ㅡ’로 바뀌게 되면서 ‘달’ 혹은 ‘들’이라는 단어로 바뀌게 됩니다.
그 ‘달’을 비슷한 발음의 ‘닭’으로 받는 경우가 생겼고 이를 다시 한자로 표현하다 보니 ‘닭 계(鷄)’가 동원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니 계룡산은 그저 ‘높은 산’ 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무학대사가 이 산을 보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에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에서 계와 룡을 따서 계룡산이라고 했다는 설이나 풍수지리학에서 산(山)을 용(龍)이라 하기 때문에 계룡산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 설(說) 등은 다 이 이름을 보고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측에는 약수터 표시가 되어 있군요.
앞에 가시는 '산바라기'님.
오늘 지형 보는 요령 많이 배우셨습니까?
제가 뭐 아는 게 있어야죠?
부족해서 도움이 되셨을 지 모르겠습니다.
07:03
442.2봉입니다.
여기서 공주시 계룡면을 만납니다.
그러니까 이 봉이 논산시와 계룡시 그리고 공주시가 만나는 이른바 삼시봉三市峰이로군요.
이제 논산시를 버리고 계룡시와 공주시의 시계를 따릅니다.
지도 #3
신원사에서 올라오는 팀들과도 합류하게 되는군요.
가운데 높은 봉이 향적산.
누에를 연상시킵니다.
아!
드디어 좌측 연천봉.
세 봉우리 건너 우측이 관음봉.
07:50
이제 능선이 좀 편안해 집니다.
천황봉 바로 아래로 바짝 달라붙습니다.
우측으로 쌀개봉의 두 안테나가 다가오고....
07:56
홀가분 조교님의 호통이 떨어집니다.
"다들 뭐하시는 겁니까! 동작 봐라!"
여기서 잠시 숙의가 이루어집니다.
우측 암벽을 타고 천단을 봐야 하느냐.
아니면 국공파와의 불미스러운 조우를 방지하기 위하여 조용한 산행을 하느냐.
산수대장님은 강경론을 펴시는군요.
저도 그 코스는 기억에 없는 곳이라 솔깃했지만 다들 그냥 유화론에 동조를 하십니다.
날씨는 좋은 데 시계는 영.....
우기에는 폭포일 건폭을 지납니다.
바로 우측이 천황봉입니다.
삼불봉 능선.
우측 맨 뒤가 용수지맥 상의 우산봉573m.
저 천황봉을 올라 좌측의 천단을 보고 올 것인가!
이건데....
다시 유화론이 득세를 하니.....
대신 저 바위.
세존바위가 아닌 지산바위로 명명합니다.
계룡저수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경천저수지.
논산이 고향인 산수대장님 말씀.
그러면 계룡저수지 맞죠?
경천저수지는 조금 전 본 거죠?
천단은 포기하고 쌀개봉으로 오릅니다.
만만치 않은 바윗길입니다.
기관총 두 정이 동학사 계곡을 향합니다.
바로 앞 좌측으로 용수지맥이 흘러 내립니다.
천황봉과 우측 볼록 나온 향적산.
이 계룡산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두산백과사전을 봅니다.
'차령산맥의 연봉으로서 충청남도 공주시·계룡시·논산시·대전광역시 유성구에 걸쳐 있는 산'이라는 소개글이 붙어 있고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이라고 불린다.
계룡산의 이름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봤고....
여기가 차령산맥인가요?
사실 산줄기를 하는 우리로서는 산맥개념은 거들떠 볼 필요도 없습니다.
산맥이라는 개념도 고토 분지로가 창작한 개념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도 사실과 다른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산맥을 1903년 이전의 산맥과 1903년 이후의 산맥으로 구분하여 둘을 비교합니다.
즉 고토 분지로가 1903년 ‘조선산맥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안에 실험적 성격으로 그은 36개의 지질구조선의 다른 이름인 산맥과 우리 선조들이 보았던 분수계 개념의 산줄기 즉 산맥을 달리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리학자 중 그래도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면서 산맥도 아니고 산줄기도 아닌 가령 산체(山體)나 산괴(山塊) 정도의 새로운 개념의 대체용어를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박수진이나 손일, 권혁재 같은 이에 의하더라도 이 계룡산의 소속은 불분명해집니다.
참고도 #2 산맥도와 신산맥도
산맥도에 의할 때 계룡산의 존재는 희미해집니다.
다만 국토연구원 김영표의 새산맥도에 의할 때 그나마 3차산맥으로 그 존재감이 간신히 드러나긴 합니다.
박수진 교수 등은 이야기합니다.
차령산맥은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분기하여 충청북도 북부,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지나 충청남도의 보령까지 연결되는 산맥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충청남도의 남부에 위치한 이 계룡산은 그 뿌리가 흔들립니다.
그렇다고 노령산맥으로 소속을 옮기려 해도 “소백산맥의 지맥으로 덕유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산맥으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나누는 산맥”이라고 규정해버리니 이 계룡산은 고아가 된 신세입니다.
저는 계룡산을 굳이 지질구조선인 산맥의 개념으로 본다면,
중생대 대보화강암의 관입에 따른 습곡작용이 있은 후, 침식작용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라 이해하여 가칭 차령산괴의 한 축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럴 경우 연결성connectivity과 연속성continuity, 외형으로는 직선으로 된 선상(線狀) 혹은 대상(帶狀)linear topographic feature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룡산 부근이 5,000만 년 이상 된 땅이어서 오랜 시간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친 뒤의 것이라면 금강 등에 의해 침식된 뒤의 모습이고 지금도 계속 진화되고 있는 것이라 이해합니다.
즉 계룡산은 중생대 쥐라기 시절 이른바 '불의 시대'를 맞았을 때 지하 깊은 곳에서 공급된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올라오다 냉각된 것이 오랜 세월 비, 바람과 침식 등으로 삭박을 당한 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분수계로 이어보니까 백두대간에서 금남정맥으로 이어져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러니 이 계룡산 천황봉에서 이어져 내려가는 저 산맥은 많이 삭박을 당하여 저렇게 낮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렇게 늘어져 내려가는 산이니 '늘어진 산' 곧 황산黃山이나 논산論山 혹은 연산連山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세 이름이 다 똑 같은 의미라는 거 말씀드렸죠?
이 이름들에 대해서는 지난 구간 천호산 부근 이야기를 참조하시면 될것입니다.
08:20
기억이 납니다.
이 너덜.
이 너덜에서 길이 없어져 고생 좀 했었습니다.
08:23
연천봉의 동운암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러고는 쌀개봉입니다.
좌측의 연천봉은 그 우측의 관음봉까지 이어지고,
좀 더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계룡저수지.
관음봉에서 이어지는 삼불봉 능선.
그 능선은 우측으로 신선봉으로 이어지고...
우측 끝이 용수지맥의 우산봉.
그 근원은 천황봉의 금남정맥이고 거기서 가지 치는 여러 줄기 중 하나가 저 삼불봉 라인이고,
그 라인과 우측 용수지맥 라인 사이에 당연히 물줄기가 하나 나오는데 이 물줄기 이름이 용수천입니다.
자세히 들여다 볼까요?
이 쌀개봉에서 가지를 친 줄기가 하나 보이시죠?
이 산줄기가 30km가 넘는다면 '지맥'이라는 계급을 부여 받게 됩니다.
따져보죠.
여기서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이 동원됩니다.
즉 대간이나 정맥, 기맥 혹은 지맥에서 산줄기 하나가 가지 칠 때, 이 가지(子) 줄기와 모(母)줄기(여기에서는 금남정맥) 사이에서 물줄기가 하나 나와야하죠?
동학사 계곡의 용수천입니다.
그리고 이 물줄기 즉 용수천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이자 10대강의 하나인 금강과 만나면 그 강에 흡수되어 소멸됩니다.
참고도 #3 용수지맥
산줄기를 찾는 우리들은 그 물줄기들의 합수점을 찾아 그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만 파악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산줄기가 30km가 넘는 줄기인 점만 확인하면 될 것입니다.
도상거리가 30km 이상이면 지맥이라는 계급을 붙여주기로 약속을 하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신산경표’를 보면 쌀개봉 ~ 관암산 ~ 수양산 ~ 부용봉226m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관암지맥으로 하여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럴까요?
참고도 #4 관암지맥의 끝
그런데 이 관암지맥의 끝은 합수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산경표는 물줄기를 근간으로 하여 산줄기를 그은 것이므로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을 따라야 함은 물론입니다.
참고도 #5 용수지맥의 끝
그럴 경우 이 산줄기는 물줄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금병산 ~ 꾀꼬리봉 ~ 부용봉으로 갈 게 아니라 금병산을 지나 좌틀하여 306봉을 지나, 210봉 ~ 244봉 ~ 225봉 ~ 비학산163m ~ 세종시 금남면 대평동 소재 학나래교 좌측의 합수점으로 가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이기 때문이죠.
그럴 경우 이 지맥은 도상거리가 30km가 넘으니 지맥이라는 계급을 갖게 됩니다.
그 지맥의 이름은 그 하천의 이름을 따 용수지맥이 되고.....
이렇게 산줄기를 찾을 때 우리는 합수점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 그 맥을 찾는 게 오히려 낫습니다.
쌀개봉에서 계룡시를 버리고 공주시 반포면을 만나면서 이제부터는 계룡면과 반포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용수지맥으로 가는 루트는 이 통천문을 빠져나와 바로 우측으로 희미한 내리막 길을 타고 진행하면 됩니다.
좀 위험한 낭떠러지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당히 지체됩니다.
09:13
20여 분을 지체한 뒤 바위 구간을 끝내고 관음봉 삼거리로 가는 길입니다.
09:19
관음봉 삼거리로 떨어집니다.
여기서 30분 정도 쉬면서 아침을 먹습니다.
막걸리 안주로는 떡만큼 좋은 게 없군요.
두릅도 좀 먹고....
09:56
그러고는 관음봉입니다.
어제 늦게 이곳을 오른 '노고단'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셨다고요?
또 하나의 추억을 쓰셨군요.
쌀개봉과 천황봉.
연천봉.
그리고 삼불봉과,
수정봉입니다.
뒷 라인 일렬로 선 용수지맥 라인의 좌측부터 우산봉 ~ 삼각점봉인 565.5봉 ~ 갑하산.
이젠 거꾸로 관음봉765.8m.
.................
용수지맥.
바로 뒤의 743.2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시고......
10:27
정작 그 743.2봉은 오르지 못하고.....
10:29
좌측으로 사면치기 하고,
10:41
다시 능선으로 올라 마지막 조망을 즐깁니다.
오른쪽 끝이 연천봉.
닭볏 같나요?
10:51
삼불봉으로 가지 말고 바로 금잔디 고개로 오라는 대장님의 엄명!
11:00
정말 오랜만에 노고단님을 만납니다.
거의 1년만이신가요?
비박을 즐기시는 분이라 우리랑은 개념이 틀리시니....
그 배낭 한 보따리를 지고 다니시려면...
부럽습니다!
기념촬영을 하고 한 조는 갑사 견학을 위하여 갑사 방향으로 하산하시는군요.
지도 #4
11:11
수정봉을 통과하고,
11:25
지도 #4 '마'의 안부를 지나,
11:36
614.6봉으로 오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반포면을 버리고 온전하게 계룡면 안으로 들어가 정맥길을 이어가게 됩니다.
11:52
지도 #4의 '바'의 곳에서는 지도와 지형의 생김새가 좀 어렵습니다.
크게 우틀하여 진행합니다.
12:02
지루한 능선이 계속되다 467.2봉에서 좌측으로 시야가 트입니다
좌측 끝이 갑사이고 멀리 계룡저수지가 보입니다.
12:35
우틀하고.
12:39
오늘의 날머리인 만학골재입니다.
날씨가 상당히 덥군요.
주최 측이 마련한 장소로 옮겨 간단하게 씻고 삼겹살로 뒷풀이에 갈음합니다.
대장님께서는 지난 주 미리 오셔서 장소 헌팅까지 해 주시고...
아주 좋은 장소 잡아주셨습니다.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반찬이고 술이고 너무 푸짐하군요.
과음에 실수나 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산행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읽느라고 힘드셨죠.
어찌 보면 산행 시간보다 더 긴 것 같습니다.
산줄기!
알고 가면 더 쉽고 재미 있고 의미 있습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천단은 철조망으로 가려놨다고 하니 안가시길 잘 했습니다. 조만간 저서가 나오나 보네요...
예. 형님 대간길에 대한 거 조금 긁적거리고는 있는데 ㅔ 능력에는 버거운 것 같습니다.
금남정맥의 산줄기가 참 시원하네요.조망도 시원하고,설명도 재미있어서 잘 보고 갑니다.관암지맥을 용수천을 감싸는 용수지맥으로 정정하셨네요.
산으로님도 뜻이 그러하고....
또 그게 맞는 거 같습니다.
계속 올리고는 있는데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들이 아직은 안 계신 것 같고....
요즘 가까운 정맥도 무박을 하네요 잘 안하든데 산행이 넘 일찍 끝나네
국공파와 뒷풀이 때문에 그렇게 진행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