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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나주평야발발잉치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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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흥미로운 고서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이완용의 천자문입니다.
이것 역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거예요.
지금 누구의 손에 입수되어 어느 서재 어느 구석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소개하면 아주 재미있을 거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첫번째 사진을 봅시다.
미적 감각을 살린 서체중 하나인 예서로 쓴 제목이 보입니다.
'천자문(千字文)'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한자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한문 입문서입니다.
글씨가 좋아보이죠?
이완용의 작품에 쓰인 제첨이니
아주 유명한 서예가가 썼을 거 같습니다.
이런 제목을 옛사람들은 '제자' 또는 '제첨'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책제목'이라는 뜻입니다.
빨간 도장 두개 옆에 '천자문'의 제목을 쓴 사람의 호가 보입니다.
'해강(海岡)' '제(題)'라고 적혀 있습니다.
빨간 도장엔 그 사람의 호와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해강이란 사람은 구한말 일류 서예가 김규진입니다.
그러므로 두개 도장엔 '김규진인', '해강'이라고 찍혀 있을 겁니다.
어쨌튼, 해석해 보면 '해강'이라는 사람이 제목(題)을 썼다는 의미입니다.
비단으로 정장한 표지가 참으로 고급스럽습니다.
한장 넘어가 봅시다.
맨 오른쪽에 '후작(侯爵) 이완용 서(書)'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삼척동자도 모두가 아는 만고죄인입니다.
친일 매국노 이완용이 쓴 천자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완용은 글씨를 참 잘 쓴 사람입니다.
친일을 하지 않았다면 글씨값이 수천만원을 호가했을 인물이죠.
같은 친일파인 박영효만해도 글씨값이 수백만원인데
이완용은 총리대신의 직함을 띄고
앞장서서 나라를 팔아먹었던 까닭에 시중에서는 겨우 기십만원에 거래됩니다.
후작은 조선 귀족가운데 공작 다음 가는 2번째 서열입니다.
왕족 이외에 후작을 받은 사람은 이완용이 유일합니다.
원래 백작 작위를 받았지만, 3.1운동을 잘 다스린 공로로 후작으로 승작하게 됩니다.
그때가 1920년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쯤인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
서예부문 심사위원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천자문이 나온 시기도 대략 1922년쯤일거예요.
빨간 사각형에 '길촌문고'라는 표식이 보입니다.
일단 길촌문고는 넘어가봅시다.
그 아래부분에 경성 암송당 장판(京城 巖松堂 藏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장판(藏版)'이라는 뜻은 판본을 소장하고 있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완용의 글씨를 석판에 새긴 뒤에
그 석판을 소유한 곳이 바로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에 위치한 암송당이라는 곳인 같네요.
이제 다시 한장을 넘겨 봅시다.
이완용의 서체가 보입니다.
전형적인 구양순의 해서체입니다.
구양순은 당나라때 서예가로
엄근진(엄격 근엄하고 진지한)형식의 글씨를 잘 썼습니다.
주로 우리나라에선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까지 유행한 서체가 바로
구양순체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서예 학원에서
입문할때 많이 배우는 글씨가 구양순체라고 합니다.
한편, 고려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유행한 서체는 조맹부체입니다.
엄근진의 구양순체와는 달리 활달하고 낭창한 글씨입니다.
세종대왕 아들 안평대군이 이 조맹부체를 잘썼다고 합니다.
참 재밌습니다.
이완용이란 인물자체가 말수도 적고, 웃음도 없으며
심지어 기계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냉혈한이었는데요.
글씨가 성격을 따라간다고
어린아이를 위한 천자문에 엄근진의 구양순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양순체말고도 한석봉, 왕희지, 조맹부 등 여러 서체가 있는데
왜 하필 구양순체였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완용이 서예 선생에게
처음 글씨를 배울 당시, 구양순체를 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천자문 역시, 자신이 배운 그대로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닐까요?
그저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사실, 해서체는 서예가들이라면 모두 잘쓰기 때문에
명필이다, 졸필이다.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한번 보고 넘어 갑시다.
천자문은 '언재호야(焉哉乎也)'라는 아무 뜻이 없는 조사로 마무리 됩니다.
완용 천자문도 마찬가지겠죠.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천자문에 한글로 음과 훈을 다는 것이
1500년대 제작된 석봉 천자문 이후
우리나라의 전통인데,
음과 훈이 붙은 한글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나라를 팔아먹더니, 한글은 또 어디에 팔아 먹은걸까요?
가증스런 그의 행동에 혀 한번 차고 넘어 갑시다.
언재호야(焉哉乎也)의 옆을 보시면,
도장 3개가 보입니다.
완용의 주문인(글자가 붉게 나오도록 새긴 도장)과
백문인(글자가 하얗게 나오도록 새긴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주문인은 일당(一堂). 이완용의 호입니다.
백문인은 이완용(李完用), 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마지막 주문인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인왕산초부(仁王山樵夫)'
인왕산에 살면서 그저 나무나 하는 나무꾼이라는 뜻입니다.
이완용은 인왕산 밑에 서촌, 지금의 옥인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수백년전부터 노론출신 고관대작들이
대대로 거주하면서 권력을 휘두르던 곳입니다.
구한말 부패왕이었던 친일파 윤덕영 역시,
이곳에 조선 아방궁으로 불리던 벽수산장을 지어놓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식민지 시대에 여의도 넓이의 5배나 되는 거대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재벌이자, 현금왕이자 조선 후작 이완용이
집안 노비들이나 하는 '나무꾼'을 자칭했다니.
평생 지게 한번 메어 보았을까요?
사실 글이나 그림 꽤나 그렸다는 문인들 가운데서는
겸손의 의미로 '초부(나무꾼)'라는 호를 많이 사용하고
자신의 작품에 남기기도 했습니다만,
이완용의 경우는 달리 보아야 겠죠.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배반해
부정한 권력으로 호의호식하는 인사가
무슨 낯짝으로 '인왕산초부'라는 호를 새겨
낙관으로 찍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완용의 '인왕산초부'
(인왕산 근처에서 그저 나무나 하는 나무꾼)
이라는 호는 예술하던 문인들이 추구한
은일 사상, 자기 겸손의 의미가 아니라
부정한 시대에 이율배반적인 그의 성격과
귀족적 풍류로 폄하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시 한장 넘어가 봅시다.
'心正者筆正以此心畵敎其子孫故曰蒙養以正'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해석해 보겠습니다.
'마음이 바르다는 것은 글씨가 바르다는 것인데,
이 마음그림(心畵-심화:서예)으로써 자손을 가르치는 까닭에
이를 일컬어 어린애를 바름(正)으로 기른다고 한다.'
아주 좋은 언사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태평한 시대에 훌륭한 인물들에게나 어울리는 표현이지,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식민지 시대를 대표한 이완용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완용의 글씨를 통해 어린이들이 어떤 바름(正)을 얻을까요?
이완용 같은 매국노가 되라는 말 밖에 더 되겠습니까?
모순의 시대에 모순적인 말.
충신과 역적이 뒤바뀐 세태를 감안해 읽어야 하겠습니다.
과연, 이런 아둔한 발문을 누가 지었을까요?
팔십오수(八十五叟) 운양서(雲養書)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이 글을 쓴 사람은 85살의 늙은이 운양 김윤식입니다.
수(叟:늙은이)라는 표현은 자기 겸사의 의미입니다.
주문인 도장엔 '운양', 백문인 도장엔 '김윤식인'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근현대사 공부하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1881년 영선사를 이끌고 청나라를 방문한 그 김윤식이 맞습니다.
1884년 갑신정변 김옥균을 소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대동해
조선으로 귀국한 그 김윤식이 맞습니다.
또, 한일병합 당시 '불가불가'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를보인
그 김윤식입니다.
이완용 글씨를 통해 어린아이에게 바름을 얻으라는
헛소리를 하다니...
구한말 대문장가로 소문난 김윤식이 얼마나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잘 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어쨌튼 죽기 몇달전에 쓴 글씨로
이완용에게 거나하게 아부하고 세상 떠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장을 봅시다.
이완용의 천자문을 소유한 사람이 쓴 배관기(拜觀記)로 보입니다.
배관기란 유명인이 쓴 글씨나 그림을 보고
감상했다는 사실을 증거로 남기는 겁니다.
한번 읽어나 봅시다.
'길촌문고(吉村文庫)'
'양현거사(良賢居士)'
백문인 도장엔 '양현거사'라고 찍혀 있습니다.
주문인 도장엔 '길촌지인(吉村之印)'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길촌문고'의 '길촌'이 이 사람의 성인가 봅니다.
그렇니깐, 이 책을 소장한 사람이 길촌문고의 주인이라는 뜻이겠죠.
소화 28년 11월 15일 팔십삼옹(八十三翁) 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아
1953년 11월 15일 '길촌'이라는 사람이 83세때 배관기를 작성한 것입니다.
그 옆에 흥미로운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명치 28년(1895년) 2월 11일 인천에 상륙해 경성에서 거주함.
소화 4년(1929년) 일본으로 귀향. '
이 책을 소장한 사람은 한국에 거주했던 일본인이었습니다.
구한말 풍운기인 1895년 조선으로 와서 일본의 한일병합과 식민화 과정을 철저히 목도하고
1929년 본토로 귀국한 일본인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분명 한국의 사정에 대해 정통했으리라 생각되네요.
이를 증명이나 하듯이
다음장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제목을 쓴 사람은 해강인데, 조선 제일의 서화가들 가운데서도 대가이다.
찬문을 쓴 사람은 천수(泉水) 조선총독 제등 실(사이토 마코토)
발문을 쓴 사람은 대학자 김충식'
찬문(讚文)이란 그 사람의 명예나 생애를 기리는 글을 말하고
발문(跋文)이란 본문 내용과 관련한 사항을 간단히 적은 글입니다.
사이토 마코토의 호는 천수(泉水)가 아니라 고수(皐水)이고,
발문을 쓴 사람은 앞서 보셨듯이 김충식이 아니라 김윤식입니다.
약간의 오류가 있긴 하지만, 어쨋튼 길촌이란 일본인은
한국에서의 체류 경험이 있기도 하고,
서점 주인인만큼 어느 정도 문식도 있었기에
천자문에 나오는 인물이 한국에서 어떠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잘 알던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제국시대의 일본인으로서 영광을 느끼고 싶은듯
이처럼 1953년 11월 15일.
1945년 8월 패망을 맞은 뒤 9년이 지났건만
배관기를 적으면서까지 소중히 모시고(?) 있었겠죠.
어쨋튼 이완용의 천자문은 조선 총독이 찬문을 붙이고,
경학원 대제학이자 구한말 대학자 김윤식이 발문을 써주었으며,
조선 최고의 서예가인 해강 김규진이 제자(題字)를 맡아서
발행한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천자문의 가격은 얼마였을까요?
오른쪽에 정가가 적혀 있습니다.
정가 3원 50전이라고 합니다.
현재 가격으로 약 13만원 정도 되었으니
어린이를 학습시키기 위한 교육용 교재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겠죠?
그저 있는 사람들의 눈요기용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용 천자문 발행 사항을 살펴 보겠습니다.
대정 11년(1922년) 9월 15일 인쇄.
동년 동월 20일 발행.
불허복제(무단으로 복사하는 것을 허락치 아니함)
필자 이완용.
조선 경성 본정 이정목(朝鮮 京城 本町 二丁目)
발행자 신정무지보.
동경 본향구 진사정 36(東京 本鄕區 眞砂町 36)
인쇄자 구송철차랑(久松鐵次郞)
발태원(發兌元: 출판하고 판매한 곳) 경성 본정 이정목 암송당 경성점.
이 천자문은 1922년 9월에 인쇄, 발행된 것으로 보아
1922년 3월 이완용이 조선미술박람회 서예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것을 기념할 목적으로 제작, 판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성 본정(本町)은 일본인의 거주지역으로 지금의 명동입니다.
완용의 주소와 발행처의 주소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그저 발행처의 주소를 속여 필자의 주소인양 기재한 걸로 판단됩니다.
이곳 경성 본정엔 이완용의 천자문을 출판한
발태원(發兌元: 출판하고 유통하는 곳)인 암송당 경성지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자. 지금까지 이완용의 천자문을 살펴 보았습니다.
광복절을 맞이해 이완용이라는 실체를 그의 글씨로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팔고 민족을 배반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글씨로 소일하며
고위직 일본인들과 교제를 통해
귀족적 풍류를 사모한 친일 인사에 불과했으며
조선 민중과는 철저히 괴리된 인물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첫댓글 거물놀이 오지게 했네 매국노 주제가
그 자손과 자손들이 대대손손 얼굴 못 들고 살아야 돼
저 멋들어진 글씨를 보존해야겠단 생각이 하나도 안듦… 찢어버리고 싶다;;
나는 이완용이 이런 책을 썼다는걸 몰랐거든 그 부분에 대해선 완전 흥미돋이긴하다
미친.... 후세에 길이길이 남길 나라를 팔아먹은 천하의 몹쓸 매국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