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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화제작 6편 집중 리뷰]And the Oscar Goe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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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1월부터 3월까지는 축제 기간이다. 통상적으로 1월 하순에 열리는 골든 글로브와 2월 말부터 3월 말 사이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레드카펫을 장식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주요 부문을 휩쓸었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이어 7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LA 코닥극장에서 3월 5일 열린다. 올해 주요 부문에 오른 화제작 여섯 편을 중심으로 주요 부문 수상작(자)을 미리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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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의 시 |
8 nominations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촬영상, 음악상
통계가 곧바로 결과로 이어진다면 올해의 작품상 수상작은 단연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제외하더라도 이 작품이 받은 상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난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국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열광했다. 유럽의 3대 영화제 수상작과 오스카 수상작 결과가 겹치는 일이 거의 없음을 감안하더라도 <브로크백 마운틴>이 골든 글로브 이상의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헐크>로 좌절의 시기를 겪었던 이안이 다시 ‘작은 영화’로 돌아가 만든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극히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필라델피아> 식의 정치적인 메시지는 전혀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남자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외부의 제약 때문에 힘겨워 하는 고전적인 연인과 별다를 바가 없다. 스물이 채 되지 않은 두 카우보이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록키산맥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수줍은 성격의 에니스와 적극적인 성격의 잭은 밤낮으로 일하며 친구 이상의 친밀감을 느낀다. 하룻밤의 격정적인 사랑으로 혼란에 휩싸인 두 사람은 방목철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에니스와 잭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감정이 결코 순간의 격정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참을 수 없는 열정에 휩싸인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만나?게 전부이지만 두 사람은 소중한 만남을 20년간 이어간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잭과 에니스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통스러울 뿐이다. 이안 감독의 절제된 연출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라는 점만 빼면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와 거의 흡사한 구조를 지닌다.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을 충실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이안 감독은 정치적 메시지나 극적인 장치보다 극중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집중한다. 모든 순간순간에 사려 깊은 시선을 담아낸 이안 감독의 장인정신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층적으로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진실한 관찰이고 성실한 보고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위대한 것은 사랑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사랑의 묘사가 위대하기 때문이다. 에니스의 마지막 맹세에 눈물을 쏟아내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라도 이 작품이 위대한 러브스토리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안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과 원작을 뛰어넘은 각색 솜씨는 감독상, 각색상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손을 들어준 작년의 심사위원단이 비슷한 취향을 보여준다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은 무척 높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히스 레저는 <카포티>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에게 밀린다. 남우조연상 후보인 제이크 질렌할 역시 현재로서는 <신데렐라 맨>의 폴 지아매티에게 밀리는 상황이다. |
<굿나잇 앤 굿럭> |
6 nominations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브로크백 마운틴>이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베니스영화제에서 가장 인기를 모았던 작품은 <굿나잇 앤 굿럭>이었다. 결국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에 만족해야 했지만 많은 평론가들은 조지 클루니를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잇는 명감독으로 예언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컨페션>에서 보여준 조지 클루니의 재능은 <굿나잇 앤 굿럭>에 비하면 약과 수준이기 때문이다. 뉴스 앵커였던 아버지를 따라 방송국을 드나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려 만든 조지 클루니의 <굿나잇 앤 굿럭>은 1950년대 초반 매카시 열풍의 주역인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에 맞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양심을 지키려 했던 데이비드 머로의 카리스마 넘치는 투쟁을 고전적인 흑백영상으로 담아낸다. 저널리스트 머로의 뚝심과 고민을 형상화한 로버트 엘스윗은 단연 촬영상 0순위 후보다. 그러나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스트러데언은 절제된 연기보다 강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오스카의 취향을 고려할 때 다소 수상 가능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
<뮌헨> |
5 nominations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각색상, 음악상
9·11 이후 미국인이 열망하는 것은 평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대립이라는 위험한 소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정치적인 메시지보다 평화주의를 앞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전쟁은 전쟁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사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평화를 생각하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생각은 보편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액션 스릴러와 정치 드라마, 심리 드라마를 조합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재능은 나무랄 데 없이 뛰어나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가장 진지한 영화를 들고 조심스럽게 나타난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미국의 평단이 극찬을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뮌헨>이 <쉰들러 리스트>가 오른 경지까지 올랐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뛰어난 상업영화이며 진지한 스릴러임에도 영화적 완성도는 여타 작품상 후보에 밀린다. 그만큼 다른 후보작들이 쟁쟁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감독상 수상 가능성도 이안과 조지 클루니를 넘어서지 못한다. 각색상 역시 <브로크백 마운틴>과 <카포티>에 밀리는 형국이다. |
<앙코르> |
5 nominations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의상상, 편집상, 사운드믹싱상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에서 <앙코르>가 평론가보다는 대중 취향에 가깝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 리 루이스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전설의 컨트리 가수 조니 캐시의 삶을 담은 <앙코르>는 거의 <레이>의 후속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앙코르>가 주목하는 것은 창작자의 고통이 아니라 조니 캐시(호아킨 피닉스)와 준 카터(리즈 위더스푼)의 힘겨운 로맨스다. 그것이 나열식의 진부한 전기영화와 <앙코르>를 구분하는 잣대다. <처음 만나는 자유>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맨골드의 역량이 최대로 발휘된 <앙코르>는 감독의 따뜻하고 소박한 시선과 조니 캐시의 음악이 달콤하게 조화된 수작이다. 100퍼센트의 기량을 선보인 호아킨 피닉스는 <앙코르>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주역이기는 하지만 수상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주요 화제작들이 공교롭게도 남자배우 위주의 영화라 리즈 위더스푼은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할 확률이 무척 높다. |
<크래시> |
6 nominations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편집상, 음악상
국내에는 음악영화 <레드 핫>으로 이름을 알린 폴 해기스의 두 번째 연출작 <크래시>는 TV 시리즈 작가로서 30년간 활동해 온 그의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역작이다. 다중 플롯의 복잡한 구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로버트 알트먼의 <내시빌> <숏컷>을 연상시키고, 세계의 축소판인 LA에 대한 풍경화라는 점에서 <콜래트럴>을 떠오르게 만든다. 말하자면 <크래시>는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 <숏컷>과 <내시빌>이 뒤섞여 <콜래트럴>과 만난 영화다. 제목처럼 <크래시>의 인물들은 늘 충돌한다. 충돌은, 감독이 쓴 대사에 따르면 관계에 대한 열망의 표시다. LA 형사로 출연하는 돈 치들은 첫 장면에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우리가 서로에게 충돌하는 것은 접촉의 감각(sense of touch)을 간절히 그리워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으로써 뭔가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대담하게도 도입부에서 연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폴 해기스는 LA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삶을 몇 가지의 ‘충돌’ 사건으로 연결시킨다. 거기에는 차량 강도가 있고, 인종 차별이 있으며, 정치적 비리가 있고, 가족의 해체가 있다. 충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지만, 한편으로는 타인과 접촉함으로써 도시 속의 인간관계를 몸으로 느낀다. 선과 악이 뒤섞인 인물들의 아이러니는 LA라는 도시에 그대로 이식된다. 의식적으로 플롯 곳곳에 배치한 아이러니는 이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서 작품의 세계관으로 기능한다. 인종차별주의자 경찰을 훌륭하게 연기해 낸 남우조연상 후보 맷 딜런은 이를 정확히 스크린으로 옮긴다. 현대 세계에 대한 은유로 LA를 택한 폴 해기스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도시의 스펙트럼을 해부한다. 크고 작은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매정한 대도시에서 감독이 발견한 것은 타인에 대한 애정이고 인간관계에 대한 열망이다. <크래시>는 근래 미국영화 가운데 인종 문제에 대한 가장 진지한 고민을 담은 영화이자 도시에 관해 가장 깊숙이 성찰하는 영화다. 완성도에 비해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 가능성이 낮은 것은 오스카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경쟁작 <브로크백 마운틴> <카포티> <뮌헨>이 모두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 각본상 수상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카포티> |
5 nominations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여우조연상
트루먼 카포티를 소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설명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이다. 160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동성애자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말투를 지닌 카포티는 유머러스한 말재주와 깊은 식견으로 언제나 좌중을 이끌었다. 인기 작가로 활동하던 그의 삶을 뒤바꿔 놓은 것은 캔자스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해 사건이었다. 신문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낀 카포티는 <뉴요커>에 연락해 사건을 직접 취재하겠노라고 나선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의 원작소설을 발표하기 직전에 어릴 적 친구 하퍼 리를 대동하고 캔자스로 떠난 카포티는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두 명의 용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사건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간다. 특히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연약해 보이는 외모의 페리 스미스였다. 기사의 소재로 쓰기에는 아깝다고 느낀 카포티는 논픽션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고 감옥에 갇힌 페리 스미스와 잦은 만남을 갖는다. 카포티의 취재 과정은 이후 <인 콜드 블러드 In Cold Blood>라는 소설로 완성되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다(이 소설은 이후 리처드 브룩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하지만 카포티는 이후 어떤 소설도 완성하지 못했다. 페리 스미스의 그의 교수형으로 소설의 엔딩을 장식하고 싶었던 창작자의 파렴치한 욕망에 자괴감을 느껴서일까?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인 콜드 블러드>는 카포티의 남은 생애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전기영화의 성격을 띠는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의 일생이 아니라 소설 <인 콜드 블러드>의 창작과정을 그린다. “스미스와 나는 같은 집에서 자라다 각각 앞문과 뒷문으로 나온 것 같은 존재들이다”라고 말했을 만큼 카포티는 페리 스미스의 삶에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교수형이 임박했을 때 페리 스미스를 외면한 카포티의 이중적인 모습은 두 사람의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캐릭터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동시에 창작자의 이면을 묘사한다. 깨질 듯 연약하며 고집스럽고 집요한 트루먼 카포티를 재현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는 단연 이 영화의 핵심이다. 캐릭터가 강한 연기에 많은 점수를 주는 오스카의 취향으로 봤을 때 가장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라 할 수 있다. ![]() |
첫댓글 이쁜 웃음만큼 마음도 엄청 이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한 윤슬님의 수고를 봐서라도 저 영화 꼭 보러 가야징 브로크백 마운틴..^^*
사랑스러운 여우 님과 같이 할 수 있어 마음이 참 좋습니다. 우리, 열심히 합시다!!!
아! 나도 그리운 여유님 말씀처럼 윤슬님의 해바라기같은 웃음을 닮고 싶어지는 이 아침^^ 애들도 새학기~ 영화 보러 날 잡아 가야지!ㅎㅎㅎ
가을천사 님, 수다가 통하는 사람이더군요! 그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