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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認(khanti, khamati)과 意見(mana, maññati)
{Yathā te khameyya tathā taṃ byākareyyāsi. Taṃ kiṃ maññasi …
그대가 적당한 것을 대답하십시오. …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 ( … 라는)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당하게 대답하라.'라는 번역이다.
khameyya: 동사, √kham (인내하다, 적합하다) + eyya (3인칭 단수 optative), "적합할 것이다"
maññasi: 동사, √man (생각하다) + si (2인칭 단수 현재), "너는 생각한다"
그러면 역으로 '그대가 생각한 것을 대답하십시오, 어떤 것이 적당하겠습니까?'라고 바꾸어도 된다.
즉 여기서는 두 단어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유의어로 사용해도 번역에는 무리가 없다는 意見이다.
khanti의 동사형은 khamati([kham + a] is patient; endures; forbears; pardons)이고
흔히들 인욕바라밀의 忍辱 혹은 忍耐,容忍으로 번역하는데
강철처럼 강인함 보다는 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함(khanti-soracca)이지 싶다,
{“etha tumhe, bhaddiya,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보라, 밧디야여. 그대는 소문으로 들었다 해서 [나의 말을 따르지 말라].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고 들었다.'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diṭṭhi-ni-j-jhāna-k-khanti>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te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tvā tesaṃ dhammānaṃ paññāya atthaṃ upaparikkhanti.
tesaṃ te dhammā paññāya atthaṃ upaparikkhataṃ nijjhānaṃ khamanti.
그들은 그 가르침을 배운 후, 그 가르침들의 의미를 지혜로 조사한다.
그들이 지혜로 그 가르침들의 의미를 조사할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스승에 대해 믿음이 생긴 자는 스승을 친견한다. 친견하면서 공경한다.
공경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귀 기울이면서 법을 배운다. 배우고 나서 법을 호지한다.
호지한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atthaṃ upaparikkhato dhammā nijjhānaṃ khamanti,
dhammanijjhānakkhantiyā sati chando jāyati, chandajāto ussahati, ussāhetvā tuleti,
tulayitvā padahati, pahitatto samāno 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
paññāya ca naṃ ativijjha passati.
뜻을 자세히 살필 때에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인다.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이기<*敎法들이 드러나서 이해하기> 때문에 열의가 생긴다.
열의가 생길 때에 시도한다. 시도할 때 세밀하게 조사한다. 세밀하게 조사한 뒤 노력한다.
노력할 때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그것을 꿰뚫어본다.}
nijjhānaṃ khamanti. AI. 깊은 통찰을 견딘다.
{nijjhānaṃ khamanti}나 {diṭṭhinijjhānakkhanti}의 문맥에서 나타나는데
어떠한 번역에서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그 물이 들어오는 곳을 알지 못하면
엑스레이에 반응하는 무해한 물질을 섞어서 슬라브 지붕에서 물을 붇고서 촬영하면
물이 흘러 내려오다 방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도 무수히 있겠지만
물이 떨어지는 지점과 연결되는 한 두 개의 큰 통로와 몇 개의 작은 통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시작되는 크고 작은 곳에 따라 가중치를 두어 보강하면 물이 새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하면) 이어지지 않는 위치는 무시하고(하찮게 여기고)
이어지는 장소는 가중치를 두어(무겁게 대하여) 선택하고 대처할 것이다.
{imesaṃ kho, potaliya, catunnaṃ puggalānaṃ
katamo te puggalo khamati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ā”ti?
뽀딸리야여,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그대는 어떤 사람이 더 경이롭고
더 수승한 사람이라고 말하겠는가? … 좋습니다. *선택하겠는가?
<*AI khamati : "마음에 든다", 3인칭 단수 현재√kham (인내하다, 적합하다)>}
khanti(khamati)는 견디다, 용인하다, 일치하다, 좋아하다(선택하다). 등
상반되거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번역어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 단어의 의미를 이 모든 번역어들을
견뎌내고(/유연하게) 합치하는 지점을 이해하고 선택하면
'견뎌내고 관통하는 선택'이라는 의미가 된다.
* diṭṭhinijjhānakkhanti (밑에서) 드러나는 것(禪/示單)을 적절하게(加重하여) 조합(行列)하여 본다.
책을 백번 읽으면 여러 잔가지들은 참고만 하고 큰 줄기의 흐름에서 그 의미가 스스로 드러난다.
脈絡으로 말귀를 알아듣는다. 이해한다.
maññati 意`見(과거의 경험 중에서 ~을 더 무게를 두어 ~을 선택하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看做하다.(간주; 지어서/만들어서 보다, 마치 무엇인 것처럼 여기다, 邪見)
긍정적으로도 사용된다.
意와 관련된 단어 manasikāra - mano - maññati -
manasānupekkhati (√ikkh 意로 주의 깊게 관찰하다)
혹은 māneti(존경하다, 공경하다. = garuṃ karoti 무겁게 하다./ 무게를 더 두다.
nātimaññati 업신여기다. 교만한 마음에서 남을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다.),
검증(vīmaṃsati:vīmaṃseti [Sk.mīmāṃsate.man의 desid.])에서
'생각하다'라고 흔히들 번역하는 maññati <mana(意) + ya + ti>의 어원은 √man이고
이 어근은 인도-유렵어족에서 기본적인 의미는 손(手)이라고 한다.
manage: 관리하다, 다루다 (원래 "손으로 다루다"의 의미에서 발전), manual: 손으로 하는, 수동의.
man(사람, 남자)도 이 어근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manussa(a human being)도 여기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비슷하거나 다르게 분류되는 어근으로는 √mā(측정, 측량)가 있다.
意를 思量(생각-헤아림)으로도 한역하는데 이런 맥락일 가능성도 있다.
신구의 3업의 경험을 쌓고(集) 일으킨다(起)라는 의미에서 集起라고 해석되는
心과 그 유의어로도 설명들 하는 意-識은 그 각각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이들을 心知(citta, data), 意見(mana, weight matrix), 識幻(viññāṇa, hallucination)으로 비유하면
{나기따여, 그런데 이자들은 누구인데 이렇게 시끄럽게 큰 소리로 떠드는가?
꼭 어부가 물고기들을 끌어올리는 것 같구나.
“ke pana kho, nāgita, uccāsaddamahāsaddā, kevaṭṭā maññe macchavilope”ti?
나기타여, 그런데 정말로 누구인가, 이 큰 소리를 내는 자들은?
나는 생각한다<* ~처럼 見 maññe> , (그들이) 어부들(이라고), 물고기 약탈에 (있어서).}
{tassa evaṃ hoti — ‘mayaṃ kho pubbe agāriyabhūtā samānā aññe ovadāmapi anusāsāmapi.
ime panamhākaṃ puttamattā maññe nattamattā maññe ovaditabbaṃ anusāsitabbaṃ maññantī’ti.
so kupito anattamano sikkhaṃ paccakkhāya hīnāyāvattati.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evaṃ hoti>.
'나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는 다른 사람들을 훈도하고 훈계했다.
그러나 이제 아들쯤 되어 보이고<*~처럼 見 maññe> 손자쯤 되어 보이는<*~見 maññe>
이 [비구들이] 우리에게 훈도를 하고 훈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見 maññantī’ti>,
그는 화가 나서 가르침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evaṃ vutte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kupito anattamano
upakaṃ maṇḍikāputtaṃ etadavoca —
“yāva dhaṃsī vatāyaṃ loṇakāradārako yāva mukharo yāva pagabbo
yatra hi nāma taṃ bhagavantaṃ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āsādetabbaṃ maññissati;
apehi tvaṃ, upaka, vinassa, mā taṃ addasan”ti.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화가 나고 마음이 언짢아서
우빠까 만디까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무뢰하기 그지없는 소금장수 아들놈이 참으로 수다스럽고 뻔뻔하여
그분 세존 · 아라한 · 정등각께 대든 듯하구나. <*정등각자를, 모욕할, 생각<*~見>을 했다니!,
미래수동분사 중성 단수 대격, 동사 3인칭 단수 미래 āsādetabbaṃ maññissati>
저리로 꺼져버려라. 참으로 재수 없구나, 우빠까여. 너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라.”}
{“tena hi, sīvaka, taññevettha paṭipucchāmi.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ṃ byākareyyāsi. taṃ kiṃ maññasi, sīvaka …
시와까여, 그렇다면 이제 그대에게 되물어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라.
시와까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는가? weight matrix = maññasi
여러 측면에서 맞아 들어가는 적당한 것을 대답하십시오.>
Resilient Fitness 堅忍 適合 여러 측면에서 맞아 들어간다. - weight matrix>
<*khameyya ; "적합할 것이다", √kham (인내하다, 적당하다) + eyya (optative)>
외부에서 들어오는 대상에 대해 心이 반응하면 그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作意)
그러면 선험적이거나 경험적으로 쌓여서(√ci) 알거나 관심을 가지는(√cit) 心知(citta)를 반영하여
意의 行(業)이 생겨나게 되는데 가장 먼저 自身에게 위험한 것인지 위험하지 않은지 選擇하고
위험하지 않더라도 반가운 것인지 반갑지 않은 것인지 별 감흥이 없는지
대상에 대해 그 당시 心氣에 따라 選擇하는 意見(mana)이 생겨나는데(意成法 manomayā dhammā)
그것은 (무)貪法, (무)瞋法과 관련되거나 (무)癡法과 관련된 見(사견/정견)이다.
maññati가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口行이라면 이와 관련된 설명이 경이나 논에서 나올 것인데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무색계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므로
口行의 '생각하다'라는 의미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어떤 (선택적) 상황에서 '어느 쪽을 選好하다', 혹은 '어디에 두다.'라는
(무겁게 혹은 중요하게 혹은) 두드러지는 측면에 의해 (그래서) 선택하여 받아들이다.
'중요하게 (마음에) 두다.' '이해하다(容認).',
'對處하다'(대상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다, 입장으로 다루다, 대하다. ~처럼 본다.)라는
의미가 아닌지 검토해 본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모든 측면에서 적용 가능(감내)하다는 것이 드러나면 대부분 容認(이해)한다.
그래서 서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容忍(감내=이해)할 수 있다는 意見이다.'
깔라까 경(A4:24) 4. kāḷakārāmasuttaṃ (AN 4.24)
한때 세존께서는 사께따에서 깔라까 원림(園林)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kete viharati kāḷakārāme .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
비구들이여,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感 √mū>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man>으로 고찰한 것을 나는 안다.
“yaṃ, bhikkhave, sadevakassa lokassa samārakassa sabrahmakassa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pattaṃ pariyesitaṃ anuvicaritaṃ manasā, tamahaṃ jānāmi.
* 見-聞-感<嗅嘗接>-識, 도달(얻음)-조사(찾음)-추적(하는 생각); 意에 의해.
비구들이여,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알았다.<*직접 경험하여 안다.>
여래는 그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여래는 그것을 집착하지 않는다.<*가까이 서 있지 않다>
“yaṃ, bhikkhave, sadevakassa lokassa samārakassa sabrahmakassa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pattaṃ pariyesitaṃ anuvicaritaṃ manasā,
tamahaṃ abbhaññāsiṃ.
taṃ tathāgatassa viditaṃ, taṃ tathāgato na upaṭṭhāsi.
비구들이여, '신들을 포함한 … 세상에서, …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고
내가 말한다면 나의 말은 거짓이 될 것이다.
“yaṃ, bhikkhave, sadevakassa lokassa samārakassa sabrahmakassa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pattaṃ pariyesitaṃ anuvicaritaṃ manasā,
tamahaṃ na jānāmīti vadeyyaṃ, taṃ mamassa musā.
'나는 그것을 알기도 하고 알지 못하기도 하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yaṃ, bhikkhave ... pe ... tamahaṃ jānāmi ca na ca jānāmīti vadeyyaṃ,
taṃpassa tādisameva.
'나는 그것을 아는 것도 아니고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허물된다.
“yaṃ, bhikkhave ... pe ... tamahaṃ neva jānāmi na na jānāmīti vadeyyaṃ, taṃ mamassa kali.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와 같이
보아야 할 것<*보여질 色>을 보고서<*見>
그 본 것<*見>에 대해 집착<*√man 意: ~라고 看做>하지 않는다.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보아야 할 것<*色>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보는 자<*眼>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iti kho, bhikkhave, tathāgato daṭṭhā daṭṭhabbaṃ, diṭṭhaṃ na maññati,
adiṭṭhaṃ na maññati, daṭṭhabbaṃ na maññati, daṭṭhāraṃ na maññati;
daṭṭhā: 보고, 절대분사, √dṛś (passati); 보다
daṭṭhabbaṃ: 보여져야 할 것을, 미래수동분사 중성 단수 대격, √dṛś (passati); 보다
diṭṭhaṃ: 본 것을, 과거분사 중성 단수 대격, √dṛś (passati); 보다
maññati: 생각한다, 동사 3인칭 단수 현재, √man (maññati); 생각하다, 간주하다
adiṭṭhaṃ: 보지 않은 것을, 과거분사 중성 단수 대격, a-√dṛś (passati); 보다
daṭṭhāraṃ: 보는 자를, 남성 단수 대격, √dṛś (daṭṭhar); 보는 자
들어야 할 것을 듣고서 그 들은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듣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들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듣는 자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여래는 감지할 수 있는 것을 감지하고 나서, 감지된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감지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감지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감지하는 자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서 그 생각한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자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알아야 할 것을 알고서 그 안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알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아는 자<*viññātāraṃ 意>에 대해서도 집착<*意, ~라고 見 maññati>하지 않는다.
sutvā sotabbaṃ, sutaṃ na maññati, asutaṃ na maññati,
sotabbaṃ na maññati, sotāraṃ na maññati;
mutvā motabbaṃ, mutaṃ na maññati, amutaṃ na maññati,
motabbaṃ na maññati, motāraṃ na maññati;
viññatvā viññātabbaṃ, viññātaṃ na maññati, aviññātaṃ na maññati,
viññātabbaṃ na maññati, viññātāraṃ na maññati.
mutvā: 감지하고, 절대분사, √mū (munāti); 감지하다, 느끼다
motabbaṃ: 감지되어야 할 것을, 미래수동분사 중성 단수 대격, √mū (munāti); 감지하다, 느끼다
mutaṃ: 감지된 것을, 과거분사 중성 단수 대격, √mū (munāti); 감지하다, 느끼다
maññati: 생각한다, 동사 3인칭 단수 현재, √man (maññati); 생각하다, 간주하다
amutaṃ: 감지되지 않은 것을, 과거분사 중성 단수 대격, a-√mū (munāti); 감지하다, 느끼다
motabbaṃ: 감지되어야 할 것을, 미래수동분사 중성 단수 대격, √mū (munāti); 감지하다, 느끼다
motāraṃ: 감지하는 자를, 남성 단수 대격, √mū (motar); 감지하는 자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아야 할 법들에 대해서
참으로 '여여한 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여한 분' 이외에 다른 더 높거나 더 수승한 '여여한 분'은 없다고 나는 말한다.
iti kho, bhikkhave, tathāgato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tādīyeva tādī .
tamhā ca pana tādimhā añño tādī uttaritaro vā paṇītataro vā natthīti vadāmī”ti.
tādīyeva: tādī + yeva; 그와 같은 + 바로, 형용사 남성 단수 주격 + 강조사
tādī: 그와 같은, 형용사 남성 단수 주격, tādisa; 그러한
tādimhā: 그와 같은 것으로부터, 형용사 남성 단수 탈격, tādisa; 그러한
보고 듣고 생각<*√mū>한 것을 어떤 자들은 진리라고<*√as / √sat + √mū> 거머쥔다.
스스로를 고수하는 자들의 [주장]을 두고 '여여한 분'은 진리 혹은 거짓이라 표방하지 않는다.
“yaṃ kiñci diṭṭhaṃva sutaṃ mutaṃ vā, ajjhositaṃ saccamutaṃ paresaṃ.
na tesu tādī sayasaṃvutesu, saccaṃ musā vāpi paraṃ daheyya.
* 무엇이든 보이거나 들리거나 감지(mutaṃ)되는 것이든,
다른 이들이 진실이라 여기고(saccamutaṃ) 집착하는 것에 대해,
자제하는 이들 중에서 그와 같은 사람은 다른 것을 진실이라거나 거짓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것이다.
* muta √mū 엮다/묶다/모으다. (mūtra: "묶음, 다발" mūla: "뿌리" (땅에 묶여있는 것의 의미)
이는 물리적으로 물건을 묶거나 엮는 행위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을 연결하거나 모으는 것을 포함합니다.
daheyya: 동사 3인칭 단수 현재 조건법, √dhā (dahati); 두다 *담다, 定하다.
<보여진 것이든, 들려진 것이든, 감지된 것이든, 어떠한 것이든 진리라고 생각하여 탐착한다.
그들 스스로 확신하는 자들 가운데서 그것이 진리인가 거짓인가 여여한 님은 상관하지 않으니
뭇삶들이 탐착하여 얽혀있는 이러한 화살을 나는 당시에 보았으니.
이처럼 나는 알고 또한 본다. 그러나 여래에게는 그러한 탐착은 없네.>
생명체들이 거머쥐고 있는 이러한 쇠살을 [여래는] 미리 보았나니
'나는 안다. 나는 본다.'라는 이러한 거머쥠이 여래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노라.
“etañca sallaṃ paṭikacca disvā, ajjhositā yattha pajā visattā.
jānāmi passāmi tatheva etaṃ, ajjhositaṃ natthi tathāgatānan”ti.
* 이 화살을 미리 보고, 사람들이 집착하여 얽매여 있는 곳을,
나는 안다, 나는 본다, 그대로 이것을. 여래들에게는 집착된 것이 없다.
catutthaṃ.
yassadāni devo kālaṃ maññatī”ti.
폐하께서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지금이 가실 시간입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bhaginiyo, cakkhu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anicc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dukkh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no hetaṃ, bhante”.
비구니들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눈은 항상합니까 아니면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존자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입니까? 아니면 즐거움입니까? 괴로움입니다, 존자시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법을 이와 같이 여기는 것은 적절합니까?
'이것은 나의,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이것은 실로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시여.
vadho heso, kesi, ariyassa vinaye —
yaṃ na tathāgato vattabbaṃ anusāsitabbaṃ maññati,
nāpi viññū sabrahmacārī vattabbaṃ anusāsitabbaṃ maññantī”ti.
께시여, 여래가 훈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교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청정범행을 닦는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이
훈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교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이 성스러운 율에서 살해된 자이니라.
“taṃ kiṃ maññatha, bhaddiya, lobh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ahitāya, bhante”.
밧디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손해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tatrāyasmā anuruddho na ekavācikampi bhaṇitabbaṃ maññatī”ti.
그런 가운데서도 아누룻다 존자는 단 한마디도 말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idha, paribbājakā, brāhmaṇo evamāha — ‘sabbe pāṇā avajjhā’ti .
iti vadaṃ brāhmaṇo saccaṃ āha, no musā.
so tena na samaṇoti maññati, na brāhmaṇoti maññati, na seyyohamasmīti maññati,
na sadisohamasmīti maññati, na hīnohamasmīti maññati.
api ca yadeva tattha saccaṃ tadabhiññāya pāṇānaṃyeva
anuddayāya anukampāya paṭipanno hoti.
유행승들이여, 여기 바라문은 '모든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바라문은 진리를 말한 것이지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으로 '나는 [진정한] 사문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진정한] 바라문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내가 더 뛰어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남들과] 동등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내가 더 못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러한 진리를 최상의 지혜로 안 뒤
그는 생명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위해서 도를 닦는다.
“idha, bhikkhu, paṇḍito mahāpañño nevattabyābādhāya ceteti na parabyābādhāya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 ceteti attahitaparahitaubhayahitasabbalokahitameva cintayamāno cinteti.
evaṃ kho, bhikkhu, paṇḍito mahāpañño hotī”ti.
“비구여, 여기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과 둘 다의 이익과 모든 세상의 이익을 생각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그는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이다.”
aniccā vata kira, bho, mayaṃ samānā niccamhāti amaññimha
존자들이여,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항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무상한 것이로군요.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udāyiṃ āmantesi —
“kaṃ pana tvaṃ, udāyi, manomayaṃ kāyaṃ paccesī”ti?
“ye te, bhante, devā arūpino saññāmayā”ti.
“kiṃ nu kho tuyhaṃ, udāyi, bālassa abyattassa bhaṇitena!
tvampi nāma bhaṇitabbaṃ maññasī”ti!
그때 세존께서는 우다이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그대는 누가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인식으로 이루어진 무색계의 신들입니다.”
“우다이여, 그대 같이 어리석고 불분명한 사람의 말이 뭐 필요하겠는가?
그대가 발언할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ākāsānañcāyatanaṃ ākāsānañcāyatanato sañjānāti;
ākāsānañcāyatanaṃ ākāsānañcāyatanato saññatvā ākāsānañcāyatanaṃ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smiṃ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to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ṃ meti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ṃ abhinandati. taṃ kissa hetu?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그는 공무변처를 공무변처라 인식한다.
공무변처를 공무변처라 인식하고서는 [자신을] 공무변처라 생각하고,
[자신을] 공무변처에서 생각하고, [자신을] 공무변처로부터 생각하고,
공무변처를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공무변처를 기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그것을 철저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설한다.
Weight Matrix와 빠알리어 khanti(khamati)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 Weight Matrix (가중치 행렬)
Weight Matrix는 인공신경망에서 입력 데이터와 다음 층의 뉴런을 연결하는
가중치 값들을 행렬 형태로 표현한 것입니다. 주요 특징은:
- 각 층 간의 연결 강도를 나타냅니다.
- 행렬의 크기는 이전 층의 뉴런 수와 다음 층의 뉴런 수에 의해 결정됩니다.
- 학습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조정되어 네트워크의 성능을 향상시킵니다.
## Khanti (Khamati)
Khanti는 빠알리어로 인내, 관용, 용서 등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주요 특징은:
- 다양한 상황과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용을 포함합니다.
- 단순한 인내를 넘어 적극적인 이해와 선택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 불교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 연관성
Weight Matrix와 khanti(khamati)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적응성: Weight Matrix는 다양한 입력에 적응하며 최적의 출력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는 khanti가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고 수용하는 특성과 유사합니다.
2. 지속적 개선: Weight Matrix는 학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됩니다.
마찬가지로 khanti도 수행을 통해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덕목입니다.
3. 균형 유지: Weight Matrix는 네트워크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Khanti 역시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4. 복잡성 처리: Weight Matrix는 복잡한 패턴을 학습하고 처리합니다.
Khanti도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다루는 데 필요한 덕목입니다.
이러한 연관성을 통해,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과 불교적 수행 과정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최근에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생겨났습니다.
이른바 5살 짜리가 총을 들고 아무 곳이나 겨누고 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부분 '미쳤다.'라는 반응이지만 '왜 이해가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촉법소년이라는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애들의 위험한 장난을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인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어떤 일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하려고 할 때 지원자들의 경력, 역량, 자격증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여 선발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여행을 계획할 때도 날씨, 교통편, 예산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일정을 잡게 됩니다. 이처럼 "고려하다"는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여러 가지 요인들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