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감리 마트로
사월 하순 수요일이다. 황사와 송홧가루를 씻어줄 비가 내렸다가 날이 밝아온 아침에 그쳤다. 어제는 종일 비가 와 도서관에서 책을 펼쳐 보면서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비가 그치고 나니 신록은 한층 싱그럽고 초목은 생기를 띌 테다. 아침 식후 빈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섰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꽃대감은 아침 일찍부터 꽃밭으로 내려와 포트에 꽃모종을 옮겨 심느라고 손길이 분주했다. 사연인즉 얼마 전 매발톱꽃을 유튜브로 내보내면서 내년에 꽃을 보려는 시청자들이 회신을 주면 모종을 보낸다고 했더니 다수가 희망하더란다. 어제 비가 왔기에 땅이 습기를 머금었을 때를 틈타 모종을 캐서 포트에 담고 있었는데 그 개수가 무려 100개로 4개씩 담아 택배로 보낼 거라 했다.
꽃대감과 잠시 환담을 나누고 나는 나대로 자연학교로 길을 나섰다. 오늘 일과 수행은 채소를 마련할 예정으로 ‘외감리 마트’로 갈 예정이다. 엊그제도 거기로 가서 돌나물을 가득 뜯어와 꽃대감 친구네로 보낸 적 있다. 우리 집에서는 아직 물김치로 담근 돌나물을 먹고 있을 때라 친구한테 보냈다. 오늘 아침에 그 물김치를 마저 먹었는지라 돌나물을 다시 걷어 와야 할 형편이었다.
언젠가 남긴 글에서 겨울을 지나 봄이 무르익어가도록 우리 집에서는 풋고추 외는 시중의 마트에서 푸성귀를 산 적이 한 차례도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냉이나 쑥을 비롯해, 그 이후는 전호나물을 시작해 여러 가지 산나물을 뜯어와 찬거리로 삼고 있다.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비타민이 풍부한 영아자도 뜯어왔고 약초와 같은 바디나물도 마련했다. 거제 국사봉 곰취도 따왔다.
곡우 전후 봄비가 내리고 난 뒤 들녘으로 나가면 절로 자란 돌나물을 마련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변이나 단감과수원 근처는 돌나물이 자랄지라도 거들떠보질 않아야 한다. 매연이나 농약으로 인해 토양이 오염되어서다. 그렇다고 돌나물이 아무 곳에서 흔하게 자라는 초본이 아니다. 나는 근교 산자락은 물론 들녘의 식생을 훤히 꿰뚫고 있어 돌나물 자생지도 잘 알고 있다.
집 앞에서 동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로 갈아탔다. 천주암 아래서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마을 동구에서 내렸다. 외감마을은 감계리의 일부로 내감의 바깥이라고 그렇게 불리는 달천계곡 들머리다. 작대산과 조롱산 기슭 감계에 신도시가 들어서도 자연마을인 내감마을과 중방마을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곳 바깥의 외감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근래 외감마을 어귀에 식당이 몇 군데 들어서기는 해도 농사로 생업을 이어가는 고령층 주민이다. 벼농사를 짓던 논에 겨울철 비닐하우스로 미나리를 키워 이른 봄 천주산을 찾은 이들에게 인기리에 팔렸다. 청정지역 외감마을 들녘 일대 논두렁과 길섶에서는 돌나물이 흔했다. 마을 주민들은 무심코 지나도 외지에서 찾아간 내가 올봄에 두 번이나 걷어갔고 이번에 세 번째 찾아갔다.
달천계곡 입구에 이르도록 논두렁과 길섶에 자라는 싱싱한 돌나물을 주섬주섬 뜯어 모았다.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입구에 닿아 소나무 아래 자연석 더미에 앉아 돌나물에 붙은 검불을 가려냈다. 바위 더미 곁은 찔레나무에서 새순이 돋아 몇 가닥 꺾어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니 아삭한 식감이 상큼했다. 어릴 적 하교 후 꼴망태 메고 쇠꼴 베러 나가 꺾어 먹던 추억의 간식이었다.
배낭을 추슬러 둘러메고 외딴집을 지날 때 뜰에는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 구경을 잘했다. 꽃잎이 크고 풍성한 모란과 작약도 피어났다. 새터의 달천정을 지나 중방마을로 가다가 돌나물을 더 걷었더니 금세 비닐봉지를 채웠다. 중방마을 정류소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돌나물에 붙은 검불을 가렸다. 온천장에서 불모산동으로 오가는 17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