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덥기로 일년 가운데 가장 더운 요즘이다. 그렇다고 무료하게 지낼 수는 없다.
엊그제 일요일에 인제 아침가리골을 다녀온 노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나는 또 산행에 나선다.
아내는 혼자 다니는 산행을 걱정하지만 산은 원래 이렇게 다니는 맛도 있다고 얼버무렸다.
사실 어제 하루 산행지를 놓고 많은 고심을 했다. 지리산에 다시 가 볼까, 싶기도 하고 속리산 종주를 해볼까,
아니면 대전의 둘레산(보만식계)에 도전해 볼까 많은 생각을 해 보다가 결국 결정한 것은 가장 가까운 산에 가자는 것.
공주대간, 내가 잘 아는 산악인(7,000M이상급 등정 3회) 형님은 우리나라에 대간은 하나일 뿐인데 웬 공주대간이냐, 하시지만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으니 거스르기 어렵다.
공주대간은 산을 타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요즘 그러잖아도 일본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판에
불과 130여 년 전에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의 생생한 현장으로서 그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내가 우선 이 길을 가면서 우리 청솔의 산꾼들께 소개해 볼까 하는 마음을 먹었다.
산행일지는 다음과 같다.
04:07 공주경찰서 출발; 새벽 이른 시각에도 경찰서는 분주해 보였다.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 1.5km 04:27 두리봉; 헤드랜턴을 밝히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새벽바람에 올랐다. 공주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있지만 아직 어둡다.
- 2.2km 05:03 우금티; 동이 트려는지 동쪽이 붉다. 잠시 앉아서 쉬었다.
- 1.7km 05:28 지막곡산; 완만하지만 경사가 계속되는 구간이다. 바닥은 솔잎이 깔린 흙길이다. 날벌레들이 랜턴으로 날아들었다. 지막곡산을 오르는 동안 멧돼지도 만나고, 왼편으로 펼쳐진 아침놀도 감상했다. 벌써 날이 더워져 물을 마시며 쉬었다. 계곡에서 시원한 바람이 올라온다. 그 계곡에 공주시에서 조성한 삼림목재체험관 및 휴양시설이 있다.
– 0.7km 05:57 주미산; 381m로 공주대간 최고봉이다. 주미산의 정상에는 돌탑이 서 있고, 산 중턱에는 공주 주미사지(舟尾寺址)가 있다. 주미산에서 견준산(우금치 뒷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전적지였다. 주미산에서 금강 쪽을 향하여 공주 시가지를 보면 양쪽으로 산줄기에 안겨 꼭 배 모양이다. 주미산은 그 배의 꼬리에 해당한다. 날이 밝아졌다.
- 0.5km 06:06 철마산; 남으로 내려가던 공주대간이 이 지점부터 다시 돌아 북으로 오른다. 해가 뜬 후로 급격히 온도가 올라간다.
- 2.3km 06:42 소나무 쉼터; 동학농민혁명때 이인에서 올라오는 동학군들이 신기리 효포초등학교에 주둔하면서 공략했던 주요 지점이다. 당시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불에 타버려 지금은 활엽수들이 주종인데 정상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 운치와 역사적 비감을 준다. 싸온 연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등산화도 벗어서 이물질을 제거하며 잠시 발을 말렸다.
– 1.9km 07:27 월성산 봉화대; 공주가 충청감영이었던 조선 후기에 실제로 봉화를 올렸던 곳이다. 아침 일찍 올라와 운동하시는 노부부를 만났다. 벤치에 앉아 쉬었다. 덥구나.
– 2.9km 08:07 옥룡동정수장; 여기까지가 14.4km, 공주대간의 날머리이기도 하고 대전에서 오시는 분들에게는 들머리가 된다. 꼭 4시간이 걸렸다. 지난겨울에는 3시간 20분에 왔었는데 덥긴 더웠던 모양이다. 여기서 그만 오늘 산행을 마치고 싶은 충동이 몹시 강하게 올라왔다. 무엇보다 예상하고 준비해 온 물이 부족할 것 같다. 억지로 발길을 돌렸다. 이 정수장은 공주 신관동에 대규모의 정수장이 조성되어 대청댐에서 물을 끌어오기 전에는 금강물을 직접 끌어올려 정수해서 공주시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던 시설이다.
– 1.9km 08:55 월성산 봉화대: 313m에 불과하나 봉화대가 있는 산은 당연히 뾰족하고 사방이 트였다. 그만큼 오르는 데 에너지가 필요하다. 매일 아침 여길 오르신다는 인근 주민을 만나 함께 오른 후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공주는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아는 사람들이 쏟아지듯 나온다.
– 1.9km 09:50 소나무 쉼터; 햇살이 벌써 날카로워졌다. 동학 때 여길 어떻게 기어오르려고 한 것일까, 그분들이 시도하셨던 동쪽 사면이 벼랑이다. 그러고보면 공주대간은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성(城)이구나. 나는 오늘 이 길을 걸으면서 역사적인 장면들을 상상해 보니 눈물이 여러 번 났다.
- 2.3km 10:50 철마산; 오르내리기를 몇 번 하고 여기에 다시 이르렀다.
– 0.5km 11:02 주미산; 공주대간은 소나무 숲길이 대부분이지만 구간에 따라 바윗길도 있고 공주시에서 만든 계단도 있어서 아기자기하다. 다만 여름에는 산객이 적어서 혼자 오면 위험할 수도 있다.
- 0.7km 11:20 지막곡산: 우금티로 그대로 진행하려다가 여기서 왼쪽(남쪽)으로 꺾어 꽃밭골산에 다녀오기로 맘을 먹었다. 꽃밭골산은 원래 공주대간에 포함되지 않는 산이고 지금도 아무런 표지나 이정표가 없다. 다만 닉네임 '대간지기'님이라는 산꾼께서 신공주대간을 주창하시며 여기를 포함시키셨다. 그래도 찾는 이가 없다. 산꾼이 개척해 놓으신 산이니 한번 가 보고 싶었다.
– 0.6km 11:32 꽃밭골산; 그리고 곧 후회했다. 경사가 심하다. 누군가 로프로 길을 군데군데 표시해 놓았다. 정상에 가 보니 아무런 표식이 없지만 정상에만 꽃이 피어 있다. 내가 꽃 핀 시점에 찾은 것인지, 늘 이렇게 야생화가 피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 0.6km 11:50 지막곡산; 꽃밭골산을 다녀와 벤치에 앉아 쉬면서 연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늘 싸 온 식량은 연밥 두 덩이와 단팥빵 네 개. 물을 아껴 마셨다.
- 1.7km 12:33 우금티; 우금티로 내려가면서 고민을 했다. 내친 김에 봉황산까지 다녀올 것인가, 그냥 하산할 것인가. 걸음은 그런대로 걸을 만한데 전화기에 배터리가 13%밖에 안 남아 있고, 무엇보다 물이 부족하다. 그래도 대전 청솔분들께 봉황산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나고 해서 망설여졌다. 벌써 정오를 넘어섰다.
- 0.4km 12:54 일락산갈림길: 가자, 일락산을 넘어 봉황산으로. 나는 늘 이렇게 산에 오면 욕심이 생기는지...
- 1.3km 13:16 일락산: 공주교대 뒷산이다. 높이가 170m밖에 안 되지만 지치고 더운 날에 오르려니 경사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공주시가지의 남쪽에 위치하고, 해가 지는 모양이라 하며 따온 이름인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월락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해방 후에 일락산으로 다시 고쳤다.
- 1.3km 13:47 봉황산: 일락산에서 내려가 10여 호의 민가를 경유하여 봉황산을 오른다. 다행인 것은 그 민가에서 식수를 한 병(700mL) 보충할 수 있었다는 것, 감사한 일이다. 봉황산은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의 배산이었고 현재에도 공주사대부고의 뒷산이니 명산임이 분명하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임금 왕(王)자로 보이는 산이다. 예전에 사대부고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자주 올랐었는데 학교를 떠난 후로는 여러 해 만에 찾았으니 참 무상한 일이로구나. 전화기 배터리가 다 되어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다.
- 1.3km 14:22 일락산: 일락산은 공주교대에서 올라오시는 분들이 운동을 하며 쉬실 수 있도록 운동기구를 비롯하여 쉼터를 잘 마련해 놓았다. 나는 힘이 들어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 1.3km 14:16 일락산갈림길: 여기를 오르는 일도 경사가 만만찮았다. 그래도 이제 두리봉만 넘으면 된다.
- 1.9km 15:07 두리봉: 정상부분 반경 200m에 나무가 없으므로 햇살에 전면 노출된다. 정상에 있는 정자에 벌렁 누웠다. 쉴 만큼 쉬고 내려가자는 마음으로. 남은 물을 마셨다. 오늘 하루 마신 물이 3.8L(스포츠음료 1.4l포함)이다. 이밖에 작은 크기의 토마토를 한 개 먹었다. 과일이 미치도록 당겼다. 255m밖에 안 되나 정상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는 산줄기가 첩첩하고 서쪽으로는 공주시 전체에서 가장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두리봉을 동국여지승람에 주산(主山)이라 적어 놓은 걸 보면 공주의 남쪽에 있는 이 산의 지맥이 북으로 봉황산과 연결되고 그 아래 충청감영이 있었으니 당시에는 꽤 신성하게 여겼던 것 같다. 원래 이름은 망월봉(望月峯)인데 언제부터 두리봉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동학을 전공하신 정00 형님께서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진압군의 지휘소가 있었다고 일러 주신 바 있다.
- 1.5km 15:37 공주경찰서도착!!!
오늘 산행 코스를 정리하면 “공주경찰서 –1.5km - 두리봉 – 10km 월성산 봉화대 - 1.9km – 옥룡동 정수장(공주대간,14.4km)”을 왕복하고, 도중에 지막곡산에서 꽃밭골산(0.6km)을 다녀오고, 두리봉에 오르기 전에 일락산과 봉황산(2.6km)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총거리 35.2km(이정표 기준) 소요시간 11:30 평균속도 3.06km/h(휴식시간 모두 포함)
▽공주대간 기본 개념도(다만, 공주대간 전체 길이가 13.7km가 아니라 14.4km이고, 단군성전까지는 5.5km가 아니라 3.1km이다.)
▽우금티에서 맞은 새벽 하늘
▽지막곡산에 오르며 바라다본 아침놀
▽잠에 취한 듯 공주 시가지가 섬처럼 떠 있고
▽주미봉 가는 길에 놓인 전망데크에서 내려다 본 공주시 삼림목재체험관 및 야영장
▽소나무가 있는 벤치 쉼터. 공두대간 길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곳이다. 바로 아래는 공주생명과학고 실습농장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효포초등학교 있다. 이 학교 역시 농민군들의 집결지였다.
▽소나무 쉼터에서 내려다 본 효포뜰과 그 가운데 있는 효포포초등학교. 이를 가로지르는 하천을 지금도 혈흔천(血痕川)이라 한다.
▽월성산 봉화대를 1km가량 남겨둔 지점에서 계룡산을 올려다 보았다.
▽공주대간의 숲길.
▽봉수대. 조선시대에 한양과 호남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일본군 지휘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 잘 안 보이시죠? 다행이에요. ㅋㅋ
▽요런 나무도 있죠.
▽철마산에서 남쪽으로 보면 오곡동 방향이 잘 보인다. 국립공주병원과 그 뒤로 구절산. 동학농민혁명 당시는 농민군들의 집결지였고 저 구절산에서 이곳 철마산, 그리고 우금티가 있는 견준산 일대에 최소 만 명 이상의 유골이 묻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밭골산에서 만난 야생화. 이름은 모르겠다.
▽꽃밭골산과 지막골산 사이의 가장 낮은 부분에 세워져 있는 돌탑.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우금티. 동학혁명기념사업회에서 우금치가 아니라 예로부터 불러온 대로 우금티로 부르자고 주장했고 공주시가 공식적으로 그렇게 정하였다. 지금은 풀밭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이 길이 공주와 이인 사이의 주요 교통로였다. 이 고개 아래에 혁명기념탑이 있다.
전화기 배터리가 다 되어 시잔을 여기까지밖에 못 찍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첫댓글 공주대간 자세한 기록 잘 봤습니다.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주 오시면 연락하세요. ^^
가까운 곳에 멋진 코스가 있군요.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아요. 산행 실력이 맞아야 함께 가자고 할텐데 어쪄쥬?
오시면 저녁은 제가 쏩니다. ^^
더위에 수고하셨습니다.
왕복산행 하셨네요.
3년전에 다녀왔는데 다시 기억이 떠오르네요.
대간길에서 뵙겠습니다.^^
와~~! 대장님, 반갑습니다. 내일 밤에 뵙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