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 1 원문입니다. 한글(HWP) 파일 아닙니다. 리브레 오피스(ODT) 파일입니다.
삼국사기 권 13 고구려본기 01.o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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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본기가 12권에 기록된 반면 고구려본기는 10권입니다. 보통 우리가 배운 역사대로라면 고구려의 영토가 훨씬 넓고 북방 여러 민족들의 변화 역사 잦았으므로 고구려본기가 더 내용이 많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삼국사기를 원문으로 읽으려고 하면서 느낀 의외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구려가 훨씬 더 넓고 한나라와 기타 선비족이 세운 나라들과의 교류도 있었고 멀리는 돌궐등과도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내용이 더욱 풍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아래 스크린 샷에서 부여왕으로 표시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의 순서로 최고 통치권자의 칭호가 바뀌는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신라본기 초반에도 마한의 왕을 대왕으로 칭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혹시 신라도 왕이라는 호칭이 없거나 몰라서 쓰지 않은 것은 아닌 듯하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기타 나머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의 초반부는 동명왕편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요즘 기업을 기준으로 하면 회장 밑에 여러 사장들이 있고, 그 사장들 밑에 또 여러 이사들이 있고 그 아래 부장 차장 과장 계장 이러면서 어느 기업이나 할 것 없이 호칭이 동일시 되었지만, 한편, 우리는 짱이나 통, 두목, 대빵, 오야지, 큰형님과 같은 호칭들도 있는 것을 압니다. 즉, 왕이라 호칭하는 법식이 있었음에도 백제나 신라가 거서간, 차차웅 같은 다른 호칭으로 최고 통치권자를 불렀다는 것은 지방특색이 더욱 강조되고 또 보장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백제를 언급하면서 신라본기의 거서간 차차웅 등만 언급했는데 백제 본기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물론 백제에서 왕이나 대신들을 칭하는 이름을 본 기억은 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요.
아래 스크린 샷은 비류국왕 송양과 추모왕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해우(海隅)라고 해서 바닷가라고 되어 있는데 옛날에는 어떤 강을 OO해(海)라고 부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강이 어떤 강있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니 강가에 비류국이 있었는지 아니면 바닷가에 있었는지 애매하기도 합니다. 뒷부분에 보시면 추모왕이 채소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누군가 살고 있다고 판단하고 정찰을 갔으므로 바닷가가 아니라 강가라고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해우는 바닷가가 아니라 강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강을 해(海)라고 쓴 것이 의아하기는 하지만 옛날에는 강마다 이름이 다 달랐으므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가령, 강(江)이라는 글자를 보면 요즘에는 대한민국에 있는 낙동강, 섬진강, 한강, 금강 등 아무 강이나 강이라고 할 수 있고 중국에 있는 양자강이나 미국에 있는 미시시피강도 강(江)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江)이라는 글자는 고대에는 양자강만을 뜻하는 글자였습니다. 반면, 하(河)는 황하만을 뜻하는 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해우라고 쓴 것이 어쩌면 해수(海水) 근처 물가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고대에 강(江)이나 하(河)가 양자강이나 황하를 뜻하는 고유의 글자라는 것은 공무도하가 등을 해석하는 어떤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무도하가 첫 부분이 공무도하(公無渡河)(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라고 해석을 하는데, 고대의 강이름을 부를 때 하(河)는 황하만을 뜻하는 글자였으므로 정확하게는 님아! 황하를 건너지 마오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 스크린샷에는 고구려 2대 왕 유리왕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황조가를 아시지요? 치회와 화희가 나오는... 해당 작품에 대한 해설을 포털(Portal)에서 검색하면 개인적 갈등과 좌절 뭐 그런 식으로 정형화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왕이 어디 개인입니까. 요즘은 검사조차 한 사람 한 사람이 기관이라고 하는데.... 해당 시를 서정시가 아니라 서사시로 보아 치희는 사냥을 위주로 하던 삶, 그리고 화희는 농경을 위주로 하는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왕망이 한나라를 잠시나마 장악하고 신(新)나라를 건국하여 다만 몇 십 몇여년간이라도 지배한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왕망이 신(新)나라를 세울 때 고구려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내용을 인터넷 등의 기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리왕 당시까지만 해도 부여에서 탈출한 장면만 드라마틱하게 연상을 할지는 몰라도 치희가 한나라 여성이라는 것을 보면 한나라와의 관계가 상당했음을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래 스크린샷에서 보시면 천문 현상을 관측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있고 희생으로 쓰일 돼지를 놓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선은 천문현상에 대한 기록부터 이야기를 해 보면, 해당 기록은 신라본기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형혹성이란 화성을 말하는 것인데, 현재는 삼국사기를 훓어보는 중이므로 심성이 어떤 별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28수 중 하나이겠지요? 그런데 해당 기록이 신라본기에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은 의아했습니다. 신라본기나 고구려본기나 천문현상을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는데 고구려 본기에 기록된 어떤 천문현상이 신라본기에는 적혀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고구려와 신라의 관측 장소가 서로 현저히 다르다는 것인데, 천문 관측이 공통으로 일어날 수 있는 지역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겠네요.
희생으로 쓸 돼지를 놓쳤다는 이야기가 고구려본기에는 이후 더 나옵니다. 그런데 유독 돼지를 놓친 기록만 세 번은 봤습니다. 고구려본기를 다 읽어본 것이 아니라서 그 이후에도 돼지를 놓친 기록이 또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고구려에서 쓰는 희생 중 돼지만 놓친 것인지, 즉 다른 동물도 희생으로 썼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예기를 읽어보면 옛날 중국에서는 소를 희생(제사의 제물)으로 쓰거나 했던 이야기가 있거든요. 예기에 교특생? 인가 하는 편명이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제사를 1년에 몇 번이나 지냈는지 모르기도 하고, 제사의 제물(희생)로 돼지만 썼는지도 모르겠고, 여러 동물을 희생으로 썼는데 돼지만 놓친 것을 쓴 것인지 모르겠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 포스트를 작성하고 나서 천문현상과 고지도를 활용한 대륙 삼국설? 뭐 그런 내용을 설명해주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대륙 삼국설을 주장하는 책들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고구려의 강역, 백제의 요서경략설 등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있는 글이라도 한 두 번은 본 적이 있지만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내용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오늘 본 영상은 신라조차 중국에 있었다는 내용이네요. 아래 영상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기는 합니다. 내용을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빙성을 판단할만한 전문적인 지식이 제게 없다는 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lgzhY4G0mg&list=TLPQMDgxMDIwMjFpO1nuUxamSA&index=4
출처:https://blog.daum.net/gnomecharm/8388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