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려가 가장 길게 저항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남송이 더 오래 저향해죠 몽고와의 오랜 항쟁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창피한 것입니다. 무인정권시절의 고려는 11세기부터 12세기 초반의 강대국 고려가 아닙니다. 약소국 고려입니다. 무인정권이 들어선 이후 막강한 고려 정규군 편제는 무너졌고. 고려 무인들은 사병집단을 중심으로 군대를 구성했기에 북벌과 북방 소유에 대비하여 훈련했던 고려부대는 정권안보와 내란 진압용으로 전략한 결과 크게 힘이 약해졌습니다. 몽고와의 전쟁 패전 이후 고려는 보병 1만도 모을 여력이 없을 만큼 크게 약화되었죠.
바다거님은 글자가 발음에 오타가 약간 있지만 그건 그렇고, 고려는 무인 정권 때문에 몽골에게 전쟁에서 패 한것입니다. 무인 정권이 아니었다면 거란과 전쟁때 처럼 승리 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인정권이 생기게 된 원인은 의종이 문신들과 내관즐만 등용 하고 무인들은 무시 했기 때문 이구요.
남송은 저항을 잘 한 것보다 운이 좋았죠 몽골이 1240년대 중반 전지구적인 작전을 벌이는데 훌라구의 중동정벌과 동시에 기스칸이후 어기데이, 구육에 이어서 선출된 뭉케가 남송정벌을 시작하지마는 안타깝게 장티프스로 추정되는 병에걸려 남송정벌중 사망합니다. 그리후 칸의 후계자를 놓고 아릭부케와 쿠빌라이가 내전에 돌입하는 이것이 끝나고 남송정벌이 겨우1270년대에 이루어 진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남송이 저항을 잘한 것이 아니고 몽골의 사정때문에 남송이 오래 간것입니다. 병사한 뭉케는 6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 천재로 알려져 있으며 기하학에도 조예가 깊어다고 합니다.
남송 정벌전이 몽고의 주 전쟁터이고, 고려와의 전쟁은 남송 정벌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남송이 잘 못한 것은 아는데요, 그래도 고려의 저항보다는 낫고, 고려의 항쟁시기 보다는 길다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뭉케의 고려침략전쟁은 가장 심해서 매년 침략해 들어와 결국 고려는 1259년에 군사적으로 굴복당합니다. 바다 해안가에 장기간 군대를 주둔시켜 강화도의 수송로를 차단하고, 더구나 전라남도에 배들 만들어 남해안의 조운로를 차단하려는 시도는 최씨 정권을 불안하게 만들어 결국 투입안 하려던 삼별초 병력까지 육지에 투입해서 싸웁니다.
중국은 어째서 우리보다 더 처참하게 당했을텐데 몽골, 고구려 등을 싸그리 자기 역사라고 할까요... 참 우리와 관점이 다르죠? 대국과 소국의 차이인가? 조금만 달라도 남, 조금만 연관이 있어도 우리..... 신라와 백제의 전쟁이 위와 별반 달랐을까요. 전쟁은 어차피 과정은 다 같은것 아닐가요...
첫댓글 몽골군의 대학살은 고려전역으로 퍼져나갔고...-_-; 그럼서 우리가 니네 무지개 나라고 니네 어머니 나라고 형제의 나라냐? 개뻥치시네 진짜...아니 뭔 이런 철판 대박 두꺼운 애들이 다 있어...진짜 뻔뻔하다.
정주성에서 대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12명의 병사들...ㅠ 그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니 진짜 눈물나는군요.ㅠ
어린 애들은 이런 것도 잘 모르더군요. 몽골에게 점령 안 당한 것만으로 자랑스러워 할 일인데 부마국이 되었다고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녀석들도 있고...
사실 고려가 가장 길게 저항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남송이 더 오래 저향해죠 몽고와의 오랜 항쟁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창피한 것입니다.
무인정권시절의 고려는 11세기부터 12세기 초반의 강대국 고려가 아닙니다. 약소국 고려입니다. 무인정권이 들어선 이후 막강한 고려 정규군 편제는 무너졌고. 고려 무인들은 사병집단을 중심으로 군대를 구성했기에 북벌과 북방 소유에 대비하여 훈련했던 고려부대는 정권안보와 내란 진압용으로 전략한 결과 크게 힘이 약해졌습니다. 몽고와의 전쟁 패전 이후 고려는 보병 1만도 모을 여력이 없을 만큼 크게 약화되었죠.
바다거님은 글자가 발음에 오타가 약간 있지만 그건 그렇고, 고려는 무인 정권 때문에 몽골에게 전쟁에서 패 한것입니다. 무인 정권이 아니었다면 거란과 전쟁때 처럼 승리 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인정권이 생기게 된 원인은 의종이 문신들과 내관즐만 등용 하고 무인들은 무시 했기 때문 이구요.
남송은 저항을 잘 한 것보다 운이 좋았죠 몽골이 1240년대 중반 전지구적인 작전을 벌이는데 훌라구의 중동정벌과 동시에 기스칸이후 어기데이, 구육에 이어서 선출된 뭉케가 남송정벌을 시작하지마는 안타깝게 장티프스로 추정되는 병에걸려 남송정벌중 사망합니다. 그리후 칸의 후계자를 놓고 아릭부케와 쿠빌라이가 내전에 돌입하는 이것이 끝나고
남송정벌이 겨우1270년대에 이루어 진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남송이 저항을 잘한 것이 아니고 몽골의 사정때문에 남송이 오래 간것입니다. 병사한 뭉케는 6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 천재로 알려져 있으며 기하학에도 조예가 깊어다고 합니다.
남송 정벌전이 몽고의 주 전쟁터이고, 고려와의 전쟁은 남송 정벌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남송이 잘 못한 것은 아는데요, 그래도 고려의 저항보다는 낫고, 고려의 항쟁시기 보다는 길다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뭉케의 고려침략전쟁은 가장 심해서 매년 침략해 들어와 결국 고려는 1259년에 군사적으로 굴복당합니다.
바다 해안가에 장기간 군대를 주둔시켜 강화도의 수송로를 차단하고, 더구나 전라남도에 배들 만들어 남해안의 조운로를 차단하려는 시도는 최씨 정권을 불안하게 만들어 결국 투입안 하려던 삼별초 병력까지 육지에 투입해서 싸웁니다.
척준경이 생각나네요 저렇게 심각한 소수대다수 전투를 보니
중국은 어째서 우리보다 더 처참하게 당했을텐데 몽골, 고구려 등을 싸그리 자기 역사라고 할까요... 참 우리와 관점이 다르죠? 대국과 소국의 차이인가? 조금만 달라도 남, 조금만 연관이 있어도 우리..... 신라와 백제의 전쟁이 위와 별반 달랐을까요. 전쟁은 어차피 과정은 다 같은것 아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