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뚜벅뚜벅
사월 끝자락 목요일이다. 새벽녘 잠 깨어 김탁환이 메르스 감염병을 치열하게 취재해 쓴 장편 ‘살아야겠다’를 펼쳐 중간 부분을 읽었다. 날이 밝아온 아침 식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놓인 자리 한 마리 까마귀가 날아와 날갯짓을 푸드덕거렸다. 밤새 고양이 녀석도 뒤집어 봤을 쓰레기더미를 까마귀까지 먹잇감으로 헤집었다.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으로 가니 친구는 일찍 내려와 포장 작업에 열중이었다. 비가 그친 어제 꽃삽으로 매발톱꽃 모종을 포트에 옮겨 심더니 오늘은 택배로 보낼 상자를 정성껏 포장하고 있었다. 친구는 일전 유튜브로 내보낸 ‘바람둥이 매발톱꽃’을 시청한 구독자 가운데 내년에 꽃을 보려고 모종을 신청한 이들이 다수였단다. 그들에게 보내는 꽃모종을 상자에 담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아침 인사를 나누다 꽃잎을 펼치는 붓꽃 가운데 봉오리를 맺은 한 송이를 폰 카메라 사진으로 남겼다. 내가 1일 1수 시조 창작에 도전해 두 달이 되어 가는데 오늘 아침 탈고한 소재가 붓꽃이어서다. ‘붓꽃’은 내일이나 모레 아침 사진과 함께 초등 동기들의 단체 카톡과 함께 몇몇 지기들에게 날려 보낼 참이다. 친구와 하루를 잘 보내자고 하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어떡하던 하루를 길 위에서 보낼 일정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전제되기로 당분간 산나물은 채집해 오지 않기로 아내와 정한 약속이다. 아마 앞으로 수일에 걸쳐 먹을 산나물은 밀려 있는 듯했다. 열차나 시외버스를 타고 창원권을 벗어난 교외로 나가볼 생각이 없었다. 시내버스도 타지 않는 무작정 걷기를 감행해 하루를 보낼 작정으로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거리의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신록이 번지고 반송공원 아카시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었다. 등꽃이나 아카시꽃은 오월 초중순에 피었는데 올해는 등꽃이 진작부터 피었고 모든 꽃의 개화가 열흘은 빠른 듯했다. 퇴촌교에서 사림동으로 건너가 사격장으로 올라 잔디 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걸었다. 파릇한 잔디와 벚나무는 물론 사격장을 에워싼 정병산 자락의 신록이 싱그럽기만 했다.
사격장을 벗어나 소목고개로 오르니 늦은 봄 야산에 피는 땅비싸리꽃과 골무꽃을 볼 수 있었다. 골무꽃에서는 어릴 적 어머님이 구멍 난 양말을 기울 때 호롱불 아래 반짇고리에서 꺼내 끼운 골무가 생각났다. 골무는 내가 요즘 남기는 시조 소재로 삼아도 될 듯해 길을 가면서 메모를 몇 자 남겼다. 소목고개 못 미친 약수터에서 대롱에 빠져나오는 샘물을 들이켰더니 속이 시원했다.
소목고개에 이르니 쉼터 등꽃이 만발해 꽃구름처럼 일어났다. 내 먼저 가던 두 여인은 등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그들은 정병산으로 오르고 나는 고개를 넘어 소목마을로 내려섰다. 길섶에는 양봉업자가 둔 수백 개 벌통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여러 밀원 가운데 아카시꽃이 그해 첫 꿀이면서 양도 많다고 들었다. 산지를 개간해 텃밭을 가꾸는 농원과 단감과수원을 지났다.
소목마을 남향 노거수 앞에서 25호 국도가 정병산터널을 빠져나온 높다란 교각 밑을 지났다. 남산마을 들머리 남해고속도로와 국도가 걸쳐진 횡단보도를 건너 용전마을을 거쳤다. 구룡산터널 용전요금소 근처에 가꿔보려던 텃밭은 마음을 거둘까 싶었다. 초봄에 시든 검불과 잡초를 정리한 이후 참취를 뜯으러 가던 길에 거기를 살폈더니 멧돼지인지 고라니인지 발자국이 보여서다.
용암마을에서 용자 돌림 용강마을에서 소답동으로 가는 신풍고개 옛 철길 산책로를 빠져나갔다. 행복 의창 터널에서 빌라와 주택이 밀집한 소답동은 5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모종이나 채소를 살 일 없으면서 노점을 둘러보다 과일 행상 참외를 한 봉지 사 배낭에 넣으니 어깨가 묵직해 왔다. 외곽으로 옮겨간 예전 향토 사단 정문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냅다 집에까지 걸었다. 23.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