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과 비늘
어디로 가는 중이니?
땅에 떨어진 작고 흰 비늘이 내게 묻는다
나무 의자에 앉아서 숨을 쉬고 있어
식물이 되고 싶은데 돌이 될 것 같아
너는 어디로 가니?
땅속으로 들어가는 중이야
물고기가 되려고
백 겹의 비늘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백합 비늘조각으로서
지느러미 돋아나고
아가미 생기고
여름으로 뒤덮인 몸을 갖고 싶어서
그게 언젠데?
4년쯤 뒤 꽃의 시간은 한 묶음씩 길고 깊게 흘러 다녀
너도 느리구나
나도 느린데
마트에 갈 때도 나는 세계에서 밀려나는 것 같아
다음 사람 그다음 사람 밀려오고
서둘러 닫히는 계산대
한쪽 발이 트레드밀에 낀 것 같은 기분
속도에 발이 걸려 빠지는 늪
경주용 트랙 한가운데 갇힌 늪
냄새도 없이 살갗에 달라붙는 늪
총알 배송, 부디 죽지 말고 천천히 해주세요
늦으면 입이 사라지는 단톡방으로
달려가는 늪
당신은 늦게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결정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잠기는 장소에
발이 빠지고 허리에 물 차오르고
천천히 죽고 싶어서
느린 내가
느린 너에게 닿는 곳
땅속에서 자라는 손톱만 한 비늘의 방
빗물에 녹지 않을까
당신이 밟고 있는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누군가의 녹은 몸이에요
어디로 가는 중인가요?
멈춰서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바닥들
네 개의 발목으로 갈색 털을 날리며 달리는 바닥
비늘이 돋은 몸으로 수풀로 기어가는 바닥
내 발목의 파동과 닿아있는
빠르게 달리다 덜컥 넘어져 깨진 얼굴
흙으로 덮어주는 곳
꺼내서 피 닦아주는 곳
뒤처지면 사라진다고 다그치는 당신을
애도하는 이곳
수많은 비늘 소리 없이 사라져도
영혼은 온전할 텐데
빠른 당신을 쫓아가다 영혼이 녹았다구요
빗줄기 속에서 헤엄치는 흰 물고기들
2026 다층 여름호
김은닢 시인
2022 시인수첩 등단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