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포 열차 사고의 못 다한 이야기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열차 사고입니다 . 구포 열차 탈선사고는 저 자신에게는 잊어지지 않는 사건 이였고 앞으로도 이러한 사고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 26살 젊은 나이에 부기관사로 철도에 입사하여 33살 나이에 철도의 꽃인 기관사가 되어 근무했던 시절 2 년차 기관사가 겪은 일을 그냥 묻어 두기에는 미련이 남아 글을 적어봅니다. 1993년 3월 28 일 17:30분 경에 일어난 구포 사고는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사고 현장은 경부선 물금-구포역 사이 서울역기점 427.100㎞ 지점 이였다. 그 날 사고 열차는 #117열차로 (서울발→부산행) 무궁화 호 열차 이였다. #117열차는 85k/h로 운행중 물금 ∼구포역 사이 427.100㎞ 지점 (구포역 전방 700m) 사이에 한전 측에서 운용하는 고압 전력 케이블 (지중선)을 지하에 매설하기 위한 공사로써 협의도 하지 않고 터널발파로 인하여 선로를 받치는 흙이 매몰되어 (길이 30m, 폭 23m,깊이 9m) 구덩이가 생기고 그위에 레일만 걸쳐 있는 상태에 있었다. 그때 운행중인 #117열차가 푹꺼진 웅덩이를 통과하다 빠지게 되었다. 당시 #117열차는 기관차 와 발전차 와 객차 1량이 웅덩이에 들어가고 나머지 객차는 2량은 탈선이 된 사고였다. 웅덩이의 크기는 기관차 길이정도인데 기관차가 그 자리를 차지하므로 발전 차와 객차1량은 들어갈 공간이 없었지만 달리던 속도와 충격에 의하여 같이 들어가 버렸다. 그리하여 발전차와 객차는 캔맨주통을 발로 밟어면 납작하게 되듯이 좁은 웅덩이 안에서 오징어포처럼 납작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고인이 된 분들은 발전차 승무원과 발전차 바로 뒤에 객차에 탄 여객 들 이였다 . 피해로는 사망 78명 부상198명(중상54명,경상 144명) 이였고 인명 피해를 제외한 피해액이 31억원 이였다. 그 당시 기관차는 상선 선로 모래 웅덩이에 쳐박히였고 이로 인하여 상하선 선로가 끊어졌다. 이로 인하여 모든 열차는 동해남부선으로 우회 수송하게 되었다.
그 날은 오후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 당시 저는 #2014열차 (부산진→부곡)로 운행하는 콘테이너 화물열차 기관사 였다. 1992년 2월1일 부로 대구기관차 사무소 기관사로 발령 받아 근무중이였다 . #2014열차는 시발역인 부산진역을 정시에 출발하였다. 제 앞에는 #116열차(부산→서울행 무궁화호) 가 운행하고 있었다. 부산진역을 출발하여 운행하니 평소보다 짐이 무거움을 느끼었다 . 부산진 에서 사상역 가는데 오르막이 있었다. 오늘은 왜 이리 짐이 무겁지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화물에는 종이를 가득 실었는지 수입쇠고기를 실었는지 하면서 앞서간 무궁화호 열차를 구포역까지 바로 따라잡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이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상선 하선 열차 충돌사고를 방지했고 큰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였다 . 사상 역을 통과하여 구포역에 가까이오니 신호기가 구포역 가장 까까이 있는것이 진행이였고 구포역 가까이 와서 보니 중계신호기가 진행에서 제한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서 보니 장내신호기가 주의로 현시 되었다. 그 당시 속도는 90㎞/H 이였다. 깜짝 놀라서 바로 급히 제동을 사용하고 구포역 을 들어오니 출발 신호가 경계로 현시되었다. 경계시에는 바로앞 600m 에 지장을 준다는 신호이다. 아울러 열차속도는 25㎞/H 이하로 운행 하여야한다 . 급제동(열차를 세우는것) 을 취급하였으나 구포역 출발신호기 지점에서는 40㎞/H로 통과하여 구포건널목을 지나 사고지점 400m앞에 정차하였다. 만약 30초만 빨리 왔어도 구포역 통과시 출발신호기 진행으로 인하여 90㎞/H 로 달렸을 것이다. 정차하여보니 탈선된 객차가 보였고 기관차는 보이지 않았다. 구포역을 무선전화기로 호출하여 최초로 사고를 급보하였다. 물금 ∼구포간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는 정차하였다. 그 후 #2014 화물 열차는 구포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고현장에는 피비린내가 역하게 나왔고 하늘도 슬퍼하는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리고 열차사고 현장에서는 사고충격으로 인하여 죽은 사람들이 20명정도가 쓰러져 있었고 부상당한 사람은 구급차에 실려가고 한마디로 아비규환 이였다. 한마디로 전쟁터와 같이 참혹하였다. 119구급대의 싸이렌 소리는 요란하였다. 이 참다한 현실을 어찌하라. 지금도 열차사고시 충격으로 사고현장에서 방치된 물방울 치마 입은 아주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죽은 자여 그대들은 너무나 억울하고 애처롭다 . 이 사고를 통하여 생각하면 내일일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고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것 을 알았다.
이 사고를 통하여 자세히 분석해보니 아래 세가지 이유로 하나님이 저를 지켜 주었다. 첫째는 콘테이너 짐이 보통보다 무거운 것이 동시 열차충돌을 방지할 수 있었다. 보통 때는 #2014 화물열차가 #116 무궁화열차 뒤에 따라가면 #116무궁화 열차가 구포역에 정차하므로 구포역 장내신호기 감속(구포역에 열차가 방금 출발 하였다는 신호)을 보고 운행하나 그 날은 짐이 무거우므로 #116 무궁화호 열차를 따라잡지 못하였다 . 사고지점에는 #116 무궁화 열차 통과하고 바로 후에 #117 무궁화 열차가 웅덩이에 빠진 것이다. 정상적인 운행이라면 #2014 상행 화물열차 # 117 하행 무궁화호 열차 동시에 충돌하면서 웅덩이에 빠지는 시간인 것이다. 동시에 열차가 웅덩이에 빠졌다고 상상해 보자. 사고현장은 지옥이 되었을 것이고 사고복구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대형 콘테이너 28개가 폭탄처럼 사고열차인 #117 무궁화 열차 에 떨어졌다면 상상을 초월한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117 무궁화 열차 기관차가 웅덩이에 빠지면서 상선 선로에 묻히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상선 선로가 절단되어서 #2014 화물 열차를 정차시킬 수 있었다. 만약 선로가 절단되지 않고 흙만 내려앉는다면 신호는 정상으로 나오므로 #117 무궁화 열차 사고난 다음 #2014 화물 열차는 정상속도( 90㎞/H)로 운행하여 열차탈선 한 곳에 다시 뒤업어 버렸을 것이다. 만약에 #117 무궁화 열차가 상선선로에 쳐 박히지 않고 하선선로만 쳐 박혔다면 어찌되었을까? 열거한 대로 대형 열차충돌 사고가 일어났을것이다 . 셋째는 저가 운전취급을 엄정히 하고 신호현시에 따라 제동취급을 적기에 하였다는 사실이다 . 제동취급을 실념하고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운행하던지 그리고 일상적인 신호보안장치 장애가 발생했는줄 알고 안이하게 취급하였다면 사고현장까지 가는 2중 열차충돌 사고가 발생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2014 화물열차는 사고현장 400m앞에 정차하였다. 이 사고로 인하여 저 자신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내일 일 은 아무도 무른다는 사실과 삶과 죽음의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 일수도 있다는 현실을 알았다. 그리고 무모한 공사로 인하여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에 대한 분노가 사무쳐 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에 저 자신도 포함 될뻔한 사실들을 생각하니 아찔함과 감사함이 생각났다. 다시는 이러한 참담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한다 . 지금도 16년전 일이지만 선명하게 생각이 나는 것은 제 철도생활에 평생 잊지못하고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 다시는 아무협의 없이 무모한 공사로 인하여 대형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 끝 2003년 7월22일 원본 2009년 8월26일 수정 김백현 |
첫댓글 글 작성하신 분은 1993.3.28 구포역 서울방향 700m 전방에서 일어난 구포열차 참사 구간 통과 예정이었던 당시 부산진발 부곡(현재 의왕화물기지 오봉역 인근으로 알고 있음)행 2014화물열차(오늘날 부산발 오봉행 컨테이너 화차의 전신인 듯) 기관사님이 쓰신 글입니다. 사고현장 직전에서 회차하여 구포역 귀환
근데 부곡역이 현 의왕역의 옛 이름 아니었던가요?
@khacha 그렇군요 오봉이 아니고 의왕이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진짜 천만 다행이지요. 하필 그날 화물이 무거워 사상-구포간 상구배를 오르는데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고 평소 다이아대로만 갔더라면 아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기관사님은 정말 아찔하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계시는 듯
뻘소리지만 저 상황에서 물론 그 때 경부선 전철화도 안 되었지만 추풍령 고개도 컨테이너 40량 풀로 싣고도 가뿐하게 넘는 8500호대를 몰고 갔더라면 ㄷㄷㄷ 아예 한 몇 분 빨리 갔더라면 사고를 면했으려나
지금 레일이 아닌 노반이 저렇게 붕괴되었을 경우 자동으로 전달되는 신호체계가 있나요? 고속선 말고 재래선
제가 알기로... 노반만 내려앉을 경우 선로는 가라앉지 않고 조금 내려간 상태로 뻗기 때문에 신호는 안 꺼지는걸로 압니다.
레일이 끊어지지않는이상은 신호계열에서 알 방법은 없습니다
음 글쓴분은 한국철도 역사상 유일하게 기관사에서 여객전무로 전직하여 지금 ktx여객전무 (열차팀장)로 근무중이시죠. 정말 특이한 케이스에 이름도 흔치않은 이름이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