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년부터 1512년까지의 영토이다.
서막
우즈베크 칸국은 건국자인 압둘 카이르 칸 이후 분할 상속으로 시비르 칸국과 우즈베크 칸국으로 나뉘었으나 아들 치세 대에는 한 국가처럼 지냈다.
그러나 우즈베크 칸국의 독자적인 남진과 시비르 칸국의 내전으로 서로 갈라지게 된다. 이때가 1468년부터 1500년까지의 일이다. 그래도 후에 서술할 큰 일이 없을 때까지는 샤이반 가문으로 서로를 지원했다.
정복 전쟁 및 최전성기
1500년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이 즉위하며 상황이 급변한다.
그 전에는 킵차크 칸국 내부의 작위인 백장칸국을 우즈베크 칸국으로서 급격하게 실체화한 것이기에 기존의 세력, 부족, 봉건 요소, 민족 등이 전혀 고려되지 못했고 불만이 매우 컸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 샤이반 가문 내의 계승권 분쟁까지 겹치니 강한 군사력에 비해 속이 들긇는 내유외강의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갖췄으며 군사 운용과 전술에 매우 능했다. 그는 우즈베크 칸국을 봉합시키며 샤이바니 제국을 세웠다.
그는 점차 침투하던 트란스옥시아나에 대한 열망이 컸기에 내부를 안정시키고 바로 정복 사업에 들어간다. 당시 티무르는 티무르 치세의 최전성기, 분열기, 티무르 르네상스를 거쳐 최후의 분열기에 드러선 시기였다.
(티무르 르네상스는 아부 사이드 미르자가 사마르칸트 중심의 트란스옥시아나와 헤라트 중심의 호라산으로 쪼개진 티무르 제국을 통일한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우즈베크 칸국의 도움과 카라코윤루와의 타협으로 전개되었기에 두 국가의 통수와 아크코윤루의 아부 사이드 미르자 사살로 티무르 제국은 영원히 통합을 못하게 된다.)
티무르 트란스옥시아나와의 전쟁으로 사마르칸트를 점령하며 트란스옥시아나를 완전히 평정하게 된다. 이에 대해 수많은 국가로 쪼개진 티무르 계통 세력들은 합동 방어 및 수복을 진행했다. 이때 가장 전공을 세운 자가 바로 바부르였다. 그러나 결국 바부르가 패배해 버렸고 샤이바니 제국은 칼을 겨눈 티무르 헤라트로 눈을 돌렸다. 이때가 1505년의 일이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서부인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을 재평정하며 안정시켰고 헤라트로 진격했다. 이때 티무르 연합군은 헤라트 수비 및 대회전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결국 바부르 등의 인물들이 혈전을 벌였으나 무함마드 샤이바니에게 패배하였다. 심지어 티무르 직계가 모두 죽으며 티무르 세력의 지도자로서 바부르가 즉위하게 된다.
이로써 부하라 칸국 즉 샤이바니 제국은 티무르 제국을 무너뜨리고 최대 영토 및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위기와 중흥기
이 당시 중동은 무함마드 샤이바니를 포함해서 티무르의 바부르, 카라코윤루의 자한 샤, 아크코윤루의 우준 하산 등 영웅이 계속 나타나고 잡아먹히며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끝판왕이 등장하는데 바로 사파비 제국의 이스마일 1세이다.
아크코윤루와의 결전의 승리로 시아파의 거수가 되었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사파비 제국은 수니파인 샤이바니 제국의 확장이 불편했고 호라산 지방을 양분한 두 국가는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스마일 1세는 티무르 연맹의 잔존 세력을 규합한 바부르와 동맹을 맺고 헤라트, 사마르칸트로 각각 진군하였다.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두 세력을 마주하고 시아파 광신도 전쟁병기인 키질바시가 주력인 사파비와 몽골 제국의 후예인 대초원 궁기병들이 주력인 샤이바니가 맞붙게 되었다.
거대한 대회전이 벌여졌고 두 국가 모두 지배자가 친정에 나섰다. 결국 무함마드 샤이바니아 전장에서 전사하며 사파비와 티무르 연합군의 승리가 되었고 샤이바니 제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샤이바니 제국에서 우즈베크 인들을 제외한 인종들은 카자흐라는 세력으로서 뭉쳐서 독립을 하였고 샤이반 가문의 일원이었던 일바르스가 키바 칸국으로 건국 후 독립하며 제국은 분열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다. 불안감과 동질감 두 감정으로 부하라 칸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불안감은 바로 사파비 제국이었다. 호라산 지역을 장악하였으나 사파비의 목표는 시아파 이슬람 제국을 세우는 것이었기에 정복 목표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동질감은 초원 지역의 지배자들은 모두 샤이반 가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키바, 부하라, 카자흐, 시비르 등 내외부 문제로 서로에게 칼을 돌리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부하라 칸국은 수도 바로 밑인 사마르칸트를 바부르에게서 다시 수복했고 티무르 세력을 역으로 압박하였다. 이는 바부르가 인도에서 용병 노릇과 정보 수집으로 이어왔고 무굴 제국이 세워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키바 칸국과는 사파비를 견제하며 같이 호라산 지역을 약탈을 진행하였다. 심지어 사파비 제국이 오스만과의 결전에서 패배해 이스마일 1세가 폐인이 되며 지방 및 키질바시 관리가 안되자 더욱 약탈을 하고 깊숙히 침투하며 국력을 회복하고 성장하였다.
1599년까지 샤이반 왕조가 다스리며 중흥기를 이끌었다.
쇠락 및 멸망
1599년 앞선 중흥기를 마지막으로 이끌고 황금기를 연 압둘라 2세 칸 이후 아들이 반란으로 1년도 안되어 사망해버리자 샤이반 왕조가 끝났다.
심지어 협력 관계였던 시비르 칸국 역시 건국부터 지속된 타이부가 왕조와 샤이반 왕조의 대결에서 지속되었다. 마침내 위기에 빠진 타이부가 왕조가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부터 친했던 러시아 차르국을 부르며 시비르 샤이반 왕조도 러시아에 볼모로 끌려가 단절되었다.
심지어 시간이 좀 지나자 어지러웠던 사파비 왕조에서 압바스 대제가 등장하며 약탈을 못할 뿐더러 영토까지 뺏겼다. 친하게 지내거나 외교관계를 맺은 오스만, 무굴, 러시아는 각각 사파비에 패배, 대내란, 시비르 문제로 외교도 단절되었다.
이때 칸국으로서 황금씨족이 칸에 즉위해야했는데 아스트라한 칸국이 멸망되어 넘어온 아스트라한 가문이 즉위했다. 즉위한 칸의 아버지이자 국무총리로서 막대한 권력을 가졌던 자니 무함마드의 이름을 따서 자니드 왕조로 명명되었다.
이 당시는 영토 축소, 외교 단절로 위기를 겪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우즈베크인으로서의 정체성 강화와 문화 발달로 현재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과정이 되었다. (영토 역시 현재의 우즈베키스탄과 거의 일치되어졌을 때다.)
그러나 코칸드 칸국 독립, 나데르 샤의 침공, 러시아의 남하 등은 위기가 되었고 지속적으로 쇠락하였다. 결국 칸국으로서는 망기트 왕조가 들어서며 에미르국이 되어 소멸했고 망기트 왕조 역시 러시아의 영향권, 보호국, 속국 등으로 격하되며 명맥을 이어왔다. 결국 적백내전으로 우즈베크 소비에트 국가가 되며 소련에 편입되어 완전히 멸망한다.
첫댓글 바부르의 티무르 제국 재건이라는 야망을 이루지못하게 한 국가죠.
그쵸. 티무르 헤라트가 존재했을 때부터 영혼의 한타를 몇번이나 했는데 결국 그렇게 힘들게 얻은 사마르칸트를 잃으니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죠.
중앙아시아 쪽은 역사를 잘 모르다보니 처음에 EU4를 접했을 때는 이 지역의 국가들과 판도를 보고 굉장히 낯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분에 부하라 칸국의 역사를 알고 가네용ㅎㅎ
잔세계 역사는 연결되어 있고 알면 재밌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AI가 만든 부하라가 뜬금없이 출현했어서 벙쪘었던
사실 저도...
시리즈 잘보고 있어유